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엄마를 절에 버리러 트리플 17
이서수 지음 / 자음과모음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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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04 이서수.

이번 연휴에도 엄마의 말에 마음이 상했다. 눈물을 뚝뚝 흘리며 나한테 그렇게 말하지 말라고! 소리지르며 대든 적도 있었지만 이번에는 꾸욱 삼켰다. 입을 다물고 속으로 화를 끓였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는지 엄마도 한동안 눈치를 보았다.
저 인간이 나를 이렇게 키웠어요. 말 한 마디마다 독사 한 마리씩을 내 속에 집어 넣어 날 괴물로 만들었어요.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나쁜 불효란 실컷 부려먹다가 늙으면 뒤도 안 돌아보고 요양병원에 보낼 거야, 면회도 자주 안 갈 거야, 말은 안 하고 그렇게 생각만 하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이서수의 이 책 제목이 생각났다. ‘엄마를 절에 버리러’ 제목만 봐도 못 버리고 돌아오겠네. 책을 읽으며 여행 잘 하고 돌아가라고 매정하게 선 긋는 스님이 얄밉게도 보였지만, 또 절 입장에서는 여기가 폐기물 처리장도 아니고 자꾸 사람 버리러 오면 싫을 것 같기도 했다. 여름에 본 드라마에서 욕쟁이 할머니가 정신 장애가 있는 자기 동생 숙자 할머니를 절 앞에 버리고 갔는데, 몇날 며칠을 숙자 할머니가 절 입구에 묶여 있어도 스님 한 명 내다보지 않았다. 그게 야박하다 싶기도 했지만, 베이비박스처럼 그랜마박스를 설치하더라도 저렇게나 절에 노인 버리는 게 클리셰가 되어 버리면 절은 터져버릴 것이고 스님이나 보살님들은 노인들을 돌보느라 수행도 못하겠지… 내 친구 하나는 젊을 때 몸과 마음이 아파 절에 잠시 은신한 적이 있는데 거기서 늙은 비구니들 비구들 밥을 해주고 밥을 얻어 먹으며 지냈다. 절에서도 젊은이를 좋아하지 노인은 사절이다.

딱히 엄마를 절에 버릴 생각은 없지만, 이 순간 이 소설은 딱 맞춤이었다. 치인다고 하나, 교통 사고 피해자한테는 더럽게 예의 없는 비유 같지만 난 이서수 소설에 치였다. 사실 지난 번 소설집 땐 살짝 접촉 사고 수준이었는데 이번 작은 소설집은 삼중 추돌, 그런데 마지막 에세이까지 그냥 소설이라고 우기고 가도 될 정도로 좋아서 이건 트리플 아니고 콰트로네… 하프 단편집이네… 여태 봤던 트리플 시리즈 다 망했는데 이서수가 살렸다. 그런데 전자책 보고 나서 종이책 표지 검색해보니 표지는 진짜...왜 이렇게 뽑는지 모르겠다… 뭐 작가와 출판사의 선택이겠지만 표지 진짜 반댈세… 좋은 소설 판매 확률을 확 낮출 것 같다…

나도 한 때는 엄마를 전우로, 동지로, 생존자로, 서로의 구원자로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렇지만 한없이 죄책감을 자극하고 과거의 리마인더가 되어 지질지질 하는 것이 가끔 힘들다. 자식한테는 생전 공감하거나 따뜻한 말을 건네지도, 한 번 안아주지도 않는 사람이 바깥에서 남들에게 자신이 좋은 말을 건네고 현자처럼 멘토처럼 내가 이렇게 공동체의 평화를 이뤄냈다, 그 사람의 마음을 읽어냈다(내가 보기엔 그냥 편견과 지레짐작), 이러고 스스로 우월감을 느끼는 모습이 나는 너무 힘들었다. 자기 자식은 어떻게 썩어가는지 들여다 보지도 못하면서… 화분이나 가꾸고 있어… 엄마가 못 준 사랑 결핍에 허덕이며 내가 얼마나 그걸 채우려고 평생 헤매고 다닌지 모르면서 끝없이 잔소리만 하는 엄마가 나는 자주 미웠다. 이거 쓰면서 눈물 찔찔.

온통 엄마로만 꽉 찬 소설집 읽으면서 자기 인생은 망했는데 그래도 딸한테 자부심 느끼는 엄마, 잔소리하고 속터지다 그래도 서로를 버리지 못하는 부모 자식 이야기는 클리셰라도 잘 쓰면 읽을만 하군, 나만 이런 거 아니지, 다들 그런 거지, 저마다 조금은 불효하고 조금은 효도하면서 지내면 뉴스에 나오는 후레자식 정도까지는 안 되는 거지, 하고 읽었다.

