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리하라, 미드에서 과학을 보다 하리하라 사이언스 시리즈 3
이은희 지음 / 살림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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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적인 과학적 책읽기를 선도하는 하리하라의 명성은 듣고 있었지만 이렇게 책을 읽은 것은 처음이었다. 예전에 리차드 파인만의 책들을 읽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던 적이 있었다. 어렵게만 알고 있던 물리학을 재미있는 농담과 함께 일상적인 글쓰기로 풀어나가던 천재 파인만의 책을 읽은 뒤로 과학책들은 이처럼 대중적으로 읽히기 쉬운 책들을 찾고 있었다. 정재승의 과학콘서트를 읽었던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그 책을 읽은 이후엔 딱히 읽을만한 책이 없었는데 이렇게 '미드에서 과학을 보다'라는 다소 도발적인 제목으로 하리하라님의 글을 읽게 되었다.

 

원래 미국드라마를 찾아서 보기도 하는 나였기에 제목에서부터 강한 연대감을 느꼈었다. 내가 좋아하는 드라마가 여기선 어떻게 나올까. 과연 어떤 부분에서 과학적인 면을 찾아서 이야기를 펼쳐 나갈 것인가. CSI에서는 법과학이란 뜻의 포렌직을, 닥터 하우스에서는 다이어그노시스라는 진단이라는 단어를 수없이 들었다. 이 책에선 과연 어떤 법의학이 나오며 어떤 의학적인 얘기들이 나올까 목차를 살펴보니 역시 CSI 라스베가스는 빠지지 않았고 즐겨 보는 로 앤 오더 SVU 와 한때 열심히 보았던 프리즌 브레이크, 지금도 챙겨보는 하우스, 크리미널 마인즈, 덱스터, 본즈까지 나와서 아주 반가웠다. 그레이 아나토미와 메디컬 인베스티게이션은 즐겨보지 않는 드라마였지만 가끔은 보았었기에 어쩌면 모든 드라마가 다 아는 드라마였다. 그만큼 책이 재미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이 책은 미드를 즐겨보는 사람들이 더욱 찾을 책이다. 물론 시청하지 않아도 읽고 재미있을 순 있지만 뭔가 김이 빠진 맥주랄까. 약간은 무덤덤할 것이다. 다행히 미드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드라마 하나하나에 대한 장면과 묘사와 빠지지 않는 과학적 사실들을 규명한 이 책이 아주 즐거운 독서가 될 것이다.

 

후각에 관한 에피소드에서는 청각과 더불어 인간이 느끼는 여러 감각이, 죽음을 부르는 수상한 기체에서는 적혈구와 헤모글로빈과 이산화탄소와 일산화탄소에 대한 여러가지를 읽을 수 있다. 분명 교과서에서 배운 내용들이었지만 이렇게 성인이 되어서 드라마와 접목시켜서 읽으니 훨씬 재미있고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되는 느낌이다. 소변에서 알아낼 수 있는 여러가지 것들 암모니아를 비롯한.. 임신부를 유산시킨 아이스크림의 정체를 읽으면서는 실제로 임신해서 아이를 낳아보았기에 느껴지는 공포감이 컸다. 정말 임신중에는 먹는 것도 조심해야 겠구나 하는..리스테리아균의 정체를 알게 된 것이다.

 

여러가지 에피소드들을 읽다보면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이래서 하리하라가 유명했나 보다. 어떤 계통에서든 자신의 일을 이렇게 사랑하며 쉽게 풀어낼 줄 아는 사람들의 능력은 정말 부럽다. 나름의 영역에서 나도 이렇게 살고 싶을 뿐이고...오늘도 나름의 독서를 했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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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스틱 어른백서 : 연애편 판타스틱 어른백서 1
이명길 지음 / 작은씨앗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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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생활의 게임에서도 즐길 수 있는 판타스틱 어른백서가 책으로 나왔다. 어른들 사이의 연애편이라 직장인들과 같은 사회인들이 보면 좋을 연애백서이다. 만화부터 시작하는데 직장선배인 젊은 부장이 방자에게 향단을 소개해 주기로 하면서 회사 앞 카페에서 6시에 만남을 주선하기로 했다고 하여 그말만 믿고 향단이 카페문을 닫을 때까지 앉아있다가 속은 것을 알고 발끈하는 장면이 너무 재미있었다. 향단은 뒤의 어느 만화에서 또 당하는데 이번에는 어려운 사람들끼리 협조하라며 부장이 소개를 해준다. 한번 속지 두번 속냐 했지만 결국 또 속는 그녀가 불쌍하다. 소개팅에 나가니 낮에 회사에서 본 부장의 후배인 그 괜찮은 남자는 갑자기 어렵다며 대출을 부탁하는 황당한 시추에이션이...중간중간 챕터가 시작할 때마다 나오는 만화를 보는 재미에 푹 빠진다. 만화가 끝나면 바로 상식문제들이 나오는데 배꼽을 잡는 문제들부터 현실적인 문제도 많이 나오고 그런 넌센스적인 문제뿐 아니라 상식에 필요한 진지한 문제들까지 다양하게 나온 후에 그 문제에 대한 해법까지 나온다.

