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노 가즈아키의 '13계단'은 그 화려한 명성만큼이나 훌륭한 작품이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기억할 수 있었던 것도 순전히 그 작품 하나의 힘일 것이다. 그러나 그 후 '유령 인명 구조대'에서 무참히 실망하고나서 그의 작품을 다시 읽기가 망설여졌다. 그러나 내가 이때까지 접해 본 밀리언셀러클럽 시리즈의 작품이 내용도 좋고 번역도 깔끔하여 다시 한 번 그의 또 다른 작품 '그레이브 디거'를 펼쳤다. 서양사에서 치욕적인 사건으로 기록되어있는 '마녀사냥'. 마녀사냥을 감행한 이단고문자들을 똑같이 고문해주는 존재인 '그레이브 디거'. 후에 안 일이지만 '그레이브 디거'는 작가가 순전히 만들어 낸 가상의 존재에 불과했다. 소설 속에서 접했을 때의 놀라움과 짜릿함이 조금 김빠지긴 했지만 동시에 작가가 영화 관련 일을 하다가 소설을 써서인지 상상력 하나는 정말 타고났다는 생각도 했다. 인간은 쫓고 쫓기는 숨막히는 장면을 즐기는게 본능인지도 모른다. 얼마전 흥행에 대성공한 영화 <추격자>를 보면 알겠지만 영화로 쫓고 쫓김을 간접 체험한다는건 관객으로서는 대단한 구경거리가 될 수 있다. 주인공에게 감정이입되어서 가슴 두근거리며 보았던 영화가 아직도 나에겐 강한 인상으로 남겨져 있다. 바로 이 '그레이브 디거'도 하룻동안의 쫓고 쫓기는 내용을 다루었다. 살인사건의 중요 참고인과 경찰의 쫓고 쫓김은 비록 책이지만 무척이나 스릴있다. 비록 헐리우드영화에서 많이 본 구성이기에 신선함은 많이 느껴지지 않았지만 단 하루 동안에 일어난 일을 이토록 박진감 넘치게 쓸 수 있는 것 또한 작가만의 훌륭한 능력이리라. '13계단'에서는 '사형제도'에 대해 다시금 고찰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면 '그레이브 디거'에서는 '추악한 권력'에 대해 생각해 볼 거리를 던져준 것 같다. 정치인의 겉에서 드러나지 않는 배후의 탐욕과 권력을 획득하기 위한 온갖 추악한 행동이 사실 소설 속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다. 권력과 인간의 관계는 불가분의 관계가 아닐까. 역사 속에 남겨진 추악한 인간의 권력욕만 보아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역시 다카노 가즈아키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야베 미유키 못지 않은 그의 작품성에 또 다시 이 이름만으로도 기대가 생긴다. 추격의 박진감을 느끼고 싶다면 '그레이브 디거'를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