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친구를 만나기로 했다.. 극장에서 보기로 했는데, 친구가 예매한다고 했다..  300과 향수 중에서 고르라고 했다.. 상관없다고 했다.. 300은 팝툰 창간호를 보다가, 프랭크 밀러라는 사람의 만화 300 출간 광고를 봐서 알고 있다.. 미국에서는 꽤나 이름있는 만화가인가본데, 만화에 문외한인 난 들어본 적도 없는 사람이다.. 그러다 티비에서 영화 300 광고를 하는데, 맨끝에 삼백!하고 끝나는데, 그냥 웃겼다.. 하긴 쓰리 헌드레드 할 수는 없는 거니까.. 향수에 대해서는 아는 바 없었다.. 파트리크 쥐스킨트는 들어본 적이 있었다.. 언젠가 김혜수가 티비 인터뷰에서 좋아하는 작가에 대해서 답하면서 이 어려운 이름을 정확하게 말하는 것을 보고, 김민종이 감동받은 책으로 에밀졸라의 목로주점을 말했을 때처럼 쌩뚱맞았었다.. 연예인이 말하는 것은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지 알수가 없다.. 

일요일 오후 북적대는 극장에서 5분도 안걸려 티켓을 기계에서 꺼내어 유유히 관람석으로 사라질 수 있다는 건 기분좋은 일이었다.. 서울에 와서 어딜 가나, 어느 시각에나 사람이 많아서 주말은 피했었는데, 그 정신없는 곳을 쉬 빠져나오다니, 달콤했다..  

스파르타 병사 300명이 페르시아 100만을 상대하다니..말도 안된다 그랬더니 친구는 실제 있었던 일이라고 했다.. 이란에서는 이 영화에 크게 반발하고 있다고도 했다.. 이란 하니까 프레디 머큐리가 생각나서, 프레디 머큐리가 이란계라서 팝을 금하고 있는 이란에서 퀸 음악은 들을 수 있다더라고 친구에게  어디선가 들은 얘기를 해주었다..

영화를 보면서, 많이 불편했다.. 그리고 평론가들의 얘기가 궁금해졌다..  

평론가들의 말이 쥐약일때도 있지만, 그들이 본질을 꿰뚫어보는 건 사실이니까..  

이 영화에서 선과 악은 너무 분명하다..  

스파르타 병사 300은 키크고 핸섬하고 단련된, 근육질의 백인들이다..  

그들은 조국 스파르타를 위해서 목숨 이상의 것을 내어줄 준비가 되어 있다..  

영화속에서라면 그들 가슴 속에 새겨져 있는 것은 애국심이라는 말로 부족하다..  

이에 비해 페르시아는 왕 부터 무슨 호모처럼 그려놨다..  

입술 바르고, 가는 눈썹을 정성스럽게도 그렸고, 조금 과장하자면, 내 눈에 페르시아 왕은 흑인처럼 보였다.. 페르시아 왕이 흑인에 호모였다? 듣도 보도 못한 역사 해석이다..  

전투가 지속될수록 스파르타 병사는 용맹하기 그지없고, 페르시아는 그저그런 노예들이 모여있는 이합집산에 불과하다.. 전투의지도 없고, 무력하기 그지없다..  

친구가 페르시아 왕으로 나오는 배우가 러브 액츄얼리에 나왔었다고 얘기해줬다..  

러브 액츄얼리는 러브,러브,러브~이렇게 시작하는 노래와 스케치북 사랑고백씬 밖에 기억나지 않는다.. 각 에피소드에 대충 어떤 배우가 나왔는지는 알겠는데, 디테일한 내용은 지워 졌다..   

그런데 나중에 출발 비디오 여행에서 보니까 그 배우는 백인이 아니라 남미계가 분명하다..  

그래서 저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거구나, 팝툰 2호 첫 페이지에 만화 300 광고가 있는데, 온얼굴에 피어싱하고, 온몸을 치장한 매서운 흑인(? 내 눈엔 흑인처럼 보이는데, 과연 프랭크 밀러도 흑인이라고 생각하고 그린건지 궁금하다..)이 보인다.. 영화보다 먼저 본 광고여서 누구를 그린 것일까 했는데, 바로 페르시아 왕이었다.. 영화 300은 프랭크 밀러가 제작지휘 했다고 하더니, 페르시아 왕의 모습도 만화 속 모습 그대로 영상으로 옮겨놓았다..

