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 메리켄사쿠 - Brass Knuckle Boys
영화
평점 :
상영종료


2년 전인가 쌀쌀한 날씨에 충청도 지역 출장이 잡혀 아침 일찍부터 서울역에 나갔던 적이 있었다. 하필이면 대통령 유세 첫날이었다. 더욱 더 불행한 사항은 나와 정치적 성향이 달라도 너무나 다른 정당의 후보 유세 첫날이었다. 서울역 광장엔 파란 물결이 넘실거리고 지금은 문화부 장관이 되신 양반의 음성이 우렁차게 울려 퍼졌다. 이어서 소개되는 연예계, 스포츠계 인물들이 이른 아침부터 단상에 올라와 유권자를 향해 인사를 한다. 더더욱 안 좋은 상황은 계속해서 이어진다. 역에서 만나기로 한 업체 직원이 조금 늦겠다고 1시간 정도 역에서 기다리라고 한다. 본의 아니게 너무나도 커다란 소음과 인파로 기억되는 그들의 선거 유세를 목전에서 목격하게 되었다.

순간 내 귀를 의심하는 노래가 스피커를 통해 서울역 광장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처음 듣고 믿겨지지가 않았다. 장르는 펑크이며 주 활동무대가 인디무대였던 '노브레인'의 '넌 내게 반했어.'가 펑크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정당의 이미지 송으로 울려 퍼지기 시작한다. 더불어 가사까지 참으로 지랄 맞게 개사하여 내 귀를 때리기 시작한다.

굉장히 역한 기억이었다. 다른 것도 아닌 비주류의 대표상직격인 펑크를 표방하는 그룹이 정 반대적인 성향을 가진 정당을 위해 자신들의 노래를 팔았다는 것이 당최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날 인터넷 뉴스와 네티즌들은 노브레인을 굽고 삶고 지지고 볶고 난리가 났었다.

시간이 흘러 근래 노브레인과 관련된 기사를 접하게 되었다. 그 사건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핵심멤버가 탈퇴를 했고 꽤 묵직한 비난을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 정당에 이미지 송으로 쓰이게 된 건 나중에 매니저를 통해 알게 되었다는 조금은 비겁한 변명을 내비추고 있었다. 나 역시 인디적인 분위기에 거침없는 가사가 난무하는 펑크로써의 노브레인은 기억하고 싶어도 보수와 수구를 표방하는 정당의 이미지 송을 제공한 노브레인을 더 이상 펑크라고 보고 싶진 않았다. 더불어 그 사건 이후 그들의 음악적 색깔도 단물 빠진 껌 마냥 흐느적거림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일본 영화 소년 메리켄사쿠를 보며 우리나라의 펑크밴드 노브래인이 떠올랐다. 차이점이 있다면 비주류에서 주류로 점프해버린 노브레인에 비해 영화 속 밴드는 25년의 간극을 두고 표면은 변모했지만 근본은 변하지 않은 모습을 시종일관 보여주고 있었다.

음반기획사의 신인 발굴 프로젝트로 우연히 웹의 동영상을 통해 펑크밴드 ‘소년 메리켄사쿠’를 발견하고 그들을 섭외하고 전국투어로 상업주의적 성공을 위한 프로젝트를 야심차게 준비하면서 영화는 시작한다. 음반기획사 직원이며 이 프로젝트의 책임자인 칸나는 이 밴드의 동영상이 25년 전, 그것도 해체기념 마지막 무대였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 버리며 벌어지는 소동은 영화가 진행되면서 계속해서 확대되고 증폭되어간다.

25년이 지났으나 시대의 주류에 편입 못하고 언저리를 맴도는 나이 든 아저씨들이 된 그들이 과연 젊은 시절 폭발적인 에너지를 가진 밴드로 재기에 성공할 수 있을까?는 영화를 보면서 계속해서 물음표를 떠오르게 한다. 노력과 근성으로 마침내 성공했다. 란 결말을 보여주면 이 영화는 그냥 그런 영화로 기억되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이겠지만, 이미 잡혀진 순회공연에서 그들인 연일 매진보단 연일 망신을 당하는 순서를 밟게 된다. 체력이 받쳐주지 못해 기타를 치다 헥헥거리고 드럼은 번번이 박자를 놓치기 일쑤다. 리드 보컬 지미는 동영상의 그 마지막 공연 때 형제였던 베이스와 일렉기타 리스트의 반목으로 벌어진 폭력사태에 기타로 머릴 강타당한 후 제정신이 아니다.  



이런 최악의 상황 속에서 밴드의 리더 아키오와 그의 동생의 이야기를 과거와 현재를 번갈아 보여주며 25년 간극의 이유를 설명해준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현재 50줄의 그들은 완벽한 부활이 아닌 조금씩 나아지는 모습과 본의 아니게 동행하게 된 큐레이터 칸나 역시 그들과의 교감을 통해 자아의 변화를 보여주며 영화는 점점 가속도가 붙기 시작한다.

뻔한 실패와 무모한 객기가 시종일관 펼쳐지며 불편하기도, 안타깝기도 한 이 철없는 장년층 펑크밴드의 모습에서 즐거움과 더불어 조밀한 감동을 느끼게 된다. 내 개인적 성향 상 철 없는 아저씨만큼 피곤한 존재도 없다는 것이 지론이지만 어느 부분에 대해 정도의 철없음이 묵인되며 용납되어지는 빈틈을 만들어준다. 그것이 허점이 아닌 매력으로 다가오게 만들어 준다. 영화 속 허구의 밴드의 만들어진 모습일 지라도 아마 노브레인의 이런 모습을 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더불어 세상 참 각박하고 여유 없게 살아가는 이 땅의 아저씨들에게도 말이다. 나는 물론 말할 것도 없고.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카스피 2009-12-31 0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노브레인에게 그런일이 있었군요.

Mephistopheles 2009-12-31 10:33   좋아요 0 | URL
벌써 오래 전 일이긴 하죠. 근데 이들이 라디오스타란 영화에 출연하고 나서 소위 돈 맛을 알아버린 밴드가 되버렸거든요. 그러면서 인디 라는 개념이 점점 흐려지기 시작했다고 보여져요. 그렇다고 돈맛을 봤다는 것 자체를 비난하는 것도 말이 안되고요. 암튼 노브레인은 지금의 모습보다 옛날이 더 좋았어요.

L.SHIN 2009-12-31 0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하하, '농약을 먹이자' 라니.

Mephistopheles 2009-12-31 10:35   좋아요 0 | URL
저 영화 보면 리드보컬 지미가 노래를 부르면서 후렴구에 보스톤국제마라톤이라고 고함을 지르는데...이게 지미가 발음이 안좋아서 그리 들리는 거고요. 원래 가사대로라면 농약을 먹이자라고 외치는 거였다죠..이걸 영화 속 공중파에서 여과없이 불러재껴버린다는...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