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엄마를 절에 버리러 트리플 17
이서수 지음 / 자음과모음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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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04 이서수.

이번 연휴에도 엄마의 말에 마음이 상했다. 눈물을 뚝뚝 흘리며 나한테 그렇게 말하지 말라고! 소리지르며 대든 적도 있었지만 이번에는 꾸욱 삼켰다. 입을 다물고 속으로 화를 끓였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는지 엄마도 한동안 눈치를 보았다.
저 인간이 나를 이렇게 키웠어요. 말 한 마디마다 독사 한 마리씩을 내 속에 집어 넣어 날 괴물로 만들었어요.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나쁜 불효란 실컷 부려먹다가 늙으면 뒤도 안 돌아보고 요양병원에 보낼 거야, 면회도 자주 안 갈 거야, 말은 안 하고 그렇게 생각만 하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이서수의 이 책 제목이 생각났다. ‘엄마를 절에 버리러’ 제목만 봐도 못 버리고 돌아오겠네. 책을 읽으며 여행 잘 하고 돌아가라고 매정하게 선 긋는 스님이 얄밉게도 보였지만, 또 절 입장에서는 여기가 폐기물 처리장도 아니고 자꾸 사람 버리러 오면 싫을 것 같기도 했다. 여름에 본 드라마에서 욕쟁이 할머니가 정신 장애가 있는 자기 동생 숙자 할머니를 절 앞에 버리고 갔는데, 몇날 며칠을 숙자 할머니가 절 입구에 묶여 있어도 스님 한 명 내다보지 않았다. 그게 야박하다 싶기도 했지만, 베이비박스처럼 그랜마박스를 설치하더라도 저렇게나 절에 노인 버리는 게 클리셰가 되어 버리면 절은 터져버릴 것이고 스님이나 보살님들은 노인들을 돌보느라 수행도 못하겠지… 내 친구 하나는 젊을 때 몸과 마음이 아파 절에 잠시 은신한 적이 있는데 거기서 늙은 비구니들 비구들 밥을 해주고 밥을 얻어 먹으며 지냈다. 절에서도 젊은이를 좋아하지 노인은 사절이다.

딱히 엄마를 절에 버릴 생각은 없지만, 이 순간 이 소설은 딱 맞춤이었다. 치인다고 하나, 교통 사고 피해자한테는 더럽게 예의 없는 비유 같지만 난 이서수 소설에 치였다. 사실 지난 번 소설집 땐 살짝 접촉 사고 수준이었는데 이번 작은 소설집은 삼중 추돌, 그런데 마지막 에세이까지 그냥 소설이라고 우기고 가도 될 정도로 좋아서 이건 트리플 아니고 콰트로네… 하프 단편집이네… 여태 봤던 트리플 시리즈 다 망했는데 이서수가 살렸다. 그런데 전자책 보고 나서 종이책 표지 검색해보니 표지는 진짜...왜 이렇게 뽑는지 모르겠다… 뭐 작가와 출판사의 선택이겠지만 표지 진짜 반댈세… 좋은 소설 판매 확률을 확 낮출 것 같다…

나도 한 때는 엄마를 전우로, 동지로, 생존자로, 서로의 구원자로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렇지만 한없이 죄책감을 자극하고 과거의 리마인더가 되어 지질지질 하는 것이 가끔 힘들다. 자식한테는 생전 공감하거나 따뜻한 말을 건네지도, 한 번 안아주지도 않는 사람이 바깥에서 남들에게 자신이 좋은 말을 건네고 현자처럼 멘토처럼 내가 이렇게 공동체의 평화를 이뤄냈다, 그 사람의 마음을 읽어냈다(내가 보기엔 그냥 편견과 지레짐작), 이러고 스스로 우월감을 느끼는 모습이 나는 너무 힘들었다. 자기 자식은 어떻게 썩어가는지 들여다 보지도 못하면서… 화분이나 가꾸고 있어… 엄마가 못 준 사랑 결핍에 허덕이며 내가 얼마나 그걸 채우려고 평생 헤매고 다닌지 모르면서 끝없이 잔소리만 하는 엄마가 나는 자주 미웠다. 이거 쓰면서 눈물 찔찔.

온통 엄마로만 꽉 찬 소설집 읽으면서 자기 인생은 망했는데 그래도 딸한테 자부심 느끼는 엄마, 잔소리하고 속터지다 그래도 서로를 버리지 못하는 부모 자식 이야기는 클리셰라도 잘 쓰면 읽을만 하군, 나만 이런 거 아니지, 다들 그런 거지, 저마다 조금은 불효하고 조금은 효도하면서 지내면 뉴스에 나오는 후레자식 정도까지는 안 되는 거지, 하고 읽었다.

