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살 것인가 - 우리가 살고 싶은 곳의 기준을 바꾸다
유현준 지음 / 을유문화사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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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건축에 대해 관심을 가져본 적은 거의 없는 것 같다. 한국사회 특성 상, 어느 지역에 어느 아파트에 사는가로서 집값을 대충 예상한거 외에는 인간과 건축의 의미, 그리고 건축의 아름다움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책의 첫 챕터가 나를 충격에 빠뜨려준 하나의 팩트를 알려주었는데, 바로 '학교'와 '교도소'의 건물 형태가 굉장히 비슷하고 이는 아주 오랫동안 한국에서 보여지는 건축적인 특징이라는 점이다. 생각해보면 늘 언제나 유러피안 마인드를 가지고 있던 내가 학교 다닐 때 우울증 직전까지 갈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여기서 보여진다. 건물만이라도 학생을 배려하는 차원으로 지어졌다면 그나마 학교생활에 숨통이 트였을 텐데... 참 뭐같은 나라가 아닐 수 없다. 문제는 바로 그런 건물에서 10년 가까이 공부하다가 나무와 호수가 있는 대학 캠퍼스를 거닐며 잠시나마 인간적인 대접을 받고 난 후, 또 다시 직장이라는 곳에서 개미처럼 일을 하게 되면서부터 시작된다. 내가 일하는 곳은 강남의 한 빌딩 7층인데, 일요일 밤에 극심히 우울해지는 것은 다음날부터 일을 해야 한다라는 것만큼이나 어두컴컴하며 경직되어있고, 밖을 볼 수 없는 삭막한 빌딩의 한 층, 한 자리에서 8시간을 버텨야 한다는 점 때문인 것 같다. 더 우울한 것은 그 한 자리에서 노트북을 계속 쳐다보며 일을 해야 한다는 것. 이것만큼 미개하면서도 비인간적인 행위가 따로 있을까?

 

이 책이 내 뇌를 강하게 강타(?)해준 것은 무심코 여겼던 여러 건축적인 사실들을 깊은 의미로 바라보게끔 해주었기 때문이다. 나는 20대의 대부분을 강남역 근처에서 살았었는데, 지금도 그 동네를 가면 익숙함 한편으로는 자본의 집약체를 보는 것 같아서 가끔 너무 차갑게 여겨진다. 책에서 강남의 테헤란로를 언급하며 4차선 이상의 경우 사람의 보행이 단절되다는 점을 언급했는데, 항상 느꼈던 부분이다. 더군다나 취준생 입장에서 그 거리를 걷노라면 집어 삼킬듯한 빌딩에 괜히 주눅들곤 했었다. 아이러니한 건 결국 그 또한 인간이 만든 건축물이라는 점이다.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부분을 유현준 교수는 또 알려준다. 높은 빌딩이지만 끝으로 올라갈수록 뾰족한 형택보다 비대칭적으로 아슬아슬해 보이는 모양의 건축이 더욱 권력을 내세운다는 점이다.

 

책 한 권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하나 더 생긴 것 같은 경험이다. 무심했던 부분들에 의미를 파악해서 들여다 본다는 건 좋을 수도 있지만, 때로는 아는게 병이기에 피곤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지식들이 언젠가는 통찰력이라는 무기가 될 수 있다. 책을 덮고 또 다시 느낀건 한국의 유구한 세월동안 변하지 않는 학교 건물은 결국 입시지옥을 더욱 공고화하는데 한 몫 한다는 점. 나는 오늘도 이민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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