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올 것 이 왔다.

둘째 녀석은 6살 부터 사춘기였다고 그 아이 크는 내내 툴툴거렸는데, 그건 진짜 새발의 피였다는 사실. 더 무서운건 나 자신. 충분히 예상하고 있던 시기였는데도 막상 닥치니 나도 다시 사춘기가 된 것 같이 적응하기 어렵다. 상대적으로 '사춘기여자'였던 시절을 잘 넘어가주고 있는 큰 딸이 새삼 고맙고 또 고맙다.


우리집 '사춘기남자'는 현재 모든게 마음에 안든다. 

점심 도시락으로 싸주는 햄버거에 케찹이 많다해서 좀 줄여주면 어김없이 집에 오자마자 케찹은 어디갔냐며 쌍심지를 켜고, 잠깐 노트북 좀 쓸라치면 TV 보며 누워있다가도 갑자기 벌떡 일어나 숙제 해야되니 내놓으라고 억지를 부린다. 쇼파와 한 몸이 된지는 몇 개월 되었는데 이제는 거의 모든 일을 - 간식먹기, 숙제하기, 게임하기 등등- 쇼파 위에 비스듬히 앉아 해결한다. 그러면서 계속 허리가 아프다길래 허리에 안좋으니 바로 앉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더니 바로 발끈한다.

"난 이 자세여야 제일 집중이 잘 돼. 엄마랑 달라!"


"엄마는 말투가 왜 그래, 기분 나쁘게!" - 계속 짜증내길래 한 마디 했더니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들어올 때 노크는 왜 안해? 사생활 침해야!" - 13년 동안 한번도 안한 노크도 해야 할 판.

"진짜 그게 맞대? 엄마가 확인해 봤어? 안그럴 수도 있는거잖아. 그걸 어떻게 알아?" - 지구상에서 증명된 모든 사실들을 믿을 수가 없단다.

"왜 집 안에서 축구하면 안돼?" - 이걸 말이라고...


하루 종일 이런 대사들을 중저음에 변성기가 막 시작되려는 목소리로 속사포처럼 쏘아댄다.


충분히 예상한 일이었다. 

이 아이의 어렸을 적부터의 범상치 않은 생각과 태도, 통제할 수 없는 자유로운 영혼 덕에 나도 나름 훈련 받아왔다고 적응해 왔다고 생각했고 어느 정도 준비도 했다고 생각했는데 한 가지 빠뜨린게 있었다. 이런 당혹한 순간 순간 내 감정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별로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매사에 불평 불만인 녀석이 곱게 보이지만은 않지만 그렇다고 아직까지는 예상 밖을 벗어나지도 않으니 다행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그런데 내 감정은 좀 낯설다. 적응이 안되는건 내 반응.


누군가가 사춘기는 뇌를 뒤집어 엎어 새로 정리하는 시기라고 했다. 

그래서 아이는 매일 매일 혼란스럽고 어제와 다른 오늘의 자신에 대해 당황하는 시간을 보낸다고 했다. 그렇게 널뛰는 매일을 살아내는 아이 곁에서 엄마는 그저 바라봐주고 자리를 지켜주고 응원해 주면 된다는데......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라면! 


1969년에 초판이 나온 <부모와 십대 사이>에서는 사춘기 자녀의 부모들이 겪을 수 있는 상당히 많은 사례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불시에 찾아오는 난감한 순간들을 어떻게 대처할 수 있는지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다. 


좀 오래된 책이긴 하지만 아이들의 감정적 변화에 대한 대응 뿐만 아니라 이성교제, 성문제, 음주, 운전(미국 나이로 16세가 되면 면허를 딸 수 있고 운전을 할 수 있다), 마약 (미국에서는 공공연한 일) 등의 문제에서 실제 부모 자녀간의 대화나 부모들 간의 대화를 통해 어렵지 않게 생각할 꺼리들을 얻을 수 있다.





십대 아이들의 부모들은 오도가도 못 하는 진퇴양난에 빠져 있다. 도와주면 원성을 듣는 상황에서 도움 주는 방법을, 안내를 거절하는 상황에서 안내하는 방법을, 배려가 공격으로 오해받는 상황에서 아이들과 의사 소통하는 방법을 찾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십대 아이들과 부모들이 과연 서로 평화롭게 품위를 지키며 살 수 있을까? 특정한 조건 아래에서만 그렇게 살 수 있다. 그 조건이란 무엇인가? p.21


저자인 기너트 교수는 이스라엘에서 나고 뉴욕에서 일을 한 사람이니 아마도 유대인이지 않을까 싶다. 상당히 많은 부분을 '평화로운 대화'에서 해결책을 찾고 있는데 과연 이런 대화가 가능할까 하는 수준에까지 이르러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뇌의 리노베이션을 하고 있는 아이가 문제가 아니라 그 아이의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정상적인 대화를 시도하기 어려워 하는 내 자신이 문제처럼 느껴지니 사실 부담감을 팍팍 주는 책이기도 하다. 아이의 변화 앞에서 감정적으로 널뛰고 있는 나도 같이 변화를 겪고 같이 성장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위기감은 그나마 긍정적인 것이고, 욱하는 아이와 같이 욱하고 나서는 뒤돌아서서 자책하고 연민하고 힘들어 하는 것은 분명 뛰어넘어야 하는 일들이다.


그렇다고 무조건 친절하고 무조건 잘해주며 지켜보라는 것도 아니다. 화를 내야 할 때 적절히 내야 하고 따끔하게 혼을 낼 때 혼을 내야 한다는데 그것의 전제 조건은 <모욕 주지 않기>다. 내가 잘 못하는 부분이라 가장 많이 와닿았던 것 같다. <유익한 비판>과 같이 꼭 익혀야 할 부분. 


"모욕을 주지 않고 화를 내라는 말만큼 유용한 지적도 없어요. 그게 성숙한 어른으로서 내가 해야 할 역할 같아요. 그렇게 하면 시간도 절약되고, 침착함도 유지할 수 있어요. 나는 한가하게 마음에 상처를 주는 비난에나 몰두하면서 시간을 보내서는 절대 안된다는 결론에 도달했어요. 아이의 상처를 치유하기까지는 너무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부모의 자책감을 씻어내는 데 너무나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기 때문이에요. 어려운 상황을 처리할 때는 마음 속으로 방향을 설정해요. 무엇이 핵심 의도인가? 솔직하게 이야기하자. 아이가 해야 할 일을 명확하게 이야기하자. 논점을 혼돈하지 말자..." p.118


와...이런 대화와 설득이 가능하려면 대체 어떤 내공을 쌓아야 하는가. 

