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의 꽃다발 법구경 나의 고전 읽기 4
장철문 지음 / 미래엔아이세움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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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을 다하는 주변인들을 보면 배울 게 참 많다. 그들은 시간을 아껴 쓰며, 약속을 잘 지키고, 사람을 귀히 여긴다. 여기까지만 해도 존경받을 만한데 체력까지 관리를 하는지 웬만해선 지치지 않는다. 수도 없이 많은 그들의 장점 가운데 가장 부러운 게 단단한 체력이다. 하기야 그들이라고 체력이 좋을까? 지치고 피곤하고 힘들지만 성실한 열정 하나로 견뎌내고 있는 것이리라.

 

조금만 무리를 했다 싶으면 드러누워야 하는 저질 체력을 가진 내가 그들을 벤치마킹하려니 힘겹기만 하다. 그들은 자신의 임무를 완벽히 수행하면서도 집안일까지 척척해낸다. 몸이 하난데 어찌 저리할 수 있을까 싶다. 나로서는 흉내조차 내기 힘든데 그들은 몸 사리지 않고 일을 즐긴다. 욕심을 내 며칠 그들을 따라해 보지만 몸살과 비염만 도진다. 평소 운동을 즐기지 않다 보니 체력의 한계만 느낄 뿐이다.

 

요 며칠 새 무척 바빴다. 냉장고는 텅 비었는데 밖에 나갈 일은 많다. 현명한 사람들 같으면 민첩하게 몸 놀려 남편 저녁밥상 정도는 차려놓고 나가겠지만 그것조차 여건이 허락지 않는다. 남편 끼니 하나 차리지 못하면서 바깥으로 돌아 얻는 게 뭘까 자괴감이 인다. 그렇다고 행동 패턴이 쉬 바뀔 리 없다. 급하게 즉석김밥 한 줄 사놓고 집을 나서기 일쑤다. 한 집안 가장의 밥상 치고는 너무 볼품없다. 손수 끓인 라면국물에다 식은 김밥을 적셔 마지못해 씹고 있을 남편.

 

짠한 맘을 보상이라도 해주려는 듯 다행히 밖에서 만난 사람들에게서 좋은 향이 난다. 예의 성실한 열정의 향으로 오감을 자극하니 내게도 에너지 넘칠 날이 오지 않을까 싶다. 향 쌌던 종이에서는 향내가 나고, 생선 묶은 새끼줄에서는 비린내가 난다고 했다. 열정과 좋은 향 가득한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장점을 배우고 있으니, 언젠가는 그들처럼 소박하고 정갈한 밥상 제대로 챙길 날도 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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썸네일세상은 넓고 보는 눈은 다양하다. 이것은 옳고 저것은 그르다고 섣부른 판단을 내리는 순간 잘되던 일도 꼬여버린다. 경계를 치거나 단정을 짓는 건 만큼 부질없는 것도 없다. 나와 다른 생각일수록 더 옳다는 자세로 세상일을 바라보면 별 문제가 없다. 하지만 넓은 눈을 가지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 우리 일상사는 늘 부딪힘의 연속일 뿐이다.

 

 

정치마당도 마찬가지다. 대선을 앞둔 여러 소식을 보자면 한마디로 저마다 옳다. 후보자 유권자 각각 저들만 바른 목소리이고, 저들만 나은 판단이라고 생각한다. 선거일이 얼마 남지도 않았는데, 제대로 된 정책은 나오질 않고 곡절 많은 정쟁만 넘쳐난다. 유권자들도 정책에 대한 서늘한 칼날보다 정쟁에 대한 영양가 없는 입씨름만 보탠다.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고 부추기는 모든 것에서 벗어나고 싶다. 좀 더 창의적이고 느슨한 기운들이 넘쳐났으면 좋겠다.

