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31 | 132 | 133 | 134 | 135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숨 (양장, 어나더커버 특별판)
테드 창 지음, 김상훈 옮김 / 엘리 / 2019년 9월
평점 :
품절


-20190916 테드 창
내가 틀릴 수도 있다. 하지만 모든 걸 통제할 수는 없다. 그래도 더 나은 사람이 될 수는 있다.

월초에 모 작가의 SF소설집을 읽고 많이 깠어. 전작 다 읽었던 작가를 급기야 손절 선언했어. 너무 가혹한 평가가 아니었을까? 내게 장르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건 아닐까? 마침 이 책을 봤어. 절반만 맞아. SF에 대해 잘 몰랐고 읽은 게 없던 것도 맞아. 이 책은 그 매력을 알려줬어. 탄탄한 구성과 기발한 상상력과 사고의 깊이와 좋은 문장이 더해진 과학소설은 정말 흥미진진해. 어딘가 어설픈 데가 있다면 저 중에 뭐 하나 빠진 거지. 취미로 쓴 작품을 봤다면야 노력이 가상하고 더 나아지길 빌어줄 거야. 그런데 돈 내고 기대감 가지고 현역 작가의 글을 시간 쏟아 봤는데 불만이다? 리콜도 안 되니까 그냥 빠이빠이 더 나아질 때까지 별거. (라고 지 돈 안 들이고 전자책 대여한 거지에 뻔뻔이가 지껄입니다.)

공상과학소설이라지만, 과학을 잘 모르는 나도 어떤 과학 소재를 활용한 건지 대략 파악하면서 읽을 수 있었어. 프리즘의 원리 같은 건 에라 나도 모르겠다 어버버 했지만 그래도 평행우주와 다양한 분기의 평행자아와 이곳의 내가 대면하는 상상을 이해하는 데 큰 무리는 없었다는 거지. 좋았어. 단순히 신기한 상상을 재미있게 잘 그린데서 더 나아가니까 이건 뭔가 아름답기까지 했어. 거기에다 우리의 자유의지와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 긍정 같은 게 엿보여서, 마냥 디스토피아만 그리는 나 같은 인간조차 약간은 감화될 정도였다니까.

