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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플랜 사차원 유럽 여행 - 읽고만 있어도 좋은
정숙영 지음 / 부키 / 2006년 5월
평점 :
절판
바로 내일이 개학이다. 장장 2개월 하고도 16일이나 되는 긴 여름방학임에도 불구하고 이리도 아쉬운건 귀차니즘에 찌들려있다가 아침에 일어나 학교에 갈 엄두가 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그 귀차니즘의 본질적 원인은 바로 여름방학 내내 여행을 떠나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니라. 방학을 맞이할 때 쯤엔 너무나도 빡빡한 학교 스케줄에 치여 살다보니 그저 집에서 잠이나 푹 자며 쉬고만 싶었는데, 그 휴식이 너무 길어 언제부터인가 집을 떠나 먼 곳으로 가는 것도 망설일 정도가 되어버렸다.
대신, 올 방학엔 책을 많이 읽어두었다. 여행기야 뭐 늘 즐겨서 읽는데, 이 책은 그 많은 여행기들처럼 도서관에서 빌려 더러운 책 찝찝해하며 보지 않아도 되는, 선물받은 새 책이라 깔끔한 기분으로 읽을 수 있었다. 가격도 꽤 비싼편인데, 이유는 사진 한 장 없이 오로지 빽빽한 글로만 장장 400여 페이지에 달하는 책이기 때문. 아침에 읽기 시작했는데 새벽에 다 읽었다. 휴...
아까 말했듯, 이 책의 특징은 바로 여행기에서 가장 포인트라고 할 수 있는 사진이 없다는 것이다. 나름의 개성으로 봐 줄 수도 있겠지만 그게 쉽지가 않은건 저자가 설명하는 장소에 대해 오로지 인터넷이나 책으로 독자가 직접 찾아보거나 그것도 귀찮으면 나처럼 머릿속으로 상상만 해서 볼 수 밖에 없기 때문. 혹시나 싶어 싸이월드가 책에 언급되어 저자의 미니홈피를 찾으니 네이버 블로그를 운영한댄다. 다시 그곳으로 한 가닥 희망을 품고 가니 사진이 있어도 매우 적다. 아마도 내 생각엔 저자의 사진을 타인에게 보여주는게 싫어서 그런 것 같다. (책 날개에서도 글쓴이의 사진 한 장 없으니...)
그리고 이 책의 또다른 특징 하나를 꼬집자면, 매우 자유분방하다는 것이다. 무슨말이냐? 바로 생각나는대로 마구 글을 써내려간다는 것. 괄호로 설명을 친절히 해 놓은 신세대 은어를 비롯, 다분히 욕도 있으니 이런 것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은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겠다. 나도 조금 거부감이 드는 대신, 딱딱하지 않은 글쓴이의 재치있는 글솜씨에 키득키득 웃으며 책장을 넘길 수 있었다. 그런데 보면서 계속 의아했던건 기자로도 활동한다는데 기사도 다 이렇게 쓰는걸까 싶은 점. 잡지를 보면 이렇게 자유분방하게 쓴 글은 봤던 기억이 별로 없었기에....
여행기를 보면서 내내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아직 해외여행은 한 번도 해 본적은 없는 나에게 , '냉정과 열정사이'를 보고 반해버린 이탈리아의 피렌체가 예전에 무지 가고 싶어했던 도시이지만, 요즘은 퍼트리샤 콘웰의 케이 스카페타 시리즈를 비롯한 미국 소설과 드라마에 반해서 미국에 대한 흥미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래서 유럽에 대해서는 조금 시들해진 건 사실이지만, 뭐 어떠랴 !
이 책에선 유럽의 각각의 나라 뿐만이 아닌 여행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저자의 체험을 통한 나름의 정의를 함께 느낄 수 있다. 그저 눕거나 엎드리거나 앉아서 눈으로 책만 읽으면서 말이다. 그리고 이 느낌을 머릿속에 간직한 채 앞으로 어딜 여행하나 정해진 형식에 구애받지 않을 수 있는 용기가 생기는 둥, 많은 걸 얻은 느낌이다.
가이드북을 보면서, 또 내가 직접 가이드북을 쓰기도 하면서 마음에 안 드는 것이 있다. 가이드북의 수요자나 기획자 모두 '하루 알차게 보내기 코스'를 요구한다. 몇 시에는 어디로 가고, 몇 시에는 어디서 밥을 먹고, 이런 식의 루트를 계획해 주기를 바란다.
나는 반대한다. 이건 아니라고 본다. 여행이란 떠남, 그 자체로 모든 것이 볼거리이며 할 거리이며 들을 거리이다. -p.330-
혹 유럽 여행을 준비하고 있다면, 이 책을 꼭 읽고 떠나길 바란다. 다른 책들과 달리 이 책은 저자의 너무나도 솔직한 느낌을 그대로 표현했기에 기대 이상이었던 도시, 그에 비해 실망했던 도시가 명확히 나와있어서 독자로 하여금 영향을 많이 받게 하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저자는 절대 영향을 받지 마라고 하는데 사람이라는 동물이 그게 쉽지가 않다는거다.) 저자의 쓰라린 경험을 통해 유럽으로 떠나는 여행자들은 단지 책 속의 조언 하나로 저자가 겪었던 피해를 고스란히 겪지 않아도 되게끔 하는게 바로 몇 몇의 여행기를 비롯한 이 책의 장점이 아닐까 싶다.
지구는 넓고 갈 곳은 많다. 난 아직도 이 좁은 땅덩어리에 짱박혀 무던히도 일상적으로 생활하고 있으니, 생각해보면 소가 따로없다. 이 젊은 나이에 말이다. 하지만, 바꿔 생각해보면 젊기 때문에 언제든 떠날 수 있지 아니한가 ! 10대의 난 이런 여행기만 읽으면 무작정 떠나고 싶었지만, 20대의 난 또 다르다. 좀 더 어른이 되어서인지, 떠나기 전에 충분히 공부를 해둬야 된다며 스스로의 욕구를 애써 누르고 있다. 이 책 또한 여행을 하기 앞서 하나의 좋은 교재가 되었던 듯 싶다. 무엇보다도 다른 책에 비해 이 두꺼운 책에 오타 하나 없는 정성에 감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