 

 

에드바르트 뭉크의「그다음 날」이란 작품이 있다. 이 그림이 20세기 초 오슬로 국립미술관에 걸렸을 때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 가슴을 풀어헤치고 팔은 늘어뜨린 채 소파에 널브러진 술 취한 여인의 그림이 이해받기란 힘들었다. 술 마신 다음날의 번민어린 실체를 뭉크는 말하고 싶었겠지만 여론은 예술가의 진정성 따위는 알고 싶어 하지 않았다. 자신들의 잣대가 가리키는 현상만을 볼 뿐이었다.

 

 

취기에 젖은 이 못된 여자가 쉴 만한 장소는 국립미술관이 아니라는 냉소적인 기사에 여론이 열광할 때, 멋진 반전을 이끌어낸 미술관장의 한 마디가 가슴에 꽂힌다. ‘그림 속 여인이 깨어나면 물어보겠다. 이곳이 쉴 만한 곳이냐고. 그러나 지금은 자게 내버려 둬야 한다. 그녀가 있는 것이 미술관의 영예가 될지 치욕이 될지 아직 판단하기 이르다.’라고.

 

 

옌스 티스 미술관장 같은 통 크고 열린 시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식견 좁고 지혜 부족한 나 같은 사람의 눈을 틔게 했으면. 보는 만큼 알게 된다. ‘그다음 날’을 발견해내는 아량 넓은 견자의 시선이 부러운 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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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12-10-21 2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르웨이 참사가 있던 날,
총리가 그랬대요.

우리에게 필요한 건, 응징과 처벌이 아니라,
더 많은 민주주의와 더 많은 개방성, 더 많은 인간애... 라고 했대요.

부럽죠. ^^
그런 넓은 시야가 말입니다.

다크아이즈 2012-10-22 22:16   좋아요 0 | URL
노르웨이 총리 같은 마인드 꼭 배우고 싶네요.
응징과 처벌이 아니라 더 많은 개방성, 인간애... 절실합니다.
 
일상으로 본 조선시대 이야기 1
정연식 지음 / 청년사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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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알아듣는 꽃

춘향전은 초등학생들에게도 필독서로 권장된다. 우리 고전이니 어릴 때부터 당연히 읽혀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생각하는 모양이다. 나도 별 고민 없이 아이들 논술 교재로 활용하는데 생각지도 않은 질문에 당황하기 일쑤다.

 

오늘도 호기심과 장난끼가 반반인 아이가 연거푸 질문을 한다. 변 사또가 춘향이더러 수청을 들라고 하는데 수청이 뭐예요? 게이샤가 나아요, 기생이 나아요? 수청이 뭐냐고 묻는 건 진심어린 질문이고, 게이샤와 기생을 비교해달라는 질문은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말장난을 흉내 낸 것이다. 그런데 두 질문 다 기생에 대한 왜곡된 시선이 전제되어 있는 것 같다. 어떤 영향이라고 딱히 말할 순 없지만, 어릴 때부터 기생에 대한 단편적 이미지를 우리가 학습해오고 있구나, 하는 느낌이 든다.

 

기생은 수청이나 드는 존재는 아니었다. 수청이란 말은 본디 관리가 숙소에서 잠을 잘 때 마루 즉, 청에서 심부름을 하며 수발을 들어준다는 뜻이다. 물론 춘향전에서의 의미는 수발만 드는 것을 뜻하지는 않을 것이다. 기생의 주된 임무는 노래와 춤을 넘어 시와 서예 등으로 뭇 잔치를 흥겹게 하는 것이었다. 요즘으로 치자면 만능 엔터테이너 개념이었다. 예술인이자 재능가인 그들은 해어화(解語花)로 불렸다. '말을 알아듣는 꽃'이라는 뜻인데 당나라 현종이 양귀비를 그렇게 일컬었다. 미인을 뜻하는 이 말은 나중에 기생까지 아우르는 말이 되었다.

