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을 먹고 일하러 가는 룸메이트와 집을 나섰다. 

집 근처에 국사봉이 있는데  

몇 년을 살면서 정상까지 가 본 적이 없다. 

정상이라고 해봐야 얕은 봉우리에 불과한데 

뭐가 그리 바빠서..   

ㅋㅋ 집에서 드립다 잠만 자느라고......

잠은 잠을 낳고 

게으름은 게으름을 낳는다. 

 

입구 계단을 지나니 

국사봉 정상까지 0.5km 

약수터까지 0.9km

이런 표지판이 보인다. 

13분만에 도착한 정상은  

비석 하나, 전망이 별로인 전망대 

뭐 그저 그랬다. 

주위엔 운동기구들에 붙어 열심히 운동하는 아저씨들이 보였다. 

근육을 만들어야 하나보다. 

 

내친 김에 약수터에 가서 약수를 마시고 

같은 길로 돌아온다 해도  

1시간도 안 걸릴 것이다. 

 

정상까지는 누구나 쉽게 오를 수 있게 돼 있었지만 

정상에서 약수터는 길도 여러갈래고 

표지판도 없었다.  

다행히 한 분이 그쪽으로 가는 길이라며 친절히 안내해 주셨다. 

 

약수터에 도착해서 약수도 마시고  

왔던 길로 돌아갈 수 있을까 생각하는 찰나 

장대같은 비다,,,

약수터 지붕에 

10여명 쯤 함께 비를 피했다. 

 

비가 올거라고는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점퍼 주머니에 

한 쪽엔 열쇠 

한 쪽엔 전화기 뿐이었다. 

1시간 안에 금방 올라갔다 올꺼니까 

별 생각이 없었다. 

 

30여 분 굵은 빗줄기가 쏟아진다. 

모두들 서서 비만 바라보고 있었다. 

세찬 소리를 내며 토사가 흘러내렸다. 

빗줄기가 상당히 가늘어졌다. 

완전히 개기를 기다리는 것보다  

빨리 돌아가야 할 것 같았다. 

흰 모자에 점퍼 모자를 겹쳐 쓰고 

일단 출발했는데     

미끌어졌다. 

등산화를 신었는데도 미끄러져 

계단 서너개 아래로 주루룩.. 

엉덩이가 얼얼하다..  

충격이 만만치 않다. 

일어나는데 꼬리뼈가 욱신거린다. 

다행이다 걸을 수 있다.

엉덩이 부분이 홀딱 젖었다.  

그런데 아무도 없다. 

이건 다행인걸까 불행인걸까 

  

재빨리 일어나 

일단 바지를 털었다. 

하필 엉덩방아라니.. 

혼자 있으니 누가 봐줄 수도 없고 가려줄 수도 없고  

무조건 빨리 집으로 가야 한다. 

무작정 아래로 아래로 내려오니 

생각했던 것보다 금방 아스팔트가 나왔다. 

양녕길.. 

처음 보는 길이다. 

어딘지 모르겠다. 

세상에나 상도4동이다.. 

상도3동에 사는 내가 여기까지 와버렸다. 

한 10분쯤 걸어서 

겨우 장승백이역을 찾았다.  

 

우리 집은 여기서부터 마을버스로 

10코스가 넘는다.   

추적추적 비오는 일요일 오후, 

누구를 부를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그나마 천원만 있었어도 

이 몰골을 버스에 실어 감추고 

편하게 집에 갈텐데.. 

이럴땐 보슬비가 고맙다. 

비라도 내 모습을 가려줘야 한다.  

최대한 모자를 당겨 썼다..

아이, 쪽팔려.. 

다행히 거리에 사람이 많지는 않았다. 

 

집에서 1시 35분쯤 출발했는데 

집에 도착하니 4시 20분이었다. 

옷을 갈아 입고 

빨래를 하려고 보니 

오늘 꺼내 입고 나간 바지는  

황톳빛이다.. 

 

 

한 시간이면 뒤집어 쓰고도 남을 거리를 

해발고도 200미터도 안되는 봉우리를.. 

집 나가면 개고생이다ㅋㅋ  

일기예보 사수하고 

비 오는 날은 뒷동산도 다시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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