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정복한 남자 류비셰프
다닐 알렉산드로비치 그라닌 지음, 이상원.조금선 옮김 / 황소자리 / 2004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이 갓 나온 따끈따끈한 신간이었을 때, 신문의 북코너에서 소개글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 짧은 소개글에서도 무척이나 읽어보고 싶은, 아니 꼭 읽어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그로부터 3년이 흘러서야 이 책이 내 손에 들어오게 되다니... 다른 책 같은 경우는 지금이라도 읽게되어서 무척 다행이다라고 생각했겠지만, 이 책은 다르다. 왜 지금 읽게되었을까하는 후회가 더 크기 때문이다. 그만큼 이 책이 내게 준 도움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이다.

류비셰프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없다고? 나도 없다. 뭐하는 사람이냐고? 딱히 직업을 거론하자면 과학자, 그 중에서도 곤충에 일생을 바친 곤충학자라고 하는 편이 낫겠다. '딱히'라는 표현을 쓴 데 대해 의아해할 수도 있겠다. 이 책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류비셰프가 학자로서 자신의 전공분야만으로 집요하게 파고든 학자는 아니었다. 여러 방대한 분야에 박학다식했고, 이미 이론으로 공식화된 여러 통념에 의구심을 느끼고 직격탄을 날린 학자였다. 한마디로 말해 그 당시의 이단자였던 것이다.

사실 어느 시대에나 이런 이단자는 있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작가는 류비셰프의 이런 면에 감동하여 책을 썼을리는 만무하다. 작가가 류비셰프라는 인물을 파헤치는 주요한 이유는 바로 '시간통계'때문이다. 시간통계란 무엇인가? 자기가 할 일의 중요도를 단계별로 나뉘어서 시간을 배분하여 이용한 뒤 그대로 실천하고 기록하는 것이다. 류비셰프는 26살에 시간통계를 시작하여 평생 충실하게 실천했다. 그의 인생의 어떠한 굴곡이 있어도 굴하지 않고 담담히 하루도 빠짐없이 했다는데에 정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렇다고 그는 절대 냉정하고 마음이 차가운 사람은 아니다. 그가 학자로서 명성을 누릴 수 없었던 이유 중의 하나는 자신의 도덕적 신념에 일치하는 판단으로 삶을 살았고, 대중이 옳다고 여기고 믿는 통념도 그는 곧이곧대로 믿기보다는 의심하고 비판하고, 학자로서의 올바르다고 생각되는 행동만을 지향한 채로 살아갔기 때문이다. 비단 학자 뿐만이 아니라 인간이란 나약하고도 간사한 존재이기에 주변의 환경이 자신을 좀 더 안락함으로 인도하고자하면 금방 자신의 신념을 저버리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자신에게 관대해지기란 쉽지만 자신에게 그 어느 때나 엄격하기란 이루 말할 수 없이 어렵고, 난 이때까지 그런 삶을 살아온 이를 거의 본 적이 없다. 나 또한 남에게는 엄격하지만, 정작 나 자신에게 만족하지 못하는 부분을 회피하고자 남에게 언제나 비판적이었고 엄격했다. 물론 지금도 그렇지만.

각박한 세상이다. 경쟁에 익숙한 삶을 살다보니 여러 경쟁에 치여 살다가 그 경쟁을 뚫고 대학에 들어오고 대학생으로서의 시간을 충분히 즐기지도 못한 채로 취업난때문에 점점 마음이 무거워져서 나도 남들보다 더 가치를 높이기 위해 스펙을 쌓고자 고군분투한다. 시간이 없다는 말을 입버릇처럼하다보니 실제로는 시간이 있는데도 없는 것 처럼 여겨지고, 그러다보니 쫓기는 생활에만 익숙해진다. 결국은 제대로 성과를 낸 것은 노력에 비해 턱없이 적다고 느껴진다. 책을 읽고 류비셰프와 비교해서 생각해보니 내겐 가장 중요한 계획이 없었으며 자투리 시간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걸 알았다. 일분을 한 시간처럼, 한 시간을 한 달처럼 썼던 류비셰프에 비하면 난 너무나도 허비하는 시간이 많았던 것이다. 이건 이 책을 읽은 독자라면 거의가 나처럼 느끼고 허비한 시간에 대해 후회하고 반성할 것이다. 정말 류비셰프처럼 시간관리를 한 사람이 아니라면 말이다.

저자도 언급했듯, 류비셰프의 시간통계가 꼭 바르고 권장할만한 방법은 아닐 것이다. 생각보다 이 기록은 무척이나 어렵고 꾸준함을 요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류비셰프 또한 누구에게도 권장하지 않았고, 오로지 자기 자신에게 철저해지기 위해 자아실현의 수단으로 썼다. 하지만 어떤 인간이든 태어날 때부터 주어지는 선물인 시간을 어떻게 써야할지는 류비셰프를 통해서 충분히 배웠다. 나름의 방법으로 목표를 정하고 돌이켰을 때 시간을 알차게 보냈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가장 큰 보람이 있지 않을까.

시간관리를 하여 보람찬 인생을 사는 목표는 누구나가 다르겠지만 그 귀결은 결국 안락한 삶의 보장이 아닐런지. 나 또한 그렇지만, 시간관리의 대가인 류비셰프는 오로지 자신의 자아실현을 위해서 또 학자로서의 삶을 치열하게 살기 위해 그 어떤 돈과 명예도 바라지 않고 오로지 계획된 시간 속에서만 살아갔다는 점에 대해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나도 그런 고매한 성품을 가질 수 있을까. 이 책을 내 나이 스물두살에 읽었다는데 후회도 물론 되지만 반면 다행스러움도 느껴진다. 류비셰프가 스물여섯살에 시간관리의 계획을 세운 것에 비하면 무려 사 년이나 일찍 깨닫고 시작하게 된 것이니까 말이다. 더불어 류비셰프라는 훌륭한 학자를 알게 된 것도 큰 축복이다. 나의 신념과 도덕성에 반할 수 있는 선택이 주어질 때 류비셰프가 내 마음 속에서 살아나서 나를 올바른 길로 인도해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여러모로 이 한 권의 책으로 내가 갱생한 것 같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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