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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었으므로, 진다 - 이산하 시인의 산사기행
이산하 지음, 임재천 외 사진 / 쌤앤파커스 / 2016년 7월
평점 :
절에 갈 때면 마음이 늘 따뜻하고 포근해진다. 나이가 한 살씩 먹어갈수록 각박한 도시보다는 시골이 좋은 것 처럼 점점 고요한 곳을 찾게
된다. 아주 어렸을 적부터 우리 가족과 절은 늘 함께였다. 도심 속의 작은 절에 있는 유치원을 다니며 늘 명상하고 불경을 읊으며 지냈었고,
부처님오신날에는 여러 신도들과 함께 등을 들고 시내를 함께 돌기도 했다. 학교를 다니게 되며 발길을 끊게 되었지만 부모님은 여전히 내 마음 속의
고향과 같은 그 곳에 요즘도 자주 들리신다고 하신다. 그때는 몰랐지만 조금씩 세상의 풍파를 겪으며 살게 되니 그 때가 참 좋았구나 싶다. 그
무렵에는 가족여행을 참 많이 했었는데, 아빠 차를 타고 국내 이곳 저곳을 다니면서 여러 절을 여행하기도 했었다. 지금도 기억나는 건 당시에
성철스님이 입적하신지 얼마 안된 때에 아빠 손을 잡고 성철스님 사리를 보러 갔던 것이다. 또 통도사에서 엄마와 함께 신자들이 함께 하는 행사에
참여했던 것도.. 아련할 뿐이다.
얼마 전에는 양양의 낙산사를 찾았다. 작년 첫 해를 낙산해수욕장에서 봤었는데, 엄청나게 추운 날 정말 갑작스레 밤을 새며 첫 해를 보고
속초 시장에서 만두국을 먹었던 기억은 지금 생각해도 참 재미있는 추억이다. 그 때는 강아지와 함께라서 절 안에 들어가지 못했다. 그러나 지난
여름에는 국내에서 몇 안 되는 포켓몬 게임을 할 수 있는 이유로 다시 찾았다. 정말 오랜만에 절에 오게 되어 그 때 느낀 감회가 어찌나
새롭던지. 더군다나 걸어도 끝이 없을 정도로 넓은 절을 돌아다니며 연신 감탄을 남발했다. 그러나 이 모든 감탄을 무색하게 하는 게 바로 유료
입장권이다. 도대체 왜 입장권을 받는건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낙산사에 절을 하러 갈 때 마다 돈을 일일이 바치고 들어가야 되는건가? 자고로
절은 그 누구에게나 개방되어야 하는 장소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곳은 절의 내부에도 관광객을 위한 카페가 있고 온통 관광객만 넘쳐나는 모습을
보니 절이기 전에 관광지라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다.
책을 읽으며 부모님과 함께 절을 다녔던 그 때 그 느낌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었다. 저자가 국내의 여러 절을 다니며 쓴 책인데,
시인이기에 시적인 표현이 과하다 싶을 정도로 많아서 사실 책장이 잘 넘어가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책의 마지막에는 내가 미처 몰랐던 세월호 사건
당시의 모습을 알게 되었다. 국내의 여러 스님들이 세월호 현장으로 바로 달려가서 유가족들을 위해 죽을 쑤어서 나르고 시간이 많이 흘러서 그
누구도 찾지 않는 진도 앞바다를 다시 찾아서 여전히 기도를 한다는 걸 알게 되고 정말 감동과 감사함을느꼈다.
절은 내게 마치 귀소본능과 같은 마음을 느끼게 한다. 마음이 흐트러지거나 힘에 부치고 절망적일 때 찾아갈 수 있는 집같은 절을 찾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