아이가 사춘기를 맞기 전에 미리 충분히 성숙한 성인이 되어야 하던지 아니면 훌륭한 대화법을 미리 배워 놓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나처럼 이미 아이가 사춘기를 지나는 중에 있거나 이미 지나버린 사람들은 절망할 소리일지도 모르겠지만, 참 부모의 자리가 새삼 어렵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에겐 진실한 '대화'가 필요하다는 것. '진실함'은 통하겠지.




 이 책과 같이 읽은 책은 2010년에 출간된 <내 아이와의 두 번째 만남>. 홍진표, 박수빈 두 저자는 기너트 박사가 교육자인 것과는 달리 의대를 나와 소아정신과에서 아이들을 만나는 의사들이라 그런지 조금 더 물리적인 접근으로 아이들을 바라본다. 아무래도 최근 책이고 우리나라의 상황에 맞춘 책이니 구성 면에서는 좀 더 실질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게임중독, 부모의 이혼문제, 또래 사이의 따돌림 문제, 진로문제, 이성교제, 학습 문제 등에서 아이의 입장과 부모의 입장을 같이 기술했다. <부모가 느끼는 내 아이>, <아이가 느끼는 내 부모>, <구체적인 대처법>, <체크리스트> 등으로 구분을 잘 해서 마치 몇몇 사례들의 매뉴얼 같은 느낌도 든다. 구체적인 사례들을 때에 따라 찾아 보면 좋을 듯.


<부모와 십대 사이>가 좀 더 교육적이고 본질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고 대화 중심적인 해결책을 제시한다면 <내 아이와의 두 번째 만남>은 실제적이고 대처 방법 중심적이라 상황이나 사례가 잘 맞는다면 실질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을만하다......그리고 나도 좀 도움을 받았으면 좋겠다^^


아이들과 함께 하면서는 하루에 열두번도 더 자책감과 자괴감에 빠지고, 또 반면 즐거운 웃음과 행복을 느끼기도 하는데 이건 뭐 정신병도 아니고...아이들과 같이 널을 뛰고 있다. 부모가 되기 전에 완벽한 부모로 준비되어 있는 사람은 분명 없을 것이고 (이론적으로도 가능하지 않다. 부모가 안되어 봤는데 어떻게 완벽하게 준비되어질 수가) 그저 좀 더 성숙한 태도를 가지고 있느냐 아니냐의 차이가 아닐까 싶기도 하고...이런 저런 생각에 머리 아프려다가 내가 내린 결론은.


부모로서, 엄마로서의 내 자신을 내가 먼저 사랑하고 존중하고 아껴야 겠다는 뜬금없는 생각. 

내가 나 자신을 부모로서 부족하다 생각하고 자격없다 생각하는 그 순간이 결국 아이와의 관계도 깨지는 순간이 아닐까 싶다. 그저 선물이라 생각하고 기쁘고 즐겁게 누리도록 애쓰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내 소유도 아니고 남편 소유도 아니고 그저 이 아이들은 각자 자기 자신일 뿐이니. 내가 나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듯이 아이들도 그렇게.


오늘도 역시 반쯤 누워 숙제하는 아들 옆에서 엄마가 이렇게 고민하고 잘 해보려고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 주었으면 하는 마음에 옆에서 이 책들을 읽어댔다ㅋㅋ 제목 보고 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하지만 엄마 마음 알겠지 뭐. 그래도 모르는 척 하면 알려주지 뭐.


"내가 널 많이 사랑해."

"잘 자라고 있는 네가 자랑스러워"

"그리고 우리 잘 지냈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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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사이 2014-12-09 1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응원합니다. ^^

책을사랑하는현맘 2014-12-09 23:32   좋아요 0 | URL
응원까지 해 주시니 갑자기 더 힘이 나는걸요? 감사합니다!^^

댈러웨이 2014-12-10 06: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응원합니다 2. 반갑습니다, 책을사랑하는현맘 님. ^^

책을사랑하는현맘 2014-12-10 10:47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댈러웨이님^^ 반가워요~

라로 2014-12-10 14: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좀 더 일찍 이 페이퍼를 만났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제라도 만나서 좋네요!!^^*100% 공감합니다!!!! 전 요즘 한 고비는 넘긴 것 같아요. 일단 아이가 바쁘니까 그걸로~~~^^;;;;

책을사랑하는현맘 2014-12-10 23:24   좋아요 0 | URL
아이가 바쁜 것도 정말 중요하죠~ㅎㅎ
이럴땐 서로 뭔가에 각자 집중하는 시간도 정말 필요한 것 같아요.
아롬님은 아이들과 정말 잘 지내실 것 같은데요?^^

울보 2014-12-11 1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우리집에도 있습니다 .전 너무
우울학 요즘 아무것도 제가 하기싫어지기도 합니다

책을사랑하는현맘 2014-12-12 03:07   좋아요 0 | URL
벌써 그렇게 컸군요~^^ 여기저기 이집저집 엄마들의 한숨 소리가 들리네요.
저도 자주 우울하고 속상하지만 어쩌겠어요. 우리 아이들인데요 ㅎㅎ
우리 같이 힘내봐요! 울보님도 화이팅!!

아이리시스 2014-12-12 0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일단 웃고~ 다들 조금씩 그렇겠지만 이 소년은 예전부터 좀 달랐죠.. 시도 좋고.. 근데 진짜 웃겨요ㅎㅎ

책을사랑하는현맘 2014-12-12 03:09   좋아요 0 | URL
시를 쓰던 그 소년은 어디로 간걸까요? ㅋㅋ
보통 사춘기에 감성이 폭발하던데 이 녀석의 감성은 사춘기를 기점으로 사라져 버린 것 같아요. ㅋㅋ

수이 2014-12-17 1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태그_ 왜 이리 공감 가죠. 딸아이랑 친구처럼 지내면 좋겠어~ 그러면 십대인 딸아들을 가진 친구들이 하는 이야기는 원수만 안 되면 다행이다_해서 움찔움찔거리고 있어요;;; 그래도 소년~ 엄마 마음 잘 알겠죠. :)

책을사랑하는현맘 2014-12-18 01:09   좋아요 0 | URL
ㅎㅎ 원수까지 될 일은 그리 많지 않겠지만, 엄마 마음이 오르락 내리락 하게 되는건 맞는 것 같아요. 아이도 역시 그런 시기일텐데 어떻게 보내면 좋을까요. 고민만 하다가 소년이 청년이 되어 버릴까 그것도 걱정이네요 ^^
방문해 주셔서 감사해요.
 

