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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원동 브라더스 - 2013년 제9회 세계문학상 우수상 수상작
김호연 지음 / 나무옆의자 / 201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하루 하루가 똑같이 흘러가고 있고, 변하는 것은 점점 노화하는 내 피부, 한 살씩 먹어가는 나이일 뿐. 그에 비해 변하지 않는 것은 지루하고 무료한 일상과 스트레스일 뿐이다. 돌이켜보면 내 인생에서 마음만 먹으면 새롭고 신나는 경험을 할 수 있었던 대학 시절 빼고는 늘 이런 재미없는 인생으로 점철된다. 그리고 앞으로도 아마 평범한 직장인으로서 아주 가끔 숨통 트이는 소소한 즐거움만으로 만족할 뿐 이렇게 박제된 삶을 살아갈 수 밖에 없겠지. 매일같이 드는 회의감은 이런 우울함을 동반할 뿐이며 이런 것을 타파하기 위해서라면 시간과 돈 모두 여유가 많지 않고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이른다. 어쨌든 이런 나에게 그나마 있는 숨쉴 구멍은 바로 '책'이며 요즘은 그 책들 중에서도 '유쾌한 책'을 찾게 된다.
서울에 오랫동안 살아왔으면서도 '망원동'이 어디있는지는 알지 못했다. 그리고 단 한 번도 간 적이 없는 곳이다. 지도로 검색을 해보니 홍대, 신촌 근처에 한강을 끼고 위치한 동네인데 오랫동안 내가 사는 곳인 서초동과는 거리상으로도 매우 멀고 강남역 가까이 살고있기에 굳이 특별한 약속이 없으면 그 동네까지 갈 일은 없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망원동'이 궁금해졌다. 가보지 않은 곳이지만 책을 읽고 나서 푸근함마저 느껴졌다. 그리고 우리 동네와는 달리 사람 냄새 나는 동네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깨끗하고 치안 좋은 부촌에 살고 있는 자신감을 잠시 내려 놓고 남의 동네 구경을 해 본 느낌이다.
만화가로서 전성기를 지나 학습만화를 그리며 겨우 만화가로서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오영준, 망원동의 한 8평짜리 옥탑방에 혼자 살고 있는 그에게 전 직장에서의 부장이 캐나다에서 홀로 돌아와 기러기 아빠로서 그와의 동거를 자청하게 된다. 또 오래 전 만화교실에서의 '싸부' 또한 황혼 이혼을 앞두고 영준의 집에 객식구로 들어온다. 8평짜리 방에 남자 셋만으로도 벅찰 뿐인데 대학 후배인 공시생 삼척동자 또한 인근 고시원에 살면서 일주일에 나흘은 옥탑방에 머물고 있다. 어찌보면 잘 나가는 인생과는 거리가 먼 네 남자가 티격태격하면서 좁은 방 한칸에서 살아가는 것 자체만으로도 답답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유쾌함이 넘쳐난다. 소설은 이 넷이 옥탑방 한 칸에 붙어 살면서 겪는 에피소드로 풀어내고 있다.
문득 대학시절 학교 근처 친구의 자취방에서 여럿 친구들과 함께 밥을 먹고 수다를 떨며 놀던 때가 떠오른다. 그런 가족의 품을 떠나 혼자 살림을 하고 자유롭게 살고 있는 친구를 항상 부러워했었다. 그 때의 나도 그 부러움 때문이었는지 책에 나오는 캐릭터들 처럼 일주일에 사흘은 붙어 살곤 했었다. 돌이켜보면 대학을 졸업하고는 남의 집에 그처럼 놀러갈 수 있는 기회는 그때만큼 생기지 않는다. 그래서 더욱 그 때가 그리울 뿐이고 이 책을 읽으며 그 때를 추억하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내 인생에서 가장 빛났던 대학시절이 다시 한 번 그립고 돌아가고 싶어진다. 혹여 망원동을 우연히라도 지나가게 되면 이 책을 읽으며 느꼈던 그 그리움이 또 다시 느껴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