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옥에서 권세를 떨치는 파리의 왕
루시퍼 다음으로 사람들에게 이름이 알려진 악마다. 흔히 바알제붑이라고도 불리는 이 악마의 본래 이름은 바알제불(Baal-Zebl)이었다. 이 말은 히브리어로 `높은 저택의 왕'을 의미하는데,훗날 사람들은 이 명칭이 위대한 마술왕이었던 솔로몬을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바알제붑(Baal-Zebub), 즉 히브리어로 `파리의 왕'을 뜻하는 말로 바뀌었다.
이후 중세의 마술서에 등장하는 벨제불은 거대한 파리의 모습으로 그려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경멸하여 칭한 이름이 아니라 벨제불의 근본을 나타낸 것이라는 사실을 중세사람들은 잊어버렸던 것 같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천계의 아버지' 제우스(Zeus)에게 제사를 지내는 악티온 신전(Aktion, 그리스 중서부의 고대 유적도시)에서는 `파리를 기피하는 자'를 위해 산 제물을 바쳤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여기에서 `파리를 기피하는 자'란 제우스의 경칭 가운데 하나다. 고대 그리스인은 파리라는 생물이 악령 그 자체거나, 혹은 인간에게 악령을 옮기는 역활을 한다고 믿었다. 그들은 파리가 꾀었던 음식을 먹으면 병에 걸린다는 사실을 이미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던데다, 썩은 고기에 떼지어 몰려드는 파리떼를 보고는 정말 불길하고 더러운 존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거기에는 `죽음'의 냄새와 `병을 유발하는 더러움'이 있다. 게다가 파리들은 시체의 유골에서 탄생한다. 이것이 악마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아무튼 그런 이유로 인해 그리스인들은 파리를 회피했고, 또 그 때문에 제우스에게 산 제물을 바쳤다. 이 불길한 파리들을 부하로 거느리는 악마가 바로 바알제붑이다. 물론 이런 파리에 관한 이미지는 그리스인만 가진 것이 아니었다. 당시 선진문화를 꽃피웠던 이스라엘인들도 마찬가지 감각을 가졌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