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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시봉, 서태지와 트로트를 부르다 - 이영미의 세대공감 대중가요
이영미 지음 / 두리미디어 / 2011년 5월
평점 :
품절
얼마전까지만 해도 텔레비전만 틀면 세시봉이 여기저기서 나왔다. 그러면 나는 도대체 이렇게 촌스러운 그룹의 가수가 뭐길래 계속 나오냐고 채널을 돌리곤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난 80년대 후반에 태어났고 이 책에 따르면 세시봉은 1960,70년대에 포크음악을 통해서 우리나라의 대중음악계에 한 획을 그었기에 전혀 공감대를 형성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통키타를 든 싱어송라이터를 많이 볼 수 있지만 그때만 해도 주로 엘리트들 위주로 순수와 이상을 지향하는 세시봉과 같은 뮤지션이 음악을 하는 것은 꽤나 신선했을 법 하다.
이 책의 저자는 스스로를 포크 세대라고 한다. 그렇게 말한다면 나는 H.O.T나 god세대라고나 할까. 대한민국 대중음악계에 아이돌 시대의 탄생과 내 유년기가 공통분모로 존재하니 중학교에 다닐 때 쯤엔 아이돌 그룹의 팬이 아닌 친구들이 없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나는 어떤 가수의 팬도 아니었으니 요즘에 시대를 주름잡던 아이돌 그룹의 멤버들이 해체를 하고 미적지근한 행보를 보면 조소를 짓곤 한다. 대학교에 다니던 무렵부터는 MP3플레이어에 가요보다는 팝이 더 많이 차지하게 되었고 영국 락 밴드인 Snow Patrol이나 Coldplay를 좋아하게 되었다. 음악에 대한 취향은 변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요즘도 립씽크가 판을 치는 우리나라의 가요 프로그램을 보면 짜증나서 채널을 돌려버리고 팝으로 취향이 변하게 되었다.
이 책은 트로트부터 서태지에 이르기까지 일제시대 이후의 한국 가요계가 90년대에 급격한 변화를 겪게 되기까지의 맥을 짚어주고 있다. 나는 이 책을 읽고서야 세시봉이 어떤 가수인지 알았고 당시에 얼마나 인기를 누리던 가수였는지 알게 되었다. 베이비붐 세대인 우리 부모님의 경우도 세시봉을 알테지만 나훈아에 더 열광하는 것을 보면 확실히 취향은 제각각이니 이 책이 평론으로 이루어졌다고 해도 중심을 둔 가수 선택에 있어서 그리 객관적이지는 않은 것 같다. 그럼에도 양희은이나 한대수 같은 가수들이 당시에 어떤 노래를 불렀고 대중들은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전혀 알 길 없는 내게 이 책을 읽고 나서 맥을 잡을 수 있게 되었다. 서태지는 내가 아주 어렸을 적에 서태지 붐을 조금이나마 직접 겪었지만 대중문화에 관심을 갖게 될 때에 이미 그는 은퇴를 선언한 뒤였다. 그렇기에 90년대 초반에 서태지가 어떤 음악으로 우리나라의 대중음악계를 뒤흔들었는지도 이 책으로 비로소 소상히 알 수 있었다. 워낙 많은 팬이 있고 마치 신화화 된 듯한 존재이기에 감히 서태지를 비방하는 글은 전혀 본 적이 없었는데 이 책은 서태지에 대해서는 꽤 신랄해서 놀랐다. 더 나아가 90년대 가수들의 비교에 있어서는 저자가 이미 객관성을 완전히 상실한 듯한 태도를 보인 것 같다. 특히 서태지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을 쓸데없이 너무 많이 부각한 것은 아닌가 싶어서 아쉬웠다.
이 책이 내게 의미가 있는 것은 내가 많은 책을 읽어봤지만 지금까지 대중문화에 대한 책은 거의 읽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 저자의 말마따나 나이가 들면서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나온 노래들을 즐겨듣는 스스로를 보면 기성세대가 된다는 것은 시대를 막론하고 모두 비슷한 행보를 걷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세월이 흐르면 옛 것이 촌스럽게 여겨지는 것은 대중문화에서 특히 두드러지지만 그런 것은 차치하고라도 우리나라 대중문화의 사랑 노래 지향의 획일성과 입만 움직이는 립씽크 그리고 전자음이 판을 치는 세태는 이제 그만 바뀌어야 할 때도 되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