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네 집 박완서 단편소설 전집 6
박완서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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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덮고 느낀 복잡한 감정들 중의 하나는 '미안함'이었다. 하나는 지금까지 나도 모르게 등한시 한 한국문학에 대해서였고, 또 하나는 한국의 기성작가들에 대해서였다. 지금까지는 내가 경험하지 못함을 풀어써서 독자로부터 뭔가를 바라는 듯한 소설을 읽노라면 더더욱 한국문학이 싫어졌었고, 왜 젊은 작가가 더 인기가 많은지를 입증해준다고 느꼈었다. 지금과 같은 소위 88만원 세대에게 운동권 시절이나 그 전의 한국 역사의 획을 그은 순간들을 소설로 풀어쓰는 것은 이젠 그저 진부하고 비현실적인 소재에 불과하다. 우리에겐 지금 당장 앞에 처해있는 현실이 시급하고 절망적이기에 그런 소설들이 과연 무슨 가치가 있을것이며, 지금 그런 것들을 읽고 뭔가를 절절히 느끼기엔 너무나도 시대 착오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소설집 한 권을 읽고 지금까지 느꼈던 내 모든 생각들이 일제히 너무나도 잘못되었음을 느끼게 되었다. 진짜 문학이란 이런 것이며 언어가 이렇게도 아름답게 서사적이 될 수도 있음을 알게 된 충격을 느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한국 문단에서 부지런히 활동했던 박완서의 책 한 권을 읽고 새삼 이렇게 느낀 이유는 내가 지금까지 박완서 문학을 제대로 접해본 적이 없었던 이유가 가장 클 터이다. 그런 내게 <그 여자네 집> 뿐만이 아니라 이 소설집의 모든 소설들이 어쩜 이렇게도 주옥같을 수 있는지 감탄을 자아낼 뿐이었다. 어쩌면 그녀의 관록이 주옥으로 만들어 준 것일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거의 모든 소설들이 나이듦에 대한 소재를 다루고 있기에 이는 작가 자신의 삶이 묻어나 있는 무척이나 현실적이고 사실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젊은 작가들의 재간과 공감대에 익숙해졌다면 아주 오랜만에 세월이 묻어난 정말 농익은 문학을 접한 기분 좋음을 느낄 수 있었다고나 할까. 

역시 문학책에 수록될 정도로 모든 소설들이 난해함과 철학보다는 그 메세지가 콕 박혀있는 특징도 보인다. 그래서 몇몇 작품은 문학성 보다는 너무나도 교훈성이 치우친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이 모든 것을 상쇄시킬만큼의 유려하고도 세월이 묻어난 문체는 작가 다운 작가를 만났다는 다행스러움과 반가움을 동시에 느낄 수 있게 한 요소였다. 비록 나이듦의 서글픔과 허무함이 점점 열정의 자리를 대신해가는 그 느낌이 무엇인지 오롯이 이해하게 되었지만, 동시에 관록이 묻어난 무언가를 접해볼 수 있고 실현해 볼 수 있다는 것 또한 나이듦의 특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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