 

여자들과 사귀는 것이 자신있다고 큰소리치는 이부장도 당하는 날이 오는데.. 새로 들어온 스펙이 좋은 여직원.. 외국에서 오래 살아 영어를 잘하는 그녀에게 멋진 편지를 쓴다고 해서 방자에게 편지를 보내는데.. 그녀는 과연 이부장의 편지에 녹아날 것인지.. 실제로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다시 편지를 돌려보내는데.. 마침내 이부장의 영어편지를 본 방자의 한마디가 더 웃기다. "돌렸냐..번역기..." 하하하. 연애에 있어선 그 누구도 자신할 수 없는 일이다. 판타스틱 연애백서는 재미있는 만화와 함께 젊은 세대들에게 어필하고 더욱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책이다. 이미 결혼을 한 사람도 나도 연애시절엔 이랬지..하면서 상식문제를 풀다보면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고 말이다.

 

문제를 풀다보면 헷갈리고 어려운 문제들이 있다. 개개인따라 다 다르게 다가올 문제들이라서 더욱 흥미롭다.

문제 13. 다음 중 외모가 별로인 사람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이 아닌 것은? 1.사법고시 패스 2.뻔뻔한 자신감 3.효율적인 자존심 4.트인 사고

5.친절한 말투. - 당신은 알겠는가? 

재미있는 문제들도 많다. 문제15. 남자친구의 휴대전화에서 우연히 옛 여자친구의 문자메시지를 벌견했다. '잘 지내지?' 라는 문자메시지였는데...이걸 어떻게 하면 좋을까?  1.경찰에 신고한다.  2.남자친구를 소환해 따진다.  3.그 여자에게 전화해 따진다.  4.일단 조용히 넘어간다.  5.잘 지낸다고 대신 답문자를 보내준다.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풀어나갈지 모두의 반응이 궁금한 이 책은 연인과 같이 풀어가며 읽어도 재미있을 것 같다. 이런 문제들이 수도 없이 많이 나와서 너무 쉽게 끝나버리는 책이 아니고 다양해서 좋다. 가볍게 시간을 보내며 읽기 좋은 책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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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한 스푼 - 365일 미각일기
제임스 설터.케이 설터 지음, 권은정, 파브리스 모아로 / 문예당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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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한 스푼은 정말 흥미로운 책이다. 이런 류의 토막적인 상식을 다룬 책은 많은데 이 책은 참 감미로운 책이었다. 남들이 흔히 알고 있는 상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수집적인 글쓰기가 많다. 저자인 제임스 솔터와 케이 솔터 부부는 글쓰기에서도 정평이 난 사람들이다. 제임스 솔터는 소설 <스포츠와 취미>로 저명한 펜 포크너상을 수상한 적이 있으며 케이 솔터는 극작가이자 '뉴욕타임스'에 음식과 와인에 관한 칼럼을 쓰는 언론인이다. 부부가 의기투합하여 요리를 만들곤 하는데 서문에서 느껴지는 그들의 진솔한 삶의 향기가 잔잔한 책의 내용을 예고하고 있다.
서문의 내용은 이렇다. 그들은 1970년대부터 요리를 하기 시작했는데 늘 부부가 함께 했다. 친구를 초대하여 음식을 대접하기를 좋아하는데 좋은 평가를 받았던 요리를 골고루 맛보게 하기 위해서 한번 초대했던 손님들에게 또 같은 음식을 내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 일기 형식으로 메모를 했던 것이 점점 두툼한 책 한 권이 되었고 한권이 두권이 되는 것을 보고 이와 같은 책을 내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세계 역사속 인물들의 음식이야기와 향신료이야기, 그리고 그 인물들의 식사와 관련된 이야기와 함께 이 두 부부의 초대 이야기와 음식 레시피까지 간간이 나오는 매우 아기자기한 아름다운 책이다.
 
