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 콘서트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속칭 남 까는 걸로 인기를 끄는 왕비호라는 캐릭터가 초대 손님으로 모신 어떤 아이돌 그룹을 앞에 두고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링,딩,동,링,딩,동 버터플라이 너를 만나 첫 순간. 또 링,딩,동....계속계속 링,딩,동...가사가 이게 뭐야!"
좌중들 마구 웃고 쑥스러운 듯 멋적인 미소를 날리는 아이돌 그룹으로 화면은 이어진다.
몇 주가 지났지만 왕비호의 그 말이 꽤 오래 기억에 남았다. 초대받아 까인 그 그룹뿐만이 아니라 요즘 가요를 듣고 있자면 절로 '가사가 뭐 이 따위야!'란 말이 절로 나온다. 아무리 대세가 예쁘고 섹시하기까지한 무더기 걸들이 나오고 초콜릿 복근을 자랑하며 웃통은 거의 벗고 나오는 소년들이 대세라지만 이들이 부른 노래는 머릿속 혹은 마음속에 그리 오래 남지 않는다. 그저 남는 거라면 평균 연령 20대 초반의 걸들이 드러내는 미끈한 다리와 아슬아슬한 패션, 야릇한 미소, 그리고 그들이 노래가 아닌 쇼 프로에서 보여주는 수다 몇 마디만이 남는다. 직업은 가수인데 말이다.
다양성을 원하고 비주얼을 중시하는 시대이다 보니 그들 역시 원해서가 아닌 대세에 따르는 방법을 요구받거나 만들어지는 상황이긴 하겠다. 하긴 이런 대세에 열광하며 혈서까지 써서 보내는 광팬들도 존재하긴 하니까.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가요라는 장르에 들을 음악이 점점 사라지게 되었다. 머리를 노랗게 물들이고 기계 같은 믹싱음에 따따부따 랩을 하며, 곡을 배끼고 12세 이상 관람가 공연에서 섹스장면을 묘사한 퍼포먼스를 해도 뭐 든 게 용서되는 가요시장은 그리 매력적이지 않았다.
이 영 현 - 체념2009
소름이 돋았다. 참으로 오래간만이었다. 노래 하나를 듣고 전율을 느끼며 꼬리뼈부터 스멀스멀 척추를 따라 올라가는 그런 짜릿한 소름을.. 그것도 들을게 전무하다고 느꼈던 가요에서 말이다.
그녀는 물론 요즘 대세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다. 젊고 인형처럼 예쁘진 않다. 그렇다고 흔하디흔한 버라이어티 쇼프로에 나와 수다로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인물도 아니다.
딱 하나 그 녀를 기억하게 해주는 건 열창하는 노래뿐이다. 이 한 곡을 듣고 수많은 시간 TV에 나와 야하게 입고 춤을 추며 수다를 떨던 아이돌 가수들의 잡상이 한 순간에 사라져 버린다. 노래 한 곡에 가슴과 머리가 풍족해지는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