크리스마스에 갈 예정이었던 뉴욕 방문을 한 달 앞당겨 다녀왔다. 비싼 숙박료를 내지 않아도 되는 딱 좋은 기회가 생겼기 때문이기도 하고 몇 달 따뜻한 동네에 살았다고 12월의 추운 바람, 추운 날씨의 뉴욕이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언제가 되었든 뉴욕행은 항상 설렌다. 만날 사람들, 반겨줄 사람들이 있어 쓸쓸한 여행객처럼 밥을 먹지 않아도 되고, 일단은 구석구석 익숙한 곳들이라 편안하면서도 계절에 따라 시간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에 늘 기대하게 만드는 도시다.


단풍을 보기엔 너무 늦었고, 크리스마스 장식을 보기엔 너무 이른...이 애매한 때에도 역시 뉴욕은 뉴욕. 

지난번 방문 때는 이틀의 여유가 있어서 미드 타운 중심으로 Times Squre와 The High line, MOMA를 들러 Chelsea까지 내려갔었는데 이번엔 단 하루 뿐이라 많이 다니지는 못했다. 지난번에 돌아보지 못한 다운타운을 가기로 하고 숙소에서 출발하여 지하철로 이동. 날도 흐리고 기온도 낮아 살살 날리는 눈발 사이로 바람은 어찌나 매서운지. 오랜만에 뉴욕의 한기는 매서웠지만 덜덜 떨면서도 우린 '그래도 역시 뉴욕은 겨울이 최고야!' 이러면서 다녔다. 비록 중간중간 몸을 녹일 곳을 찾아 들어가야 했지만서도.


다운타운 가운데는 Little Italy라는 이탈리안 거리와 China Town이 자리잡고 있는데 사람 많은 곳이 싫어 일단 패스하고 west 쪽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근 몇 년 사이 가장 hot하다는 SHAKE SHACK BURGER. 원래 있던 Madison Square Park에 갔더니만 딱! 없어져 버려서 당황했다. 날씨가 너무 추워 아이들의 원성이 자자했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와서 그냥 갈 순 없다 의지를 불태우고 다시 지하철 타고 이동. 내려서도 몇 블럭을 걸어 도착한 곳. 이 날씨에 바깥까지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지만 꿋꿋이 들어가서 주문하고 결국 먹었다! @.@




이 곳이 유명한 이유가 모두 수제라서 그렇다는데 역시나 가격은 좀 쎈 편이다. 처음엔 너무 오래 걸어 배가 고파 생각보다 작은 크기에 실망했지만 먹어보니 더 컸으면 별로였겠다는 생각도 살짝~치즈가 좀 느끼한 편. 감자 튀김은 사진에서도 맛있게 보이는데 진짜 맛있다. 

처음 목표를 이루고 배도 부르고 하니 그 다음엔 목표의식 상실 ㅋㅋ 어디로 가야할지 가족끼리 의견이 분분하다가 그냥 일단 걷기로 했다. 추워서 힘들어 하면서도 해 질 때까지 툴툴거리면서 잘 걸어준 두 아이가 기특할 정도. 






점점 해가 지기 시작하더니 기온은 급격히 하락. 

뉴욕대까지 걸어 올라오는 길에는 작은 갤러리들, 브랜드샵들과 까페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서 간단히 눈요기 하기도 좋고 그리 복잡하지 않은 뉴욕의 모습을 볼 수 있어 나름 괜찮았는데 사실 우리 부부가 좋아하는 것들은 샵이나 까페들이라기 보다는 낡은 건물들, 거리 간판들, 지나가는 사람들 구경이다. 갤러리만 보면 들어가 보고 싶었는데 역시 아이들과 함께 하는 여행에는 제약이 많이 따른다. 4시가 넘어가니 뉘엇뉘엇 해가 지고 날은 더 싸늘해졌다.

결국 숙소로 돌아가기로 결정하고 나니 도착한 곳이 딱 UNION SQURE! 이럴수가. 나와 남편은 충분히 더 걸을 수 있고 걷고 싶은데 아이들의 표정을 보니 불가능할 것 같아 눈물을 머금고 포기. 아...진짜 재밌는 곳은 이제 시작인데. 언젠가 기필코 다시 와서 재즈 까페와 뉴욕 밤거리를 마음 놓고 활보하리라!! 다짐은 했지만 실상은 언제 다시 올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다시 올 때 쯤이면 이렇게까지 다닐 수 없을만큼 관절이 노쇠해져 있을지도 모르는 슬픈 현실. 그래도 뉴욕은 언제든 올 마음이 있는 곳이다. 뉴욕이 망하지 않는다면! ㅋㅋ


뭐랄까. 

서울처럼 깨끗하고 팬시하지는 않은데, 거리는 맨날 공사중이고 택시들은 광란의 질주를 하고 공기도 안좋고 거리는 낡고 더러운데, 뉴욕만의 독특한 분위기가 있다. 자본주의의 메카이면서도 개개인의 순수한 개성이 살아있는 느낌이랄까. 거대한 프랜차이즈 브랜드들이 즐비하고 화려한 조명과 야경으로 화려한 것 같은 이면에는 녹녹치 않은 이민자들의 수많은 삶도 있고 자신만의 꿈을 꾸는 예술가들의 삶도 녹아져 있다. 다양한 문화와 다양한 형태의 삶들을 품고 있는 곳. 가장 비싼 것과 가장 싼 것이 공존하는 곳. 


뉴욕은 미국이라고 할 수 없다. 뉴욕은 뉴욕일 뿐. 