작가노트는 정말 핵심만 넣은 친절한 주석 같았어. 데헷 내가 허투루 읽지는 않았네? 하고 뿌듯하게 만들면서도 핵심을 짚어줬어. 게다가 어쩌다 이런 걸 썼는지도 비교적 명확히 밝혀주고 연결고리가 되는 작품도 언급해줘서 흥미로웠어.
필립K딕의 전기 개미, 로저 펜로즈의 황제의 새로운 마음이 궁금해. 월터 옹의 구술 문화와 문자 문화 같은 건 궁금하긴 하지만 제목만 딱 봐도 내가 작아지는 기분이라 도전할 마음은 접어두게 되네.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
무슬림 문화권을 배경으로 이거 아라비안 나이트식 민담이네? 그런데 타임머신이라니. 시간의 문 같은 게 나와. 과거로 갔다 미래로 갔다. 많은 걸 바꿀 수 없지만 더 나은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시간이동이란 게 흥미로웠어. 약간 교훈적인 느낌은 마음에 안 들었지만.
-숨
인류라는 말은 한 번도 안 나오지만 화자는 읽는 사이 나도 모르게 우리와 동일시 할 만큼 인류와 닮은 수준의 지적 존재야. 공기의 흐름으로 기억과 사고를 유지하는 그들 세계는 그들의 숨이 만드는 압력의 평탄화로 인해 언젠가는 멸망할 거야. 그들 자체나 세계가 직면한 문제가 우리와 유사해. 근사하고도 슬픈 우화야. 사라지지만 존재했던 것에 대해 기뻐하는 존재. 나도 그런 어떤 것이 될 수 있을까. 각인 같은 흔적을 남겨야 할까. 그럴 수 있을까.
-우리가 해야 할 일
자유의지가 환상일 수 있다는 가능성. 그럼에도 결정론에 절망하지 않는 것을 권고. 그런 경고를 남길 수 밖에 없는 자신. 순환적이다.
누르기도 전에 누를 것을 알고 불이켜지는 장난감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무동무언증 상태에 빠진다는 상상력이 재미있고 섬뜩했다.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주기
인공지능에 대한 또 하나의 이야기인데 그 동안 본 것과 사뭇 달랐다. 긴 데도 재미있었다. 인간이 형성되는 데 긴 시간이 필요하고 예측이 어렵듯 인공 존재 또한 그럴 것이라는 가정이 포함되어 있다. 아이를 키우는 것이나 반려동물을 키우는 것과 묘하게 겹치면서도 다른 이슈들이 등장했다. 여기서도 자유의지의 문제가 등장한다.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지키기 위한 고군분투. 그 대상이 인공 존재일라도. 내 육체의 유전자를 지니지 않았더라도. 플랫폼의 쇠퇴로 인한 단절은 우리도 많이 겪었지. 공들여 키운 인공지능 디지언트까지는 아니라도 서비스 종료된 게임 속 캐릭터, 프리챌에 꾸민 아바타, 싸이월드의 미니미와 미니룸...다들 잘 있니? 만날 수 없어 만나고 싶은데 그런 슬픈 기분인 걸.
-데이시의 기계식 자동 보모
교육학 배운 사람이면 수차례 봤을 것이다. 새끼 원숭이가 어미 대신 주어진 헝겊 인형과 젖주는 기계 인형 중 어디에 애착을 가졌는지. 이 이야기도 그런가 했는데 결론이 조금 달랐다. 인간을 새끼오리 마냥 초기의 각인에 따라 달라요 하는게. 납득은 안 되었다.
-사실적 진실, 감정적 진실
구술 문화의 아프리카 어느 부족에서 글을 깨친 청년 지징기의 이야기와, 기억 기록 장치 리멤을 통해 자신이 딸 니콜을 부당하게 대하고도 기억을 왜곡한 채 살아온 것을 깨달은 화자의 이야기가 교차하며 꾸려진다. 마무리는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이야기를 관통하는 생각은 마음에 새기고 싶었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당신이 옳았다는 점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틀렸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경험과 기억의 블랙박스 같은 리멤에 대한 이야기는 전에 (장작가 책임가?) 분명 읽었는데 그새 어디에서 봤는지 까먹었다. 제대로 기록을 못한 증거. 독서에도 리멤이 필요한가. 망각은 축복이 맞고 나는 기억력이 쓸데없이 좋아 불행하다고 여겨왔는게 다 뻥이다. 요즘엔 제대로 기억하는 게 없어.
-거대한 침묵
절멸 직전 앵무새가 우리에게 건네는 작별 인사. 김애란의 침묵의 미래와 되게 비슷한 느낌이었다. 존재의 사멸과 동시에 세상에서 사라지는 언어들. 다만 현실의 박물관은 그런 자취조차 담지 못하지. 사라지는 건 그냥 사라진다.
-옴팔로스
의도를 가진 인격신의 창조가 세상의 근원으로 공인된 세상. 과학은 그런 믿음을 뒷받침하는 철저한 신하. 그 믿음이 흔들리는 우주 관찰. 그런 상상 하에 세계를 인식하는 것도 그럭저럭 흥미로웠다.
기도문 형식은 처음엔 풍자하고 비꼬는 건가 웃자고 하는 건가 했는데 세계관을 못 박고 시작하니 의외로 진지했다. 중간에 자유의지나 선택을 언급하는 부분은 갑자기 기도문에서 벗어나 독백? 방백? 하듯 서술하는데 의도적인 변형 같지만 그 효과는 잘 모르겠다. 오히려 고치다 말거나 번역하다 실수한 듯 어색한 느낌 외에 극적인 효과는 없었다.
-불안은 자유의 현기증
프리즘을 이용해 평행우주 속 다른 나를 만날 수 있다면. 가 보지 않은 길. 나의 수많은 다른 가능성. 그걸로 돈을 벌려는 사람. 그걸로 자신을 정당화하거나 만족하거나 반대로 불행해지는 사람. 어느 정도는 결정론적. 재미있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모든 것이 우리의 통제하에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 누구도 성인군자가 아니에요. 하지만 우리 모두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어요.”

