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보는 과학의 숨은 역사 - 과학혁명, 인간의 역사, 이미지의 비밀
홍성욱 지음 / 책세상 / 2012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역사를 좋아하지 않는다. 고등학교 다닐 때 부끄러운 역사 과목 점수가 말해주었듯이 좋아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잘 하지도 못한다. 나에게 역사는 우리나라 특유의 주입식 교육의 정점을 찍는 과목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다가 그 오랜 역사를 단지 시기와 역사적 사건 이름으로만 외우면서 공부해야 하는 과목이다. 그러나 역사는 어디에나 있다. 그런 의미로 모든 학문에는 그 학문이 지금까지 다져올 수 있었던 역사가 있고, 학문 이름 뒤에 사(史)를 붙여서 또 하나의 과목으로 탄생된다. 과학사 역시 그 맥락이라고 하겠다. 대학을 다닐 때 교양과목이었던 '과학사'가 있었는데, 과학은 좋아하지만 과학에 대한 역사는 점수를 잘 받을 자신이 없는데다가 안 들어봐도 지루하기 짝이 없을 듯 해서 수강하지 않았다.

 

이런 내게 이 책이 그냥 과학사에 관한 책이었다면 선택되지 않았을 것이다.(모든 책을 다 읽고 싶은 나의 욕심으로 인해서 억지로라도 읽었을지 모르지만) 과학의 역사를 그림과 함께 보여주어서 더욱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과학이 발전되는 시기에 이를 입증할 수 있는 그림이 존재했다는 사실이 놀랍고 예상보다 훨씬 많은 그림이 있다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랐다.

 

책은 플라톤과 아르키메데스의 다면체를 다루며 이 당시 과학과 예술의 경계가 모호하여 많은 예술가들이 과학적 지식을 수반하였던 현실을 보여준다. 또 샤틀레 부인을 집중 조명하여 과학사에서 흔치 않는 여성의 업적에 대해 다루었다. 이 과정에서 여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노력해서 과학사에 하나의 업적을 세웠다는 점이 지금의 나를 깨워주었다. 이 외에도 지금까지 진화론부터 2008년의 광우병 파동으로 많은 국민들을 공포에 떨게 했던 프리온에 대한 실체 등을 모두 그림을 통하여 살펴볼 수 있었다.

 

문과와 이과의 구분이 의미가 없듯이 학문 분야에는 더 이상 배타적이고 고집스럽게 하나의 학문만을 지향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어쩌면 아이러니하게도 플라톤이 살던 때에 많은 예술가들이 원근법을 연구하고 이를 그림에 표현했던 학문의 경계가 모호했던 시대로 돌아가는 것이 학문의 발전을 이끌 수 있는 하나의 방편이 될 듯 싶다. '그림'과 '과학사'가 절묘하게 만나서 지루함과 고리타분함이라는 편견을 깨 준 이 책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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