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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바다 - 제12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정한아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그건 인간만이 자기가 선택한 삶을 살기 때문일 거예요.
내가 선택한 대로 사는 인생이죠.
그것마저 없다면 우리의 삶이 무엇 하나 동물보다 나은 것이 있겠어요?
하지만 인생이 생각만큼 쉽지 않다는 걸. 자기가 선택한대로 사는 사람이 생각만큼 많지 않다는걸 나이 스물셋이 되고 더욱 처절히 느낀다. 그리고 인생은 생각만큼 쉽지도 재미있지도 않은 진부한것이라는 생각도. 더 신기해할 것도 흥미로울 것도 없다. 있어봤자 순간일 뿐. 우린 또 다시 전쟁을 치뤄야 한다. 좁은 취업문을 뚫어야 하고 남들보다 돈을 많이 벌어야 하고 남들이 우러러 볼 만한 권력을 가져야 나름 성공한 인생이라고 할 수 있다.
한 때, 난 누군가와 자의 혹은 타의에 의해 비교가 되어 굉장한 열등감에 시달렸던 적이 있었다. 물론 지금도 그 증상은 가끔 있지만, 타의의 거의 99%를 차지하는 엄마와 떨어져 살다보니 거의 자의의 열등감에 아주 가끔 시달려서 조금은 살만하다. 태어나고 세상을 조금씩 알아갈 때 쯤엔 모든게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내가 기억을 더욱 잘 할 수 있을만한 나이가 되어 갈수록 인생은 그게 아니었다. 이건 비단 나뿐만이 느끼는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느끼는건가 보다. 그래서 우울증이라는 병이 많은 현대인들을 병들게 하니 말이다.
여기 이 책, 언제나 신선한 젊은 작가를 문단에 등용해주는 등용문 '문학동네 작가상' 수상작이 있다. 문학에 대해서는 거의 모르기 때문에 우리나라에 어떤 문학상이 있는지도 모르고 작가도 그저 남들이 다 아는 정도로만 알지만 문학동네 작가상 수상작 및 작가는 꽤 관심을 갖고 있다. 일단 문학동네라는 출판사를 좋아하고, 젊은 작가에게 관심이 많기 때문이다. 한국문학이 더 이상 하락하지 않기 위해서는 젊은 작가가 많아야 한다는 생각에도 동의한다. 요즘 젊은 세대들에게 한국문학은 그저 입시를 대비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한 현실이 안타깝다.
몇 번이나 시험에 떨어진 주인공인 나와, 트렌스젠더를 꿈꾸는 나의 베스트 프렌드 민, 그리고 할머니 할아버지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는 평범하면서도 평범하지 않은 내게 지극히 평범하지 않은 고모를 만나는 명이 내려지게되고 민과 나는 함께 고모를 찾으러 미국으로 향한다.
순탄한 길을 걷고 있는 누군가는 계속 순탄하리라는 통념을 무참히 깨버린 이 반전에 이르러 느낀 복잡한 감정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그래도 희망은 계속된다? 이런 진부한 메세지 하나를 얻기엔 다소 아쉽다. 사람일은 모르는 것이다? 나름 조금 자위를 할 수는 있겠지만 이것 또한 시시한 싸구려 감상에 지나지 않는 것 같다. 특별히 딱 한 가지를 느꼈다고 말하지는 않겠다. 그저 인생이란 이런 것이라는 누군가의 인생철학 강의를 들은 기분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한가지 확실한건 저 위의 인용문처럼 내가 택한 인생을 설령 실패하더라도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는 건 동물과 다를게 없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 속의 실패한 이들은 적어도 시도는 했다는 것, 거기서 행복을 느꼈다는데에 뭉클함이 느껴졌다.
어제까지만해도 난 누군가에게 막연하고도 강렬히 꿈꿔왔던 어떤 것을 현실의 벽에 부딪쳐서 포기하려고 한다는 말을 쏟아냈었다. 물론 언제나 포기하지말자로 결론 짓고 말지만, 이제는 확실히 다짐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시도조차하지 않는다는건 인간의 최소의 권리마저 포기하는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