읍참마속(泣斬馬謖)
울며 마속(馬謖)의 목을 벤다는 뜻으로 《촉지(蜀誌)》 〈마속전(馬謖傳)〉에 나오는 말이다.
촉(蜀)나라의 제갈 량(諸葛亮)은 가정(街亭)의 싸움에서 자기의 명령·지시를 따르지 않고
제멋대로 싸우다가 패한 부장(部將) 마속을, 그 전날의 공과 두터운 친분에도 불구하고 울며
목을 베어 전군의 본보기로 삼았다는 고사에서 비롯되었다. (주) 네이버 백과사전

토사구팽(兎死狗烹)
《사기(史記)》〈회음후열전(淮陰侯列傳)〉에서, 한(漢)나라 유방(劉邦)과 초(楚)나라 항우(項羽)
와의 싸움에서 유방이 승리하는 데 큰 공을 세운 사람이 한신(韓信)이다. 천하를 통일한 유방은
한신을 초왕(楚王)으로 봉했으나, 언젠가는 자신에게 도전할 것을 염려하고 있었는데, 마침 항우의
장수였던 종리매(鐘離昧)가 옛친구인 한신에게 몸을 의탁하고 있었다.
일찍이 전투에서 종리매에게 괴로움을 당했던 유방은 종리매를 미워하고 있었다.
그가 초나라에 있다는 것을 알자, 유방은 종리매를 체포하라고 명령을 내렸지만, 한신은 차마 옛친
구를 배반할 수 없어 그 명령을 따르지 않고 도리어 그를 감싸고 있었다. 이 사실을 상소한 자가 있
어 유방은 진평(陳平)에게 상의했다. 진평의 책략에 따라 유방을 운몽(雲夢)에 행차하고 제후들을
초나라 서쪽 경계인 진(陳)나라에 모이게 했다. 사태가 이렇게 되자 한신은 자신에게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생각하여 자진해서 배알하려고 했다. 그러자 평소에 술수가 남다른 가신이 한신에게 속삭였다.
"종리매의 목을 가지고 배알하시면 천자도 기뻐하시리다." 옳다고 생각한 한신은 그 말을 종리매에게
했다. 그러자 종리매는 "유방이 초를 침범하지 못하는 것은 자네 밑에 내가 있기 때문이네. 그런데
자네가 나를 죽여 유방에게 바친다면 자네도 얼마 안 가서 당할 것일세. 자네의 생각이 그 정도라니
내가 정말 잘못 보았네. 자네는 남의 장(長)이 될 그릇은 아니군. 좋아, 내가 죽어주지." 하고는
스스로 목을 쳐 죽었다.
한신은 자결한 종리매의 목을 가지고 가서 유방에게 바치지만, 유방은 한신을 포박하게 했다.
그래서 화가 난 한신은 이렇게 말했다. "과연 사람들의 말과 같도다. 교활한 토끼가 죽고 나면 사냥개
도 잡혀 삶아지며, 높이 날으는 새도 다 잡히고 나면 좋은 활도 광에 들어가며, 적국이 타파되면 모신
도 망한다. 천하가 평정되었으니 나도 마땅히 팽당함이로다[果若人言 狡兎死良狗烹 飛鳥盡良弓藏 敵國
破謀臣亡 天下已定 我固當烹]."
교토사양구팽은 교토사주구팽(狡兎死走狗烹) 또는 토사구팽(兎死狗烹)이라고도 한다.
(주) 네이버 백과사전

비슷해 보이는 두 사자성어. 그런데 속을 뜯어보니 결코 같은 뜻일 수가 없었다.
주체에 의해 객체가 제거되어지는 상황은 같다고 볼 수 있으나 따지고 들어가면 전자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였고 후자는 의도적 혹은 계획적인 상황이라고 생각되어 진다.
개인적으로 저 두개의 사자성어를 직접 경험해봤던 적이 있다. 읍참마속은 1번 정도 토사구팽 역시 1
번 정도..그리고 토사구팽의 파생형으로 1번 정도...