 

말을 알아들을 만큼 총명한 예능인이었던 기생의 이미지가 격하된 것은 일제 강점기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게이샤 문화에 대한 열등의식이라도 있었을까. 일본인들은 우리의 기생 문화를 폄하하고 왜곡했다. 멋들어진 예능인의 위상에서 술이나 따르는 하급 작부 이미지로 변질시켰다. 수청이 뭔지, 게이샤와 기생을 비교하기에 앞서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기생 문화에 대한 진실부터 접근해야겠다. 말을 알아듣는 종합 예능인이 기생 그들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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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34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 민음사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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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화 마을이 늘어나고 있다. 어떤 도시를 여행하더라도 그런 마을 하나쯤은 쉽게 만난다. 지저분했던 도시 뒷골목은 깨끗이 붓질된 채 벽화마을이란 테마 관광지로 거듭 난다. 명화가 모사되거나 풍속화가 재현되거나 과장된 풀꽃이 내려앉은 긴 담벼락. 햇발 내리쬔 담벼락이 다사로울수록 담장 안 진실은 궁금해진다. 남들 다 아름답고 정돈되었다고 칭송하는 그 풍광이 내게는 키치(kitsch)스러움의 한 예로 떠오른다. 담박하지 못하고 삐딱한 이 시선을 어이할꼬.

 

밀란 쿤데라의 소설을 이야기하는 도중 누군가 물었다. ‘키치’가 뭐예요? 말하자면 벽화마을에 그려진 화사한 그림이나 SNS를 장식하는 음식점 순례 사진 같은 것 아닐까요. 한마디로 보이거나 보이기 위한 것이지요. 이상하리만치 즉각적인 대답이 내 입에서 나온다.

 

언제 재개발될지 모르는 뒷골목 담장에 감쪽같이 고흐의 해바라기가 모사되어 있다. 그 옆으론 실제보다 선명한 장미넝쿨과 금세 마을을 버리고 날아갈 듯한 천사의 날개까지 걸려있다. 하지만 골목의 실체는 벽화가 보여주는 과장된 낭만을 담보하지 못한다.

 

저 먼 골목 끝, 한쪽다리 절단된 중년 아줌마의 목발 짚은 뒷모습과 입구 가까운 첫 집, 빼꼼 열린 녹슨 대문 사이로 폐지더미를 묶는 할머니의 손등이 이 마을 벽화의 진실이지. 밀란 쿤데라 식이라면 ‘앞은 파악할 수 있는 거짓이고, 뒤는 이해할 수 없는 진실’이지. 보이는 벽화야말로 거짓 즉 키치이고, 뒤에 숨은 목발 짚은 뒷모습과 폐지더미 위 손등이야말로 실체 즉 진실이지.

 

그림 뒤에 숨은 진실이 어둡거나 감추고 싶을수록 그 벽화는 총천연색을 자랑하지. 레스토랑 화려한 음식이 사진 속에서 빛날수록 우리들 마음은 공허하지. 저속하고 가짜인 키치가 아프고 공허한 실체를 위무하는 아이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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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12-10-18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새 각 지방단체의 소위 '축제'가 키치의 극치죠.
전부 가짜고~ ㅋ~
어디가나 똑같은 특산물, 엿장수~ 그리고 술판~

정치판에선, 조선도 중앙도 동아도 똑같은 키치~

다크아이즈 2012-10-18 23:31   좋아요 0 | URL
아,맞아요.키치의 극은 지자제 축제 마당.
역겹고 창피한. 크~
 

 

 

 

입시철이 다가왔다. 대학 입학 전형을 들여다보려니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 수시와 정시로 원서 방식도 갈라지는데다, 수시전형은 입학사정관제, 국제 전형, 과학 전형, 학교장 추천 전형, 일반 전형 등 다양하고 복잡하기만 하다. 이걸 다 이해하는 학생과 학부모가 있을까 싶다. 대학 한 번 들어가기 어렵다는 생각만 든다.

