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전쟁 - 그들은 어떻게 시대의 주인이 되었는가?
뤄위밍 지음, 김영화 옮김 / 에버리치홀딩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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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시절엔가 어머니가 사주신 <이야기 한국사>라는 한 6권짜리 전집이 언제부턴가 집에 있어서 읽기 시작했는데 너무 재미있어서 읽고 또 읽고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 식의 책이 있으면 우리딸에게도 읽혀주려고 마음먹고 있는데 잘 찾아보기가 어렵다. 한권으로 읽는 통한국사 이런식의 책만이 보이니 말이다. 대화체가 선명하고 마치 대하드라마를 읽는 것 같지만 역사속의 사료를 정확하게 참고해서 생생하게 그린 한국사였다. 성종이 나중에 폐비 윤씨가 되는 왕후에게 용안을 긁히게 되는 사건이 지금도 생생히 기억난다. 이후 이 일은 연산군의 피비린내나는 복수의 단초가 되었던 사건이었다.

 

이런 비슷한 책을 찾게 되었는데 중국의 역사속 인물과 권력투쟁을 그린 이 책 <권력전쟁>이었다. 중국의 역사인 것이 아쉬울 정도로 어린 시절에 읽었던 그 이야기 한국사와 비슷한 방식의 책이어서 아주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뤄이밍이라는 중국 고대 문학 연구에 힘쓰고 있는 저자가 펴 낸 책이라 역사적으로도 믿음이 가는 책이었다. 머리말에서 허구로 그려낸 대화체도 많다고 하지만 큰 틀에서는 역사적인 사료를 참고했다고 한다. 대하드라마처럼 재미있게 읽어내려 갔으며 성인이 되어 새삼 읽어보니 조나라가 기원전 260, 진나라가 기원전 210년 (바로 진시황제가 통치하던) 이런 식으로 연대를 새삼 보며 놀랐다. 기원후도 아닌 기원전이라니. 유럽으로 치면 중세시대보다도 훨씬 이전의 이야기가 아닌가. 그럼에도 중국의 역사들이 단편적으로 우리에게 이렇게나 알려져 있다니 놀랍다. 유방과 항우의 이야기도 그렇고 삼국시대도 지금으로 치면 고대에 속하는 시절이니 말이다.

 

'여불위'라는 엄청난 부자가 한명의 제왕(훗날 진시황제) 을 탄생시키는 장면은 실로 놀라웠다. 그토록 권력이 주는 즐거움은 비길데 없나 보다. 여불위 이야기 이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권력을 가지기 위해서 숱하게 피바다를 이루며 존속들까지 제거하는 모습을 보니 말이다. 현대에는 그 정도는 아니지만 역시 정치에 뜻이 있는 사람들이 들어갔다 싶으면 또 나오고 하는 모습들을 볼 때에 거의 중독적인 습성이 아닌가 싶다.

진시황제 사후에 환관 '조고'라는 인물이 권력을 잡게 되는 과정도 놀랍기는 마찬가지이다. 결국 권력을 잡았으면 좋게 썼으면 좋았을 터인데 잔인무도하기까지 해서 좋은 통치를 하지 못하고 숙적을 제거하기에만 혈안을 올리고 죄없는 공주 열명까지 사지를 찢는 사형을 내렸다는 장면에서는 싸이코패스적인 인물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현대에 살았다면 살인마가 되었을지도..

 

