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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비, 메이비 낫
김언희 지음 / 파란(파란미디어) / 2008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마음을 열어라, 언제든 다시 닫을 수 있을 것이다'
흔히 미국에 중국집에서 밥을 먹고 계산을 하고나면 영수증과 함께 딸려 나오는 반으로 접힌 만두같이 생긴 과자가나온다. 포춘쿠키fortune cookie...그렇지만 몇 번 보고나면 처음에 설레임은 사라져서 어떤때는 손도 대지않고 나오고 어떤 때는 그냥 과자만 부숴서 홀랑 먹고 말게된다. 마치 식당용 누룽지사탕이나 박하사탕 같은 것일 뿐이다.
그러나 사탕과는 달리
계란냄새가 달짝지근하게 나는 노란 과자를 반으로 쪼개면 텅빈 속에서 빨간 글씨로 덕담과 행운의 숫자들이 쓰여진 하얀 끈처럼 생긴 종이가 나온다. 그 작은 종이에 쓰여진 '미래'가 덕담일 뿐일 것이라는 것을..그 작은 종이가 불행을 말할 확률은 로맨스 소설이 불행한 결말로 치달을 확률보다 훨씬 낮다는 사실을....
내가 알고 있듯이 이 글의 그녀 또한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녀 재희는 그 '미래'를 보고 싶지 않다며 그의 옷장에 걸린 수많은 양복들 속에 손을 넣어 닿은 한 주머니속에 쏙 집어 넣어버린다.
정말이지 그녀는 그 작은 종이끈이 미래를 보여주는 것이라 믿었던 걸까?
그보다는 아마 그 종이에 의지하고 싶어할 자신의 나약한 의지가 두려웠을 것이다. 그 종이의 덕담에 은근슬쩍 마음을 풀어줘서 미련하게도 자신의 사랑을 긍정적인 운명을 기대하는 것 그 자체가 두려움이 었을 것이다. 그래서 숨겨버린다. 그의 옷 속으로... 자신을 돌아봐 달라는 애타는 미련 또한 같이 묶어서...
우리는 사랑이야기에 신파라는 말을 붙이기를 좋아한다. 사랑이야기는 껍데기만 보면 뭐든 다 거기서 거기이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고 헤어지고 또 사랑하는 과정을 단순하게만 바라본다면 한없이 단순하겠지만 한 사람의 마음이 다른 이의 마음에 닿기까지 한라산에서 백두산까지 가는 길보다 더 많은 수의 길이 있을테니 그냥 흔한 이야기라 말하기는 마음이 늘 아리다.
글속에 한재희와 서준우는 서로를 향한 애타는 마음을 숨겨 보기도 하고 거미가 투명한 거미줄을 뽑아 상대를 감고 끌어당기듯이 엮어보기도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들은 두렵다.
사랑이 갖는 또 다른 이름인 기대가 그리고 집착이 결국은 절망이라는 추한 감정으로 귀결될까봐 두렵다.
그래서 그 얽히는 감정놀음은 절대로 안하고 싶은 남자와 그 남자 곁에 있고 싶어서 자신의 기대를 스스로 잘라내며 초연함을 가장하는 여자가 남을 뿐이다.
그들의 감정들은 그렇게 떼내어 질수 있을까?
그렇게 사그러 들 수 있을까?
김언희 작가의 글은 사실 처음이다. 글의 섬세함이 날 잡아끌었다.
다른 이들은 모르겠지만 나는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나를 뒤흔드는 무언가를 만나고 싶은 마음으로 책을 읽는다.
짜릿한 정렬이 난무하는 연애담이 아니라 작은 묘사가, 표현이, 말이 글을 읽는 내 마음에 장마철의 빗방울처럼 동그라게 때론 서울 우유의 왕관같이 선명하게 파문을 일으킨다. 글을 읽으면서 목줄기가 아잇해지도록 울컥했던 감정이 올라오는 것 참 오래 간만이었던 듯하다.
만족스러웠다. 그거면 되지 않았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