 

우리 세대 입시 때와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그때는 학력고사 점수에다 내신 성적만이 평가 기준이었다. 기준 배치표를 보고 자신이 받은 점수로 갈 수 있는 대학 및 학과 중 하나를 선택하면 그만이었다. 한 번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하는 단점이 있었지만 입시 절차 때문에 골치 아플 이유는 없었다. 융통성은 없었지만 단순 명쾌한 그때 입시 방식에 머물러 있는 수험생 학부모로서 요즘 대입 전형을 제대로 이해하기엔 한계가 따른다.

 

아들 녀석이 전하는 입시 관련 의견은 반은 이해하고 반은 알아듣지 못하겠다. 들을수록 헛갈리기만 한다. 결국 ‘니가 알아서 하라’는 다소 무책임해 보이는 말로써 완전 자율권을 부여하고야 만다. 고급 정보를 찾아나서는 열혈 엄마들이 넘쳐나는 현실에서 그 대열과는 한참 먼 행보를 하자니 걱정과 후련함이 동시에 인다.

 

학생 스스로 대학과 학과를 결정하고 자기소개서를 작성해야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주변을 살펴보면 커피 한 잔 마실 여유가 없을 정도로 자기소개서에 시달리는 엄마도 있다. 자정 넘어 학교에서 돌아오는 입시생은 그것을 쓸 시간도, 의지도 없다. 내신 성적을 따져가며 학교와 학과를 선택하는 것도 학부모 몫이다. 비싼 돈 들여 전문가에게 자기소개서를 부탁하는 학부모도 있다. 뭔가 잘못 되어도 한참 잘못 되었다.

 

학생과 학부모 나아가 학교까지 힘들게 하는 이런 입시 방식은 한 편의 코미디를 보는 것 같다. 자녀와 학부모가 동시에 수험생이 되는 것, 이것이 대학교나 교육부가 원하는 입시방식이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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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12-10-16 0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3 부장을 지낸 저로서도... ㅠㅜ 매년 바뀌는 입시를 어떻게 꿴답니까? ㅋ~
한국 입시의 결과는 점쟁이도 모른대요. ㅎㅎㅎ

다크아이즈 2012-10-16 22:55   좋아요 0 | URL
글샘님께 여쭤볼 걸 그랬네요. 근데 진짜 선생님들도 완벽하게 입시 전형 꿰차고 있는 것 아니지요? 넘 어렵습니다. 지가 알아서 한다기에 넋 놓고 응원만 할 뿐입니다.

페크pek0501 2012-10-16 1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고급 정보를 찾아나서는 열혈 엄마들" 안에 들어가지 못해 언젠간 아이에게 자율권을 부여하고 말 것 같아요. (둘째가 고1인데...)ㅋㅋ

다크아이즈 2012-10-16 22:58   좋아요 0 | URL
페크님 예비 수험생을 두셨네요. 시간 금방 간답니다.
학모 모임 가보면 열혈 엄마, 올인 엄마 수두룩한데 전 방임이 엄마랍니다.ㅋ
페크님도 동지라니 위안이...
저야말로 글 잘쓰시는 페크님 납시어서 영광인걸요. 크~

프레이야 2012-10-16 1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열혈엄마들이 전하는 정보에 귀닫고 사는 사람이라ᆢ 올해 수능 보나요, 아들이? 그렇다면 암튼 좋은 결과 있기를 바랍니다.

다크아이즈 2012-10-16 23:08   좋아요 0 | URL
넹,전부 수시 전형이라 수능은 안 본답니다.
알아서 잘 헤쳐가기만 바랄 뿐이지요.
프레이야 님 귀닫고 있었더니 손해는 좀 보는 것 같아요ㅠ
그래도 꿋꿋이 방임이 엄마 하고 있습니다.
엄마로서 도움 줄 수 있는 게 맘 속 응원 밖에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