엄마는 23년의 망한 혼인 생활을 접고도 이제 15년을 살았으니 앞으로 망하지 않은 기간을 살 확률이 더 높다. 대학에 못 간게 한이더니 내 첫번째 아이 키우는 동안 사이버대학 문예창작과를 다니고 졸업해서 학사 학위 소지자가 되었다. 계속 소설을 쓰고 고치고 공모전 냈다 망하길 (나랑 같이) 반복 중이고, 주2회 구에서 운영하는 시설에서 필라테스 운동을 신나게 하고, 같은 시설에서 주1회 미술 수업 소묘 배우러 갈 땐 세상 설레는 표정을 하고 살랑대는 치마차림에 스케치북을 에코백에 담아 나선다. 또 같은 시설에서 주1회 피아노 레슨을 받으며 내가 사 놓고 쳐박아 둔 디지털피아노를 방에 들여놓고 틈틈이 체르니 30번을 치고 유튜브 영상이랑 비교한다. 지금도 내 아이들을 키워주고 살림을 도맡아 한다. 아이들 뿐 아니라 나랑 내 배우자까지 먹이고 키우고 있음… 이렇게 되돌아보면 좀 싫은 소리 한다고 지랄지랄하는 나새끼가 천하개불효샹놈인가 싶기도 하지만… 엄마 너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사셈… 망할 놈의 자식 새기는 그거 말고 빌어 드릴 게 없습니다… 죽기 전에 이서수만큼 잘 쓰는 소설가 되셈… 이서수 소설 속 엄마는 로맨스 판타지 소설 쓰는 딸한테 자기가 쓴 소설 잘도 보여주는데 (제목도 놀라운 ‘암 늑대 김수련의 사랑’) 우리 엄마는 안 보여준다… 자기 등단하면 보여준대… 날 안 보여줘서 등단 못하는 거 아닐까… 근데 내가 이렇게 개차반으로 까는 새끼인 걸 생각하면 그냥 안 보여주시는 게 건강에 이롭겠다….

+밑줄 긋기
-나는 콘돔을 팔아 번 돈으로 대학이 무용하다는 생각을 가진 아버지에게 저항하며 대학에 갔다. 놀라지 마시라. 1958년생인 아버지는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다. 여자는 대학에 갈 필요가 없고, 아들이 아닌 딸을 대학에 보내줄 돈은 없다고. 우리 반 전체를 통틀어 그런 생각을 가진 부모는 나의 아버지뿐이었다. 다들 대학에 못 보내 안달이었지, 대학에 가겠다는 딸을 말리는 아버지는 없었다.
(깜짝이야 우리 아빠인 줄...엄마에게 내가 대학 굳이 가야하나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심지어 우리집 딸은 최초합 붙은 학교가 S,Y,K(수시1차 붙고 수능을 생각보다 잘 봐서 면접 안 감…),H대였는대도 저런 소리를 했다지…)

-선택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다. 적금을 해약하거나, 아버지를 해약하거나 둘 중 하나였는데 놀랍게도 적금을 해약하는 편이 더 쉬웠다.
(아버지를 해약하지 그랬어...난 했어…)

-실로 오랜만에 먹어본 뽀또는 달고 고소했다. 그 때문인지 아버지는 무알코올 맥주라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 알코올이 담뿍 든 술처럼 맛있게 홀짝였다. 흡족한 표정으로 창밖을 바라보던 아버지는 눈을 맞으며 총총 걸어가는 다정한 커플을 보더니 뽀또! 라고 크게 외쳤다. 젊은 커플이 놀란 얼굴로 주위를 살피자 아버지는 얼른 창을 닫으라고 말했다.
(아...이런 거 왜 난 좋아...무알코올 맥주랑 뽀또 처먹고 취한 아버지가 뽀또! 이지랄 ㅋㅋㅋㅋ)

-아무도 우리를 몰라. 아무도 우리를 알려고 하지 않아. 아무도 우리의 삶이 당연하지 않은 거라고 말해주지 않아. 이건 오로지 우리가 감당해야 할 일인 거야.
(흙흙흙…여기까지 ‘엄마를 절에 버리러‘ 중)

-그래. 나도 아는데, 엄마도 알겠지. 사랑을 이루고 행복해져도 선뜻 완성이라고 말할 수가 없다는 걸.
(’암 늑대 김수련의 사랑‘ 중)


-약을 꼭 쥐고 잤다. 먹지는 않았다. 먹지 않았으니 나는 환자가 아닌 거라고 생각했다. 약을 먹으면 환자가 되고, 참으면 건강한 사람인 거라고. 김월희는 서한지도 모르는 자신의 투쟁에 대해 생각했다. 약을 먹지 않으려는 투쟁. 그러다 지고 마는 투쟁. 다시 약을 먹지 않으려는 투쟁. 역시 또 지고 마는 투쟁.
(사는 것도 투쟁이라고 하셨잖아요. 안 죽기 투쟁.)

