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시크릿 패밀리 - 평범한 일상 속에 감춰진 생생하고 놀라운 가족의 비밀!
데이비드 보더니스 지음, 정은영 옮김 / 생각의나무 / 2007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당신은 당신 주변에 얼마나 많은 세균이 득실거리고 있는지 아는가? 당신의 손과 입 속의 수많은 세균들의 존재를 알고 나면 아마 평소보다 더 손을 씻거나 양치질을 할 것이다. 하지만 세균의 탄생 이후 지금까지 끈질기게 살아있는 것에 비해서 인간은 티끌만한 존재밖에는 되지 않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반갑지 않은 세균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돌연변이가 탄생할 수 있는 대단한 존재들이어서 당신이 노력한다면 조금은 깨끗해질 수 있겠지만 완전히 세균과 이별을 감행하기란 불가능 할 것이다.
한 가족의 하룻동안의 일상을 과학적 돋보기로 들여다보는 내용이어서 무척이나 흥미로웠다. 비단 과학적 시선 뿐만이 아니라 각각의 소재에 대해 역사성과 문화적 다양성도 설명되어져 있기 때문에 지적 즐거움을 충분히 만끽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훌륭한 책의 훌륭함에 먹칠을 하는 어이없는 번역은 정말 독자를 화나게 하기에 충분한 것 같다. 너무 미국적인 문화를 다루어서인지 아니면 역자의 번역 실력이 형편없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지나친 번역투의 문장에 이해하기 힘든 것은 물론이었기에 책의 전부를 이해할 수 없어서 무척이나 실망스러웠다. 그럼에도 우리 생활 속 과학의 즐거움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이 책의 대부분은 '세균'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만큼 우리가 원하지 않음에도 언제나 우리의 몸 속과 그 주변을 맴도는 세균이 많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런 세균 속에서 우리가 건강히 살아갈 수 있는 것은 훌륭하게 만들어져있는 우리의 신체 덕분이다. 우리 몸의 영리함에 대해 알고 나서부터는 이런 건강함을 가질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새삼 감사함과 행복함이 느껴질 것이다. 우리 몸의 면역체계가 감염에 저항할 수 있게끔 바이러스를 기억할 수 있는 '메모리B', 또 우리 몸에 유해한 먼지들을 제거해주는 청소세포인 폐 속의 '대식세포'등 우리가 건강함을 유지할 수 있게 해주는 우리 몸이 얼마나 환경에 잘 적응할 수 있게끔 만들어졌는지 새삼 경이로움이 느껴질 정도였다. 아쉽게도 이런 건강함이 영원한 것은 아니다. 오래 살면 몸의 기력이 떨어지고 피부에 주름이 많이 생기는 것은 우리 몸 속 기관들이 제각기의 건강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고 탄생했기 때문이다. 늙음을 한탄하는 인간에게 삶의 의지의 강렬함이 우리 신체의 노화를 막지 못하는 것을 알게 된다면 노화 그 자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겸허함도 필요할 것이다. 온갖 세균에 대항할 수 있게끔 만들어진 우리 몸에 대한 보답은 그런 겸허함과 우리 몸이 좋아하는 행동을 많이 하는 것일테니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몸이 좋아하는 음식인 '야채'가 얼마나 좋은지 이 책은 우리의 구체적이지는 않지만 막연히 알고 있던 통념을 더욱 확고히 굳혀준다. 야채 속의 카로틴이 주름을 방지해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당장 당신은 평소 싫어하던 야채가 좋아질 것이다.
이 책은 비단 우리 일상생활 속의 과학적 지식만을 다루지 않았다. 우리가 얼마나 몸에 유해한 음식을 먹고 있으며, 인간은 그들의 이윤을 위해서 얼마나 유해한 음식을 만들고 있는지 적나라하게 파헤친다. 또한 평소에 아무 생각없이 쓰고 있는 물건들이 어떤 재료로 만들어져 있는지를 알려주어 우리를 깜짝놀라게 하기도 하며, 교활한 상술로 소비자들을 바보로 만드는 것에 무서운 세상에 대해서도 알려준다. 한마디로 우리가 세상을 보는 시력을 더 밝게 해주며 아무 생각없이 바라보던 이들에게 강한 충격을 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즐겁고 밝고 재미있고 유익하고 좋은 것의 실상은 사실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려주면서 말이다.
이 책 덕분에 평소 잘 빨지 않던 베겟잇을 더 자주 빨게 되었으며 손 끝도 신경써서 꼼꼼이 씻게 되었고, 패스트푸드의 양은 줄이고 야채를 더 많이 섭취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이런 행동을 할 수 있게 해 준 끔찍한 이유를 재미있고 담담하게 설명해 준 시크릿 패밀리 덕분일터이다. 그리고 또 하나, 내가 과학을 더 좋아할 수 있게끔 일조해주었다는 점에서도 이 비밀스런 가족들에게 감사함을 추가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