읍참마속의 경우는 내가 두번째 다니던 사무실에서 였다. 4년 가끼이 다닌 사무실로 그래도 내가 많은
것을 배우고 익힌 내 기억엔 가장 많은 추억이 남아있는 직장터였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잘나가던 사
무실도 경기는 무시 못했고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한 이유로 결국 정리해고라는 수순을 밟게 되
었다. 그런데 하필 내가 결혼을 하고 나서 신혼여행을 다녀온 직후 이런 일이 터졌다는 것에 대해 나
름대로 정신적인 공황이 컸던 기억이 난다. 어쩐지 평소보다 축의금을 3배를 내는 소장님의 씀씀이도
의심스러웠고 남의 결혼식에서 죽상을 쓰고 있는 모습도 그때서야 납득이 갔다.
하나하나 소장실로 들어가 정리해고의 정당한 사유를 들었었다. 내 차례가 되서 난 소장실에 들어갔고
소장은 나하고 눈을 못마주치면서 고개를 숙이고 `다른 사람들보다 특히 너한테 제일 미안하다.!'라는
말로 당하는 당사자인 나까지도 가슴을 후벼파는 나약하고 슬픈 말씀을 했었다. 아마도 그 소장님이야
어떻게 생각하실진 몰라도 내 개인적으로 내가 당했던 읍참마속의 경우가 아닌가 싶다.

토사구팽의 경우는 첫번째 사무실에서 였다. 살아온 인생의 어느 부분을 지우고 싶냐고 말하면 나는
주저없이 이곳에서 보낸 3년과 그 곳의 몇몇 인간들을 지워버리는데 망설이지 않았을꺼라 생각된다.
처음 1년 반정도는 그래도 믿고 따를 수 있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힘들진 않았으나 지우고 싶은 몇몇
의 인간들이 결국은 그들을 축출하고 자신들의 의지에 따르지 않은 사람들과 담을 쌓으면서 암흑기가
시작되지 않았나 싶다. 결국 난 그곳에서 지냈던 후반 1년 반동안 제대로 된 일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주된 업무보다 보조적인 업무(컴퓨터수리,관공서출입)로 시간을 보냈었다. 마침 닥쳐온 IMF는 좋은
구실이 되었고 정리해고 0순위였던 몇몇사람들과 그 사무실을 타의에 의해 떠나게 되었다.
그후 경력관리 때문에 다시 들린 그 사무실은 사옥까지 가지고 있었던 위용은 사라진지 오래고 여전히
밥그릇을 잡고 놓지 않는 그 몇몇 인간들만이 남아서 사무실을 지키고 있던 것이 생각난다.

토사구팽의 파생형(?)의 경우는 지금 생각해도 유쾌한 경험이였다. 짧은 않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온갖
우여곡절을 겪은 상황에서 내가 경험했던 이번 경우는 토사구팽에서 사냥개가 주인을 물고 자유로운
들개가 되어버린 경우가 아닌가 싶다.
세번째로 다닌 사무실은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비교적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였다. 이곳은 들어갈 때
제시했던 모든 조건이 거의 다 수용이 된다 싶었지만 첫달 급여를 받고 사기를 당했던 경우였다.
결국 난 3개월의 음모를 꾸민 후 6달이 되었을 때 그중 가장 일을 잘한다는 직원 3명과 가장 바쁘고
가장 우리가 필요로 했던 시기에 기습적으로 사직서를 제출하고 탈출을 했었다. 후에 들은 이야기로는
그때 타격이 꽤 심했고 그 이후 직원들의 처우에 대해 많은 개선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어떤 의미론
소규모의 혁명(?)을 일으킨 건 아니였나 생각도 되어진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사회생할을 경험하면서 겪었던 개인적인 두개의 사자성어의 경우는 비단 나 뿐이
아닌 이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한번쯤은 겪었던 사항이 아니였나 싶다. 더 심한 경우, 보다
덜한 경우 여러가지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어진다.

어제 늦은 퇴근길의 택시 안에서 들었던 라디오 뉴스의 내용처럼 3월1일 문제를 일으킨 모 정치인의 경
우 생각에 따라 마속 혹은 한신이 되었을 것이며, 성추행으로 궁지에 몰린 또다른 모 정치인 역시 이와
다르진 않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뉴스에도 나오지 않는 조선인님의 페이퍼에 올라오는 평택 대추리 주민분들의 모습은 어느 누가
보아도 토사구팽...이 사자성어의 경우가 확실하지 않나 싶다.

더이상 사냥철에 착실히 본분을 다한 사냥개가 비사냥철에 삶아지는 경우가 없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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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6-03-15 2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 지금 아홉시 뉴스 나오고 있어요.

Mephistopheles 2006-03-15 2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어제 택시에서 들었을 땐 안나왔었어요...^^
슬픈 현실이죠...

paviana 2006-03-16 0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번째 삼실에서의 혁명..정말 멋지십니다.ㅎㅎ
존경의 의미로다가 추천 한방..

Mephistopheles 2006-03-16 0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걱....존경씩이나요...다 먹고 살자고 벌인 짓인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