책 한 권으로 SF빠돌이가 될 수는 없겠지만 사고가 확장되는 경험은 즐거웠다. 앞으로도 이런 장르를 골라 읽겠다고 단언은 못하지만 이런 걸 쓸 자신도 없지만 테드 창 작품은 기회가 되면 기꺼이 읽을 듯하다. 잘 썼고 재미있고 유익한 것도 같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가재가 노래하는 곳
델리아 오언스 지음, 김선형 옮김 / 살림 / 2019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190906 델리아 오언스

아이패드미니2가 고장났다. 블루투스 키보드 붙여 글쓰는 도구. 전자책 뷰어. 상심이 컸다. 얼마나 컸냐면 윤이형 작가와의 만남 당첨되었는데도 안 간다고 할 정도였다. 당첨 문자 받은 순간이 고장난 기기 맡기기 전 그동안 써 둔 글이며 온갖 어플을 지우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엘이디 패널 가는 데 비용도 비용이지만 일주일이 넘게 걸린다고 했다. 월요일에 맡겼는데 아직도 연락이 없다. 혹시 어디 울란바토르 같은 데로 유유히 흘러가 버린 건 아니지. 아니겠지.

그래도 빌려둔 전자책이 있어 손바닥보다 작은 아이폰5s 화면으로 마저 보았다. 원래 베스트셀러라고 광고하는 책은 좋아하지도 않고 잘 안 보는데 이 책은 기대보다 재미있었다.

연세 지긋한 동물학자의 첫 소설이라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가 습지와 해안에 대한 묘사, 온갖 조류와 패류, 야생동물에 대한 묘사가 정말 좋았다. 나처럼 방구석에서 옹벽 위로 보이는 조각 하늘 보며 쓴 글이 아니라 진정 바깥에서 보내는 시간이 지붕 아래 있는 시간보다 많은 사람의 글 다웠다.

카야(캐서린)가 어린 나이에 습지의 판잣집에 홀로 남아 성장하고 사랑하며 습지생물을 연구하는 삶을 누리게 되는 이야기이다. 온갖 이야기가 섞여 있다. 가정폭력과 아동 유기를 넘어선 성장소설에다 사랑과 배신과 다시 찾은 사랑을 다룬 로맨스 소설에다 의문의 살인 사건과 피고로 몰려 재판을 받는 과정까지 다룬 추리 범죄 법정소설...어린 시절인 1950년대부터 카야가 생존에 분투하는 과정과 현재 시점인 1969년에 발생한 동네 청년 체이스 살해 사건을 교차로 넘나들면서 이야기를 풀어가는 구성이다.

중반까지는 그럭저럭 잘 읽다 중간에 연애소설처럼 풀리는 부분은 좀 통속적이네 하다가, 오빠 로디가 다시 등장하는 부분은 좀 뜬금없네, 혹시 이놈이?(응 아니야) 하다가, 중간중간 시 읊는 부분 나오면 유명한 작가인가? 나 시 잘 모르는데? 그런데 왜 자꾸 시야? 하다가... 굳이 노년기와 사망까지 왜 나와 하다가... 결말은 그랬구나. 그런데 그렇게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어쨌든 끝까지 의문과 비밀을 안고 궁금해서 읽게 만든 점은 인정해야겠다.

반딧불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있었는데 자연에 대해 아는 것도 없고 기억도 느낌도 가물거려서 어려움에 빠져 있다. 저자가 야생에 대해 풀어 놓은 모습을 보면 이런 건 그냥 상상으로 얻어지는 게 아니겠구나, 평생 자연과 동물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오래 바라보고 함께한 사람이 쓸 수 있는 글이구나, 싶었다. 무엇보다 그런 아름다움을 깊이 느꼈구나 하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소녀와 소년이 희귀한 깃털을 나무 둥치 위에 주고받으며 교류를 시작하는 이야기는 환상 같지만 낭만적이었다. 스마트폰이 없어도, 종이 편지나 문자가 없어도 서로 교감하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법에 대한 상상이 좋았다. 갈매기 떼가 날아들고 그들에게 밥을 챙겨주는 소녀, 해변의 갈매기들 틈에 잠드는 소녀, 소년과 소녀가 소풍 나간 들판 위 하늘을 가득 메우다 그들 주변으로 날아 앉는 흰기러기 등... 자연과 생명을 소재로 한 묘사는 이 소설의 최강점이었다. 구성의 미흡함이나 진부함이 약간 있더라도 그 강점이 소설을 살린 것 같다.