이 책을 돋보이게 하는 요소로 '파브리스 모아로'라는 프랑스의 유명한 삽화가의 그림을 빼놓을 수가 없는데 정말 멋진 분위기를 자아낸다. 책을 읽는 내내 참 행복한 순간들이 많았다. 아껴서 읽고 싶은 책이었다. 그동안 여기저기서 얼핏 들어보았던 문학의 최고봉들의 음식이야기들을 읽자니 미소가 배시시 흘러나온다. <인간희극>의 오노레 드 발자크나 <몬테 크리스토 백작>의 알렉산드르 뒤마 같은 인물을 한아름 볼 수 있으니 행운이 아닌가? 이 책은 470페이지에 걸쳐서 일년을 담는 형식으로 작은 메모형식의 글부터 상식을 넓혀주는 글까지 다양한 글들이 나온다. 1월의 1일부터 31일까지 그 다음은 2월의 첫날부터...이런 식으로 12월의 마지막날까지 빼곡한 글들은 황홀할 정도이다.
 
1월 4일 커피에서의 발자크는 하루에 커피를 30잔 이상 마셔서 건강에 이상이 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1월 5일의 십이야는 크리스마스로부터 12일째에 해당하는 날로서 우리나라에서는 생소한 개념이지만 지금도 프랑스나 스페인같은 유럽에서는 그 날을 예수님을 기리는 날과 동시에 동방박사를 기념하는 약간의 이교도적인 날로서 그 중 하나가 십이야 케이크를 들 수 있는데 콩을 넣어 케이크를 구운 후, 콩 조각이 든 케이크를 먹는 사람이 그날의 왕이 되는 것으로, 스위스와 독일에서는 '드라이쾨니히스쿠헨'(세 왕들의 케이크) 라고 불리우며 이것을 먹는 사람은 특별한 선물을 받은 행운아로 여긴다고 한다. 1월 10일에는 오툉의 주교였던 '탈레랑'과 연어 이야기가 나온다. 11일에는 파인애플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아까 커피에서 나왔던 발자크가 또 나온다. 파인애플 튀김을 아주 좋아했다는데 오늘날도 파인애플 튀김은 아주 맛있는 요리가 아닌가. 역시 미각에 있어서는 과거나 현재나 비슷한 것 같다. 이 장에서는 맛있는 파인애플 셔벗 조리법까지 팁으로 볼 수 있었다. 12일에는 숙녀의 테이블 매너가, 13일에는 포크에 관련된 이야기가 소개되고 있다.
 