좋았던 부분들도 있지만 반면 내면을 들여다 보면 여전히 시한폭탄 같은 문제점을 안고 있기에 안타까운 마음도 든다. 너무 풍족하고 화려한 소비 사회가 곧 망할 것 같은 징조들이 조금씩 보이는 것 같고 정말 다양한 인종들 틈에서 급부상하는 중국인들의 위치도 만만히 볼 게 아니다. 뉴욕을 뉴욕답지 못하게 하는 주범인 듯도 싶고. 뭔가 황혼의 길에 들어선 대도시의 모습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 만감이 교차했다.

다음날 화창하게 맑은 날씨에 뉴욕을 출발하며 건넌 Queensborough bridge의 낯익은 모습이 좀 더 아쉽다. 




언젠가, 아주 늙어서 걷기 힘들기 전에 다시 한 번 더 만날 수 있는 시간을 기약하며...

당분간은, 어쩌면 오랫동안은 책 속의 뉴욕만 만나야 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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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4-12-04 0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뉴욕은 겨울이 최고라는 말에 저도 100%공감합니다!!! 그리고 뉴욕은 뉴욕이죠~~~~ㅎㅎㅎ
언제 캘리포니아 쪽으로는 안 오세요?? 여름에 오셨다 가셔서 그럴 시간이 없으실 것 같긴 한데~~~ 참 비행기 타실 때 고생 안 하셨어요??? 공항에 주차할 곳이 없어 헤맸다는 제 상사말을 들으니 거긴 더 할 것 같네요~~~~.
글 잘 읽었어요!! 아주 좋아요~~~^^*

책을사랑하는현맘 2014-12-04 03:19   좋아요 0 | URL
아롬님~(닉네임 바꾸셔도 아롬님이라고 부르게 되네요^^)
캘리포니아 쪽에는 아쉽지만 갈 일이 없을 듯 해요. 사실 저희는 차를 몰고 동부에서 서부로, 다시 서부에서 동부로 횡단을 했거든요. 이번에 뉴욕도 거의 10시간 운전해서 다녀왔답니다. 드라이브를 좋아하는 저희라 가능했지요.
캘리포니아로 넘어가는 사막 쪽은 정말 분위기가 독특하던데요? 날씨가 참 좋았었는데 그래도 전 동부쪽에서만 살아봐서 그런지 야자수가 익숙하진 않더라구요 ㅎㅎ

마녀고양이 2014-12-04 15: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여행가고 싶네요 ㅠㅠㅠㅠ

책을사랑하는현맘 2014-12-05 00:49   좋아요 0 | URL
가고 싶을 때 딱 갈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지만
어느날 갑자기 떠날 수 있는 선물 같은 일이 일어나시길 바래요!

2014-12-08 01: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2-08 13: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음과 마음이 이어질 때
게일 맥도날드 외 지음, 윤종석 옮김 / IVP / 1994년 8월
평점 :
품절



  중고등학교 시절, 그리고 대학 시절. 나는 친구들 중에서 단연 손편지를 가장 많이 쓰는 사람 중에 하나였다. 친구들은 내 엽서나 편지를 받고 답장을 썼었고 엄청나게 많은 그 답장들은 얼마전에 이사를 한 친정집에서 발견했다. 신발 상자로 몇 개에 가득찬 그들의 답장들을 보며 난 얼마나 많은 편지들을 써 댔던걸까, 도대체 그 내용들은 무엇이었을까, 이렇게도 다양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난 뭐라고 말을 걸었었나 무척 궁금했지만 궁금함을 풀 길이 없다. 나에겐 그들에게 쓴 내 편지가 없으므로.

 

  십수년만에 만난 대학 때 친구와 수다를 떨며 알게 된 사실은, 그때 그녀에게도 내가 자주 엽서를 건넸다는 것이다. 그녀는 한창 힘들 때 그것에 위로를 받았고 내 격려와 위로가 여전히 기억에 남는다고 이야기 해 주었다. 사실 그녀에게까지 엽서를 건넸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별로 친하지 않았다고 생각했고 지금 역시 몇 년에 한 번 정도 보는 친구이기에. 난 그녀에게 어떤 마음이었을까? 그 시절의 나는 진짜 상대의 마음을 읽고 위로하는 자리에 있었을까? 그저 위로자의 자리에 서고 싶었을까? 아니면 돌아오는 칭찬과 찬사에 목말라 있었을까...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고 싶었고, 때론 위로를 건네고 싶었고, 그리고 그 결과로 괜찮은 사람이라는 칭찬도 받고 싶었던 나의 반짝거리던 모습은 시간이 흐른 어느 시점에서 보니 그 빛이 바래 원래 모습이 어땠는지 그게 진짜 내 모습이긴 했었는지 의문스러울 정도로 변해버렸다. 이 세상에서 가장 위로 받을 사람은 나야, 내가 가장 불행해, 내가 가장 우울해, 더 이상 다른 사람을 돌볼 여유 따위는 없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몸부림쳤던 시간만 남아버리고 어느새 너무 나에게만 촛점이 맞추어져 다른 사람의 마음 따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조차 잊어버린 가여운 나를 발견할 뿐이었다. 여러 환경 탓을 할 수도 있겠고 꼬이고 꼬였던 인간관계에 원인을 둘 수도 있겠지만 그게 무슨 소용일까. 확실한 사실은 내가 변했고 지금은 다른 사람을 돌아볼 여유가 없이 쭈그러들어 주저앉아 있다는 것.


  길고 긴 단절의 터널 속 어두움에 삼켜져버려 원래 내가 어떤 모양이었는지 잊어버릴 때 즈음, 다시 찾고 싶다 생각할 때 즈음, 그게 가능이나 할까 하며 다시 포기하고 있었던 때에 우연히 떠밀린 모임에서 이 책을 함께 읽게 되었다. 책 제목만 듣고 참석하게 되었는데 후에 '관계'에 대한 책이라는 것을 알고는 상당히 부담스러웠다. 내가 제일 피하고 싶은 주제. 제일 귀찮아하고 제일 비관적인 부분. 게다가 교회 안에서 진행되는 모임이기에 가지게 되는 자연스러운 의무감 같은 것들 때문에 마음이 상당히 복잡했다. 타고난 책임감과 성실성으로 시작하긴 했지만 참 난감했던 첫 시간.