홀로 외롭게 고립되어 사는 소녀 이야기가 중심 이야기지만, 사실 카야가 그렇게 자랄 수 있었던 것은 완전한 혼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여섯 살 까지는 엄마와 오빠 조디가 함께 하며 여러 가지를 가르쳐 주었고, 열 살까지는 주정뱅이지만 그런 아버지라도 함께 하며 푼돈을 주고 보트로 낚시하는 법을 알려주었다. 이후에는 홍합을 매입해주는 점핑과 그의 아내 메이블이 소녀의 안위를 살피고 경제활동을 도와주었고, 테이트가 글을 알려주고 책을 날라다 주면서 소녀가 지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 단초를 마련해 주었다. 이들은 카야의 법정에서도 그녀의 뒤에 앉아 그녀를 믿고 함께 있어 주었다. 그들 외에도 소녀를 변호해준 톰, 그녀의 책 편집인인 로버트, 테이트의 아버지 스커퍼도 그녀의 무죄를 믿고 힘을 보탰다. 세상에는 홀로된 소녀를 악용하려는 체이스 같은 파렴치들도 있지만, 자신의 이익이나 혈연과 상관없더라도 약하고 외로운 이를 돕고 돌보려는 사람도 있어서 그나마 다행인 것 같다. 물론 소설은 소설이고 지나치게 판타지인 측면도 있다. 부모가 버려 혼자 남아 굶고 병들어 죽은 어린아이들, 세상으로 나왔지만 성적으로 경제적으로 학대 당하다 몸과 마음이 다친 아이들, 파괴되고 교육받지 못하고 병들고 꿈꾸지 못하고 그렇게 겨우 어른이 되어도 고통받는 사람을 더 많이 본다. 사랑받고 함께 하는 삶이 사람을 구할 수 있지만 그 하나를 얻는 게 그렇게나 힘들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초딩 2019-09-12 10: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반유행열반인님 행복한 추석 되세요~ 항상 서재 들러주셔서 감사합니다~

반유행열반인 2019-09-12 10:21   좋아요 0 | URL
초딩님 감사합니다. 초딩님도 즐겁고 편안한 연휴 보내시길 기원합니다.
 
지극히 사적인 초능력
장강명 지음 / 아작 / 2019년 7월
평점 :
절판


-20190901 장강명

작년 여름 처음 장강명 소설을 읽었다. 우리의 소원은 전쟁. 두꺼운 페이지가 술술 넘어간 것은 이야기 구성 능력과 필력과 내 호르몬 폭탄과 밤잠 설치며 젖 찾는 아기의 콜라보였겠지.
신간 책 날개를 펼치면 거기 써 있는 저작 목록 보며 ‘와, 나 여깄는 거 다 봤다’하는 작가가 몇 있다. 나는 쉽게 반하고 그러면 몰입해서 그 작가를 다 읽어 치우려고 애썼다.
정유정도 그랬는데, 신작 앞 몇 페이지를 읽으면서 나는 이런 문체와 묘사를 안 좋아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일단 책을 접었다. 그 부분만 잘 넘기면 독특한 상상과 경이를 만날 수 있는 걸 알지만 매 소설마다 그런 부분을 견디던 것이 다시 떠올랐다.
장강명은 장편은 꽤 재미있게 잘 읽었고, 단편들을 보면서 단점이 있지만 그걸 상쇄하는 장점도 있어서 읽을 만하다고 생각하며 봐 왔다.
산 자들 보면서 흠, 의구심 들던 게 이번 책에서는 견뎌내야 할 만큼 내게는 부족함이 더 와 닿았다.
SF라는 장르에 대한 이해가 내게 부족해서 그런가 몰라도, 이야기 구성이나 문장이 덜 다듬어진 느낌이 나는 글이 많았다. 특히 글이 짧을 수록 그런 느낌이 컸다. 아스타틴은 행성과 위성을 넘나드는 초인들의 권력 암투, 부활, 미개척 천체 개발, 사랑 한 숟갈, 란타넘족 희귀 원소 이름이 붙은 인물들 등등 나름 공을 많이 들인 듯했지만 읽는 내내 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 힘들었다.
가장 마음에 든 소설은 마지막에 실린 데이터 시대의 사랑이었다. 그나마 소설 다웠다.

