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끼고 있다. 알고 있다. 이미 내가 충분히 어른이 되었음을. 완전히 탐욕스럽고 숫자에 울고 웃는 그런 어른이 되려면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조금씩 지구의 보통 어른들이 밟는 그 과정을 나도 흐트러짐 없이 밟아가고 있다. 한때는 가끔 이런 나를 스스로 바라볼 때 느끼는 이 감정이 스스로를 부끄럽게 하고 괴롭게 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나와 같은 많은 어른이 되어 가는 과정에 있는 사람들 중에서는 나보다 더 충실히 어른이 되는 과정을 잘 헤쳐나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나는 그런 사람들을 보고 그들의 뒤를 쫓거나 혹은 그 보다 더 앞서가야 하니까. 순수와 진정한 우정 따위를 생각하기에 세상은 그런 여유를 허락할 만큼 관대하지 않음을 하루하루 느끼고 있다. 그런 내가 지금 이 책을 들고 한 장씩 읽어나가며 어린왕자를 보며 느끼는 그 감정이란. 실로 오랜만에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되어주었다고 해야 할까. 심지어 가슴이 먹먹해지며 꽉 쥐어짜는 듯한 아픔까지 느껴졌다. 나이가 들수록 느낄 수 없었던 낯설어지는 그 감정을 너무나도 오랜만에 느낀 것이다. 한 때나마 이런 감상에 빠져 든 적이 많았지만, 요즘의 난 나를 틀 속에 가둬놓고 쳇바퀴 돌리는 햄스터처럼 일부러 그렇게 바쁘게 만들고 있다. 괜한 감상에 빠져서 시간 낭비 하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이 얼마나 냉혹한 삶인가. 그러나 어쩔 수 없다고 하는 것은 변명에 불과한 말일까? 무언가를 길들이고 그 존재로 하여금 기쁨을 느낄 수 있다는 것. 친구를 사고 팔 수 있는 곳은 지금까지도 그리고 앞으로도 존재하지 않을테니 그 길들임의 과정이란 그만큼 얼마나 소중하고도 기쁘고 또 때로는 애틋하며 때로는 슬프고 괴롭기도 한 그런 과정일까. 그것이야말로 인간이기에 할 수 있는 수많은 것들 중의 하나가 아닐까. 내가 길들인 것들, 또 나를 길들인 것들을 생각해본다. 나에게 특별히 다가온 그런 것들을 나는 얼마나 무심히 지나쳤을까. 좀 더 좋은 것, 좀 더 높은 것을 얻기 위해 얼마나 많은 것들을 등한시 했을까. 소소한 기쁨을 느껴본지가 언제일까. 진정한 어른같은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 내게 어린왕자가 던져준 것은 그 무엇보다도 소중하게 다가왔다. 스스로를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건만, 이 세상에 당당해질 수 있기 위해 다시 익숙해진 딱딱한 내 심장을 지금처럼 따뜻하게 녹여주기 위해서 어린왕자를 앞으로도 수 없이 만나야 할 것 같다. 조금이라도 남아 있는 인간다움을 놓지 않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