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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못 살인자 ㅣ 밀리언셀러 클럽 5
로베르트 반 훌릭 지음, 이희재 옮김 / 황금가지 / 2004년 7월
평점 :
아주 독특한 추리소설을 만났다. 중국 문화에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네덜라드 서양인이 옛 중국을 배경으로 쓴 추리소설이라는 점에서 말이다. 돌이켜보면 주로 이때까지 읽었던 추리소설의 배경엔 중국은 없었던 듯 하다. 하긴, 중국 작가가 쓴 책을 거의 읽지를 않았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내가 중국이라는 나라를 싫어해서 일부러 중국 문학을 피해서 읽는 것은 절대 아니다. 중국문학을 접하고 싶어도 우리나라에 들어온 현대 중국문학이 현저히 적어서 읽고 싶어도 충분히 읽을수가 없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주 오랜만에 중국을 배경으로 한 그것도 추리소설을 읽게 되니, 아주 색다른 느낌과 반가운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마치 초등학교 시절 졸린 눈 비비며, KBS의 판관포청천을 열광하며 보았던 그 느낌이랄까... 위엄있으면서도 인간미 넘치고 정의를 위해서는 발 벗고 나서는 책의 주인공 디 공이 정말 포청천같은 느낌이다.
이 소설의 다른 추리소설과의 차이점들 중 하나는 특이하게도 사건이 여러가지가 한꺼번에 얽혀있는 구조라는 점이다. 한 사건도 해결하기 어려울판에, 몇 가지가 서로 꼬이고 꼬이니, 디 공도 그렇지만 독자도 정신을 차릴 수가 없을 지경이다. 하지만, 사건 하나 하나 소홀함 없이 척척 해결해가는 디 공을 따라가다보면 복잡한 사건들도 그닥 어렵게 느껴지지 않는 다는 걸 느낄 수 있다. 물론, 실제 상황에서는 이런 영감이 떠오를 확률이 극히 적겠지만, 한 사건을 해결하면서 막막했던 다른 한 사건도 비슷한 방법으로 발생한 걸 깨닫고 이 역시 쉽게 해결한 부분에서는 조금 리얼리티를 벗어나긴 했지만, 퍼즐을 풀어나가는 것 처럼 역시 썩 재미있게 봐줄만 하다. 실제로 책의 해설에서 옛날 중국에서는 판관에게 사건이 이처럼 한꺼번에 겹쳐질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더 놀라운 사실은 책의 주인공인 디 공이 실제 인물이었다는 점이다. 비록 실제 디 공이 살던 시대와 이 책에서 배경으로 삼고 있는 시대가 조금 다르긴 하지만 말이다.
중국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지만, 난 감히 우리나라 사람들의 정서에도 크게 어긋남이 없어서 더욱 권해주고 싶은 마음이다. 우리나라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유교적 관념들이 이 책에서 보여지는 중국적 사고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진짜 사나이 명판관 디 공을 만나고 나니 10여년전 졸린 눈으로 만났던 포청천을 10년 후 다시 책으로 만난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