-의사는 김월희의 말을 끊지 않고 들어주었다. 김월희는 자신의 인생을 축약해서 전달했다. 남편은 평생 외도하며 집에 거의 들어오지 않아서 자신은 아이들과 거지처럼 살았다. 집에 쌀이 떨어져서 아이들에게 라면만 먹인 적도 부지기수였다. 와중에 자신은 우울증을 앓았고, 온종일 죽고 싶다는 생각으로 시체처럼 살았다.
아이들이 너무 불쌍해요. 이런 부모 밑에서 자라서.

-서한지는 참았던 눈물이 쏟아지려고 해서 얼른 집에 가고 싶었다. 그러자 김월희가 벌컥 화를 냈다. 왜 기도도 해주지 않냐고. 아래층 아주머니가 김월희를 말리며 말했다. 기도가 무슨 소용이야. 신은 없어. 있으면 죄 없는 고양이들이 저렇게 비참하게 죽겠어? 아주머니는 그렇게 말하며 흘러내리는 눈물을 손등으로 닦아냈다.

-일을 하려면 김월희는 자신이 왜 아픈지를 깨달아야 할 것이다. 결국 자신에게 벌주려는 마음을 버려야 한다는 걸 말이다. 서한지는 마음속으로 말했다. 엄마, 대단한 인생을 살 필요는 없어. 엄마가 좋아하는 알밤, 그걸 떠올려봐. 벌레 먹은 밤을 집어 들면 에잇 속았다, 그런 표정으로 웃잖아. 인생도 그런 마음으로 살면 돼. 자꾸 벌레 먹은 밤만 집어 들어서 속상해도 웃어넘기고 마는 것처럼, 그냥 그런 마음으로 살면 돼. 대단해지려고 하지 마. 남들하고 비교하느라 엄마가 그렇게 속이 아픈 거야. 엄마는 엄마의 길을 묵묵히 가면 돼. 그것이 지극히 초라한 길이어도.

-한지야, 사람이 벌레처럼 산다고 욕먹을 일은 아니야. 다 이유가 있는 거지. 이유가 있는 거야.
(‘있잖아요 비밀이에요’ 중)

-어쨌든 나는 엄마의 삶을 모티프로 삼아 세 명의 육십대 여성을 만들었다. 그녀들의 공통점은 세 가지이다. 가난과 노동 그리고 딸.
나는 실버 노동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데, 어느 정도는 나의 일이기도 하다는 생각에서다. 먼 훗날 나 역시 일자리를 찾아 배회하는 육십대 여성이 될 것이다. 그때까지 소설을 쓰며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을 거라고 낙관하는 소설가는 아마도 많지 않을 것이다. 지금도 소설을 써서 먹고 사는 일이 참 위태롭다는 생각을 하는데, 육십대가 되어서도 소설 쓰기로 밥벌이를 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거의 하지 않는다.

-엄마는 나를 보며 활짝 웃더니 새로 사귄 길고양이를 소개해주었다. 나는 고양이를 한참 동안 구경하다가 모기한테 물리고 나서야 정신이 들었다.
(에세이 ‘무지개떡처럼’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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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05 18: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10-05 23: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Yeagene 2023-10-06 22: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작품 표지 보자마자 별로라고 생각했어요.열반인님 글 읽으니 더 그렇게 생각되네요 ㅎㅎ

반유행열반인 2023-10-06 22:37   좋아요 1 | URL
표지 그림은 별로인데 소설은 제가 애정하게 되었습니다 이서수 요즘 빠짐... ㅋㅋㅋㅋㅋㅋ
 
[eBook] 바게트 소년병
오한기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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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29 오한기.

믿을 수가 없다. 내가 오한기를 네 권이나 읽다니.
어쩌다보니 그렇게 되었다. 오한기니까 다섯 권을 채워줄까 싶기도 하지만 이제는 그만 봐도 되겠다.
그리고 그 중 한 권은 이번에 읽은 소설집에 실릴만큼 부피 작은 한 편을 그림하고 같이 뻥튀기 해서 한 권 낸 거라 한 권으로 치면 반칙인 것 같다.
그런데 단편소설집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첫 소설집은 안 봤고, 두번째 소설집은 생각보다 오랜만에 나온 거라 5년치의 소설이 담겨 있었다. 정지돈 소설에서 오한기가 결혼했다고 해서 깜짝 놀랐는데, 책 말미에 자녀와 부인 이름이 등장하게 될까 봐 에세이는 고사했다는 말에 놀라고선, 아니 왜 놀라, 혼인이랑 출산 나도 하는데, 아무나 하는 건데, 소설이 이상하다고 소설가가 이상하리라는 보장은 없잖아... 아니 이상하다고 혼인이랑 출산 못하라는 법은 없잖아 나도 했는데…

- 바게트 소년병
수영장에 숨어 살며 바게뜨빵을 총처럼 겨누는 소년에 관한 상상은 신기하기도 하지만 슬펐다. 애들이 있을 만하지 않은 곳에 있으면 슬픈 거다. 그렇다면 산티아고 추모공간에 바게뜨가 있어도 슬픈 거겠다.

