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거짓말
정이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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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자신의 솔직한 성(性)경험,성 고백 그에 대한 생각들을 쓴 책을 출판해서 한 때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던 배우는, 그녀가 모두의 뇌리에서 거의 잊혀져 갈 무렵 자신의 언행에 대해 후회를 한다는 고백을 얼마전 모 잡지 인터뷰 기사를 통해 보았다. 그녀가 어떤 생각으로 그런 파격적인 행동을 했는지를 알 수는 없지만, 결국 그녀도 하나의 커다란 괴물 앞에 무릎 꿇은 모습을 보고는 철없는 청년의 객기로 치부하게 되는 어떤 통쾌한 느낌, 그리고 이유를 알 수 없는 어떤 씁쓸한 느낌 또 그녀가 한 것과 같은 감행은 자신을 파국으로 몰고 갈 뿐이라는 걸 바라보고, 안주하는 스스로의 모습에 대한 어떤 다행스러움의 복합적인 감정이 느껴졌다.

체제 속에 순응한다는 것은 성공을 위한 필수전제이다. 때문에 이 체제를 벗어난다는 건 대단한 모험일 수 밖에 없다. 이는 즉, 체제를 벗어난 후 그 용기있는 누군가는 극과극의 결과로밖에 향할 수 없다. 성공했다면 영웅으로 대접받을 수 있겠지만, 실패했다면 터무니 없는 이상주의자, 몽상가로 치부될 수도 있다. 벗어난 체제에서 성공하기란 실패하기보다 어렵다. 때문에 평범한 사람들은 체제라는 울타리 속에서 만족하고 싶어한다. 한번뿐인 인생에서 영웅 혹은 실패자 둘 중 하나가 되는 것도 썩 나쁘지는 않지만, 그런 불편한 인생을 살아갈 만큼의 용기는 어쩌면 나이와 반비례하는지도 모를일이다.

정이현의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는, 일단 그녀가 젊은 작가이기 때문이다. 한국소설을 많이 읽지 않기때문에 작가들을 많이 알지는 못하지만, 한가지 분명한건 소설이란 공감대 형성이 중요한 몫들 중의 하나를 차지하고, 이는 자연히 독자로서 비슷한 세대를 걷고있는 작가들에게 더욱 끌리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다. 때문에 많은 젊은 독자들이 같은 세대를 살고 있는 정이현을 좋아하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이유는 그녀가 여성작가이기 때문이다. 그녀의 소설 속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여성들의 나이의 거의가 내가 아직 인생에서 거쳐온 나이가 아니고, 그로써 그 연령대에 흔히 겪게 되고 고민할 수 밖에 없는, 가령 취업, 결혼, 출산 따위를 겪어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소설 속 주인공들의 그런 고민을 안게 된 내면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무래도 같은 여성이기에, 그리고 정이현이 겪어 온 삶의 경험이 사실적인 서술에 대한 힘을 부여했기에 공감대 형성이 쉽게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 같다.

이 소설은 그녀의 소설 <낭만적 사랑과 사회>와 어찌보면 다를게 별로 없어보인다. 체제에 순응하면서도, 우리에게 불편한 무언가를 따끔하게 지적하는 듯한 느낌은 그것과 다르지 않다. 다만 이 소설에서는 다양한 연령대의 다양한 직업과 생활환경의 여성들이 많이 등장한다는데에 좀 더 발전적인 면이 보인다. 단편 하나씩을 읽을 때마다 묵직하면서도 쓰고도 떫은 그런 과일을 씹은 느낌이었다. 이유는 하나밖에 없다. 이게 모두 우리의 자화상이자 나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책을 덮고 나서도 명치를 타격받은 이 느낌은 오래토록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어쩌면 소설이란 이렇듯 우리에게 이런 불편함을 주면서도 나의 내면을 다시금 돌아보게끔 하는 역할로서 진정한 사명을 수행하는게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오랜만에 좋은 소설을 읽었더니 나 자신과의 대화를 많이 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다. 거기에다 정이현의 소설은 재미까지 있으니 며칠간 즐거운 여행을 다녀 온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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