인기 작가니까, 계속 읽어줄 독자들이 많겠지요? 여지껏 장편 단편소설 르포 에세이 다 읽었으니 이제는 좀 쉬어도 아쉽진 않지요? 1년 사이 나도 많이 변했나 봐요. 당분간은 굳이 찾아 읽지 않을래. 특히 단편은. 장편은 읽을 수도. 더 나아진 모습으로 만나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항상 앞부분만 쓰다가 그만두는 당신을 위한 어떻게든 글쓰기
곽재식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190829 곽재식

열흘 동안 독후감을 안 썼다니. 그간 사모은 책도 읽고 싶은 책도 많았는데 게다가 전자도서관 신간 업데이트까지 되었는데 그렇게 됐다.
탓하자면 이 책 때문이야. 나는 남 탓도 내 탓도 잘 해.

저자의 글은 알라딘 기획물 열일곱에 실린 짧은 소설 하나 보았다. 무슨 내용인지 지금은 기억 안 나는데 꽤 괜찮게 쓰네? 하면서 작가의 책도 기회되면 한 번 봐야지 했었다.
막히면 고양이! 라는 내가 싫어하는 치트키의 원 출처가 이 책인 걸 알고 어디 읽어보자 했다.
음. 열흘 간 절반을 겨우 읽다 말다 했다. 확실히 1.상상 2.경험과 변주 읽을 때는 힘들었다. 아 재미없어. 딱히 이거다 싶은 방법도 없어. 내가 제목에 부합하지 않은 인간인데 책을 잘못 골라서 이 모양인가 싶기도 했다.
사실 그 열흘 간 다른 일로 바빴고 정신이 피곤하기도 했다. 그래도 빌린 거 다 읽어야지 하며 펼쳤다 덮기를 반복.
오늘 3.연마와 4.생존 부분을 읽는데 여기서부턴 순식간에 다 읽었다. 작가가 오랜 기간 쌓은 노하우를 남에게 애써 글로 설명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닌데, 이 정도면 제법 친절하다고 생각했다. 뒷부분은 바로 도움은 안 되더라도 공감되는 게 있어서 그런 것 같았다.

글쓰기에 대한 책을 많이 본 편은 아니다. 읽어도 아 넌 그러니? 하고 후루룩 잊어 버린다. 그래도 남의 말 들을 필요가 있다, 는 생각을 최근에야 하기 시작한다. 워어 다 늙어서 조금씩 철이 들고 있나 보다. 남의 말 듣고 바꿔 볼까 생각이 들 즈음엔 아마 썩어 흙이 되겠지?
여기 평생 아집으로 뭉쳐 바늘도 안 들어가던 놈이 한줌 먼지가 되었습니다. 인류사와 지구사에 그나마 도움이 된 순간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너무 한낮의 연애
김금희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190819 김금희
알라딘 중고서점에 가서 김애란 산문집을 팔았다. 한 달도 안 된 책 딱 절반값 받았다. 고객이 방금 팔고 간 책에 김금희 소설집이 있었다. 단편 두 편만 읽고 여태 한 권도 안 읽은게 너무하지 싶어 민트색 책 뽑았다. 3년 전 나온 소설집 매매가가 방금 판 신간 매입가보다 비싸 빈정 상했다. 다시 꽂아놨다 20%할인 쿠폰 있는 거 기억하고 또 다시 꽂은 자리 가서 뽑았다. 이제 이백원만 더 보태면 살 수 있군. 사야지. 사실 구병모 신간 두 권도 팔았지롱. 그래도 단 하나의 문장은 남겨뒀다.

김금희 진작 읽을 걸 지금이라도 읽어 다행이지, 김애란 팔고 김금희 사길 잘했네 잘했어 얼쑤 하며 재미있게 읽었다.

