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는 라푼첼
야마모토 후미오 지음, 이선희 옮김 / 창해 / 2007년 8월
평점 :
절판


야마모토 후미오의 소설은 날카롭다. 그리고 무섭다. 정상적이지 못하다. 많은 일본작가들의 소설에서 보여지는 특징이지만, 야마모토 후미오하면 딱 떠오르는 이미지가 바로 그것이다. 아주 오래전에 읽었던 '러브홀릭' 또한 이런 느낌이었다. 그리고 난 그녀의 두 번째 작품을 접한 후, 이런 이미지를 확고히 굳혀버렸다.

결혼 6년째, 결혼 후 집에 들어오는 횟수가 손에 꼽을 정도로 바쁜 남편에게서 생활비를 받으며 유유자적한 생활을 즐기고 있는 주인공인 그녀. 유일한 취미는 파친코이다. 어느 날 파친코를 하고 근처 게임센터에서 옆집에 사는 중학생인 루피오를 우연히 만난 후, 그녀의 삶은 급격히 변화하기 시작한다. 그저 공주처럼 세상을 모른 채 성 안에서만 갇혀있다가 조금씩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사랑을 하고 세상을 알게 된 것이다. 이 알 수 없는 사랑의 감정과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스스로를 혼란스럽게 만들지만 그녀는 스스로가 원하는 욕구대로 한발씩 나아가게 된다.

안정적으로 살면서 그저 목적없이 하루를 보내는 것에 대한 행복을 느껴본 적이 있다.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바쁘고 피곤할 때면 이 행복이 얼마나 달콤하게 느껴지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런 행복도 일주일만 지나면 스스로에게 독이 되어버린다. 스스로를 잃어가게 되는 것이다. 하루 하루를 그저 순탄하게 변화없이 편하게 보내는 것에 끝없는 만족을 느낀다면 책 속에서 그녀가 기른 고양이와 그녀가 다른 점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고양이가 불임수술로 더 이상 발정을 하지 않는 것과 달리, 그녀는 인간으로서 느끼는 기본적인 성욕이 있고, 결국은 그 욕구에 몸을 맡기게 되어 버리지 않는가. 바로 이것이 인간이라는 아주 기본적인 사실을 그녀는 결국 끝에서야 느끼게 된다. 

라푼첼의 행복은 행복이 아니다. 독을 품은 행복이고, 결국에는 스스로를 잃게되는 행복이다. 그 행복은 짧은 시간에는 행복으로 느껴질 수 있지만, 오래 머물수록 독이 되는 행복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내일의 달콤한 라푼첼의 짧은 행복을 위해 내 속에서 나와서 좀 더 치열하게 세상과 싸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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