***


  기대하지 않고 오히려 부담스러웠던 책이었는데 읽어내려가며 그 인사이트가 상당함을 깨닫고 예상치 못한 흥미가 생겼다. 사람 내면의 심리와 관계에서의 어려움, 사람을 어떻게 살리고 세워가는지 결국엔 어떤 모습이 되어야 마음이 통하는 관계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경험적인 내용이 인상 깊게 다가왔다. 수십년의 목회 활동과 부부생활을 겪으며 그들이 깨달은 것을 신중하게 고른 의미있는 단어들과 문장으로 담담하게 써 내려간다. 물론 이 책은 기본적으로 예수를 아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지만 기독교를 믿지 않는 사람에게도-혹시 관계에 어려움을 겪고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수긍이 갈 만한 방법을 제공하는 책이다. 관계에서 친밀함을 누리고 사람 사이에 반목과 갈등을 뛰어 넘는 하나됨 - 특히, 가족이나 부부 사이-을 갈망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될 수 있는 이야기들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한 발 더 깊이 들어가 이 책을 보게 되면 일반론적인 이야기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서로를 향해 투명해야 하는 이유, 서로에게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고 용서해야 하는 이유, 객관적이고 일상적인 대화의 단계를 넘어서 마음과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소통을 해야 하는 이유, 불편하고 힘든 갈등 관계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헌신해야 하는 이유, 공동체 안에서 민감함을 가지고 어려운 상황에 있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세워야 하는 이유...이 모든 이유는 예수가 자신의 12명의 제자들을 어떻게 다루었는지에서 찾을 수 있다. 그가 배경이 다른 12명의 사람을 불러 함께 지내며 보였던 모습에서 그 방법을 찾을 수 있다. 사실 그 이유가 아니었다면 굳이 그렇게 살 필요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


 그런데 내가, 혹은 우리가 그런 노력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언제나 사람들과 잘 지내보려고 하고 특히 가족들과는 항상 부딪히지만 또 극복하려고 애쓰고 희생하기도 하니까. 하지만 내가 발견한건 결국 나의 한계다. 그저 참고 인내하고 용서하는 것만으로는 뭔가 부족하다. 스멀스멀 올라오는 불안함과 부당함에 대한 항변, 피해의식과 비판하고 싶은 욕망 등이 나를 결국 다시 원점으로 되돌리기도 한다. 그럼 난 어떻게 해야 할까? 도를 닦듯 실패해도 또 일어서고 실패해도 다시 시작하는 불굴의 의지를 가진 인조인간이 되어야 하는걸까? 


 기독교에서는 그것은 불가능하다고 애초부터 못을 박는다. 이 책에서도 결국 인간 스스로는 완벽하게 이룰 수 없는 영역임을 암시한다. 챕터마다 제시하고 있는 인간적인 방법들은 꽤 도움이 되지만 새로운 것들은 아니다. 이미 세상에 많은 책들은 관계의 회복에 관해 심리학 분야, 교육학 분야, 처세술 분야에서 넘쳐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약 관계의 회복과 사람들 사이의 이상적인 하나됨의 본을 예수에게서 찾아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책은 약간의 도움을 넘어서 큰 깨달음과 감동을 줄 것이다. 예수가 자신을 배신하고 핍박했던 사람들을 어떻게 대했는지, 서로 누가 더 잘났느냐 싸우는 제자들을 위해 어떤 기도를 했는지, 그의 제자들이 변하여 예수의 도를 전할 때 그들이 교회의 하나됨을 위하여 어떻게 행동 했는지를 찾아 볼 수 있다.


 어렸을 때 다른 사람들에게 많은 위로의 편지를 썼던 나는, 어쩌면 나를 위로하고 싶어 그랬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늘 상대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지만 상대의 마음과 상황과는 별개로 내 만족을 바라보고 있지는 않았나. 물론 그때의 순수한 민감함이 누군가에게 진짜 위로가 되었었다면 참 감사한 일이지만...


 나이가 더 들은 지금의 나는 진심으로 타인을, 가족을 혹은 친구를 잘 세워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일방적인 소통이 아니라 정말 '마음과 마음'이 이어져서 투명하게 서로를 바라보고 민감하게 상대를 다루며 온전하게 사람을 세워주는. 지금의 나는 완벽하게 그렇게 할 수는 없지만 본이 되는 예수를 따라 가다보면 열매를 볼 수 있게 되리라 믿고 싶다.


그 시작은 정말 놀랍게도 단순하다. 내 앞에 있는 사람을 사랑하기로 '결단하는 것'. 그리고 실행에 옮기는 것.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 같지만 이건 진짜 어려운 일이다. 상대의 어떠함이 문제가 아니라 내 마음의 어떠함이 문제라는 것. 그게 이 책의 출발점이다.


사랑을 통해 친밀함을 개발시키기 위해 예수님이 가르치신 첫 번째 원리는 바로 사랑하기로 결단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그것을 실행으로 옮기라는 것이다. p.34

모든 것은 헌신에서 시작된다.-진정한 친밀함은 헌신 - 한계를 뛰어넘어 연합으로 이끄는 행위-에서 시작된다. 한 사람과의 관계를 선택한 다음, 그 관계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요구되는 모든 대가를 치불하는 것이다. p.49

자기의 권리를 포기하는 것이 바로 헌신의 시작이다. p.57

친밀한 사람은 투명하다.-자신의 삶을 열어 보인다는 것이 간단한 일은 아니지만, 그것이 되지 않고는 결코 가치 있는 관계를 유지할 수 없다. 투명한 사람이 되려는 마음이 없이는 친밀한 관계를 누리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p.67

최초의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에 뭔가 문제가 생겼음을 알려 주는 맨 처음 신호는 갑자기 아담 쪽에서 투명함이 사라지면서 찾아왔다.p.69


예수님은 투명한 인간의 모범이셨다. 그 분은 경제적 수준이나 영적 능력에 관계없이, 관심 있는 사람은 누구나 알 수 있는 투명한 분이셨다....만일 하나님의 아들이 자신의 삶을 제자들에게 열어 보이지 않으셨다면, 그 분은 결코 그런 제자들을 남기실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사람들은 신학자가 아니었다. 단지 예수님과 함께 걷고 함께 사는 삶을 통해 인생의 청지기 직분을 배우는 학생들이었다. 이들이 성장한 것은 예수님의 삶이 플라톤의 새로 지은 집처럼 방마다 창문이 달려 있는 삶이었기 때문이다. p.71

사람들이 한쪽만을 내보일 때는 - 투명함을 거부하고 인격의 좋은 면만을 보이면서 무엇을 숨기려 하는 것일까? 일반적으로 우리는 고통과 연약함과 수치를 숨기려 한다. 사기꾼 증후군 p.76

자신을 알려는 노력이 없이는 절대로 투명함에서 건전한 관계를 이룩할 수 없다. 자신을 향해 건전한 비판을 추구할 때에만 그 많은 창문은 비로소 열리기 시작한다. 우리 삶의 뒷방에는 어떤 두려움과 수치심과 낭패감과 죄책감과 모욕감이 자리잡고 있는가?


