-
-
통역사
수키 김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05년 9월
평점 :
품절
내가 지금 발딛고 있는 이 나라가 싫어질 때가 있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친구와 이런 대화를 나누었었다. 난 미국으로 이민 가고 친구는 다른 나라로 이민가고 싶다고. 이 나라가 너무 싫다고. 그냥 말로만 이민 간다는게 아닌 정말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는 걸 누군가에게 말하면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괜히 다른 나라에 가서 살면 고생이라고 했다. 그래도 자기가 태어난 나라에서 살아가는게 최고라고. 그땐 속으로 모르는 소리 말라고, 여기보단 훨씬 낙원일거라고... 그렇게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이 책은 나와같은 생각을 가진 이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한 번 읽어보고 다시 한번 곰곰히 생각해 봤으면 싶은 책이다. 어렸을 적 부모님과 언니와 함께 미국에 이민을 가서 재미교포 1.5세로 살아가고 있는 수지. 아메리칸드림을 꿈꾸고 한국으로 와서 일주일 내내 일을 하는 부모님과 전혀 우애라고는 느낄 수 없는 언니 그레이스와 함께 외롭게 살아가던 수지는 대학 4학년 유부님 교수 데미안과 함께 살기 위해 집을 떠난다. 그 후, 총기사건으로 부모님을 잃게 되고 수지는 5년이나 지나버린 사건을 파헤치며 묻힐뻔한 과거를 파헤친다.
한국 사람으로서, 동양인으로서, 아시아가 아닌 다른 대륙에서 살아간다는 것. 그저 여행으로 잠깐 머무르는게 아니라 아주 그 땅에서 터를 잡고 살아간다는 것은 가만 생각해보면 그리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언어와 문화의 격차도 있을 것이고, 다른 외모부터도 그 나라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기 힘들어 정체성의 혼란이 초래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저 그런 짐작을 이 책에서는 수지라는 인물을 통해, 작가의 이민자로서의 경험을 통해 아주 잘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은 추리소설이기도 하다. 제법 두껍고, 처음부터 끝까지 어둡고 침울하지만, 추리소설이라는 양식을 빌려 흡인력있게 읽을 수 있었고, 무엇보다도 수기 킴의 문체가 너무나도 멋져 주인공의 마음이 그대로 나에게 전해지는 느낌이었다. 아직도 새벽까지 영어공부를 하고 있다는 수기 킴. 그런 그녀가 보통 미국인 못지 않게 이렇게나 글을 잘 쓴다는 것에, 감탄과 또 한국인으로서 자랑스러움도 느껴진다.
한동안 이 작품이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작품의 분위기가 나를 압도해서 책을 덮고난 지금까지도 놓아주지를 않으니.... '오전 9시의 담배는 절망감의 표현이다.'라는 첫문장부터가 무척이나 매력적이고, 한국인 이민자들의 쓸쓸함이 그대로 묻어나온 것 같아, 책을 덮고는, 그냥 내 나라에서 살아가는게 가장 행복한거로구나 라는 깨달음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