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들의 중국사
사식 지음, 김영수 옮김 / 돌베개 / 2005년 12월
평점 :
절판


중국사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이 책을 첫 발판삼아 읽게 되었다. 시대의 순차와 왕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는터라 이 책이 중국사의 입문서로 적당할까라는 의문과 기대로 읽게 되었다. 읽어보니 입문서로는 적합하지 못하다는게 정답인 듯 하다. 오히려 중국사에 대한 지식이 있는 독자가 읽어도 조금은 당혹스러운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해야 할 것 같다.

혹시 독단적이고 강압적인 힘으로 중국 통일을 이루어낸 진시황이 알고 보면 남에게 평생 통제당하며 살았었다는 사실을 아는가? 또 그 유명한 유비의 삼고초려가 사실은 없었다는 사실을 아는가? 그렇다면 혹시 유비의 우둔한 아들인 아두가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 오히려 아두의 아버지인 삼국지 속의 유비가 아들보다 더 우둔했다는 사실을 아는가? 이렇듯 이 책은 보통 사람들의 통념으로 믿기 힘든 사실들을 밝혀내고 있다. 무엇보다도 중국사에 무지한 나도 익히 알고 있는 '진시황'이나 '삼고초려'가 내가 생각했던 사실과 다르다는 점에서는 충격적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당연히 이런 사실들에 대해서 저자가 얼마나 신빙성 있는 자료를 토대로 했는지 의구심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저자가 여러 역사적 자료를 토대로 조목조목 통념에 대해 반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몇몇 부분에서는 저자의 편향된 생각이 지나치다고 여겨지는 부분도 없지 않아 있었다. 독자로서는(나같이 전문적인 지식과 많은 자료을 검증해보지 않은 독자) 저자의 생각을 따라가고 순응할 수 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역사에 대한 개인적인 반박에 관한 내용은 항상 날카로운 시선으로 읽어야 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런 맥락에서 중국사에 대한 지식이 없는 나에게 그런 능력의 발현은 사실 큰 무리가 아닐 수 없었다.

중국의 유구한 역사 속 숨겨진 진실에 대해서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겐 어느 역사나 그렇듯남겨진 자료로 판단할 수 밖에 없다. 자료를 보고 동일한 사실에 대해 언급한 자료의 양의 많고 적음에 따라서 역사적인 사실은 그렇게 사실로서 입증되어질 뿐이다. 그 사실 아닌 사실 속의 몇몇 소수의 다른 의견에 대해서도 우리는 항상 귀를 기울이는 열린 자세를 가져야 한다. 또한 항상 이면을 볼 줄 아는 날카로움의 필요함도 당연지사다.

책의 제목이 '황제들의 중국사'이니 만큼 이 책에서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는 바로 '황제'이다. 우리나라 역사 속의 왕들과는 그 명칭만큼이나 성격도 판이하게 다른 '황제'란 도대체 어떤 존재들이었나? 진나라 진시황의 황제라는 명칭과 제도의 성립 이후 이천년동안이나 지속해온 황제는 기존의 왕과는 무척이나 다른 성격을 띠고 있다. 왕들의 권력이 그 밑의 관료들의 독자적인 권력에 의해 자연스레 비교적 약화될 수 밖에 없었던데에 비해, 황제들은 그야말로 그들의 제국을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는 존재였다. 고로, 서양의 king이나 emperor라는 개념과도 확연한 차이를 가질 수 밖에 없다. 이런 황제가 되기 위해서 이천년이라는 기간 동안 인간으로서의 윤리가 무색할만큼 골육상잔을 비롯한 피비린내가 진동을 했다. 그도 그럴것이 황제의 능력과 출신에 관계없이 일단 황제 자리에 앉기만 하면 황제라고 칭할 수 있으니 얼마나 다양한 사람들이 황제의 자리를 탐했는지는 보지 않고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 피비린내의 끝에 황제 자리에 힘겹게 앉고 나서도 이들은 온갖 문란함과 탐욕스러운 생활을 하며 정사를 멀리 했다. 물론 아닌 황제도 있었지만 유감스럽게도 그 오랜 기간동안 대다수의 황제들이 이런 직업의식(?)을 전혀 갖지 못했으니 신해혁명으로 '황제'라는 직위와 그 존재가 없어졌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새삼 느끼게 된다. 또 힘겹게 황제가 된 이들도 그 자리를 계속 지키기 위해서는 항상 긴장하고 불신하는 마음을 갖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니, 그들의 자리를 탐하는 이라면 부모,형제,친척을 막론하고 닥치는대로 죽였다고 한다. 차라리 호가호위하며 불안하게 살기 보다는 노력하는 만큼의 댓가가 주어지고 황제만큼의 권력은 주어지지 않지만 일반 백성으로 살아가는게 차라리 더 마음 편할 것이다.

이 책은 '중국사'에 대한 지식을 얻기 보다는 이렇듯 중국사 속의 '황제'에 대한 개념과 그들이 어떤 존재들이었는지를 밝혀준다. 우리는 흔히 그 황제가 군림하고 있을 당시의 나라 형편,나라의 흥망에 따라 명군이나 성군 혹은 혼군이나 폭군으로 구분하는데 이는 명백히 잘못된 이분법적 논리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이 책의 목적은 이런 이분법적인 시각보다는 좀 더 여러 자료를 토대로 황제들에 대한 구체적인 사료들을 토대로 나라의 흥망에 관계하지 않은 통찰력 있는 시선으로 보았다는데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성군이라 불리우는 당태종 이세민이나 명 태조 주원장 같은 이들이 실상은 무척이나 교활하고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는 살인도 서슴치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렇듯 세상을 살아가다보면 보여지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알게 된다. 그저 수동적인 자세로 주입된 이미지와 지식에 의지하다보면 담론에 순응한채로 거짓된 지식에 휘둘리게 될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능동적인 자세와 통찰력을 지닌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세상과 소통해야 함은 당연지사다. 그런 시선으로 살아가면 좀 더 세상에 한 발 더 나아갈 수 있음은 물론이요, 이렇듯 바른 역사에 대해서도 명백히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둔함은 이런 자세를 가지지 않고 살아감을 의미한다. 우리가 우둔함을 스스로 자각한다면, 우둔함과 통찰력은 종이 한 장의 차이밖엔 지니지 않는다는 것을 꼭 명심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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