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921 김금희. 읽다 놓아줍니다.
집에도 화분이 많다. 엄마가 키운다. 어린이들 학교나 유치원 활동에서 받아온 고무나무, 다육식물도 있고 남이 키우다 버린 것 주워온 벤자민, 남의 화분 가지치기나 포기나누기 할 때 버리는 것 꺾꽂이 한 것, 먹는 것에서 갈라 심어 커다랗게 키운 식물들도 있다. 나리꽃, 도라지꽃, 샤프란, 철쭉 같은 게 그렇다. 아보카도 씨앗을 발아시켜 여러 그루 얼어죽고 한 그루 잎이 좀 타들어가긴 해도 내 키보다 크게 살아 있고, 레몬 씨앗 틔운 것도 기다랗게 몇 그루 키워 놨고, 대추야자 발아 시킨 건 얼마전 싹을 내서 길게 삐죽한 야자 나무 느낌으로 뻗고 있고, 망고스틴 씨앗도 심어보겠다고 불리고 있다. 작은 어린이는 유치원 활동지에 콩으로 우리나라 글자 붙여 놓은 곳에서 자꾸 콩을 떼다가 흙에 몰래 파묻어서 화분에 콩나무가 뿅뿅 튀어나온다. 유치원에서 만들어 온 잔디인형 앞에서 내가 알려준 주문 ‘자라나라 머리머리!’ 하루 세 번씩 외쳤더니 정말 잔디인형 머리가 풍성해졌다.
뭐 내가 키운 건 하나도 없다. 나는 빨래 널다가 벤자민나무가지가 자꾸 몸을 할퀴고 성가시게 한다고 뚝 뿐질러 놓기나 하는 야만인이다. 수렵채집인은 정말 나처럼 꺾고 잘라 모으기만 할 뿐 키우는 데는 나몰라라 했을 것이다. 농경의 역사도 짧지만 먹지도 못하는 식물을 집에 들이고 키우는 건 정말 더 최신의 취미가 아닐까 한다.
그래서 김금희 작가가 식물 키우는 이야기 묶어 에세이로 나왔다 했을 때부터 나는 못 읽겠네...했다. 미리보기로 올라온 부분까지 읽고 아… 힘들겠다...했는데 그래도 미련이 남아 도서관에 올라오자마자 빌려서 읽는데 5분의 1쯤 넘게 읽다가 놓아주기로 했다. 관심 없고 좋아하지 않는 분야에 대해 몇 시간을 꾸역꾸역 참고 듣다보면, 그게 우와 난 잘 모르는데 흥미롭다, 하면 나도 뭔가 개종이 될란가 싶지만 더 읽다가는 진짜 누군가와 무언가를 이유 없이 미워하게 될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나 김금희 글 좋아하는 것 맞냐 하고 최근에는 아리까리 해지고 있다. 이건 소설이 아니니까 산문집 읽고 소설 싫어하게 되면 그건 또 진짜 멍청이가 아닐까…
학명인지 영문명인지 발음하기도 어렵게 나열된 화초들이름 보면서, 굳이 이름을 따박따박 옮겨주는 건 애정하는 것들에 최대한 예의를 갖추고 싶은 마음일수도 있겠다 싶으면서도 왜 난 자꾸 작아지고 멀어지는가. 뭔가를 사랑하고 망해도 망쳐도 계속 노력하며 사랑을 놓지 않는 걸 보면서 자꾸 나를 탓하게 되는 탓인 것 같다. 나는 집에 사는 풀한테 물 한 컵 주지 않아, 하는 자책. 뿌리파리 없애보겠다고 과산화수소수에 물 타서 열심히 주면서,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안 하는 것보다 낫겠지, 하고 공들이는 것들에 대해 나는 자꾸 힘들게 쓸데없는 짓을 하냐고 투덜대는 인간이라서. 그러면서 오 효과 있냐? 하고 밑줄 쳐둠. 그러다 에이 하고 그냥 엄마한테 안 알려줌. 뿌리파리 정말 싫다. 박멸이 어렵다. 화분 키우는 집에는 상주 생물인 듯.
사람이 정들이고 공들이는 대상은 너무도 다양해서 이제는 하다하다 반려동물 넘어 반려식물 반려세균은 아직 못봤고 뭔가를 조건 없이 마냥 사랑하는 마음이 누군가의 하루를 한 시절을 때로는 일생을 지탱하기도 하는데 내게는 그게 무얼까 가만 생각해보았다. 이거라고 딱 자신있게 뱉어낼 뭔가가 떠오르지 않으면 조금 울고 싶어진다. 독중단감을 길게도 썼다.
+밑줄 긋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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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하고 희망하고 믿는 데는 힘이 필요하다. 믿지 않는 것은 외면과 단절로 끝이 나지만 믿는다는 것은 미래를 향한 이후의 발걸음까지 포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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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과가 있다 없다 확언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지난해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뿌리파리가 줄었다고 느낀다. 발코니 환경이 바뀌어서인지 정말 과산화수소수가 효과를 발휘한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때보다는 지금이 훨씬 마음이 낫다. 애는 써봤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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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쩜 그 이름도 ‘괭이’밥이라는 것이. 어느 다정한 괭이밥이 앓는 나무에도 힘을 주고 이 여름을 앓으며 통과하고 있는 우리 개에게도 기운을 북돋아주었으면. 어쩌면 그러기 위해 저렇게 열심히 자라고 있는 게 아닌가. 물론 나의 이런 논리에 근거는 없다. 하지만 때론 그렇게 믿는 마음이 난관을 이기는 작은 발판이 되지 않을까.
아...‘식물적’ ‘낙관’에서부터 우린 만나지 말았어야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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