-25
오영이었던 야구 선수가 이오라는 요원이 되면서 과거의 자신을 지워가는 이야기였다. 야구는 잘 모르지만 지난 나를 버리고 다른 내가 되는 이야기가 서글프게 읽혔다. 다 지우고 전혀 새로운 내가 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니까 그런 이야기는 소설이 된다. 그렇지만 현실의 나는 다 망해도 망한 나는 망한 나대로 줄줄 달고 미래로 가야 한다…

-팽 사부와 거북이 진진
어려서 이웃에 살던 동갑내기 아이가 매번 우리집 물건을 들고 찾아왔다. 마당에 샤프 펜슬이 떨어져 있었어요. 홍매색 크레파스가 있었어요. 엄마는 이상하다, 하면서 아이가 건네는 물건을 돌려 받았다. 어느 날은 야트막한 그릇에 넣고 키우던 거북이가 없어졌는데 아이가 거북이를 들고 왔다. 거북이는 목을 딱지 안에 움츠린 채 꿈쩍하지 않았다. 죽은 거북이를 받아 들며 아니 그게 왜 마당에 기어나가서...하면서 받아 들었다.
어느 날 우리집에 놀러왔던 아이가 내게 슈퍼마켓에 가자고 했다. 슈퍼 바깥에서 기다리라고 하더니 초콜릿을 사가지고 나왔다. 나한테 절반을 떼어주고 자기도 먹었다. 다시 슈퍼에 들어가서 또 초콜릿을 사다가 나와 나눠먹었다. 너 그렇게 돈을 많이 써도 돼? 미안한 마음에 초콜릿을 얻어 먹으면서 걱정하는 말을 건넸는데 괜찮다고 했다.
엄마가 일을 마치고 집에 와서는, 의자에 걸어둔 청바지 안에 만원이 있었는데 없어졌다고 했다. 집에 누가 왔었냐고 해서 옆집 아이가 왔다 갔다고 했더니, 엄마는 한참 생각하다가 이제 그 친구랑 우리집에 와서 놀지 말고 놀이터나 그 친구 집에서 놀라고 말했다.

등딱지에 빨간 글씨로 팽 자가 박힌 거북이가 우글거리는 전세 보증금 사기 당한 빌라를 보고 있으니 왠지 그때 생각이 났다. 거북이로 훈련한 건 거 너무 한거 아니니 잘 사니… 잘 살더라...

-사랑하는 토끼 머리에게
내가 이걸 읽었었다는 것도 신기하고, 이걸 왜 썼는지 작가도 모르겠다는데 나도 왜 읽었는지 모르겠다. 여기에도 내가 나라서 힘든 애가 내가 아닌 다른 뭔가가 되려고 기를 쓰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래도 누군가 사랑하는, 이랑 별명까지 붙여 줬잖아 토끼 머리야. 나는 제대로 된 별명도 없었단다.

-곰 사냥
오… 내가 너인칭이랑 너인칭 비스무레하게 한 사람 앉혀 두고 혼자서 주절대는 방식의 서술을 얼마나 싫어하는지 다시 한 번 확인하게 해 줬다. 별로였다는 뜻이다.

-펜팔
이명박과 펜팔하는 소설을 쓰겠다는 다짐을 지켜낸 작가가 대견하다. 그리고 제법 재미있었다. 나도 시월에는 단편소설 한 편을 쓰겠다. 신작을 쓴지도 만 삼 년이나 흘렀다. 망했다. 수학도 소설도 팔자를 못 고쳐준다면 그냥 둘다 노리개로 쓰겠다.
이거 다 거짓말인 거 아시죠.

-세일즈맨
궁둥이를 대여하는 잘 안 풀린 소설가가 나온다. 읽는 이가 스스로 난 썩었어...하도록 절대 성적인 요소는 없다. 그러게 왜 후장 사실주의 어쩌구 그래가지고 독자의 정신을 오염시키냐고… 난 볼라뇨도 안 봤고 안 볼 거고 지들끼리 친목질 하는 거로 열심히 세일즈 포인트 올리는 거 좋은 일이죠… 이너 써클이라는 게 없어 본 사람은 그냥 멀리서 손 빨면서 쟤들 잘 노네… 이 소외감 뭐임… 함.