그리고 페르시아 왕국을 퇴폐 마사지 업소 쯤으로, 아니 그보다 심하게 그려놓았다..  

쭈쭈빵빵 여자와 여자가 뒤엉켜 있고..  

페르시아 왕국의 자리에 지금은 이란이 있다..  

미국에게도 강경책을 쓰고 있는 몇 안되는 나라에 속한다..  

그들이 이 영화에 분노하는 건 당연해 보인다.. 페르시아는 분명 동서를 융합한 대제국이었다..  

영화를 만들면서 완전히 객관적일 수는 없더라도 어느 정도는 서로의 입장을 살펴줘야 하는 것 아닌가? 일방적으로 한 쪽으로 치우쳐서 도대체 뭘 얘기하자는건지 모르겠다..  

게다가 심심찮게 등장하는 컴퓨터 그래픽 화면은 오히려 영화속으로의 몰입을 방해했다.. 하긴 100만 대군과 그 엄청난 범선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나중에 사소한 장면들도 거의 컴퓨터 그래픽으로 표현했다는 사실을 알게됐다.. 어린 시절에는 영화 속의 그런 장면들이 대단해 보이더니, 지금은 그런 장면들은 대충 짐작할 수 있어서 별로다.. 나는 미국의 살아있는 전설이라는 프랭크 밀러에게 엄청 실망했다..

단지 비쥬얼 측면으로, 흑백화면속에서 고대를 만나는 건 좋았다.. 그 시대를 짐작하게 하는 의상도.. 그런 것들은 상상의 나래를 펴게한다.. 아득한 동경의 시대, 책 속에서나 만날 수 있는 시대에 대해서 이미지를 부여한다..  

서양의 고대나 중세는 나에게 동양의 고대나 중세와는 참 다른 느낌이다.. 내가 동양인이기 때문일거라 생각한다.. 내 뿌리와 다른 것에 대한 호기심과 동경이다.. 서양의 고대사와 중세사는 늘 그런 대상이었다. 서양인들에게도 동양에 대한 그런 감정이 존재할 것이다(사전 지식없이 M.버터플라이라는 영화를 권한다. 여기서 중요한 건 사전 지식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속의 반전이 유주얼 서스펙트나 식스 센스에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또 피튀기는 전투씬은 한폭의 유화를 바라보는 것 같았다.. 공들인 장면처럼 보였다..  

친구는 처절한 전투씬에서 여러번 고개를 숙였지만, 내게는 고개를 숙일만한 장면은 없었다.. 이미 단련 되어 있었으니까..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보면서 전쟁이라는 것이 어떤건지 짐작할 수 있었다.. 스피커가 빠방한 극장에서 빗발치는 총알 소리는 그 자체가 전쟁이었다.. 배가 노르망디 해안에 닿기도 전에 이미 배안에서 구토하고 정신을 잃어가는 병사들을 보면서, 사회속에서 남성이기 때문에 전쟁에 나가야 하는 것일 뿐이지, 남성도 그저 나약한 한 인간일 뿐이라는 것을  절감했다.. 평화는 노약자나 아이들 여성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남성을 위해서도 필요한 단어다.. 

영화를 보고 나면 종종 별을 메긴다.. 기준은 현금 7000원을 내고 영화를 볼 때 돈이 아까울까 아깝지 않을까다.. 별 3개부터는 아깝지 않다는 거다.. 그런데 300은 별 두개 반이다..

극장을 나서면서 친구가 일본인들 마음속에는 이상한 것이 있다는 말이 있다고 했다.. 그러니까 지속되는 망언이 그 나라에서 먹히는 거다.. 여론의 뒷받침없이 계속될 리 없다.. 그와 비슷한 맥락으로 우리는 미국인들 마음속에는 이상한 것이 있다는 말을 만들어냈다.. 깊이가 없다.. 가볍다..

Love means never having to say you're sor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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