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을 읽는다는 것은 내가 누군가의 삶에 참여한다는 의미이며, 내가 하나의 새로운 삶을 경험한다는 측면에서 그것은 나의 기존의 경험과 필연적으로 관계를 맺는다. 그리고 이러한 점에서 나의 어린시절의 독서는 내 실제 삶과는 괴리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입학식을 하고 교과서를 잔뜩 받아온 그 시절의 나는, 새 책이 많이 생겨서 기분이 너무 좋았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거실에서 교과서를 쌓아두고 전부 읽어버렸다. 교과서를 읽다보면 교과서에서 언급되는 작품들이 궁금해져서, 자연스럽게 교과서에서 언급된 책을 사서 읽었고 교과서에서 언급된 음반을 사서 들었다. 그리고 읽을 책이 더 필요해지자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의 작품이나 유명한 고전들을 찾아서 읽어나갔다. 그 시절의 나에게 교과서는 읽을 책을 선별하기 위한 간편한 기준이 되어주었다. 


  훌륭한 문학작품들이 어린이에게는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었을까. 그 시절의 내가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내가 읽는 문학작품들을 모두 원문으로 읽어보고 싶었다. 원어로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까지는 머리에 떠오르지 않았지만, 어린이를 위해 쉽게 쓰여지거나 요약된 책이 아니라 작품의 원문 그대로를 읽고 싶었고 그래서 원하는 대로 읽었다. 고작 열살 남짓한 어린이는 그렇게 머릿속에 어른들의 이야기를 집어넣었다. 


  책의 내용은 말 그대로 머릿속에만 들어갔다. 평범한 가정에서 평탄하게 자라는 어린이에게는 인생 경험이라고 할 만한 게 별로 없었고, 그런 보통의 어린이에게 어른들의 삶과 인생 이야기가 가슴까지 들어갈리 없었다. 소풍 가는 버스에서 옆자리의 친구에게 내가 읽은 책의 내용을 한두 시간 동안 줄줄이 읊어줄 수 있었지만, 그건 내 이야기가 아니므로 아무런 감정도 실려 있지 않았다. 굳이 그 시간의 감정을 분별해보자면, 전달하는 내용과 관계 없는 잘난척 혹은 자기만족. 


  그 어린이가 자라기는 했을까. 책의 내용을 이해하고 정리해서 전달하는 기술은 학교교육을 통해 분명히 더 잘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내용이 나의 삶과는 어떻게 관련이 되는가. 문학을 읽으며 작가가 그려내는 그 삶에 내가 들어가서 살아볼 수 있을만큼, 다른 인생에도 참여해볼 수 있을만큼 이제 나는 내 삶의 경험을 가지고 있는가. 


소설에는 세상 모든 게 다 있다. 버려지고 소외된 자들의 이야기, 인간과 인간 사이에 오고가는 감동과 따뜻한 마음, 그것들을 보여주는 아름다운 문장들. 도대체 이런 소설을 읽지 않고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고 또 버텨낸단 말인가. 소설이야말로 우리가 끝까지 쥐고 있어야 할 거룩한 예술이다. - P22

다른 분야보다는 소설이, 잠깐 동안 다른 사람이 되어 다른 삶을 살아보게 해준다. 소설은 지금 내가 있는 현실을 떠나 다른 환경과 시간 속에서 다른 사람을 만날 수 있게 해준다. 소설을 읽는 동안 나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앞에 펼쳐진 일들을 맞닥뜨리며 때로는 웃고 때로는 울기도 한다. 그러면서 나는 나와는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고, 공감하기도 한다. 그동안 몰랐던 다른 곳의 다른 상황들도 소설을 통해 알게 되기도 한다. - P31

나의 경우엔 책을 읽는 것에 관심 없는 사람들이 무척 안타깝다. 이렇게 재미있는데, 좀 읽어보지. 읽어보면 책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알 수 있을 텐데. 책을 전혀 읽지 않는다면 일단 쉽게 읽히는 책으로 시작하면 좋을텐데. 그러면서 멋진 문장들이 가득한 책도 읽는 것이다. 국내 작가의 작품으로 시작하는 것도 좋다. 혹시라도 ‘소설‘이 유독 재미없다고 하는 사람에겐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문장부호를 충실하게 지켜가면서, 따라가면서 읽으세요." 큰따옴표 안의 글은 정말 대화한다는 생각으로, 느낌표가 있는 문장은 정말 감탄하거나 놀라듯이, 쉼표에서는 꼭 쉬어주는 것이다. 그러면 책은, 소설은, 정말 재미있다! 그렇게 문장부호를 충실히 따르며 읽다보면 머릿속에서 그림이 그려지면서 내용 속으로 빠져들 수 있다. - P43

하지만 소설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알 수 있다. 어린 시절 내가 처음 소설이란 걸 읽게 됐을 때, 소설은 그저 재미를 얻는 수단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나는 소설에서 이야기와 재미를 즐기고 감동을 받는다. 그리고 세상에서 벌어지는 내가 알지 못하는 많은 것들에 대해 배운다. - P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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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12-24 13: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라파엘님!
가족 모두 행복 가득! 하시길 바랍니다
🎄 ℳ𝒶𝓇𝓇𝓎 𝒞𝓇𝒾𝓈𝓉𝓂𝒶𝓈 🎅🏻

(\ ∧♛∧ .+° °*.
(ヾ( *・ω・) °・ 🎁
`し( つ つ━✩* .+°
(/しーJ

라파엘 2021-12-24 19:35   좋아요 0 | URL
항상 감사합니다!!! 스콧님께서도 가족과 함께
기쁘고 행복한 성탄절 되시길 기도합니다~ ^^

별족 2021-12-24 13: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삶과 이야기 가운데 균형을 잡는 건 어려운 거 같아요^^

라파엘 2021-12-24 19:39   좋아요 2 | URL
맞아요 ㅎㅎ 다양한 이야기에 깊이 공감할 수 있기를 바라고,
저의 삶도 하나의 훌륭한 이야기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

서니데이 2021-12-25 01: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라파엘님, 즐거운 크리스마스와 따뜻한 연말 보내세요.
주말 날씨가 많이 춥지만, 좋은 일들 가득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메리크리스마스, 좋은 밤 되세요.^^

라파엘 2021-12-25 01:22   좋아요 2 | URL
서니데이님, 감사해요!! 건강하고 행복한 연말연시 되시길 기원합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