권력을 잡기 위해서는 여성도 예외는 없었다. 못생긴 악처였던 '가남풍'의 이야기도 새로웠고 널리 알려진 '측천무후'의 이야기를 이 책으로 더욱 자세하게 접할 수 있었다. 측천무후는 다행히 당시 나라의 발전에 여러모로 힘을 썼다고 한다. 하지만 그녀 역시 갓 태어난 딸과 태자로 책봉되었던 아들 둘과 손자까지 죽음으로 내 몬 인물이었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살육의 기록보다는 어떻게 해서 정권을 잡게 되었는지 한 개인이 자신을 숨기며 권력을 위해 한발한발 내딛는 과정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권력의 암투는 역사의 뒤안길에서 이런 식으로 이루어지는구나 약속은 거의 지켜지지 않고 오히려 자신이 당하는구나. 현대에서도 목숨이 왔다갔다 할 정도는 아니지만 자신의 이익과 발전을 위해서 이해관계를 쉽게 저버리고 이쪽 저쪽을 다니는 정치가들을 볼 때 권력투쟁은 인류의 역사상 늘 있어온 일임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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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여섯 살 베이비시터 사계절 1318 문고 65
마리 오드 뮈라이 지음, 김영미 옮김 / 사계절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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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절 1318문고의 열여섯살 베이비시터는 재기발랄하면서도 청소년들에게 좋은 소설이다. 마리 오드 뮈라이는 프랑스에서 청소년 작가로 유명한가 보다. 이름을 기억해 두어야 겠다. 에밀리앵은 열여섯살이다. 순전히 친구인 자비에 리샤르의 컴퓨터를 본 순간 컴퓨터와 게임을 사고 싶어서 엄마에게 투정을 부리듯 말다툼을 하다 (이 둘은 모자가정으로 말다툼이 정상일 정도로 티격태격이지만 사이좋은 가족이다.) 엄마의 제안으로 엄마의 대녀(서구에서는 대모, 대부가 있으므로)인 '마르틴느 마리'가 베이비시터로 용돈벌이도 잘 하고 있다며 부추김을 받아 얼떨결에 시작하게 된다.

 

얼떨결에 시작하고 순식간에 아이들을 돌보며 순간순간 대처하는 능력이 길러진다. '랑플랑플랑 데 제피네트' 라는 상상속의 토끼 이야기는 아이들에게 언제나 인기만점이고 아이들이 울거나 보챌때 경찰이야기를 하거나 이 토끼이야기를 하면 거의 백프로 아이들은 수긍하며 얌전해진다. 그런데 그의 진짜 위기는 스물두살의 젊은 뒤리외 부인의 6개월된 아가 안토니를 맡으면서다. 그런데 이 아가도 역시 잘 보살피게 된다. 의외로 에말리앵은 아이들을 잘 돌보는 능력이 있었던 것이다. 실은 동생이 없는 에밀리앵에게는 그 아이들이 동생들이었던 셈이다.

 

자신도 모르게 아이들을 좋아하고 잘 돌봐준다는 사실을 알게 된 에밀리앵은 장겹칩증으로 죽을 뻔한 아기 안토니를 한밤중에 의사에 전화해서 구하게 되고 응급수술을 받고 아가는 살아난다. 그런데 그 구하기 전의 과정이 거의 전문가 수준으로 유아에 대해 잘 알게 된 에밀리앵의 이야기라 너무 재미있었다. 진짜 의사는 아니지만 이런 이야기가 계속 나왔으면 하는 바램까지 생겼다. 엄마들보다 더 아이를 잘 아는 소년 베이비시터 에밀리앵!! 하고 말이다! 하지만 뒤리외 부인의 남편은 실직하고 부인은 아기와 함께 친정근처로 이사를 하게 된다. 처음으로 이별의 아픔을 겪게 된 에밀리앵은 더 이상 베이비시터를 하지 않고 이야기는 갑자기 십대 아이들이 순간적으로 저지르는 실수인 도둑질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고 진정한 친구이자 여자친구인 '마르틴느 마리'의 소중함에 대해 깨닫게 되고 엄마의 힘든 일과 엄마를 이해하게 되며 짧은 소설은 훈훈하게 끝이 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베이비시터때의 이야기가 너무 재미있었기에 아쉽기만 하다. 끝까지 베이비시터에 대한 이야기로 이야기를 끌어나갔더라면 훨씬 재미있었을텐데. 더 감동적인 클라이맥스가 있었을텐데..그래도 도벽에 대한 이야기도 괜찮았다. 결국 도둑질은 나쁜 짓이며 아이들을 위한 기관에 기부를 하게 되었으니까. 그리고 그런 나쁜 짓을 하던 소녀(마르틴느 마리의 사촌)를 변하게 했으니까. 순전히 개인적인 바램일 뿐. 마리 오드 뮈라이의 다른 작품도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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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도시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은행나무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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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쿠다 히데오라는 이름만으로도 기다려졌던 소설 '꿈의 도시'를 드디어 다 읽었다. 장장 630페이지의 소설이다. 오쿠다 월드의 비결은 바로 가독성이 아닐까. 이 책도 단숨에 읽어내려갔다. 히라노 게이치로의 '일식'의 번역가인 양윤옥님의 번역이라는 믿음에 힘입어 더욱 쉬임없이 읽어내려갔던 것 같다. 이 책의 작은 소도시 '유메노'는 가상의 도시이다. 실제 일본지도에서 찾아봐도 나오지 않는 곳이란다. 그런데 책을 읽다보면 유메노가 그려진다. 눈앞에 존재하는 것처럼. 그곳에 사는 소시민들과 권력을 꿈꾸는 시의원 등 다섯명의 인간군상들의 이야기인데 일본소설답게 결국은 미스테리 스릴러적인 요소도 가미하고 있다. 눈앞에 그려지는 것처럼 그리고 있다는 것은 소설가의 굉장한 자질이다. 달리 오쿠다 월드라는 말이 나오는 게 아닐것이다. 그만의 위트와 감각과 이번에는 그의 나이에 걸맞는 무게감까지 육중하게 느껴지는 소설이다. 공중그네처럼 가볍고 재미있는 소설을 예상했다면 예상에서 살짝 빗나갈지도 모른다. 그래도 오쿠다 히데오답다는 느낌이 든다.

