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버릇인지 좋은 버릇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책을 읽을 때 여성적 시각을 좀체 버리지 못한다. 대부분의 고전이 남성적 시각을 견지하는지라 여성이 등장하더라도 제대로 자신의 자리를 꿰차거나 변변한 목소리 한 번 내지 못하고 사라지는 게 그토록 안타까울 수가 없다. 아무래도 여성이라는 자부심보다 여성으로 살아야 하는 피해의식이 내 의식 속에 더 크게 자리잡고 있음이 틀림없다.

 

 

  요즘 다산 정약용에 관한 책을 읽고 있는데 드디어 그토록 기다렸던 홍임 모녀가 등장한다. 다산과 헤어진 홍임엄마는 베 짜기와 바느질에 제대로 손댈 수 없다. 등불 돋워 밤 꼴딱 새우기 일쑤다. 옷도 그대로 입은 채, 닭 울음 그치고서야 벽에 기대 혼자서 신음한다. 옆의 어린 홍임은 늙은 아비인 다산이 보고 싶어 보채다 곤히 잠들었을 것이다.

 

 

  다산은 강진 유배 생활 말년에 소실을 들인다. 계약된 하인이 있긴 했지만 원체 게을러서 다산을 제대로 보필하지 못한다. 해약된 하인을 대신해 제자 윤규노의 강권으로 수발 들 여자를 들인다. 안정된 저술 활동과 건강을 챙기기 위해서도 안살림을 꾸려나갈 여자가 필요했을 것이다. 처음에 다산은 거절했지만 유학자이기 이전에 한 남자로서 여자가 필요한 건 당연한 것인지도 몰랐다.

 

 

  1812년을 전후하여 남당포에서 온 여자와 함께 살았고 그때 낳은 아이가 홍임이었다. 1818년 해배되어 남양주의 마재로 돌아갈 때 홍임모녀도 데리고 갔다. 하지만 다산의 아내 홍씨에겐 눈엣가시였을 수밖에 없다. 일찍이 자신이 입던 치마를 유배지에 보내 다산에게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키고 가족의 유대를 공고히 했던 안주인이 아니었던가. 다산의 말대로 ‘아무 문제가 없지만 속이 좁은 것이 문제’인 홍씨에 의해 내침을 당하고 홍임 모녀는 강진으로 되돌아오게 된다. 그 후 모녀의 지난한 삶은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미루어 짐작컨대 평탄하지 않은 건 자명한 사실이렷다.

 

 

  이와 같은 얘기가 담긴 시가 바로 ‘남당사 16수’이다. 남당포에서 온 여인의 애상을 읊은 시라 그런 제목이 붙었을 것이다. 남당사가 발견되었을 때 연구자는 이 시를 강진의 어느 양반이 홍임 엄마를 대변해서 썼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삶을 바꾼 만남』에서 저자 정민 교수는 이 시를 다산 본인이 썼다고 보고 있다. 책을 읽은 독자들 대부분은 이 의견에 수긍할 수밖에 없다. 당사자가 아니면 느낄 수 없는 감정들이 시편 곳곳에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다.

 

 

  홍임엄마가 되어 본다. 눈물로 얼룩져 화장은 엉망이 되고, 그리움에 진저리치다 보니 비녀마저 떨어져 있다. 남 볼까 겁난다. 웃다가 찡그리다 혼자 발광을 하다보면 어느새 다정한 낭군이 꿈속에나마 반쪽 침상을 찾아든다. 이런 서정적이고 은밀한 시를 쓰면서 다산은 소실과 자식을 제대로 건사할 수 없는 자로서의 죄책감을 남몰래 쓸어내렸는지도 모른다. 다산의 우유부단한 자책과 남당포 여인의 한이 독자의 어깨에 무거운 침묵으로 내려 앉는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다산의 운명이 이해가 되면서도 한데바람에 오래 떤 여성의 시각으로 보면 다산이 원망스럽기도 하다. 카리스마 없이 고뇌만 안은 다산 곁에서 부인 홍씨는 왜 오랜 세월 기다린 보람도 없이 가위눌린 부담을 안아야 할 것이며, 홍임모 역시 무슨 처연한 연으로 그토록 모진 칼바람을 견뎌야만 했을 것인가.

 

  여성의 시각에서 다산을 둘러싼 일상사를 엮는다면 어떠할까. 깊은 우물 속 두레박을 내려도 물 한 모금 얻을 수 없는, 차마 처연한 마른 슬픔만 자꾸 길어 올리느라 제대로 구성조차 짜지 못할 게 뻔하다. 한 남자 때문에, 한 세월 때문에 슬픔의 두레박만 깊이깊이 내렸을 세 여자의 우물을 그려본다. 햇발도 머물지 않고 바람도 건너지 않는 그 우물, 무연하고 깊기만 하다.

 

  할 수 없이 나는 여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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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2-12-18 1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ㅠㅠ

다크아이즈 2012-12-19 04:16   좋아요 0 | URL
나비님도 여자라는 걸 항상 자각한다는 뜻으로 해석할게요. ㅋ^^*

페크pek0501 2012-12-19 1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란 없단 생각이 듭니다.
또 모든 면에서 훌륭한 사람도 없단 생각이고요.
그래서 오히려 인간적으로 느껴지는 점도 있는 걸까요. ^^

다크아이즈 2012-12-20 02:55   좋아요 0 | URL
페크님, 글치요. 전 이런 인간적인 다산이 좋은 걸요.
약간의 원망을 섞어, 그의 아주 많은 위대함과 약간의 속물근성을 신기하게 즐감하는 중이예요.

프레이야 2012-12-19 1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각자의 우물을 품고 살아가는 것 같아요. 그래서 외로울 수밖에 없고요. 그 우물에 얼굴 한번 비춰봅니다. 어릴적 굉장히 인상적으로 새겨져 있는 우물. 그게 저같기도 해요. 팜님 저도 여자에요, 어쩔 수 없이. 이 책도 더 미루지못할 것 같아요. 팜님의 페이퍼는 지름신을 강림하게 해요, 제게요. ^^

다크아이즈 2012-12-20 02:57   좋아요 0 | URL
프레님, 이 책은 진짜 좋아요.
정민 선생의 부지런한 학자적 자세가 존경스러울 뿐.
제법 두꺼운데 금세 읽고 싶어진다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