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산드라.
-패스트푸드 매니저인 그녀는 오늘 아침부터 제대로 꼬이기 시작한다. 전날 매장 내 냉동고 관리를 소홀히 하는 바람에 베이컨과 피클등 식자재 천사백 달러어치의 손실을 입었다. 오늘 갑자기 지점장이 감기로 인해 결근을 하지 않았다면 그녀에게 지점장은 불호령을 내렸을 것이다. 본사 식자재 배달하는 직원은 아침부터 이 사항을 가지고 박박 속을 긁는다. 아마도 매장 직원 중 새파란 녀석들이 일부러 냉동고 문을 열고 퇴근한 건 아닌가. 의심스럽다. 오늘 하루 단단히 단속하여 태만한 근무상태에 기합을 넣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2. 배키.
-아침마다 출근하는 직장 패스트푸드점의 매니저 산드라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이유는 냉동고 관리 소홀로 식자재가 훼손되었다. 아침부터 불호령이 떨어질 것은 뻔하다. 그녀는 아마 내가 그랬을 거라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난 이 일과 전혀 상관이 없는데.. 지점장도 없는 상황에 본사에서 암행감사가 있을지도 모른다면서 아침부터 사람들을 들들 볶기 시작한다. 그래도 산드라와 그녀의 약혼자가 핸드폰으로 가끔 야한 농담을 즐긴다는 이야기엔 웃음이 나온다. 보기보다 젊게 사는 커플처럼 보인다.
조그마한 패스트푸드의 평화를 깬 건 바쁜 점심때였다. 경찰서에서 걸려온 전화에 산드라는 긴장한다. “매장 직원이 손님의 돈을 훔쳤다.”라는 사건의 개요를 설명하는 수화기 너머 경찰관의 목소리는 자못 심각하다. 더불어 인상착의를 정확히 묘사하며 배키를 지목한다. 손님의 가방에서 돈을 훔쳤고 이 중대한 사항에 다른 전화로 지점장과도 연락이 되어 있는 상황이란다. 더불어 그녀는 이미 다른 여러 사건에 연루가 되어 있는 상황이라 심각하게 주의 관찰하고 있었다며 매니저 산드라에게 경찰관이 도착하기 전까지 배키의 구금을 요청한다. 한통의 전화가 점점 걷잡을 수 없는 사태로 확대된다. 수화기 너머 경찰관은 그녀의 집을 수색 중이며 그녀의 오빠가 마약과 연루된 정황이 포착되었다며 혹시라도 모를 그녀의 신변확보와 수색을 위해 산드라를 통해 소지품 검사와 전체탈의라는 치욕적인 상황까지 진행된다. 아 뭐 이런 경우가 있나. 여기다 더 불쾌한 상황을 첨부해버리면서 역겨움이 동반된다. 경찰관의 요청으로 매장으로 들어온 산드라의 약혼 남은 알몸의 배키를 감시하며 수화기 너머 경찰관의 말 한마디에 그녀를 겁탈하는 수준까지 진행된다.
컴플라이언스(COMPLIANCE 2012)
넓은 배경도 필요 없이 조그마한 패스트푸드가 전부인 이 영화는 시종일관 불편한 내용을 확대하고 증폭시킨다. 단순한 절도사건에서 성폭행에 준하는 상황까지 진행된다. 그러므로 이 영화는 보는 내내 불편한 감정 역시 더불어 증폭될 수밖에 없다. 공권력의 강력한 힘이 전선을 타고 날아오는 전화기의 목소리 하나에 패스트푸드 직원들이 하나같이 고분고분 순종적일 수 있을까? 이런 억지와 억측이 있겠냐마는 실제 사건을 재구성한 영화라는 사실에 불편함보단 충격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실제사건배경
2004년 켄터키 주의 맥도날드에서 실제 일어났던 사건. 경찰 발표에 의하면 1994년부터 10여 년 동안 유사한 사건은 70여건에 이른다고 한다. 오랜 수사기간을 거쳐 유력한 용의자를 체포한다. 그와 동시에 이런 장난전화범죄는 멈춰졌다고 한다. 하지만 확정적인 증거불충분으로 무죄석방. 매장 내 CCTV를 통해 모든 것이 녹화되어 매니저의 약혼 남은 강간치사로 5년형을 언도받았다. 매니저는 1년의 보호관찰 처분을 받는다. 피해 여직원은 맥도날드를 고소하여 보상금을 받았다, 재미있는 건 매니저 역시 본사로부터 제대로 된 주의지시를 받지 않았다고 하여 보상금을 받았다고 한다.
흔히 말하는 “보이스 피싱” 사건의 극대화된 경우다. 영화를 보는 내내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떻게 저 상황에서 저렇게 당하는 건지 이해가 안 된다고 하겠지만,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그렇게 단언 할 순 없어 보인다. 전혀 그럴 것 같지 않을 꺼라 예상되었던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보이스 피싱의 피해를 입었고, 아마도 대다수의 사람들은 피해까지는 아니더라도 경험해봤을 것이다.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라는 책을 통해 접한 스탠리 밀그램의 “충격기계와 권위에 대한 복종“도 같은 맥락으로 설명이 가능할 것 같다. 강압적인 분위기 속에서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도 충분히 타인의 간섭과 권력에 지배받게 되고 행동을 조종당하게 된다는 설정이다. 이 상황은 역사라는 테두리에서 해석이 가능하다. 나치스에 맹목적이었던 당시 독일 국민들, 선동에 조종당해 100만 명의 투치족을 학살한 후투족, 무분별한 인종청소가 자행되었던 세르비아의 내전 상황 등은 인간이라는 테두리가 얼마나 쉽게 부서져 버릴 수 있는지 살아있는 증거로서 기록되고 있다. 멀리 갈 필요 있을까. 친일과 유신의 굴레에서 지금껏 벗어나지 못해 그걸 ”향수“라 지칭하며 반맹목적이며 암묵적 종속을 보이는 요즘 현실도 크게 다를 바는 없어 보인다.
불편하며 거북하지만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의 기록한 영화 컴플라이언스(COMPLIANCE : (법・명령 등의) 준수; (명령 등에) 따름)가 다른 것도 아닌 선댄스에서 호평을 받았다는 사실만큼은 그리 놀랍지 않을 뿐이다. 우리는 여전히 그리고, 충분히 조종당하기도 하고 복종가능하기도 한 불완전한 인격체임을 잊지 않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