14일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요리학교 '코르동 블루'의 역사가 소개되는데 1578년에 프랑스의 앙리 3세가 창설한 성령기사단 회원들이 길게 늘어뜨린 파란 리본의 십자 훈장을 달고 있었던 데서 유래하며 루이 14세의 애첩인 마담 드 맹트농이 코르동 블루의 의미를 확장시켰다고 한다. 교육에 관심이 많았던 그녀는 자신처럼 가난한 귀족의 딸들이나 프랑스 병사들의 고아들을 위해 '생시르'라는 기숙학교를 세우고 그 곳에서 요리 부문의 코르동 블루를 창안해서 요리에 뛰어난 재능이 있는 사람들에게 영예의 파란 띠를 수여했다는 데에서 오늘날의 '코르동 블루' 가 탄생하였다니 정말 재미있고도 멋진 역사속 이야기였다.
아직 1월인데도 이렇게나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많다. 12월까지 계속되는 음식과 인물이야기와 이 두 부부의 요리철학과 삶의 태도를 읽어볼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한 일이겠는가? 위대한 한 스푼을 통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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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에서 영성으로
이어령 지음 / 열림원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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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문인이자 지성인인 이어령씨는 '님'자를 붙이고 싶은 분이다. 솔직히 내가 청소년기나 청년기에는 그를 잘 알지 못했다. 오히려 아이들을 낳고 기르다 보니 이어령교수님의 책들이 눈에 많이 보이는 것이 아닌가.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이 열리는 세계 문화 여행 20권짜리도 이어령 교수가 쓴 책이었고 <뜨자 날자 한국인>과 같은 아이들이 보기에 참 좋은 책인 '춤추는 생각학교' 시리즈 같은 책에서 접하곤 하다보니 왠지 가까운 분 같은 느낌이 들었다. 우리 주변엔 그분이 감수하거나 쓴 책들이 알게 모르게 많이 있다. 1934년에 출생, 석학으로서 50년 가까이 글을 쓴 글쟁이시기 때문이다. 그런 그분이 무신론자였다는 사실도 이 책을 통해서 처음 알았다. 불교신자이거나 기독교 신자이리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분의 딸인 이민아씨도 아주 대단한 분이다. 국내에서 너무나 공부를 잘 해서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고 어려운 변호사 시험에 합격한 것도 모자라 여검사까지 되어서 마약사범같은 청소년들을 계도하는 일에도 힘썼고 나중에는 기독교인으로서 여러가지 봉사활동과 사랑을 실천하는 와중에 둘째 아들이 자폐아로 판정받아 그 아이를 고치기 위해 하와이까지 가서 애쓰셨다는 점. 매일같이 눈물의 기도를 드렸다는 것.. 마침내 아버지인 이어령 교수가 세례를 받기로 결심하고 온누리교회의 하용조 목사님께 세례를 받았는데 3주뒤에 갑작스럽게도 스물 다섯의 꽃다운 나이의 첫째 아들 유진의 생명을 하나님이 거둬가셨다는 충격적인 이야기까지..그런데 첫째 아들의 죽음은 모두 너무나 사랑하셨기에 데려가셨다는 것처럼 담담하게 이겨냈다는 것이 놀라웠다. 이어령 교수도 세례를 받은 것을 후회하지 않고 하나님이 먼저 거둬가셨음을 시로서 딸에게 보냈으니 말이다. 이들의 믿음이야말로 욥의 믿음과도 같고 나 같은 사람은 발끝도 따라가지 못할 믿음이라 여겨졌다.

 

이어령 교수는 일흔이 넘었다. 그의 인생도 이제 종반부로 향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 그가 인생을 돌아보고 지금처럼 평안하고 지적인 순간은 없는 것처럼 이 책을 읽다보면 그 평온함이 느껴진다. 일본에서 스스로 고행같은 연구자로서의 길을 묵묵히 걷다가 세례를 받는 것도 세간의 인기나 권력에 영합하지 않은 순수한 연구자로서의 삶이 너무나도 숭고해 보였다. 일본에서 쓴 글들과 과거를 회상하는 글들 그의 어머니에 관한 따스한 이야기들과 딸을 향한 아버지의 뜨거운 사랑이 이 책에서 절절이 느껴진다. 비기독교인이 보아도 그의 팬들이라면 실망하지 않을 책이다. 무신론자라면 한번 꼭 읽어보았으면 하는 책이고 말이다. 이어령 교수같은 분이 노년층에 아직 계셔서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분처럼 이렇게 멋지게 나이를 먹어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성에서 영성으로>라는 제목이 전혀 어색하지 않는 분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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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더 행복해지는 마음사용법
에릭 블루멘탈 지음, 여현덕 옮김 / 타임북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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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블루멘탈의 마음사용법(1% 더 행복해지는) 을 읽으며 놀라운 경험을 했다. 마음이 편안해지고 아련해지고 정신상담을 받아본 적은 없지만 영화나 미국드라마에서 보던 비스듬히 누워서 상담사에게 자신의 얘기를 들려주는 폭신한 카우치에 누운 것 같은 느낌말이다. 표지에서 한 여성이 편안하게 팔을 늘어뜨리고 나무에 기대어 앉아서 편안한 호흡을 하는 듯한 일러스트가 있는데 딱 그 기분이었다.

 

요즘은 심리서들이 넘쳐난다. 다 비슷한 것 같아도 읽어보면 살이 되고 피가 되는 내용들이 한두가지는 꼭 들어있지만 다시 읽고 싶은 책들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이 책은 마음이 불편할 때마다 펼쳐서 읽어보고 상담을 받는 것처럼 활용하고 싶은 책이다. 1914년에 태어나 2004년도에 가족의 존경과 사랑을 한몸에 받으며 평화롭게 사망했다는 에릭 블루멘탈은 평생을 수천명에 이르는 상담자들의 멘토로서 삶의 가치에 대한 굳건한 믿음을 강조했다고 한다. 그런 그가 쓴 책이라서 그런지 책을 읽는 내내 불편함을 느낄 수 없고(이런 심리서들은 특성상 읽는 동안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다.) 앞서 썼던 저런 감정들을 느꼈던 것이다.