 

다섯명의 인간군상들의 이야기는 그들의 일상을 깨알같이 잘 묘사하고 있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생활보호비 수급비를 줄여야 하는 32세의 공무원이자 지금은 이혼한 싱글남 도모노리, 작은 도시에서 벗어나 도쿄에서 세련된 여대생 생활을 꿈꾸는 고등학생 후미에, 도시로 젊은 사람들은 떠나고 모자가정이나 노인들만 주로 남아있는 도시 '유메노'의 특성대로 노인을 상대로 500엔짜리 배전반을 몇만엔씩에 사기로 파는 이십대 초반의 전직 폭주족 출신의 사기 세일즈맨인 가토 유야, 신흥종교에 빠져있는 마흔 여덟의 마트 식품 매장에서 좀도둑을 적발하는 보안 요원 다에코, 대대로 대지주 집안 출신의 시의원인 준이치는 외도와 권력에 빠져 있다.

 

후미에는 도심의 학원에 다니며 도쿄에 있는 4년제 대학을 꿈꾸며 열심히 공부하는 소녀이고 그 학원에 다니는 남학생 중에서는 부자티를 내면서 유일하게 도쿄대를 갈 것이라고 주변에서 희망하는 하루키는 준이치의 아들이고 도모노리가 생활보호 철회를 위해서 방문을 하는 여성의 전남편이 가토 유야이며 가토 유야에게 추파를 던지던 대낮부터 술에 취한 중년의 여성은 준이치의 아내이고 후미에를 납치해서 게임 속 여성으로 여기고 보호해준답시고 사육을 하는 은둔형 외톨이인 노부히코는 가토 유야의 중학교 동창이고...이런 식으로 작은 도시 유메노에 사는 사람들은 저마다 누군가와 알고 부딪치는 사이들이다. 이야기는 점점 소용들이 치듯이 흘러가고 하나나 두개의 교통사고로 정점을 이룬다. 폭발적인 엔딩은 과연 책의 띠지에서 엄청난 스피드로 달려가는 클라이맥스라고 할만하다. 다 읽고 나서는 왠지 모르게 허어 하는 헛헛한 한숨과 웃음이 새어나온다. 그래도 뭐니뭐니해도 평범하게 살아가는 나와 내가족과 이웃이 좋다는 것을 느꼈다. 참말로 소설다운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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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학년 입학 전 책가방 - 대치동 선생님이 미리 알려 주는 초등 공부법 신나는 책가방 2
김민선 지음, 공덕희 그림 / 밝은미래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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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일곱살이 된 아들을 보면서 이젠 유아에서 차츰 어린이가 되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겉모습은 둘째라서 그런지 아직 아기같기만 하다. 여섯살에서 갓 일곱살이 된 아이이니...그런 아이가 내년에는 여덟살이 되어 학교에 입학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어쩐지 서운하기도 하다. 첫째아이인 딸은 이제 오학년으로 올라간다. 학교에 들어가면서 공부를 아니 강조할 수가 없어서 매번 공부해라 놀때는 놀더라도 공부를 해라라는 잔소리를 입에 달고 살게 된다. 놀기만 해서도 안된다. 어느 정도 노는 걸 보면 슬쩍 이것도 하고 저것도 다 했니? 하면서 엉거주춤 다시 방으로 들어가게끔 하는 것이 요즘 방학의 일상이다. 학원을 한 군데도 다니지 않고 화요일과 금요일에만 학교로 방과후 수업의 연장으로 방학중에도 바이올린을 배우고 있는 것이 다이다.

