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라고 다 같은 백수는 아니다.

백수생활백서 - 2006 제30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박주영 지음 / 민음사 / 2006년 6월

<백수생활백서>라는 책을 처음 접한 곳은 다름 아닌 집에서 정기구독 하는 신문에서였다. 늘 신문을 보는 나는 아니었으나, 토요일 마다 두 장에 걸쳐 나오는 북세션은 항상 꼼꼼히 보고 있는데, 몇 주 전 토요일에 도착한 신문에서 한 기자가 이 책에 대해 써 놓은 기사를 보고는 꽤나 호기심이 간 소설이었다. 그 호기심은 다름아닌 이 책의 주인공이 책을 무진장 좋아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책을 좋아하는 주인공을 삼은 소설이라... 그것 자체만으로도 이미 난 나도 모르게 이 책을 점찍어 둔 것인지도 몰랐다. 실제로 내가 책을 좋아하듯, 난 그 누구든 책 읽는 사람을 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해했고, 또 책을 많이 읽는 사람과 친해지고픈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학생이라면 누구나 그렇듯 일정한 수입이 없기에, 책을 사서 보지 않고 빌려서 보는 난 이 책이 도서관 서가에 꽂혀있을때까지 기다리고자했다. 하지만, 얼마전 집 앞 대형서점에서 이 책의 첫 몇 페이지를 읽고는 당장 인터넷으로 주문해버리고 말았다. 도저히 기다릴수 없는 이유도 있지만, 이런 책이라면 소장할만하다는 생각에서였다.주문한 몇 권의 책들 사이로 이 책이 보이자, 오늘 아침부터 저녁까지 다 읽었고 곧이어 한가지 의문이 남았다. 그건 다름아닌 전혀 제목과 어울리지 않는 내용에서였다. 듣기로는 책의 상업화를 위해 제목을 이렇게 바꿨다고 하는데, 내용과 그닥 관련 없는 제목 그 이유 하나만으로도 난 별 한 개를 뺄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주인공인 나는 백수다. 대학까지 졸업했지만 그래도 백수가 된건 어디까지나 자발적인 면도 있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책'때문이다. 직장생활을 하면 책 읽을 시간이 없기 때문에, 난 프리터처럼 아르바이트를 할 지 언정 직장을 구할 마음은 없다. 가끔 절판된 책을 구하는 글을 인터넷 게시판에 올리는 난 내가 찾고 있는 책을 갖고 있다는 남자를 만난다. 그리고 그가 기다리는 시간에 읽고 있었던 책 까지 넘겨받는다. 그에게는 나에게 없는 책이 많다는 이유로 그 뒤 몇 번의 만남을 더 가졌고, 다시 만나게 된 데에는 큰 우연이 작용했다. 그렇게 그 사람에대해 조금씩 알게 되고, 난 그의 여자친구가 모아둔 책을 모두 가져간다는 조건하에 그와함께 여자친구의 복수극에 참여하게된다.

책에 나오는 등장인물로는 비단 이 두 사람 외에도 엄청난 미모와 천재적 두뇌를 가졌지만, 별종이라 불릴만큼 특이한 유희와, 로맨스만을 쫓는 비디오가게 주인 채린, 그리고 자살한 S 등이 있다.

모두 평범한 인물은 아니겠지만, 주인공인 나 자신부터가 특이하기 때문에 다른 인물들은 마치 양념같은 존재로 보인다 .실제로 이런 사람이 내 주위에 있다면 한심해보일지는 모르겠으나, 허구로 쓰인 소설이기에 독자로 하여금 이들은  낭만적인 인생을 살고 있는 것 마냥 관대해보이고 한 편으로는 부럽기까지 하다.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책들 중 내가 읽어본 책은 <발로 차주고 싶은 등짝>, <늦어도 11월에는> 밖엔 없었다. 한달에 30권 이상의 책을 읽는 주인공이 아직 세상엔 내가 읽은 책보다 읽어야 할 책이 더 많다고 하는데, 백수로 살고 싶은 마음이 없는 나는 이 주인공보단 아무리 노력해도 책을 적게 읽을 수 밖엔 없을 것이다. 그럼 난 영원히 세상에 내가 읽은 책 보다 읽어야 할 책이 많다는 말인가? 왠지 이 말이 행복하게 들리는 것도 같은 걸 보면 나도 주인공 못지 않게 책을 무지하게 좋아하나보다.

집에서 주는 밥이나 눈치 보며 먹고, 돈 벌 나이에 아직도 부모님께 의지해서 살아가는 백조는 절대 되지 말자고 항상 마음속으로 다짐하며, 그런 인간들은 한심하게 보아왔던 나이지만, 주인공같은 자발적 백수라면 왠지 매력적으로 보이는건 나도 대학 졸업하면 그럴 가능성이 다분히 있다는 증거란 말인가?

누구든 이 책을 읽고 나처럼 백수라고 다 같은 백수는 아니라는걸 알게될 것이다. 고로 함부로 백수를 싸잡아 욕할 수 없을것이다. 더군다나 이렇게 책을 좋아하는 백수라면 백수라고 명명하지말고 더 근사한 이름을 붙여줘야 된다는 내 나름의 주장은 그런 이들에 대한 편애때문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