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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의 바보
이사카 고타로 지음, 윤덕주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3년 후 지구가 소행성과의 충돌로 멸망한다면?' 한 번 쯤은 생각해 볼만하지만 그 이상으로 더 생각하기도 싫은 끔찍한 가정이다. 그러나 이 생각의 실타래를 아주 길게 늘어뜨려 연작소설로 완성한 작가인 이사카고타로는 역시 죽음에 초연한 작가일까? 내가 접했던 그의 작품인 <사신치바>와 <골든 슬럼버>에서도 아주 심각하게 느껴질 수 있는 소재들을 아주 놀라우리만치 담담하게 풀어나갔었다. 이것이야말로 젊은 작가의 힘이라는걸까?
힐즈타운에 사는 주민들 중 여덟 명을 순서대로 지구의 종말에 대비하는 그들 각각의 모습을 담았다. 누군가는 그 전에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결단을 하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이참에 그와 반대로 원한을 느꼈던 누군가에게 복수하고자 한다. 그야말로 아노미 상태에다가 치안부재 상황까지 겹친 상태로 시간은 흐르고, 이제 남아 있는 이들은 죽음에 초연해지는 것은 물론, 주위 사람들을 잃은 것에 담담해질만큼 지쳐버리게 된다. <나는 전설이다>가 이미 단 한 명을 남겨둔 채로 세상이 거의 초토화 된 모습을 배경으로 했다면, 이 책은 그보다는 남아 있는 인구가 많다는 점에서 상황이 비교적 긍정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항상 난 언제 죽게 될 것인가를 궁금해하면서 살고 있는데, 문득 정말 살아있을 날이 살아 왔던 시간보다 더 적게 남아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끔찍한 생각도 해본다. 정말 생각하지 못했던 누군가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접하고는 그런 생각은 더욱 나에게 깊이 다가오게 되었고, 그 후 모든 것을 마치 당장이라도 죽을 사람처럼 받아들이고 살아가게 되었다. 이런 삶의 자세를 가진 이후, 세상의 아름다움을 그 전보다 훨씬 많이 느끼게 되었지만, 역시 만약에 정말 그것이 사실이라면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은 끔찍하면서도 아쉬운 것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필사적으로 살아가자고 결론 내린 책의 결말만큼 내가 언제 이 세상을 떠나든 변함없는 것은 필사적으로 살아가리라는 사실이다. 내가 언제 죽게 될지를 모르기 때문에 담담히 이렇게 각오를 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어쩌면 그래서 언제가 끝이든 끝까지 살아갈 힘이 남아나고, 세상이 아름답게 보여지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종말의 바보>가 내게 선사한 많은 생각을 하게 한 힘은 지금의 나를 돌아보게 하는 것은 물론, 이사카 고타로의 작품을 접한 후 항상 죽음에 대해 고찰해보게 했던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내게 남겨진 정답은 '필사적'으로 살아갈수록 '죽음'에 담담해질 수 있는 용기가 생긴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