오… 단편소설집 보니까 오한기는 장편을 더 잘 쓴다...칭찬인 듯 아닌 듯...

+지난 오한기 독후감 보다 소오름...이년전 추석 연휴 때는 오한기의 인간 만세를 읽고 독후감을 써 놨다...풍성한 한가위에는 오한기냐... 초성도 기가 막히네이... 인간이란 생각보다 길들이기 단순한 존재 아닐까...(그치만 도망간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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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23-09-30 06: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인칭 소설은 읽으면서 어색해요. 서간체 소설도 아니고.
열반인님 리뷰는 재미있고요. ^^

반유행열반인 2023-09-30 08:45   좋아요 0 | URL
늘 재미있게 봐주셔서 감사함니다 유부만두님 ㅎㅎ 서간체는 또 아주 싫어하진 않는데, 이인칭은 너는, 이러면 저요?(깜짝) 이러다가 기분이 나빠져서 안 좋아하는 것도 같습니다 ㅋㅋㅋㅋ

유부만두 2023-10-01 20:25   좋아요 1 | URL
이인칭 소설 싫어한다고 여기에 썼는데 하루키 신작이 적어도 1부는 계속 “너”를 부르고 있어요. 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23-10-01 22:29   좋아요 0 | URL
제가 그래서 하루키를 안 보나 봐요 ㅋㅋㅋ
 
[eBook] [고화질세트] 도로헤도로 (총23권/완결)
Q-HAYASHIDA / 시공사/DCW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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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소장하고도 전자책 한 권 한 권 다시 모으는 중…내 인생 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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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오 2023-09-30 00: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자책 소장하고도 종이책 모으는 건 봤는데.... 종이책 소장하고도 전자책 모으는 건 처음 봅니다 ㅋ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23-09-30 08:48   좋아요 0 | URL
아 그런가요?? 저는 종이책 사 놓고 들고다니며 언제든 읽고 싶은 책(예:참존가-전자책 신청하고 거의 십년 만에 나옴 ㅎㄷㄷ) 을 다시 사요. 이 만화책은 알라딘 전자책 적립금 이벤트로 주는 걸 맨날 버리다 아, 저렴한 만화책 같은 걸 사자! 번뜩! 이러고 고화질 콜렉터가 되어 벌써 여덟 권이나 질러 버렸습니다...(고맙다 알라딘 난 매번 천원 안짝으로 삼ㅋㅋㅋ)
 

-20230921 김금희. 읽다 놓아줍니다.



집에도 화분이 많다. 엄마가 키운다. 어린이들 학교나 유치원 활동에서 받아온 고무나무, 다육식물도 있고 남이 키우다 버린 것 주워온 벤자민, 남의 화분 가지치기나 포기나누기 할 때 버리는 것 꺾꽂이 한 것, 먹는 것에서 갈라 심어 커다랗게 키운 식물들도 있다. 나리꽃, 도라지꽃, 샤프란, 철쭉 같은 게 그렇다. 아보카도 씨앗을 발아시켜 여러 그루 얼어죽고 한 그루 잎이 좀 타들어가긴 해도 내 키보다 크게 살아 있고, 레몬 씨앗 틔운 것도 기다랗게 몇 그루 키워 놨고, 대추야자 발아 시킨 건 얼마전 싹을 내서 길게 삐죽한 야자 나무 느낌으로 뻗고 있고, 망고스틴 씨앗도 심어보겠다고 불리고 있다. 작은 어린이는 유치원 활동지에 콩으로 우리나라 글자 붙여 놓은 곳에서 자꾸 콩을 떼다가 흙에 몰래 파묻어서 화분에 콩나무가 뿅뿅 튀어나온다. 유치원에서 만들어 온 잔디인형 앞에서 내가 알려준 주문 ‘자라나라 머리머리!’ 하루 세 번씩 외쳤더니 정말 잔디인형 머리가 풍성해졌다.

뭐 내가 키운 건 하나도 없다. 나는 빨래 널다가 벤자민나무가지가 자꾸 몸을 할퀴고 성가시게 한다고 뚝 뿐질러 놓기나 하는 야만인이다. 수렵채집인은 정말 나처럼 꺾고 잘라 모으기만 할 뿐 키우는 데는 나몰라라 했을 것이다. 농경의 역사도 짧지만 먹지도 못하는 식물을 집에 들이고 키우는 건 정말 더 최신의 취미가 아닐까 한다.