 

요즘은 나이가 들수록 까칠해지고 화를 참을 수가 없어지는 것 같아서 마음이 슬퍼진다. 얼마전에 있었던 일이다. 달맞이 공원을 가족들과 한참을 올라가 놀이터를 발견해서 아이들을 놀게 하고 있었는데 놀이터 중간을 통과하는 터널 같은 곳에서 두 남자아이들이 나오지를 않고 닌텐도 게임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다른 아이들이 다 그 아이들을 피해서 어중간하게 놀고 있는데 참을 내가 아니었다. "얘들아, 그렇게 앉아있으면 다른 아이들이 놀지를 못하잖니 비켜줘야지~" 초등학교 2학년이나 됐을까. 그 중 더 큰 아이는 흠칫 옮기려고 하는데 다른 아이가 말리며 "칫, 저 아줌마가 뭔데 우리보고 나가라 말이야 우리가 뭐 어때서 그지 형아~" 그러자 옮기려던 형도 그냥 주저앉아버린다. 그러고서도 작은 아이는 계속 궁시렁...아효..정말 그 아이에게 꿀밤이라도 먹이고 싶은 심정이었다. 자기네가 옳다는 그 굳건한 믿음은 무엇이며 바로 앞에 벤치에 앉아서 수다떨기 여념없는 그 아이들의 엄마들은 자기 자식들이 그러고 있어도 한번 나와보라는 말 한마디 없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무력감을 느낀다. 생각같아서는 아이들을 혼쭐을 내주고 그 엄마들에게도 잔소리를 하고 싶었지만 남편이 그 모습을 본다면 나에 대해서 실망하겠지..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 유하게 그러면서도 알아듣게 말할 수 있을까..부들부들 화를 내지 않고...내내 그런 생각을 하느라 우리 아이들과 잘 놀아주지도 못하고 멍하니 있었다. 이럴때 이 책을 가지고 있었다면 좋았을 걸...바로 이에 대처할 수 있는 이야기가 9장에 나온다.

 

감정의 서툰 펀치는 아무 데도 유익하지 않다 - R이란 청년은 하숙집에서 밤마다 떠드는 소리에 공부도 못하고 부아가 치밀지만 아무에게도 얘기를 못하고 매일 밤 분노에 몸부림친다- 는 사실을 아무도 모르고 있다. 이는 '변명'의 기제로서 자신이 혹시 시험에 통과하지 못해도 소음때문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핑계거리를, 나 자신보다는 남의 탓으로 돌리려는 심리가 있기 때문이며 또 다른 예로 나온 T의 이야기는 요즘의 나와 비슷한 상태였다. T는 새로운 직장에서 가까운 테이크아웃 음식점에서 메뉴를 고르느라 머뭇거릴때 한 무리의 직장인들이 들어오자 단골이었는 듯 먼저 그들의 주문을 받아버리자 종업원에게 화를 벌컥 내고 만다는 이야기였다. T는 부당함을 차근차근 따져 묻는 대신 식당 직원에게 화를 내고 말았는데(내가 그 아이들에게 하고 싶었던 행동이다), 그가 화를 내고 나가버렸다고 해서 종업원이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을까? 오히려 반대다. 한바탕 그에 대해 욕을 하고는 잊어버렸을 것이라는, 실상을 들여다 보면 자신의 분노로 인해서 그 누구보다 고통을 받는 것은 바로 그 자신이라는 것이다.

 

나중에 온 직장인들을 먼저 주문받은 이유가 1분 1초까지 감시당하는 지독한 보스밑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종업원이 미리 알고 한 행동이었다면 T도 충분히 양보할 수 있었을 거라는 것이다. 무슨 일이든 눈으로 보이는 것만이 다가 아니며 겉으로 들어나지 않은 각자의 <동기>가 다 있을 수 있다는 얘기다. 감정의 서툰 펀치...정말 내가 치유받을 수 있었다면 이 책 덕분이리라. 차분하게 자꾸 화가 치미는 원인이 무엇인지 이 책을 통해서 곰곰이 생각해 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지게 되었고 자꾸만 들춰보고 싶은 책이 되었다. 에릭 블루멘탈...이름부터 예사롭지 않은 따뜻함이 묻어나는 사람..이 책을 읽으면 마음이 따듯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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