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하는 토요일,
집을 나서면서
내가 좋아하는, 동네 티슈퍼에 갔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주인인데
할아버지는 안계시고
할머니만 계산하는 책상머리에 앉아계셨다.
인사를 하고 들어서니,
" 예쁘게 차리고 어디가? " , 하신다.
" 친구 만나러요. "
음료 냉장고에서 포리를 꺼냈다,
" 짤라줄까? " 하시더니,
가위로 윗부분을 자르고, 빨대 비닐을 벗겨서 꽂아주신다.
한번도 이런 적이 없었는데, 황송하다..
" 점심은 드셨어요? "
" 아직 안먹었어. "
" 아직도 안 드셨어요? "
" 응.. 우리 며느리가 와서 문어 삼고 있어.. "
" 맛있겠네요.. "
" 한 점 먹고 갈래? "
( 이 말씀을 하시면서, 내가 지금까지 본 가장 환한 웃음을 지으신다,
몇 년을 이 동네에 살면서 티슈퍼에 드나들었지만,
이렇게 환하게 웃으시는 걸 본 적이 없다.
워낙 무뚝뚝한 할아버지, 할머니여서
인사를 해도 본체만체 하시고
첨에는 무색했지만, 금방 알아챘다, 그게 이분들 성격이란걸..
암튼 오늘 할머니 컨디션이 최상인 것 같다,
며느리가 와서 일지도 모르겠다. )
" 아니요, 저는 지금 가야 돼요.. "
소기의 목적달성!
꼭 무언가를 마시고 싶었다기 보다,
하기 싫은 일을 하기 직전
위로를 받고 싶었다..
발걸음이 가볍다..
(은수가 그랬다,
사람이 어떻게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아요?)
포리에 꽂혀 있는 빨대는
반대로 되어 있다,
뾰족한 부분이 나와 있다,
할머니는 빨대 사용법을 모르신다.
글을 모르시는 것처럼..
뾰족한 빨대를 물고
할머니를 이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