그래서 김금희 작가가 식물 키우는 이야기 묶어 에세이로 나왔다 했을 때부터 나는 못 읽겠네...했다. 미리보기로 올라온 부분까지 읽고 아… 힘들겠다...했는데 그래도 미련이 남아 도서관에 올라오자마자 빌려서 읽는데 5분의 1쯤 넘게 읽다가 놓아주기로 했다. 관심 없고 좋아하지 않는 분야에 대해 몇 시간을 꾸역꾸역 참고 듣다보면, 그게 우와 난 잘 모르는데 흥미롭다, 하면 나도 뭔가 개종이 될란가 싶지만 더 읽다가는 진짜 누군가와 무언가를 이유 없이 미워하게 될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나 김금희 글 좋아하는 것 맞냐 하고 최근에는 아리까리 해지고 있다. 이건 소설이 아니니까 산문집 읽고 소설 싫어하게 되면 그건 또 진짜 멍청이가 아닐까…

학명인지 영문명인지 발음하기도 어렵게 나열된 화초들이름 보면서, 굳이 이름을 따박따박 옮겨주는 건 애정하는 것들에 최대한 예의를 갖추고 싶은 마음일수도 있겠다 싶으면서도 왜 난 자꾸 작아지고 멀어지는가. 뭔가를 사랑하고 망해도 망쳐도 계속 노력하며 사랑을 놓지 않는 걸 보면서 자꾸 나를 탓하게 되는 탓인 것 같다. 나는 집에 사는 풀한테 물 한 컵 주지 않아, 하는 자책. 뿌리파리 없애보겠다고 과산화수소수에 물 타서 열심히 주면서,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안 하는 것보다 낫겠지, 하고 공들이는 것들에 대해 나는 자꾸 힘들게 쓸데없는 짓을 하냐고 투덜대는 인간이라서. 그러면서 오 효과 있냐? 하고 밑줄 쳐둠. 그러다 에이 하고 그냥 엄마한테 안 알려줌. 뿌리파리 정말 싫다. 박멸이 어렵다. 화분 키우는 집에는 상주 생물인 듯.

사람이 정들이고 공들이는 대상은 너무도 다양해서 이제는 하다하다 반려동물 넘어 반려식물 반려세균은 아직 못봤고 뭔가를 조건 없이 마냥 사랑하는 마음이 누군가의 하루를 한 시절을 때로는 일생을 지탱하기도 하는데 내게는 그게 무얼까 가만 생각해보았다. 이거라고 딱 자신있게 뱉어낼 뭔가가 떠오르지 않으면 조금 울고 싶어진다. 독중단감을 길게도 썼다.

+밑줄 긋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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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하고 희망하고 믿는 데는 힘이 필요하다. 믿지 않는 것은 외면과 단절로 끝이 나지만 믿는다는 것은 미래를 향한 이후의 발걸음까지 포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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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과가 있다 없다 확언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지난해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뿌리파리가 줄었다고 느낀다. 발코니 환경이 바뀌어서인지 정말 과산화수소수가 효과를 발휘한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때보다는 지금이 훨씬 마음이 낫다. 애는 써봤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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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쩜 그 이름도 ‘괭이’밥이라는 것이. 어느 다정한 괭이밥이 앓는 나무에도 힘을 주고 이 여름을 앓으며 통과하고 있는 우리 개에게도 기운을 북돋아주었으면. 어쩌면 그러기 위해 저렇게 열심히 자라고 있는 게 아닌가. 물론 나의 이런 논리에 근거는 없다. 하지만 때론 그렇게 믿는 마음이 난관을 이기는 작은 발판이 되지 않을까.



아...‘식물적’ ‘낙관’에서부터 우린 만나지 말았어야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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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3-09-21 23: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열반인님! 제목과 끝 문장 웃긴데ㅋㅋㅋ 나머지는 슬프게 공감됩니다. 식물 키우는거 저에게도 어려운 일입니다.
식물 선물하는 사람을 매우 미워했을정도ㅋㅋㅋㅋ 잘 내려놓으셨어요. 요즘 식물 관련 책 많이 나오네요. (먼산..)

반유행열반인 2023-09-22 08:40   좋아요 1 | URL
식물 선물 미워 ㅋㅋㅋ비슷하게 책선물도 책은 환장하는데 자주 받지도 않지만 많이 안 좋아하고 받은 건 읽은 적이 초6 중1 말고 없네요 ㅋㅋㅋ저 식물책은 좋아하는데 가드닝 책은 적성이 아닌 것 같습니다.

호시우행 2023-09-22 06: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꽃키우기엔 많은 정성과 노력이 필요한 법이지요.ㅎㅎ

반유행열반인 2023-09-22 08:40   좋아요 0 | URL
그래서 반대로 식집사라 자칭하시는 가드너 분들은 이 책 공감하며 잘 읽히려나 궁금했습니다.

