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을 찾아서 - Looking for Eric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사랑하는 여인과의 이혼 후, 재혼의 실패, 의붓아들의 부양까지 떠맡은 에릭의 일상은 피폐 그 이상이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자식 두 놈들은 말은 지지리도 안 듣는 것으로 모자라 조직폭력의 하수인 역할까지 해대고 있다. 고된 집배원 생활을 하며 가깝게 지내는 친구들과 함께 마시는 맥주 한 잔이 그에게 유일한 안식처를 주는 듯하다. 전처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딸의 대학논문 때문에 부탁받은 손녀를 양육하는 잠깐의 시간을 보내며 그가 지금까지 사랑하지만 죄스럽고 미안한 감정에 외면하고 있었던 유일한 사랑이며 전처인 릴리를 만나며 그의 인생은 폭주하기 시작한다.

'내 인생은 실패덩어리, 나는 패배자.'

이런 심리적 불안감은 급기야 일방통행 로터리를 수차례 역주행 하는 기행으로 표출된다. 비참한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그의 정신적 방황은 극에 달하게 된다. 불량한 친구들을 불러들여 하루 종일 tv를 붙잡고 사는 자식 놈들에게 윽박과 고함을 지르는 것도 잠시 자신의 침실에 붙어 있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축구팀의 영원한 왕이며 악동인 '에릭 칸토나'의 전신 포스터 앞에서 하소연을 하기까지 한다. 



'너는 승리자. 하지만 난 패배자.'

이런 에릭의 바닥 같은 인생은 큰아들 놈이 숨겨 논 대마초를 피우며 일상탈피를 꽤하는 비겁한 꼼수까지 이르게 된다. 대마초의 환각증상 때문인가. 그의 눈앞엔 에릭의 왕이며, 영웅인 '칸토나'가 실체로 나타나 그에게 인생훈수를 들려주기 시작한다.


노골적 좌파 감독의 대명사로 정의되는 켄 로치 감독의 최근 영화 '에릭을 찾아서'는 보는 사람의 입장에 따라 맥 빠지는 기분을 느낄지도 모른다. 감독이 다른 작품에서 줄기차게 보여주는 피지배층, 노동계층의 비루한 삶과 실체는 온데간데없고 자본의 상징으로 보일 수 있는 프로축구 스타에게 영화의 상징성을 부여하는 표현이 난무하니 말이다. 이쯤에서 왜 하필 에릭 칸토나인가? 라는 의문점이 생긴다. 상징성을 부여하기에 여러 스포츠 스타들이 존재함에도 그가 에릭 칸토나로 낙점을 내린 이유는 단지 섭외가 쉽기 때문만은 아니라고 보인다. 영화의 이해를 위해 축구선수 칸토나에 대해 조금만 이야기해보자.

에릭 칸토나는 프랑스 태생의 축구선수로 영국의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선수(쉽게 말하면 현재 박지성 소속팀)였으며, 현역시절 온갖 기행과 다혈질적인 성격의 대명사로 불린다. 이런 돌출적인 행동이전에 축구실력이 출중하여 맨유의 새로운 전성기를 만들어 준 전설적인 선수로 분류된다. 원정팀  팬을 이단 옆차기로 가격함으로 옥살이와 더불어 9개월 출장정지라는 중징계도 받았었지만, 은퇴 후에도 여전히 맨유의 영원한 왕으로 불리며, 영국을 사랑하는 유일한 프랑스인 이라는 호칭으로 지금까지 사랑받는 선수다.  

선수의 활동시기와 이력을 살펴보면 영화 속 주인공 에릭 비숍과 비슷한 시간대를 형성해준다. 칸토나의 전성기 때 에릭의 인생은 지금처럼 좌절스럽지도 바닥으로 치닫지도 않았을 시기였다. 자신이 무슨 잘못을 저지르는지 거칠 것이 없었던 시기이며 세상에 무서운 게 없었을 시기일지도 모른다. 이런 그에게 비록 대마초 환각작용의 모습이지만 칸토나는 근사한 조언을 나열하기 시작한다. 자기 축구인생 최고의 순간은 결승골을 넣었을 때가 아닌 동료에게 골로 연결되는 근사한 패스를 넘겨줬을 때라는 등등 영화를 보는 입장에서 들어도 가슴 뜨끈해지고 감동스런 명언퍼레이드를 프랑스 억양을 잔뜩 실어 쉴 새 없이 뱉어내준다.

이제는 나이가 든 노감독 켄 로치는 영화를 통해 우리에게 인생훈수를 남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무자비한 시대를 강력한 저항정신으로 관통하며 스크린을 통해 부대끼며 살아왔을  감독의 인생 명언 퍼레이드가 악동 축구선수 칸토나를 대변인으로 우리들이 살아갈 인생에 근사한 훈수와 조언을 남겨주는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 비록 이 영화가 감독의 좌파적 색채가 옅어졌을 진 모르지만 정치적, 이념적 색채가 아닌 인간 대 인간으로 가깝게 다가오게 만들어주는 따뜻한 매력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니 난 어쩔 수 없이 그의 ‘빠’가 될 수밖에 없나보다. 훈수와 충고까지 아낌없이 던져주는 영화감독은 그리 흔치 않으니까.

뱀꼬리 : 영화의 엔딩 크래딧이 올라 올때 보너스 영상이 나온다. 그 유명하다는 칸토나 이단옆차기 사건 후 칸토나의 기자회견 모습.  "갈매기들이 고깃배를 따라오는 이유는 어부들이 정어리를 바다에 버리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무지하게 쌩뚱맞은 소감을 말하고 퇴장해버렸다고 한다. 푸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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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12 14: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1-12 21: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10-01-12 1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헛, 상영종료작이네요. 나름 켄 영감에게 관심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더 늦기 전에 알게 되어 다행입니다. 아하하하

Mephistopheles 2010-01-12 21:31   좋아요 0 | URL
뭐랄까요. 켄 영감님의 영화들은 보고나서 심장을 뜨겁게 만드는 무언가가 존재하는 것 같아요..

머큐리 2010-01-13 0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급!! 에릭을 찾아야겠어요...^^

Mephistopheles 2010-01-13 12:37   좋아요 0 | URL
찾으셔도 큰 실망은 않하실꺼라 보고 싶습니다..^^

2010-01-13 18: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1-14 00:2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