만일 사람이 자기를 바로 알고 하나님 앞에서 제대로 깨어질 수 있다면, 그것은 다른 사람들을 향하여 투명해지는 법을 배우는 면에서 첫번째이자 가장 중요한 단계를 밟은 것이라 할 수 있다. p.82

민감함 : 안을 들여다보는 기술 - 예수님은 인간 안에 있는 두려움을 미리 아셨다. "베드로야, 두려워 말라. 너는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될 것이다." 놀랍고 친밀한 우정은 이렇게 민감함에서 시작되었다.p.91

민감함의 뿌리는 에덴 동산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아담이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길을 선택하고 자신의 투명함을 잃어버렸을 때, 그 영향은 즉각적이고도 비참한 것이었다....이제 하와는 아담이 자신에 대해 들려주는 이야기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하와는 아담의 말을 귀담아 듣고 그 무게를 저울질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의 얼굴과 몸짓을 유심히 살펴야만 했다...하와가 아담을 친밀하게 알려면 아담 쪽에서 투명해지려는 노력이 있어야만 했다. '관계의 협력'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아담은 투명해야 했고 하와는 민감해야 했다. 서로를 진실되게 아는 정도와 친밀함의 형성 여부는 바로 그런 노력을 얼마만큼 열심히 하느냐에 달려 있다. p.93

적절한 순간을 기다리는 법 - 민감함이란 기도와 경청하고자 하는 마음을 통해서, 그리고 조심스럽게 행하는 지속적인 연습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다. p.104

상대방 속에서 발견한 잠재력과 가능성을 본인에게 얘기해 준다면, 그것이 바로 오단계 대화에 나타나는 인정이다. 다른 사람을 인정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그들의 현재의 가치와 미래의 잠재력을 믿는다는 말과 같다.p.146

많은 그리스도인 사이에서 비난과 험담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책망에 능한 사람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사실을 지적해 주기가 두려워서, 좋은 친구들과 동료들이 이런저런 형태의 개인적인 파산의 지경으로 치달아도 그냥 내버려 두는 경우가 꽤 많다.p.149

만일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아무런 갈등도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문제다...갈등이 없는 관계는 오래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독실한 그리스도인도 예외는 아니다. 갈등이란 대화에서 불가피한 부분이다.p.162

사도들은 자기들의 리더십에 대한 비판을 들었지만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의 원망하는 마음을 바로 처리하기 위해 일단 문제를 표면으로 제기했다. 자칫 파괴적인 결과로 이어질 우려가 있으므로 속으로만 투덜대는 상태에 그냥 놓아 두지 않았던 것이다...불이익을 당한 쪽 사람들 역시 비난만 일삼은 것이 아니라 문제의 해결에 참여했다는 사실이다...많은 경우 갈등을 제대로 처리하면 성장이 찾아온다. p.167

그들의 사고에서 우위를 점한 것은 전통이 아니라 진실이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손이 함께했다는 증거가 분명히 제시되고 인정되자, 순식간에 의견 일치가 이루어졌다.p.168


 10과 <일이 뜻대로 잘 안 될 때>와 11과 <사람을 세우는 법>은 상당히 인상적이고 감명 깊은 통찰을 주는 챕터이다. 특히 위의 인용문에 해당되는 사건- 베드로가 이방인 고넬료의 집에 가서 대접을 받았다는 사실에 논란이 일었다. 사도들은 오랫동안 지켜온 율볍에 어긋나는 행동을 두고 쉽게 비판하고 손가락질 하는 대신 열린 마음으로 문제를 검토하기로 했고 결국 생명처럼 고수했던 전통의 겉 형식을 따르지 않기로 결정한다. 그 안에 율법이나 전통보다 더 중요한 진짜 진실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그 과정에서 사도들이나 기존의 구성원들이 극복해야 했던 것은 자존심을 세우며 전통을 고수하느냐, 아니면 본질을 꿰뚫는 진실을 인정하고 새로운 시도를 하느냐의 선택의 순간이었다. 보통 사람들은 전자를 택한다. 그것이 훨씬 안전하고 자신의 자존심과 지위를 유지할 수 있는 방안이기 때문이다. 이제까지의 내 신념이 옳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인격이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쉬운 일이 아니다.


 교회 안에서 더 좋은 것을 지향하기 위해 만든 형식과 율법이 정말 지켜야 할 본질을 흐리는 일이 얼마나 자주 있는지를 생각해보면, 그리고 그 입장을 내려놓고 본질에 다가서는 일이 얼마나 큰 진통을 주는지를 생각해 보면, 이 때의 사도들과 성도들의 믿음이 얼마나 복음중심적인지 - 예수의 본을 잘 따라가는지 - 알 수 있다. 작은 규칙이나 교회의 전통을 지키지 않는다는 이유로 서로 비난하고 힐난하고 결국엔 의가 상해 보지도 않고 사는 일들이 비일비재한 교회의 모습을 생각하면 진심으로 마음이 많이 아프다. 교회 안에서 추구해야 할 진실인 '예수의 사랑으로 서로 용납하고 사랑하는 것'이라는건 그저 성경에 있는 고리타분한 이야기로 치부되고 마는 일들이 너무 많다.


 몇 몇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열심히 봉사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자기의 룰에 맞춰 움직여주지 않는다고, 자신의 기대에 부흥하지 못한다고 그의 신앙을 판단하고 인격적으로 모독을 주는 일을 서슴지 않는다. 어떤 이는 서로 다른 생활 습관 때문에 불편하다는 팩트를 두고 투명한 커뮤니케이션은 하지 않은 채 그저 피하면서 상대방에게 결국 상처를 주고 말기도 한다. 더욱 사랑해야 할 사람들이 서로의 작은 차이를 인정하지 못해 교회 안에서 더 아파하고 상처받는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면 관계가 더 중요하다는 아주 기본적인 사실을 사람들은 가장 어려워한다.

