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촐라체
박범신 지음 / 푸른숲 / 200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원래 인터넷이든 신문지상이든 연재소설은 잘 읽지 않는다. 연재가 끝나고 소설이 단행본으로 출간이 된 후에 주로 찾게 되는 편인데 한창 <촐라체>가 네이버에 연재되고 있을 때에도 연재한다는 것만 알았을 뿐 단 한번도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다. 단지 소설 제목인 촐라체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약간 궁금했을 뿐이었고 작가 박범신 또한 한 번도 그의 작품을 접해본 적이 없는터라 궁금함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촐라체는 해발 6440미터의 히말라야 최고봉 에베레스트 남서쪽 17km에 위치해있다. 책은 실제 2005년에 산악인 박정헌, 최강식 두 사람의 등반을 모티프로 했는데 픽션으로서의 허구에 그들이 실제 촐라체를 하산하면서 겪게 되는 생사를 넘나든 고비의 실화를 더했다. 캠프지기로서의 나와 박정헌과 최강식의 책 속 인물인 박상민과 하영교는 모두 인생에서의 헤어나올 수 없는 어두운 심연 속에 있었다. 그런 그들이 현실을 벗어나고 도피하는 것이 아닌 촐라체를 대상으로 극복하기 위해 등반을 하게 된다. 더 나아가 그들은 바로 숙명에 대항하는 인간의 실존을 경험하기 위해 촐라체를 선택한 것이다.
히말라야 산맥을 등반하는 산악인을 볼 때면 그저 무모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인간은 누구나 각각에게 딱 맞는 운명적인 무엇인가가 있고 이것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과 아닌 사람으로 나뉘어진다고 했을 때 산악인은 전자이면서 참 행복한 삶을 산다고 보았다. 그러나 그 행복함이 목숨을 담보로 할 정도가 되면 타인에게는 무모하고 어리석은 행위로 보여질 수 밖에 없다. 나 또한 이런 생각으로 그들을 보았는데 <촐라체>를 읽고 내 생각이 모두 무너져내림을 느꼈다. 비록 주인공들의 직업이 전문 산악인은 아니지만 그들이 인간 한계를 체험하면서까지 등반을 하는 이유와 등반에 성공한 희열이라는 단어 하나만으로 표현하기 힘든 삶의 태도의 변화를 느끼면서 오롯이 그들의 편이 되어버린 것이다.
강해진다는 것은 필수적으로 힘든 과정을 겪어야 한다. 그러나 한 번 강해지면 그 과정이 보상으로 다가온다. 지금까지 내 앞을 가로막은 어떤 것이든 도피하려고만 했던 내게 이 책이 시사하는 바는 바로 이것이다. 책을 읽는 내내 손에서 땀이 날 정도로 주인공의 생사의 갈림길을 함께 했고 그들이 강해진만큼 나 또한 강해진 것 같다. 비록 서사과정에서 너무나도 중첩된 우연때문에 완성도 높은 내용은 아니었지만 책을 다 읽고나서 내 앞에 가로놓여진 모든 것들을 촐라체로 생각하고 등반한다는 심경으로 받아들이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지금까지의 내가 촐라체를 피하여 평지만을 선택했다면 이제는 과감히 촐라체를 오르는 심경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힘이 생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