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게 라이프, 편안하게 함께 따뜻하게 - 덴마크 행복의 원천
마이크 비킹 지음, 정여진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6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고등학교 다닐 때 야자가 너무 하기 싫었다. 야밤에 정신병원 처럼 생긴 건물 안에서 다들 미친듯이 책을 들여다보고 있는 꼴을 보고 있노라면 내가 지옥에 있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물론 내가 공부를 잘 하는 편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하고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자격이 없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정확히 나는 그 때 부터 한국과 나는 어딘가 맞지 않음을 느꼈다. 다들 병신처럼 앉아서 시키는대로 하고 있는 걸 보면 내가 이상한걸까 싶었다. 그런 내게 가장 행복한 시간은 집에 와서 내가 하고 싶은 걸 마음껏 하는 시간이었다. 인터넷을 하거나 책을 읽거나 그 어떤 것이든 말이다. 6시에 정규 수업 시간이 끝나고 해가 질 무렵 집에 와서 가족과 함께 저녁을 먹고 자유시간을 갖는 것... 그것이 그 때는 그렇게나 어려웠다. 늘 학교에서는 담임선생에게 어떤 핑계를 대고 야자를 빠질까 그런 생각뿐이었다. 특히 겨울에는 짧아진 해와 추운 날씨에 더욱 집이 그리웠다.

 

3년 을 버티고 대학생이 된 후, 자유가 주어졌다. 오롯이 내가 주도할 수 있는 삶이 내게 주어졌다. 말 잘 듣던 병신들은 좋은 대학 가서 떵떵거리며 살겠지만 그딴 건 내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내가 매니지 할 수 있는 내 삶을 다시 태어나서 보답받게 된 느낌이었다. 수업이 끝나면 내가 향한 곳은 늘 '집'과 '도서관'이었다. 당시 책을 일 년에 백 권 가량 읽은 내게 책은 '선물'과 같은 존재였고, 도서관은 '놀이터'였다. 그러던 중 일 년 가량 영국으로 연수를 떠났다. 그 때 찍은 사진들을 보면 한국에서는 전혀 볼 수 없었던 내 표정을 보게 되었다. 활짝 웃는 표정을 말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꾸준히 하지 못했다. 직장 또한 내가 십대때 느꼈던 학교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물론 밤 10시까지 일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 나름의 스트레스가 있었다. 정시퇴근은 비정상적인 것으로 여겨졌고, 여기저기 '눈치'를 보는 삶을 살게 되었다. 물론 한 달에 한 번 '월급'이 들어왔지만, 내 소중한 시간과 이딴 푼돈은 교환할 가치가 없다고 여겨졌다. 또 다시 방황이 시작되었다. 또 한 번 느꼈다. '도대체 왜 이 지구상에는 이런 불행한 삶을 강요하는 나라가 있으며, 나는 왜 하필 이런 곳에 태어났을까?'

 

어쨌거나, 방황의 끝에 다시 한 번 직장생활을 시작하게 되었고 나름 삶의 질을 최대한 보존할 수 있는 환경의 회사를 다니고는 있지만, 나만의 휘게를 찾기는 너무 힘든다. 자연을 정말 사랑하는 내게 일주일의 5일을 탁한 공기와 각박한 분위기의 사무실에서 희생되어야 하는 건 정말이지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니다.

 

고등학생 때의 하교 후 '집'과 대학생 때의 '도서관' 그리고 '산 속의 펜션'과 같은 나만의 휘게를 나는 왜 이렇게도 누리기 힘들까? 삼십년을 돌이켜보면 내 삶은 그저 '버티는 삶'이었다. 유럽에 있었을 때 내가 느꼈던 것은 '아 바로 내가 여기서 태어났었어야 했는데'이다. 돌아보면 공원이 있고 또 그 근처에는 늘 도서관이 있었다. 사람들은 여유가 있으며, 인생을 즐길 줄 알았다. 그것이 어쩌면 즐기는 삶이 아니라 '인간답게 사는 삶'은 아닐까 싶었다. 내게 휘게는 이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거창한 무언가가 아니다. 앞서 말한 그저 내가 하고 싶은 것이며 편안함을 느끼고 즐거움을 느끼는 무엇이다.

 

책에 대해서 말하자면, 한 때 이런 지옥같은 국내에 북유럽의 파라다이스를 찾으려는 이들 사이에 유행이 되었었는데 이에 편승하여 마무리가 부실한 채 출간된 걸로 짐작된다. 곳곳의 오타가 이를 입증하는 듯 하다. 선척적으로 국내의 지옥같은 분위기와 제도에 쉽게 동화되기 어려웠던 나는 남들이 북유럽에 관심을 가지기 전부터 동경했던 곳이기에 북유럽 관련 책을 늘 찾고 탐독해왔었다. 그런데 이 책은 퀄리티로 보자면 그저 유행에 따른 껍데기로밖에는 보이지가 않아서 아쉽다. 그렇지만 '휘게 (hygge)'라는 단어를 알게 되었고, 정확히 북유럽인들에게 이것이 어떤 존재인지와 행복과의 관계를 알게 된 것은 만족한다.

 

언제쯤이면 휘게를 마음껏 느낄 수 있을까? 이제 더 이상 버티는 삶을 살고 싶지 않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