 그만큼 우리 모두 마음이 닫혀 있고 상처받아 있으며 어그러져 있다. 진실에 반응하지 못하는 현대 그리스도인.


갈등 없는 관계는 결코 오래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독실한 그리스도인도 예외는 아니다. 갈등이란 대화에서 불가피한 부분이다….갈등이 반드시 나쁘거나 잘못된 것만은 아니다. 잘 처리하기만 한다면 갈등을 통해 친밀함이 이루어질 수도 있다. p.162

사도행전에 나타난 그리스도인의 관계들을 연구해 보면, 불일치라는 주제에 대해 방대한 양의 자료가 등장한다….그들의 사랑에 갈등이 배제된 것처럼 보이게 하지는 말라. p165

이기는 것보다 관계가 더 중요하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관계에는 이기는 사람도 없고 지는 사람도 없이 '성장하는 사람'만이 있을 뿐이다...사실에 도달하는 것보다 이기는 것에 더 관심이 많게 마련인데 그것이 바로 파괴적인 갈등이다. p.170

갈등에 분노가 들어설 자리는 없다...남자든 여자든 대개 화를 잘 내는 사람은 갈등에서 '이기게' 되어 있다. 그러나 이런 환경에서는 결코 친밀함이 자라날 수 없다.자신이 화를 잘 내는 사람이라는 것을 안다면, 그 기질을 스스로 다스릴 수 있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어린 아이는 흔히 원한을 품지 않는다. 인간이 하나님께 가장 가까워지는 때는 바로 자비를 주고받는 과정에 있을 때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p.173

  

 예수의 본을 잘 따르는 집단이라고 해서 '갈등'이 없을거라는 기대는 하지 말아야 한다. 갈등이 있으므로 오히려 더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예수와 제자들 사이, 제자와 제자들 사이에서도 심각한 갈등들이 존재했었고 그것을 풀어 나가는 과정에서 그들은 예수의 행동을 보고 한 단계씩 성장해 갔다. 하지만 갈등의 와중에 당장은 '목소리가 큰 사람'이 이기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특히 여기서 다루고 있는 것은 '화 냄'의 문제이다.


 친밀했던 관계도 '분노'와 '화' 때문에 얼마나 많이 갈라지는지. 화에 가까운 짜증이 많았던 나에게도 많이 와 닿았던 부분이다. 사실 원래부터 화가 많은 사람은 없다고 본다. 나 역시 성장과정에서, 혹은 트라우마에 가까운 어떤 사건들로 인해 해결되지 못한 내면의 문제가 상실감과 같은 '짜증'으로 나타날 때가 많았다. 문제는 그런 분노와 화를 정당하게 풀고 해결하지 못한채 억누르고 간과하고 무시했던 결과, 가장 가까운 사람들 - 가족-에게 어려움을 되물림하게 되는 악순환이 시작된다. 집 밖에서는 표현하지 못하고 억누르고 체면 차리느라 아닌척 했던 본래의 모습들이 가장 편안한 사람들에게 고스란히 폭발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 친밀함은 고사하고 함께 있는 것조차 불편하고 둘러싼 공기는 지극히 무거울 수 밖에 없다. 


  기질을 스스로 다스린다는 것은 상태가 어느정도 괜찮을 때 할 수 있는 이야기다. 스스로 다스릴 수 없을 때라고 판단이 들면 주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어떤 계기가 필요하다. 투명해 지고 솔직해 지는 것이 무척이나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친밀함을 포기할 만큼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한다면 꼭 필요한 과정일 것이다. 나 역시 그 과정을 인정하고 내 상태를 인정하고 스스로를 돌아보기까지 결코 적지않은 시간이 걸렸고 아직도 해결하고 있는 중이다.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친밀한 관계, 서로 마주보며 웃고 친밀한 스킨쉽을 나누고 서로가 서로를 의지하며 세워주는 일은 결코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다.


사람을 세우는 법 - 인내란 다른 사람에게 성장할 시간과 여지를 충분히 주려는 마음을 뜻한다...인내는 관계의 윤활유이다. 관계에 긴장감이 돌 때 인내심이 있는 사람은 그것을 바로 들쑤시지 않는다...친밀한 관계에서는 적절한 지적의 시간을 기다릴 수 있는 충분한 인내가 있어야 한다. p.186


인내를 동조로 오해해서는 안된다. 인내는 다른 사람의 미숙한 모습이나 무책임한 행동을 모르는 체하는 것이 아니다. 인내란 사람마다 성장의 시기가 다르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다. p.187


바울은 우리에게 실족하는 그리스도인에 대해 끝까지 충실할 것을 명하고 있다. 성경은 세상에서 고생하는 연약한 사람들에게 보호의 손길을 내밀도록 우리를 부르고 있다. p.194

세워주는 관계에는 용서가 필요하다. - 용서란, 관계에 상처가 생겼을 때 그 일로 인해 상대방을 나쁘게 생각하지 않기로 의식적으로 선택하는 것을 뜻한다. 잊어버리는 것은 정답이 아니다. 긍휼을 베풀기로 선택했다고 말하는 것이 정확하다. 용서란 마치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그런 행동을 한 적이 없는 것처럼 그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갖기로 결단하는 것이다. 용기가 필요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이 있어야 가능하다. 용서란 스스로 과거에서 벗어나 미래를 바라보기로 선택하는 것이다. p.202


 용서에 대한 이런 구절들을 보며 생각하는 것은, 용서가 어려운 이유는 정말 용서가 안되서라기 보다는 그렇게 하기로 마음 먹지 못해서라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싫은 것 뿐이지 어쩔 수 없이 용서를 못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어려운 일이다. 누가 자신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고 싶겠는가. 나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준 누군가는 그냥 계속 미워하는 편이 더 편하다. 용서하겠다 마음 먹으면 그때부터 심적 갈등은 더 거세진다. 마음 속 자아와 치유되지 않은 상처들은 아우성을 칠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용서하겠다고 마음 먹는 것이 가능할까? 그 질문은 또 다시 예수를 가리킨다. 예수의 십자가의 진정한 의미를 아는 사람은 용서를 하기로 선택할 수 밖에 없다. 사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부분이고 이 문제가 해결되어야 사람들 사이에서 진정한 용서와 고백이 이루어지는 것이리라.