즐라탄이즐라탄탄 2023-09-22 09: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올려주신 글 읽으면서 딱히 관심이 없거나 좋아하지 않는 분야에 새로운 관심을 가진다는게 의식적인 노력이 많이 들어가는 일이라 사람을 지치게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조심스레 해보았습니다.

식물 관련 얘기를 해주셔서 갑자기 생각났는데 몇년전에 김초엽 작가가 쓴 ‘지구 끝의 온실‘이나 미우라 시온 이라는 작가가 쓴 ‘사랑없는 세계‘라는 소설을 읽었었는데 어떻게어떻게 해서 꾸역꾸역 끝까지 읽긴 했지만 소재가 식물과 관련된 것이라 좀 생소했던 기억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반유행열반인 2023-09-22 10:19   좋아요 1 | URL
즐님께서 정리해주신 그런 상태였겠다 의식적인 노력이 지치게 한다 저는 노력을 많이 못하고 포기했지만 비슷한 마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ㅎㅎ
듣고보니 초엽 작가 이름 자체도 되게 식물식물한데 표제작 온실 들어가는 소설집도 있었죠. 식물성 인간들도 제법 있지만 호랑이한테 풀먹어라 하는 기분은 저만 느낀 건 아니었구나 즐님 체험 듣고 보니 약간의 위로가 됩니다 ㅎㅎㅎ

Yeagene 2023-09-22 14: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못 읽을 것 같아요.열반인님 극공감합니다.

반유행열반인 2023-09-22 17:18   좋아요 1 | URL
전국의 식집사님들
단결해서 제 대신 읽어주세요...잘 안 팔리는데다 제가 한술 보태서 맴찢 ㅋㅋㅋㅋㅋㅋ(그럼 이 글은 왜 써 ㅋㅋㅋ)
 
[eBook] 모래비가 내리는 모래 서점 문학동네 시인선 197
문보영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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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20 문보영.

문보영의 시집 ‘책기둥’을 5년 전에 샀다고 한다. 벌써 5년이 지나다니 놀랍다. 너무 어려워서 앞에서 보다 다시 맨뒤로 가서 거꾸로 읽다 말아서 도넛처럼 중간이 뻥 뚫린 채 미처 완독 안 되고 책꽂이에 꽂혀 있다. 그 사실을 3년 전 읽은 문보영 산문집 ‘사람을 미워하는 가장 다정한 방식’ 독후감에서 찾았다. 문보영 검색하면 시집 독후감은 안 나오고 산문집 독후감은 나오니 시집은 다 읽지 않은 게 확실하다. 거기에도 모래랑 책이랑 앙투안이랑 지말이 나왔던 것 같다. 산문집에 나온 것일지도.

이전 시집도 안 봐 놓고 시인의 새 시집을 빌렸다. 도서관의 장점은 안 사 볼 것 같은 책을 읽게 한다. 재촉해서 빨리 읽게 한다. 뭔가 멘탈이 제법 깨지는 날들인데 그건 내가 자처한 걸까 과거의 내가 자처한 걸까 그냥 세상이 그렇게 되어 있던 걸까 이 시점에 너의 멘탈은 깨진다, 그렇게 정해진 걸까 일어날 일이 일어난 걸까 이 물음의 대답은 다 아니오 일까 알 수가 없다.

이럴 때 어려운 시집을 읽는 건 제법이 도움이 되는 것 같았다. 시집을 오래 안 봤네, 하고 굳이 시집을 봤는데 오, 좋다 아니다 하고 할 말이 없어, 뭔말인지 잘 모르겠거든, 이러고 읽었다. 읽다가 지수로그 함수도 쪼끔 풀고, 기하 강의도 쪼오끔 듣고, 그러다가 하루가 갔다. 날이 추워졌다.

제법 실험적이라 할 시를 쓰는 몸과 마음은 어떨까 궁금하다. 평론은 써줄 사람이 없어서 자기가 썼을까, 자기가 쓰고 싶어서 역자 후기로 썼을까, 장점은 나는 왠만해서는 평론은 읽지 않고 독서를 끝내는데 이 시집의 후기는 역자 후기라는 이름으로 문보영이 올리비아 페레이라의 시를 옮긴 문보영의 글을 다시 옮긴 사람이 적었다라고 장난을 쳐놔서 일단 내가 읽게 만들었다.

내가 가는 서점은 모래비가 내리지 않을 것이다. 주로 온라인 서점이니까 어디선가 1과 0과 버그와 디버그의 비가 내리겠지. 가장 최근에 간 오프라인 서점은 서울대입구 중고알라딘인데 거기에서 전쟁같은 맛을 팔아버리고 체르니30번을 사서 피아노 연습을 하는 엄마에게 줬다. 큰어린이가 내가 30년 전에 치던 체르니30번책을 치는데 둘이 그걸 주거니받거니 하면서 돌려 쓰는게 불편해 보여서 (체르니100번은 그렇게 돌려 쓰면서 둘다 책을 마쳤다) 3600원이면 될 걸 그것도 예치금이랑 적립금에서 까는 것, 나는 3600원짜리 효도를 하고 3600항하사의 불효를 한다.

