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이라는 것으로 밥을 벌어먹고 살다 보면 필수적으로 마주치는 존재가 ‘건축주’다. 다시 말해 내 밥벌이의 돈을 대주는 대단히 고마운 존재이며 건축가들이 존재하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건축주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해도 별 이견이 없어 보인다. 이런 이유로 건축설계는 업종분류상 서비스업으로 분류가 된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종합예술이라는 격상의 분류가 존재하지만 건축주의 주문과 요구에 맞춰 알맞은 설계물의 결과를 내야 하는 관계로 서비스업으로의 분류도 가능하다고 본다.  

그런데 가끔 이런 건축가와 건축주의 관계를 이상하게 오해하는 부류들이 존재한다. 무리하고 말도 안 되는 단가를 제시하는 건축주들은 굳이 언급을 하지 않아도 이래저래 많이들 보고 알고 있을 터이나, 놀랍게도 그 반대의 경우도 존재하곤 한다. 사회생활 초년일 때 사무실 차장이 이런 대표적인 모습을 보이곤 했었다.  

그 사무실에 적을 두고 있을 때, 한 달 동안 자질하게 들어오는 설계건이 어림잡아 15건이 들어온 적이 있었다. 주로 계획을 맡았던 차장은 이상하게 그 15건의 설계의뢰를 단 한건도 실제설계로 발전시킨 적이 없었다. 분명 건축가와 장시간 회의를 거치고 사무실로 들어오면 언제나 불만이 가득한 표정 이였고, 언제나 주절거리는 말은 대체 건축을 뭐로 보는 거야. 이었다.. 어린 나이에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그냥 건축주들이 말도 안 되는 무리한 주문을 했겠거니 했었는데 이런 생각이 나의 착각이었다는 사실은 며칠 후 사무실에서 열린 건축주와의 회의를 우연히 엿듣다 알게 되었다. 

그때 그 차장은 건축주를 앞에 앉혀 놓고 온갖 전문용어를 남발하며 말 그대로 건축주를 가르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자기가 살 집 설계를 돈까지 주면서 의뢰를 하는 오너로써 이런 저런 요구를 해야 하는 입장에서 오히려 당신의 생각은 틀렸다. 어쩌고저쩌고 전문가적인 입장으로 집은 이렇게 지어야 한다. 라는 강변을 하는 차장을 보며 그에게 가지고 있었던 일종의 동경이 한순간 우르르 무너져 버렸다. 자기가 아무리 좋은 대학에서 건축 전공을 했다고 하지만 주문자, 오너의 생각을 깎아내리고 평가절하 하는 모습은 사회 초년생인 나에게도 결코 좋게 보이지 않았을 뿐더러 있어서는 안 될 일이라고 받아들여졌다.  

기분 나쁘지 않게 설득과 회유를 하고 알기 쉽게 이해를 구하는 모션을 취해야 하건만 아무래도 그때 그 차장은 이런 기술이 부족했었나 보다. 그래서 건축가는 건축만 잘해선 안된다란 말이 맞나 보다. 건축주의 이해를 충족시키며 자기주장을 관찰하는 속되게 말해 건축주를 자글자글 구워삶을 수 있는 “말빨”이 중요한 무기의 하나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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깐따삐야 2009-01-18 2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회란 그런거죠. 아주 그냥 속되다 못해 살짝 재수없어야 돼. (아, 왜 흥분.-_-)

Mephistopheles 2009-01-19 00:45   좋아요 0 | URL
키득키득..살짝 재수 없는게 얼마나 힘든데요..^^

바람돌이 2009-01-19 0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글자글 구워삶을 수 있는 말빨? 메피님 잘할실것 같은데요. ^^

Mephistopheles 2009-01-19 01:49   좋아요 0 | URL
전 튀깁니다.

L.SHIN 2009-01-19 0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중에 내가 집을 새로 짓게 되면 꼬옥~ 메피님한테 말해야지.
그리고 마구 뗑광 부려야지. 으흐흐흐흐...(기대된다)

Mephistopheles 2009-01-19 10:17   좋아요 0 | URL
제가 과연 그때까지 이 일을 할까요? 말까요? 으흐흐흐흐

L.SHIN 2009-01-21 05:39   좋아요 0 | URL
하십시오,꼭. ㅡ_ㅡ (부릎)

Mephistopheles 2009-01-21 11:05   좋아요 0 | URL
내 맘이지롱~~!=3=3=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