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언제였더라?

    나는 누군가를 따라 어느 아늑한 서재에 들어간 적이 있었다.
    그 곳은 서재라기 보다는 도서관이나 열람실에 더 가까울 정도로 많은 책과 음악들,
    영화들이 가득한 보물 창고 같은 곳이었다.
    신기해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구석을 보았는데 하얀 종이의 귀퉁이가 보이는게 아닌가.
    이것이 무엇인가 하고 집어 들었더니 한 장짜리 수필 같은 글이었다.
    남의 처소에서 허락없이 무언가를 들추어 본다는 것이 얼마나 실례인지 알긴 하지만,
    어쩌랴, 아무데나 놓아버린 주인의 잘못이지, 밀봉 봉투에 들어 있는 것도 아니고
    '나 읽어봐라~' 합네 하고 좍 펼쳐진 종이 위의 글귀가 나를 땡기는걸.(웃음)

    '페라리의 굴욕' 이라는 내용의 그 글이 어찌나 맛있던지 나는 글쓴이의 서명을 안볼 수가
    없었는데, 그게 바로 <뻬빠는 나를 단련시키고 리뷰는 나를 움직인다> 라는 책을 이번에 낸
    메피스토님이었던 것이다. 
    이 책을 알게 된 것은 다른 이들의 리뷰를 통해서였지만, 이미 다른 리뷰들에서 그 책의
    맛깔스러움을 알게 될 정도로 참으로 알이 꽉찬 책이라 이번 출판을 안 기뻐할 수가 없었다.
    어릴 때, 쓴 감기약을 먹이기 위해 어른들이 달콤한 사탕이나 꿀을 함께 곁들여서 몸을 건강히
    해주었던 것처럼 이 책은 건축, 사회, 경제, 일상 생활 속 이야기들의 쾌쾌하고 떫은 소재들을
    능숙하게 해학적인 문장으로 버무려 나와 내 입맛에 딱 맞추어 정신적 유희를 만족시켰다.

    그러니까 나는 이미 이 책이 출간되기 전부터, 그 서재 구석에서 주워 들은 글 한 장에서부터
    메피스토님의 팬이었던 것인데, 어찌하여 그 오래전 일을 아직도 기억 속에 담아두는가 하면,
    내용은 이렇다.
    부를 상징하는 물건들이 세상에 몇개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쓸데없이 화려한 자동차 아닌가.
    젊은이들의 로망이기도 한 '페라리' 자동차가 거드름을 피운채 필요없는 엔진 소리 쿠룽쿠룽
    내며 신나게 자랑질 드라이브를 즐겨야 하는데 그 놈의 골목길 과속방지턱 때문에 꾸물꾸물
    기어갈 수 밖에 없었다던 일화에서 나는 유쾌함을 느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 이후로 나는 방지턱을 넘을 때마다 그 페라리의 굴욕이 떠오르고 베시시 웃게 되었는데
    동시에 그 짧조름하게 맛있었던 글을 쓴 메피님도 생각나는 것이다.
    그래서 내게 있어 '메피'라는 이름을 대신할 대명사(代名詞)는 늘~ '페라리'인 것이다.
    그 '페라리'는 세상을 향해 던지는 '블랙 코미디' 같은 펜촉의 뚜껑.(내겐 그랬다)

    영화 <하치 이야기> 에서 아키다견을 무척 사랑하고 아끼던 교수가,

    " 사람에게 인격이 있듯이 개에게도 견격이 있다. " 라고 한 것처럼 -

    글에도 인품이 있다.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글속에 성격, 사고방식, 철학, 생활신조, 유머감각 등을 묻힌다.
    도무지 알 수 없는 어렵고 난해한 말이나 지나친 전문용어로 아무리 유식함을 자랑한다 해도
    읽는이가 공감하지 않으면 그것이 정녕 '정보 전달'을 목적으로 하는 글의 의미가 있을까.
    대충 보기에 장난같이 쓴 글이라 해도, 그냥 일기 쓰듯 가볍게 쓰는 글이라 해도 주제를 가지고
    있는 글은 깊이가 있고 읽는이로 하여금 무언가 깨닫거나 마음의 동이 생기게 해준다.

    그래서 나는 메피님의 글이 좋다.

    그의 글은 옛날 전통가옥을 떠오르게 한다. (내가 전통가옥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전통 가옥은 화려하고 첨단적인 현대적 건물들처럼 복잡하고 시끄럽지 않다.
    그러나 사람을 끌어당기는 아날로그 시대의 고요함과 깊이가 있다.

    담이 낮은 따뜻한 집에는 나무의 그림자도 넘어와 그 안의 사람들과 함께 하고자 하는 법

   
     (2008. 02. 17 - 이익선생 묘 옆의 선생 사가에서)

    자, 오늘도 메피님네 마루에 앉아 조곤조곤 유쾌통쾌 맛있는 세상사는 이야기들을 들어보자.

   
     (2008. 02. 17 - 이익선생 묘 옆의 선생 사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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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8-02-29 1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그럼 제가 저 창호문을 벌컥 열고 애들아 하면 에스님이 마구 뛰어 나와서 "잼있는 이야기 해주세요" 하면 저는 꽂감 쥐어주며 "옛날 옛날에 호랑이 담배 먹든 시절에 페라리라는 마차가 있었는데...." 하는 분위기를 연상하게 하는군요.^^

L.SHIN 2008-02-28 03:13   좋아요 0 | URL
꼭 한복 입고 나오셔야 됩니다.(웃음)
참, 곶감 꼬치에 도너츠랑 달콤한 과자랑 떡볶이도 꽂는거 잊지 마시구~ㅋㅋ

2008-02-29 04: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08-02-28 0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옷. 사진 참 좋은데요.
페라리-전통가옥. 묘하게 연관을 시키셨군요. 흣.

L.SHIN 2008-02-28 09:40   좋아요 0 | URL
앗,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