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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의 도가 땅에 떨어졌도다
다빙 지음, 최인애 옮김 / 라이팅하우스 / 2017년 4월
평점 :
다빙은 타칭, 베스트셀러 작가, 유랑가수, 방송인, 배낭여행가, 예술가이고, 자칭, 야생작가, 리장 건달, 이야기 들어 주는 사람, 게으른 술집 사장, 왼쪽 얼굴 미남이다.
아마존 차이나에서 선정한 '올해의 작가'이며, 베스트셀러 작가이다.
SNS도 하며 젊은 중국인들에게 꽤 인기가 있는 작가인거 같았다.
그의 소설, 사실 소설이라기 보다는 주변 친구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소개한 책이 왜 중국인들에게 인기가 있었는지도 궁금했고, 어떤 작가일까라는 궁금증에 책을 읽기 시작했다.
내가 소설을 통해 본 다빙은 사람좋아하는 이야기꾼이고, 흔히 우리들 농담으로 습자지라고 할 정도로 다양한 분야와 다양한 사람들에게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중국도 시장개방과 함께 엄청난 개발의 속도를 이루고 있는 상태이다.
우리도 한동안 개발과 경제라는 프레임에 갇혀서 많은 사람들이 한쪽 방향으로 휩쓸려 갔었다.
지금은 주춤한 경제 발전과 동시에 한쪽 방향으로 휩쓸려 갔던 사람들이 주변에 조금씩 눈을 돌리고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직 중국은 계속적인 경제 발전과 사회개발에 가속력을 올리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인간은 꿈을 꿀수도 없고, 이상을 실현한다는 것은 미친 짓이고 낙오자로 취급당하기 쉽다.
그 지점을 정확히 다빙은 뚫어내고 있고, 가속력에 지친 중국인들이 다빙에 열광하고 그의 책을 읽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강호의 도가 땅에 떨어졌도다>는 다섯편의 단편이 모인 책이다.
즉 다섯명의 주인공이 등장하고 모두 그의 지인이다.
"유랑가수 라오세"는 책 제목 그대로 라오세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는 시골에서 유명한 학교에 입학 허가를 받고 비싼 학비를 내며 다녔지만, 자신의 이상을 위해 뛰쳐나와 노동자와 유랑가수를 하며 자신의 이상을 실현해 내고 있는 사람이었다.
"강호의 도가 땅에 떨어졌도다"는 자신과 희소라는 형님의 관계를 통해 자신이 그리고 우리가 가진 선입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진정한 친구란 진정한 의리란 무엇인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은방울"은 나라는 사람이 등장하는데 개인적으로 다빙일거라 예상된다.
그의 유랑중에서 한 은공예점에서 스승을 모시고, 사저와 함께 지내면서 만난 두사람을 통한 많은 것들을 나누고 있었다.
"상어와 헤엄치는 여자"는 사오윈도라는 용감한 여자친구에 대한 에피소드로 진정한 친구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난 이야기가 있는데, 당신 술 있어요?"는 S라는 이니셜이 등장하면서 뉴질랜드 수도 웰링턴에서의 삶과 S의 삶에 대한 태도를 이야기하면서 진정한 삶이란 무엇인지 논하고 있었다.
이 책을 읽고나서 떠오른 것은 이방원이 정몽주의 의중을 떠보기 위해 보낸 시조 '하여가'였다.
역사적 사건을 살펴보면 전혀 맞지 않는 것일수도 있지만, 시조의 내용이 딱 맞는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에 '하여가'가 떠올랐다.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어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어져 백년까지 누리리라
이방원은 나라와 다스리는 사람이 고려인들, 조선인들 무엇이 중요하겠느냐, 우리 같이 칡처럼 얽혀서 서로 같이 백년까지 잘 살아보자자는 뜻으로 보냈다고 한다.
그러나, 나에게 이 시조와 <강호의 도가 땅에 떨어졌도다>의 연결점은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였다.
우리 사회를 보면, 어떤 기준이 분명히 존재하고 그 틀을 벗어나면 잘못 살아가는 사람이거나 낯선 사람 취급을 받는다.
우연히 <강호의 도가 땅에 떨어졌도다>와 <편의점 인간>을 읽어서 그런지, 영화 <곡성>의 유명한 대사 "뭣이 중헌디"가 자꾸만 떠올랐고, "하여가" 시조와 함께 많은 생각을 하게 하였다.
우리는 종 다양성이 중요하다고 습관처럼 이야기한다.
학문적으로는 종 다양성은 매우 중요한 자연계의 생존 전략이다.
하지만, 인간은 획일화의 문화속에 살고 있다.
아마도 사회질서 및 체제의 유지에 있어서 다양성은 무시되기 때문일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상을 위해서 삶의 자세에 따라서 인간은 다양한 방식으로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갈수 있는 권리가 있다.
비록 사회질서 및 체제속에서 획일화된 모습을 갖고 있지만, 이또한 자신을 찾아가는 길이라면 맞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모두들 다빙과 다빙의 친구들처럼 살기를 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그렇게 자신과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게 좀더 마음을 열고 그들의 존엄성과 이상을 인정해 주는 문화는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역가"의 시처럼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겠는가, 같이 서로 얽어져 백세까지 살아보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