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사상의 최대 목표는 체제 유지였다. 그 정당성을 부여 받고,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필수불가결한 것이 충효란 덕목이었다. 충효의 보조 항목으로서 예의와 도덕이 따라붙는 것은 당연한 논리였다. 다시 말하면 예의와 도덕은 높은 자를 위한 헌사에 필요한 것이지, 낮은 자를 위한 배려로서 그리 매력적인 도구는 되지 못했다.
학교 현장에서의 도덕 교육도 그런 현실에서 조금도 나아가지 못했다. 김상봉 교수의 주장에 따르면 우리의 도덕 교육은 참된 자유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노예를 위한 그것이다. 자긍심을 가진 인격체로 거듭 나는 걸 돕는 게 아니라, 착한 노예 기르기 프로젝트와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태생부터 지니고 있었을 자유와 개인적 가치, 세계관의 갈등 등은 국가와 집단, 위계 질서 앞에서는 언제나 나쁜 것으로 간주되었다. 체제 유지에 원활한 모든 시스템을 익히는 게 우리 도덕 교육의 가장 큰 목적이 되어버렸다고 김 교수는 우려한다.
자연스럽게 예의란 것은 약자가 강자에게 취하는 종속의 액션이고, 도덕이란 못 가진 자가 가진 자에게 취하는 동정의 호소에 지나지 않는다. 촌수나 사회적 상하를 따져 가며 윗사람에게 깍듯해야 예의에 어긋나지 않는다. 강자가 약자에게 인사하지 않아도 아무도 예의에 어긋난다고 힐난하지 않는다. 언제나 약자가 강자에게 취해야 할 응분의 리액션을 우리는 도덕이나 예의라는 명분으로 주입당해 왔고 몇 세대를 거치면서 그건 무의식 속에서 당연한 게 되어 버렸다. 그것이 우리나라 도덕 교육의 현재이다.
착한 시민(노예) 양성 프로젝트가 꼭 나쁜 것은 아니다. 창의력이 배제된 각종 국제 대회에서 괄목할만한 성과를 세우는 건 그런 도덕 교육의 후광이긴 하다. 그런 긍정적 측면이 있기에 불온하기 짝이 없는 그 도덕 교육 시스템에 별 저항 없이 우리는 길들여져 왔는지도 모른다. 우리 도덕 교육의 힘을 빌려 권력 있는 자, 연장자, 가진 자, 집단의 부당성은 언제나 힘없는 자, 어린 자, 못 가진 자, 개별자의 정당성 위에 군림한다. 몹쓸 놈, 예의도 모르는 놈은 약자의 것이지 강자에 해당되는 말은 아니다. 도덕과 예의를 관장하는 측이 국가나 집단, 권력, 있는 자이다 보니 그들 입맛이 기준이 될 수밖에 없다.
여기서 더 무서운 것은 언제나 약자인 척, 피해자인 척 하던 그 길들여진 시민들이 집단이 될 때는 똑 같이 도덕을 관장하는 권력자 입장이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군 복무에 충실해야 할 유명 가수가 국민 미녀 배우와 사귄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 질투심에 불타는 군중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노예 교육에 길들어져왔는가는 깡그리 잊어버린 채, 그의 잦은 휴가에 대해 도덕이란 잣대로 핏대를 올리는 것이다. 연예 병사의 휴가 시스템이 어제 오늘 도마에 오른 것도 아니다. 하지만 집단의 논리가 커지면 정당성을 부여받은 것처럼 되고, 그 힘은 당연히 도덕적인 것이 되어 시스템과 개별자를 향해 칼날을 들이댄다. 하지만 개별자와 시스템에 우선하는 그 집단의 힘이 헛다리를 짚는데 더 재능을 발휘할 때가 많다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까. 이것조차 착한 노예를 키우는 우리 도덕 교육의 병폐라면 너무 자조적일까.
도덕을 타율적 강제와 같은 것으로 오해하고 학교를 병영과 같은 것으로 오해하는 것이 결합할 때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오해가 도덕 교육에 대한 오해이다. ----- 다른 교과 교육이 그 자체로는 중립적인 지식교육인 반면, 도덕 교육은 학생들의 의지와 도덕적 가치에 직접 작용을 미쳐 자유로워야 할 정신을 부패시키기 때문이다.
여기에 오늘날 도덕 교육이 직면한 위기의 뿌리가 있다. 교과서가 가르치는 바에 따르면 자유는 방종과 같은 것이 되어버리고, 개인주의는 비도덕적 태도의 전형이며, 갈등과 무질서는 가장 두려운 사회악이고, 국가와 민족은 언제나 신성하고 오류를 모르는 거대한 주체이다. 그리하여 욕망은 억압되어야하과 차이는 동일성 앞에서 침묵해야 하며, 개인은 전체를 위해서 언제나 희생될 수 있어야 한다. 도덕 교육이란 이런 규범들을 주입하는 것이며, 학생들은 이런 전체주의적 노예 도덕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
여기서 한국의 도덕 교과서가 가르치는 도덕이 얼마나 비도덕적인가를 세세하게 논할 수는 없다. 그러나 교과서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도덕 공동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직접 들어보면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가 저절로 드러날 것이다. ---- 특히 한국의 도덕 교과서는 전체주의적인 열정으로 가득차서, 이른바 도덕 공동체라는 것에 대해 가히 몽상적이라 해도 좋을 만한 집착을 보여주는데, 그것의 정체는 이런 것이다.
"근래에 와서, 우리는 도덕 공동체의 붕괴 우기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새마을 운동', '의식 개혁 운동', '정의 사회 구현', 최근 문민 정부 이후의 '신한국 건설', '제2의 건국 운동' 등을 통하여 우리 사회를 바람직한 도덕 공동체로 만들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하였다.(고등학교 도덕 79쪽)
- 도덕 교육의 파시즘, 김상봉, 길, 150~15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