+밑줄 긋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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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비아는 대화 도중 상대방이 눈을 깜빡일 때면 0.4초 간격으로 죽었다가 살아 돌아온다고 느꼈다. 또는 다른 사람으로 변신한다고. 그렇다면 인간은 하루에 1만 5000번 변신하는 셈이다. 이는 내가 절대로 나 자신에게 적응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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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눈을 너무 오래 감고 있는 나이든 사람을 가리켜 이렇게 말한다.
“저 사람은 적응하고 있다.”
라고.
(‘적응을 이해하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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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악어가 진정 소망을 뜻할지라도 너무 가까이 다가가면 소망에게 잡아먹히거나 물어뜯길 거라고, 아빠는 소리쳤다.
(‘소망’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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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땅이 나를 내버려둬. 상처받을 정도로 가만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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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후 애인은 걷는 걸 고통스러워했고 걸음걸이가 조금 달라졌는데 그건 그가 물고기인데 사람인 척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그 사실을 너무 오래 참았던 것이다.
(‘사람을 버리러 가는 수영장’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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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뚜안 너네 갑자기 좀 늙어 보인다.
지말 책 때문에 그래.
스트라인스 모래 때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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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 알갱이가 빛을 업고 있다
작은 사람을 업은 더 작은 사람이라네
(‘모래비가 내리는 모래 서점’ 중. 책 때문에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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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밤 나는 닭 다리를 잡아당겨보았다 그것은 끈적한 콧물에 감싸인 채 쑥 빠져나왔다 이토록 쉬울 줄 알았더라면 이렇게까지 참지 않았을 것이다 내 안의 어둠이 물살처럼 빠져나간다
(‘새로운 호흡법’ 중. 닭다리처럼 쉽게 빠진다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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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문득 현실이 너무 무서워 극장으로 내려가 공포영화를 시청했다. 진짜 공포에서 가짜 공포로 도망가기. 가짜 공포에서 진짜 공포로 도망가기. 탈출하기 위해 극장으로 내려가면 극장은 삶과 똑같은 공포영화를 상영하고 있다.
(‘옆구리 극장’ 중. 공포영화 이제 안 본다. 삶에서 몇 바퀴만 돌면 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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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너무 많은 시간과 마음을 요괴에게 쏟고 있어
—그러라고 요괴가 있는 거니까
—너는 온종일 요괴의 털을 빗겨주지 그런데 빗을 때마다 털이 자라 곤란하잖아 너는 곤란해하느라 인생을 다 쓰고 있어
—그러라고 요괴가 있는 거니까
(‘친구의 탄생’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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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인간: 식물을 키운다는 건 안 죽이는 연습을 하는 거야.
지말: 아……
모래인간: 그리고 동시에 안 죽는 연습이기도 하지.
(‘풍족한 삶‘ 중. 나는 연습이 부족하다 못해 소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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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에 있는 집은 내부도 기울었을 것 같지만 평평하다. 그게 바로 이 세상이 가짜라는 증거다.
(‘초행길’ 중. 바닥이 기운 집에 사는 사람은 매트릭스 깨어났냐. 다들 방바닥에 연필 굴려보셈. 멈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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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그러진다는 것은 오랫동안 지속해온 상태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말랑한 물체가 모종의 힘에 의해 변형되는 것을 보며 찌그러진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눌렸다고 말하죠. 눌린 사물은 시간이 흐르면 원상 복구됩니다. 그러나 찌그러진 사물은 돌아가지 않습니다. 그것은 돌아가기가 곤란해졌음을 나타내며, 찌그러진 사물은 귀가하지 않는 영혼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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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영혼이 기체라면 이렇게 자주 찌그러질 리 없습니다. 기체는 압축되거나 팽창할 뿐입니다. 따라서 영혼은 고체라는 결론이 도출되지요.
(‘설치 예술가 올리비아 페레이라 “매일 아침 눈을 뜰 때 기분이 좋지 않다”‘중. 어휴시벌 제목부터 개빡세네. 영혼은 가출, 영혼은 고체라는 신박한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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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agene 2023-09-21 15: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오랜만에 읽는 김광규 시인의 시집 그만 읽을까 생각 중입니다.시인이 넘나 생각이 많으신 것 같아요 ㅎㅎ

반유행열반인 2023-09-21 17:57   좋아요 1 | URL
문득 일상어 쓸때도 시인들은 신경을 많이 쓸까 어쩔까 궁금했어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