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서 페퍼 - 아내의 시간을 걷는 남자
패드라 패트릭 지음, 이진 옮김 / 다산책방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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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이 주인공인 책이나 영화는 보기가 싫다. 노인이 되어 본 적이 없지만 언젠가는 될 테고, 젊음을 잃은 내가 아직까지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걸 굳이 미리 알고 싶어지지가 않아서이다. 젊음을 잃는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그저 우울할 따름이다.

 

책 제목인 '아서 페퍼'는 주인공이자 노인이다. 부인을 병으로 잃은 할아버지로, 몇 십년의 결혼생활을 유지했던 그는 부인을 먼저 하늘로 떠나보낸다. 그 후 슬픔을 간직한채 유품을 정리하다가 와이프의 팔찌를 우연히 발견하게 된다. 팔찌의 참들은 코끼리부터 책 그리고 하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도구가 매달려 있다. 그는 그 각각의 참들과 와이프와의 연관성을 알고 싶은 마음에 히스토리를 파헤치게 된다. 그리고 아주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다.

 

내가 노인이라면 혹은 내가 행복한 결혼생활을 오래했다면 조금이나마 공감은 되었을 것이지만, 지금의 내게 이 작품 속 스토리는 크게 감흥이 느껴지지 않았다. 영화로 만들어도 너무 진부한 스토리에 마치 동화책을 읽는 듯한 유치함이 사실 실망스러웠다.

 

보통의 사람들은 결혼을 해서 이혼을 하지 않는 이상 죽을 때까지 한 사람을 배우자로 삼고 여생을 살게 된다. 배우자가 되기 전의 과거가 어떠했는지는 아마 죽을 때까지도 속속들이 알 수 없을 것이다. 그건 본인만이 간직하는 자유로웠던 젊은 날들의 추억으로 남겨둘 필요가 있다고 본다. 한 사람과 일생을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답답하고 슬픈 일인지... 그 전에 스쳐 지나갔던 많은 사랑들.. 그 기억들은 성숙한 내가 되게 해 준 자양분과 같은 추억들이다. 이런 추억들을 배우자에게 물론 말은 할 수 있지만 모든 것을 공유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십대 초반에 아주 친하게 지냈던 동생이 있었다. 수많은 연인을 잠깐씩 만나고 가벼운 연애가 일상이었는데 어느 날 내게 결혼을 하게 되었다고 전해주었다. 그 친구와 지금은 연락을 하지 않지만, 분명 그 친구는 남편에게 젊은 날의 그 화려했던 과거를 디테일하게 알려주지는 않았을것이라고 생각한다. 결혼을 해도 어쩌면 이런 부분에서 부부는 함께 살아가는 남인 것이다.

 

책을 덮은 후, 요즘 나의 제일 큰 화두인 '결혼'에 대해서 또 다시 생각을 하게 되어 머리가 더 복잡해진다. 과연 나는 결혼을 해서 아서 페퍼처럼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고 아들과 딸을 키운 후 독립시킨 지극히 평범한 이 할아버지가 불현듯 부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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