  마지막 두 챕터는 모든 인간관계에서 가장 친밀함을 추구해야 할 부부 관계에 촛점이 맞추어져 있다. 밖에서 아무리 인간관계를 잘 맺고 인격적으로  괜찮은 사람이라는 평가를 듣는 사람이라도 가정에서 특히 배우자에게 그런 평가를 받지 못한다면 이중인격일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실상 많은 사람들은 가족이 편하다는 이유로 배려의 대상에서 더 자주 제외시키고 소통의 대상에서 밀어놓고 있다. 나 역시 내 모습을 가장 잘 아는 가족들에게 가장 많은 상처를 주고 받아 왔고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은 어느새 포기하여 덮어버리고 외면해 오고 있었던 중이다. 신앙을 가진 가족들이라고 다를 바가 없다. 그럼에도 막연하게 동의하는 것은 바로 가까이 내가 사랑한다고 하는 사람들과 이 관계를 온전하게 회복하지 못한다면 결국 외부적인 인간관계에서는 더더욱 희망이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런 면에서 저자 부부는 결국 부부간의 관계, 가족과의 관계는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와 아주 유사하다고 결론 짓는다. 태초에 완벽한 가정이었던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어긋나기 시작하면서 서로의 관계에서도 투명함을 상실하고 상대에게 책임을 떠 넘기는 불화가 시작되었던 것처럼. 예수의 모습을 따라 서로를 용납하고 세워주기로 결심하면서 태초의 하나되었던 모습을 회복해 나가기로 한다면 그것은 결국 하나님과의 관계의 회복을 의미할 것이고, 마찬가지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회복을 맛볼 수 있다면 자연스럽게 내 주변의 사람들과 화목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 돌고 도는 상관관계속에서 필요한 것은 지금 그렇게 하고자 시작하려는 결단과 용기이다.


**


 신기한 것은 책을 읽어내려가며 그 동안 가졌던 불신 (내가 과연 변할 수 있을까?), 의심 (과연 진정한 인간관계란게 가능할까?), 분노 (나한테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피해의식 (세상에서 내가 제일 힘든 사람이야, 아무도 날 이해할 수 없어) 따위와 신앙의 본질적인 질문들이 조금씩 가벼워졌다는 것이다. 절대 해결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내 어두운 마음이 조금 위로를 받았고 움직여지지 않을 것만 같았던 고집스런 자아는 모임에서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조금씩 연습해 가며 원래의 모습을 회복해 가는 것 같았다. 이 가을에 변화를 일으키는 책을 만난 것 같다. 우연은 아닐 것이라 믿는다. 나 자신에게 뿐만 아니라 가족, 친구, 지인들에게 위로가 되고 성장의 발판이 되는 그런 사람이 되는 것에 희망을 가지게 된 것. 조금은 다른 방식이었지만 다른 사람에게 열려 있었던 예전의 나의 모습으로 회복되는 느낌. 그저 한순간의 느낌이나 잠깐의 결심이 아니라 계속 이 길을 묵묵히 가기로 결단하려면 그 중심에는 분명히 예수가 있어야 한다. 이 책을 읽으며 분명해 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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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4-11-14 14: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994년 발행 책이면, 정말 오래된 책이네요. 이 책이 현맘님께 많은 것을 주었나 봅니다.

투명함-, 제 언어로 말하면 솔직함이겠죠, 당신과 나 사이의 맘에 대한 표현,
그런 것들이 투명하기 위해서 자신을 우선 투명하게 바라볼 수 있어야 하며, 제일 첫 단계로 감정을 인식하는게 중요하다고 하더군요. 내 맘 상태를 알고 안아주는 것, 그것이 나를 사랑하는 길이며 그것이 가능해야 다른 이도 받아줄 수 있다는 제 생각과 일맥 상통하는 느낌으로 글을 이해했답니다, 제가 잘 이해했을까요?

사람 관계, 코알라가 그러더군요, 너무 어렵다고. 그래서 제가 말해주었어요, 어렵지, 하지만 포기하기에는 너무 중요하지.
너무 중요해서 어려운가봐요.... ^^, 날이 너무 추워요, 현맘님. 건강 유의하세요~

책을사랑하는현맘 2014-11-14 22:59   좋아요 0 | URL
날씨가 추워졌어요? 저 있는 곳도 갑자기 추워졌어요. 물론 한국보다는 따뜻한 곳이지만요~
마고님이 말씀하신 자기 자신을 투명하게 바라보고 내 감정을 인식하고 자진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거요. 이 책을 읽는 기간 중에 그런 경험이 있었거든요. 내 자신-내면 아이를 포함-에 대해 스스로 위로하고, 괜찮다고 하며 넘어갔던 상처들에 대해 돌아보는 시간이요. 진짜 그런 시간을 보내면서 이 책을 읽어서인지 훨씬 다가왔던 것 같아요. 그리고 실제로 주변인들에 대한 생각과 제 내면적 태도가 변화가 생기더라구요...

그런데 리뷰를 쓰면서는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과 변화에 대한 이야기들을 다 풀어내기 쉽지 않아 에둘러 쓰다보니 좀 두리뭉실하고 모호한 리뷰가 되어 버렸어요. ㅋㅋㅋ 역시 글을 쓴다는건 어려워요.

코알라는 도대체 얼마나 성장한거예요? 벌써 사람 관계가 어렵다는 세상사 진리를 깨닫다니요!
 

지나간 것에서 배우되 치우치지 않는 관점을 가지려면 생각하고 또 생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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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에 관한 책을 아무리 봐도 글쓰기는 늘지 않는다. 글은 써 봐야 하고 쓰기 위해서는 깊은 사고와 논리가 필요하다. 무엇을 읽을까하는 문제에 있어서도 답은 늘 한결같다. 꾸준히 오랫동안 읽히며 삶의 지혜와 인생에 대한 철학이 담겨 있는 고전들. 처음 시작하는 사람이나 책을 좀 읽어왔던 사람이나 모두에게 필요한 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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