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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맨발
송수권 지음 / 고요아침 / 2003년 11월
평점 :
절판
책꽂이에 먼지만 가득 뒤집어 쓰고 꽂혀 있었던게 아마 일년은 더 되었을 거라고 짐작해본다. 평소 시를 잘 읽지 않은 탓에, 휘리릭 넘겨보고는 이 책의 절반이 시라는 사실에 그대로 다시 꽂아둔게 수십번이다.
그녀의 일생은 이처럼 한 남자를 잘못 만난 죄로 늘 자유롭지 못했다. 그래서 이따금 싸움을 할 때도 "내 청춘 물려 주세요. 다시 돌아가고 싶어요. 열 여섯 살로 말예요!" 라고 앙탈을 할 때도 있었다. 그런 그녀를 내가 얼마나 가슴 아프게 했던가. 그걸 '사랑'이란 이름으로 부질없는 말장난을 해 왔으니 이게 또한 얼마나 세상 웃기는 일인가. 회색 올빼미(grey oll), 그녀와 나의 삶은 '얼룩말과 쇠듬새기새'의 관계가 아니었을까? -p.96
연잎새같은 한 여인이 똥장군을 져서 남편을 시인으로 만들고, 교수를 만들었다. 그렇게 한 평생을 고생스럽게 살아가다가 남편이 교수가 되자 그 누구보다도 좋아하던 그녀다. 그리고 이제 한숨돌리고 살만한가 싶더니 하늘도 무심하시지, 불의의 교통사고로 그만 백혈병이라는 아주 몹쓸 병에 걸린 것이다.
선생과 제자의 만남에서 연인으로 그리고 부부의 연을 맺게 된 이 영화같은 사랑의 부부가 단지 사제간의 사랑이라는 이유로 사람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을까봐 육지를 피해 이 섬, 저 섬 섬에 있는 학교로만 옮겨다녔다는 시인의 고백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리고 그 때까지도 아내의 고생을 모르다가 아내가 병중에 있는 이제서야 그 마음을 깨닫게 되는 시인이 조금 야속하기도 하지만, 한 글자 한 글자 쓴 아내에 대한 사랑의 글이 그런 마음을 녹여준다.
지금은 수술이 잘 되어, 건강하게 잘 살고 계시는지 궁금하다. 소식을 알고 싶어 여기저기 찾아봤지만 알 수가 없어서 아쉽다. 단지 독자로서 건강하게 다시 행복한 가정으로 돌아가셨기를 바랄뿐이다.
책꽂이에만 꽂아두고 왜 진작 읽지 않은 것인지 이 책을읽는 내내 후회스러웠다. 좀 만 더 일찍 읽었다면 그 아픔을 함께 할 수 있었을텐데.... 또 많은 지인들에게 이 책을 추천해주고 선물해주어 송시인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인데 말이다.
책을 읽고나서 육체의 아픔을 치료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의학이겠지만, 그것만이 치료법이라고도 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느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사랑이라는 마음 역시 아주 좋은 에너지로 작용하여 몸과 마음 모두에게 좋은 치유가 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