-너무 한낮의 연애
두번째 읽는데 좋았다. 필용이는 짜증나지만 불쌍하기도 했다. 양희는 불쌍하지만 짜증나기도 했다. 있던 것이 없어지는 것에 대해 이렇게 쓰다니. 나한테 부끄럽지 말고 나무같은 거나 보라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았겠다고 생각했다.
-조중균의 세계
이것도 좋았다. 지은이 안 쓰여있는 시의 시인이자 꼼꼼한 편집자, 옳지 않은 것을 알아차리고 아니라고 하는 사람, 그런 사람의 자리는 사라지고 심드렁하게 그러려니 하고 참는 사람만 남는 회사 이야기. 가만한 날이 그래서 마음에 들어서 김세희 소설도 사서 아직 읽는 중인데 이거는 훨씬 묘했다. 절묘했다. 해고자 대기발령자 이 책 안에 되게 많다.
-세실리아
세실리아도 정은이도 슬픈 이야기였다. 이런 후일담 회고담은 너무 외롭다.
-반월
역시나 편지쓰는 사람은 소설에만 남은 것 같다. 아니면 어딘가 숨어서 다들 나몰래 답없는 편지를 주고 받고 있나. 마무리는 꿈을 꾸고 그대로 쓴 느낌이다. 섬의 고립감과 본 적 없는 동수와 이모의 이미지 매점 아저씨 죽은 토끼 묻어주기 뭔가 분위기가 꿈같고 영화 같았다. 선글라스가 울었던 눈 감추는 용도가 될 수 있는 건 여기서 처음 (개 기다리는 데서 또 한번) 알고 솔깃했다. 하나 사서 끼고 다니며 울어봐?하고. (청승)
-고기
그냥 고기일 뿐이에요. 여기 나온 정육 아저씨, 개 기다리는 소설의 경찰, 병원 소설의 경호원, 아저씨들 특유의 상호작용할 때의 그 느낌을 잘 그렸다. 사실 나는 어디서나 씩씩하게 찬바람 날리며 말도 못 붙이게 하고 다녀서 그런 추근댐에 가까운 경험은 거의 없지만 어떤 위압감 폭력의 징조 같은 건 도처에 있다.
-개를 기다리는 일
황정은 소설에서도 그냥 개야 했는데 여기서도 그런다. 그런데 같은 개라도 다르다. 개에 대한 애정은 난 잘 모르겠다. 부인과 아이를 두드려 패는 아버지는 좀 일찍들 죽거나 없어졌으면.
-우리가 어느 별에서
이런 제목인지 방금 알았네. 옥수수밭의 이미지, 옥수수 꺾는 아이들, 인터스텔라가 별 관련 없는데도 생각났다. 어디선가 누군가가 이 세상은 거대한 고아원이라고 했던 거도 문득 떠올랐다. 어디지. 누구지. 부모 없이 제 몫을 찾아 사는 어른이 된 아이 이야기를 보면 울어야 할지 대견해야 할지. 고아들은 이 책에 또 자꾸 나온다.
-보통의 시절
부모를 죽인 원수 김대춘을 찾아가는 고아였던 네 남매와 상준이 이야기. 대행부모지만 폭군이었던 큰오빠와 언니, 작은오빠, 나. 작은오빠 캐릭터가 좀 심하게 희미했다. 상준이보다 더. 마지막 장면 보면 약간 친절한 금자씨 생각났다. 이런 성탄절. 성탄이 나랑 뭔 상관있나.
-고양이는 어떻게 단련되는가
고양이 치트키는 싫지만 이 소설의 주인공은 고양이가 아니고 잃어버린 고양이를 찾아주는 고아였던 사실상 대기발령난 가구회사 모과장이라 이 소설도 좋았다. 마지막 굴뚝 올라가는 장면은 좀 슬프고 진부해서 싫었다. 난쏘공이야 고공농성이야 올라가게 하지마 그러지 마 에이씨 흑흑.

잘 읽었습니다.

댓글(11)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yo 2019-08-21 10: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김금희 짱이에요.... 그리고 곧 신간 단편집 나온다는 소식입니다. 그래서 syo는 아주 춤을 춘다는 소식이구요.

반유행열반인 2019-08-21 12:48   좋아요 0 | URL
syo님은 안 보이시겠지만 댓글 위에 ‘syo님도 너무 한낮의 연애를 좋아합니다’ 하고 알라딘이 먼저 오지랖 떨었어요. 저도 같이 춤출게요. 얼쑤 절쑤

syo 2019-08-21 13:07   좋아요 1 | URL
저도 보여요. 다른 데 다니면서 자꾸 syo한테 syo님이 이걸 좋아하고 저걸 좋아한다고 알려주는 알라딘놈의 눈치없는 멘트를 자주 발견합니다.

반유행열반인 2019-08-21 13:09   좋아요 0 | URL
저는 그거라도 반가워요. 진짜 syo가 없을 땐. 처음에는 커피콩 기르느라 바쁜거였나! 진짜인가!하고 홀딱 속아 넘어감...

2019-08-21 13: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8-21 13: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8-21 13: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8-21 13: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8-21 13: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8-21 16: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8-21 14: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31 | 132 | 133 | 134 | 135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