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문 - Moon
영화
평점 :
상영종료


3년이라는 시간은 길기도 하고 짧기도 하다. 누군가에겐 순식간에 지나가는 세월의 잔상이겠지만, 주어진 환경과 조건에 따라 체감 적으로 30년이라는 느낌이 드는 경우도 존재할지도 모른다.

공기도 없고 어떠한 생명체도 없이 오로지 인공지능 컴퓨터 거티와 함께 3년의 근무를 채워야 지구로 송환이 가능한 어느 노무자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다면 전혀 참신하지도 재미를 주기에도 벅찬 소재라고 볼 수밖에 없어 보인다. 아무리 배경이 근 미래 달 표면이라고 해도 말이다.

영화의 선택 역시 샘 락웰이라는 배우의 이름만을 보고 선택했을 뿐 어떤 기대나 가치를 두기엔 무리수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거티 목소리 역으로 케빈 스페이시) 그냥 그렇게 황량하고 척박한 달 표면에서 3년을 보내는 노무자가 외계의 괴 생명체를 만나거나 지구로 향하는 운석을 막기 위해 몸 바쳐 지구를 구한다는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한 말이다. 



영화는 이런 극적인 일이 발생하지 않는다. 외부적 요인의 변화라기 보단 영화 속 주인공  "샘 벨'의 내면적 변화가 영화를 이끌어 간다. 단지 우리가 기타 영화를 보며 마주쳤던 기억조작, 패쇄적 환경과 거대기업의 음모 따위의 통속적인 양념을 동원하는 모양을 갖추면서 말이다. 단지 이 영화의 맛이 아드레날린을 분비시키는 맵거나 달작지근하고 시큼하게 오감을 자극하는 맛이 아닌 쌉싸래한 쓴맛을 베이스로 깔고 있다는 것만큼은 영화를 보는 내내 감지된다.  

이런 기본 느낌과 샘의 모습에서 몇 년 전 어떤 사격장에서 실탄 사격을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자동권총 탄창에 차곡차곡 9밀리 파라블럼 탄을 13개를 끼워 넣고 20여 미터 떨어진 과녁판을 향해 한 발 한 발 신중하게 방아쇠를 당겼던 기억이 난다. 방아쇠를 당길 때 마다 탄창 속에 있던 총알은 차례차례 총신의 실린더를 거쳐 총구를 거쳐 불꽃과 굉음을 내며 과녁판을 향해 날아갔을 것이다. 그것으로 어딘가의 공장에서 만들어진 이 총알의 운명은 끝이 나게 된다. 내가 소모한 총알은 종이로 만들어진 과녁판을 꿰뚫었겠지만 경우에 따라 인간의 신체를 관통하며 그들의 인생에 종지부를 찍는 역할을 하기도 할 것이다. 운이 좋다면 평생 탄창에 끼워 넣어진 채 혹은 창고에 처박힌 채 수년의 세월을 만들어진 본래의 취지를 망각한 듯 조용히 지낼지도 모른다. 샘 벨의 인생 또한 탄창 속에 들어찬 총알과 같은 처연함을 느낀다.

몇 십 개의 회로와 전기부품과 금속몸체로 만들어진 거티라는 컴퓨터가 샘을 위해 ‘난 당신이 행복하기 바래요’란 전혀 기계적이지 않은 따뜻한 말 한마디가 존재하고, 빠삐용의 스티브 맥퀸이 코코넛 꾸러미를 타고 탈출에 성공하는 것과 같은 샘의 마지막 모습이 해피엔딩을 보여준다고 해도 영화 자체의 고독감을 희석시켜주진 못한다.

같은 양념을 똑같이 써도 조미료 냄새 듬뿍 나는 음식과 그렇지 않은 음식이 존재하듯 이 영화 자체만을 따진다면 후자 쪽에 가깝다. 익히 알고 있는 소재와 내용을 가지고 감독과 배우는 주제에 몰입하게 해주는 솜씨만큼은 뛰어나다. 단지 SF는 고도의 스릴러 혹은 스펙터클한 액션성이 가미되어야만 볼 맛이 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겐 지루하고 따분한 시간이 된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다. 이런 분들은 알아서 이 영화를 피하면 될 뿐이다.

뱀꼬리 : 영화 속 우리는 익히 알고 있는 매개체를 만날 수 있다. “SARANG(사랑)” 이라는 한글과 태극기, 그리고 간간히 들리는 한국어 음성. 설왕설래가 많나 보다. 착취와 악덕기업 이미지와 비인간성의 상징으로 쓰였다느니, 혹자는 유전자 변이 생명체를 주도했던 과학을 비판했다느니 등등. 개인적인 생각으로 보건데 이런 부정적인 이미지로 쓰이기에 우리나라 말 ‘사랑’은 어느 누가 들어도 너무나 아름답고 예쁜 말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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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09-11-30 1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당시 감독이 한국 아가씨와 사랑에 빠져서 그랬다고 하는군요^^

Mephistopheles 2009-12-01 00:34   좋아요 0 | URL
그것도 그거지만 감독이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를 감명깊게 봤다고 하더군요.
(감독은 데이빗 보위의 아들이라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