 

이런 아이들을 볼 때면 잔소리를 해야 하는 엄마의 입장도 답답하긴 마찬가지이다. 생각같아서는 그냥 내버려두고 싶기도 하고 실컷 책만 읽게 하고 싶기도 하다. 체계적으로 일학년부터 여유있게 가르쳤더라면 하는 생각도 드는 것이다. 그래서 둘째아이는 수학의 셈 같은 것은 미리 나와 공부를 해보고 싶기도 하다. 그리고 학교에서 배워야 할 공부 이전에 챙겨야 할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울던 버릇 그대로 가면 학교에서 놀림을 받을 수도 있다. 이런저런 준비를 하기 위한 책은 없을까 하던 중에 <1학년 입학전 책가방>이라는 책을 발견하였다. 다른 여타의 부모지침서와는 달리 이 책은 아이가 직접 해볼 수 있는 장들로 가득하다.

 

예절을 알아요라는 인성편- 에서는 나를 소개하는 방법을 소개해주며 직접 나를 그려보고 나를 소개해보는 장이 있어서 밑의 여백에 그대로 소개를 써볼 수 있게 도와주고 있다. "내 이름은 김희원이야. 좋아하는 것은 자전거타기야. 잘하는 것은 그림 그리기야. 어른이 되어서 하고 싶은 일은 의사선생님이야. 불쌍한 사람들을 도와주고 치료해 주고 싶어" 라는 예문이 있어서 아이와 간단하면서도 정말 써보고 싶은 것들을 써볼 수 있어서 좋을 것 같다. 학교에서 지켜야 할 예절과 남에게 피해주지 않는 행동 친구와 사이좋게 지내는 방법들도 그림으로 소개해 주고 있어서 아이와 재미있게 읽을수 있을 것 같다.

 

