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양장) - 유년의 기억 소설로 그린 자화상 1
박완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5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을 몇 년 전에 MBC의 예능 프로그램에서 소개해주었을 무렵에 읽었던 기억이 나는데 다시 읽어보니 새삼 느낌이 다르다. 아마도 그만큼 나이를 먹고 문학을 받아들이는 나 자신도 변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럼에도 시간이 흘러 이 책을 다시 접하면서도 박완서 작가가 이 세상에 없다고는 전혀 느껴지지가 않았다. 마치 사진을 보면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사람도 여전히 이 세상 어디에선가 존재하고 있는 것 처럼 느껴지는 것처럼 말이다.  

이 책은 박완서 작가의 유년기를 다룬 자전적 소설이다. 머리말에서 그녀가 최대한 허구는 억누르고 썼다고 했지만 그래도 소설은 소설이다. 그녀가 정말 소설적인 삶을 살지 않고서는 이렇게 맛깔나는 한 편의 이야기가 탄생하기에는 쉽지 않은 듯 하다. 그러나 그것 또한 장담할 수 없는 것은, 한국 역사의 암울한 변천사를 겪어오며 이념 대립과 전향 따위의 역사적으로 대표되는 모든 것들이 저자의 삶을 직접적으로 변화시켰고 저자는 책의 끝에 이르러 이 모든 것을 꼭 소설로 써낼 것이라고 굳게 다짐했기 때문이다. 그만큼 저자의 삶이 파란만장했다고 할 수 있다. 어쩌면 그래서 저자의 소설가가 된 주된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자전적 소설을 쓰고 싶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 어떤 상상력도 없이 온전히 기억에 의존한 소설이지만 그 기억속에 '벌레'로 표현되는 억누르고 싶은 기억을 소설로 많은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기 위해서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를 어쩌면 '한의 표출'이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만약 정말 그렇다면 박완서의 소설을 읽기에 앞서 모든 그녀의 작품이 시발점이 바로 이 책이 될 수 있기에 이 책을 가장 먼저 읽어야 할 것이다.  

읽으면서 저자의 어머니에 대한 그녀의 묘사가 참 재미있었다. 담담히 써내려간 그 묘사에서는 따뜻함이 보이는 듯 하면서도 철저히 기억 속 저자가 느낀 모든 감정을 고스란히 보여주려고 했기에 어쩌면 애증이 교차하는 듯한 모습이라고까지 표현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또 저자의 어렸을 적의 기억 속에서의 화목함과 할아버지 그리고 산과 들이 어우러진 모습 속에서의 싱아와 같은 모든 것들이 마치 이 책을 끝에서부터 시작하고 싶게끔 행복한 시작이었다.  

어렸을 적의 태평스러움과 행복함의 모든 것이 시작이라면 세상과 부딪치며 점점 지쳐가는게 인생으로의 여행이 아닐까. 난 지금 그 중간에 서 있다. 박완서의 자전 소설 1편으로서의 이 책 또한 그녀가 대학생이었을 때 끝이 난다. 인생이란 행복할 수만은 없는 이야기이지만 괜히 이 책을 읽으며 내가 위로받을 수 있는 것은 다른 방식이지만 부딪치고 지치는 삶을 나 혼자만 겪어가고 있는게 아님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삶이 행복함으로 출발하고 행복함으로 끝난 것 또한 내게는 또 하나의 격려가 된다. 지금의 이 시기를 언젠가는 나도 담담하게 글로 쓸 수 있을 정도로 아무것도 아닌 하나의 기억이 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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