표현편에서는 그림을, 관찰편에서는 자세히 살펴보고 찾아보기 등 다양하게 색칠하고 찾아보고 그려보는 일련의 활동지들로 가득하다. 입학전에 이 책 한 권으로 아이와 더욱 친해지고 싶다.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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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일기 - 절망의 수용소에서 쓴 웃음과 희망의 일기
조반니노 과레스키 지음, 윤소영 옮김 / 막내집게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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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카밀로와 페포네- 내용은 가물가물하더라도 제목만은 기억에 남는 작품. 괴짜 신부 돈 카밀로라는 인물만이 기억에 남아서 언젠가는 꼭 다시 읽어보고 싶은 작품이었다. 돈 카밀로와 페포네의 작가 조반니노 과레스키의 수용소 시절의 이야기를 담은 '비밀일기' 는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책이다. 조반니노 과레스키는 이탈리아의 유머작가이자 저널리스트로 그의 작품에는 하나같이 유머가 함께 하고 있다. 이 책 '비밀일기' 조차도 말이다. 수용소 생활의 긴박함에도 그는 유머를 잃지 않는다. 오히려 담담하게 그려낸 수용소 생활이 더욱 뭉클하고 감동적이었다. 과레스키는 1908년 생으로 20세의 나이에 지방신문의 교정을 보기 시작했고 이후 여러 신문과 잡지에 글과 그림을 실었는데 이 책의 표지와 안쪽의 한장의 삽화는 아마 그의 작품일 것이다. 그리고 풍자잡지 <베르톨도>의 편집장으로 활약하던 중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고 임신한 아내와 세 살배기 아들을 남겨두고 전장속으로 들어간다.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정권을 비판하다가 군대에 재소집되었던 것이었다. 1943년 독일과 이탈리아 전선은 연합군과 휴전 협정에 들어갔고 독일은 이탈리아 군인들에게 '독일과 새로운 유럽의 승리를 위해 목숨을 바치라'는 선언문에 서명을 하게 했고 그에 반대한 이들을 독일군의 포로수용소에 강제 수용시켰는데 바로 과레스키는 이때 서명을 하지 않아서 수용소에 갇히는 몸이 되고 말았다.

 

바로 이 '비밀일기'는 이 때 과레스키가 자신을 위로하고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며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켜가며 그림과 글을 적어내려갔는데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후 두꺼운 책으로 만들었다가 불에 집어던지고 다시 당시의 수많은 메모속의 글들을 가지고 동료들에게 허가받은 것만 추리고 추려서 재편집한 책이 바로 이 책이 된 것이다. 자신이 이 전의 책을 불에 던져버렸던 일은 살면서 가장 잘 한 일 중에 하나라니 그의 대찬 성격을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래서인지 얇아진 이 책을 읽으면서 더욱 응축된 무언가를 느낄 수 있었다. 몇 달만에 아내에게 받은 소포가 온통 하나로 뭉게져 동료들이 쌀을 추려내고 그날 밤 조촐한 파티 비슷한 것을 하게 되는데 스프는 결국 비누였었고 잼인 줄 알았던 것은 꿀과 살충제가 합져진 것이었다는 둥 읽다보면 웃을 수 없는 상황인데도 독자를 웃게 만든다. 처연한 미소를 짓게 하는 글이다. 인간이란 이런 상황에서도 유머와 품위를 잃지 않을 수도 있구나 이런 극한 상황에서 살아남은 이들의 글은 어딘가 거룩하기까지 하다.

 

우리는 짐승처럼 살지 않았다. 우리는 아무것도 없는 무에서 민주주의 도시를 건설했다. 수용소에서 지냈던 많은 사람들이 지금 하루하루의 삶 앞에 당혹해하며 세상을 멀리하고 있다면, 그건 수용소 시절 그들이 이룩했던 민주주의와 지금의 가짜 민주주의가 너무나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음모의 진원지인 그 가짜 민주주의에서는, 늙고 젊은 해적들이 어울려 키를 잡고 해적선을 좌지우지하고 있다. - p15.

 

러시아 포로, 프랑스 포로, 이탈리아 포로 세 사람이 침대 널빤지를 고치려고 막사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한 독일인 장교가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 네 사람 가운데 누구도 서로의 언어를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들은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기나긴 토론을 펼쳤다. 그리고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했다. 군인들 사이에서, 단순하고 무지한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런 일이 늘 일어난다. 서로를 즉시 이해하는 일 말이다. -88p.

 

아이들이 너무 보고 싶은 군인들, 과레스키도 두고 온 아이들이 너무 보고 싶어서 상상속의 세째 아이를 기른다. 그 아이에게 말을 걸고 글을 쓴다. 철조망 가까이 갔다가 경비대의 총에 맞아 죽은 어떤 버지, 딸을 그리워하다 병으로 죽는 아버지, 그들은 누구의 남편이자 아버지이고 누군가의 아들이었다. 그런 아픔과 그 속에서도 서로를 위로하는 유머가 함께 어우러진 이 작품이 전후의 다른 유명해진 작품들처럼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다. 정말 심금을 울리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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