엄마는 23년의 망한 혼인 생활을 접고도 이제 15년을 살았으니 앞으로 망하지 않은 기간을 살 확률이 더 높다. 대학에 못 간게 한이더니 내 첫번째 아이 키우는 동안 사이버대학 문예창작과를 다니고 졸업해서 학사 학위 소지자가 되었다. 계속 소설을 쓰고 고치고 공모전 냈다 망하길 (나랑 같이) 반복 중이고, 주2회 구에서 운영하는 시설에서 필라테스 운동을 신나게 하고, 같은 시설에서 주1회 미술 수업 소묘 배우러 갈 땐 세상 설레는 표정을 하고 살랑대는 치마차림에 스케치북을 에코백에 담아 나선다. 또 같은 시설에서 주1회 피아노 레슨을 받으며 내가 사 놓고 쳐박아 둔 디지털피아노를 방에 들여놓고 틈틈이 체르니 30번을 치고 유튜브 영상이랑 비교한다. 지금도 내 아이들을 키워주고 살림을 도맡아 한다. 아이들 뿐 아니라 나랑 내 배우자까지 먹이고 키우고 있음… 이렇게 되돌아보면 좀 싫은 소리 한다고 지랄지랄하는 나새끼가 천하개불효샹놈인가 싶기도 하지만… 엄마 너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사셈… 망할 놈의 자식 새기는 그거 말고 빌어 드릴 게 없습니다… 죽기 전에 이서수만큼 잘 쓰는 소설가 되셈… 이서수 소설 속 엄마는 로맨스 판타지 소설 쓰는 딸한테 자기가 쓴 소설 잘도 보여주는데 (제목도 놀라운 ‘암 늑대 김수련의 사랑’) 우리 엄마는 안 보여준다… 자기 등단하면 보여준대… 날 안 보여줘서 등단 못하는 거 아닐까… 근데 내가 이렇게 개차반으로 까는 새끼인 걸 생각하면 그냥 안 보여주시는 게 건강에 이롭겠다….

+밑줄 긋기
-나는 콘돔을 팔아 번 돈으로 대학이 무용하다는 생각을 가진 아버지에게 저항하며 대학에 갔다. 놀라지 마시라. 1958년생인 아버지는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다. 여자는 대학에 갈 필요가 없고, 아들이 아닌 딸을 대학에 보내줄 돈은 없다고. 우리 반 전체를 통틀어 그런 생각을 가진 부모는 나의 아버지뿐이었다. 다들 대학에 못 보내 안달이었지, 대학에 가겠다는 딸을 말리는 아버지는 없었다.
(깜짝이야 우리 아빠인 줄...엄마에게 내가 대학 굳이 가야하나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심지어 우리집 딸은 최초합 붙은 학교가 S,Y,K(수시1차 붙고 수능을 생각보다 잘 봐서 면접 안 감…),H대였는대도 저런 소리를 했다지…)

-선택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다. 적금을 해약하거나, 아버지를 해약하거나 둘 중 하나였는데 놀랍게도 적금을 해약하는 편이 더 쉬웠다.
(아버지를 해약하지 그랬어...난 했어…)

-실로 오랜만에 먹어본 뽀또는 달고 고소했다. 그 때문인지 아버지는 무알코올 맥주라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 알코올이 담뿍 든 술처럼 맛있게 홀짝였다. 흡족한 표정으로 창밖을 바라보던 아버지는 눈을 맞으며 총총 걸어가는 다정한 커플을 보더니 뽀또! 라고 크게 외쳤다. 젊은 커플이 놀란 얼굴로 주위를 살피자 아버지는 얼른 창을 닫으라고 말했다.
(아...이런 거 왜 난 좋아...무알코올 맥주랑 뽀또 처먹고 취한 아버지가 뽀또! 이지랄 ㅋㅋㅋㅋ)

-아무도 우리를 몰라. 아무도 우리를 알려고 하지 않아. 아무도 우리의 삶이 당연하지 않은 거라고 말해주지 않아. 이건 오로지 우리가 감당해야 할 일인 거야.
(흙흙흙…여기까지 ‘엄마를 절에 버리러‘ 중)

-그래. 나도 아는데, 엄마도 알겠지. 사랑을 이루고 행복해져도 선뜻 완성이라고 말할 수가 없다는 걸.
(’암 늑대 김수련의 사랑‘ 중)


-약을 꼭 쥐고 잤다. 먹지는 않았다. 먹지 않았으니 나는 환자가 아닌 거라고 생각했다. 약을 먹으면 환자가 되고, 참으면 건강한 사람인 거라고. 김월희는 서한지도 모르는 자신의 투쟁에 대해 생각했다. 약을 먹지 않으려는 투쟁. 그러다 지고 마는 투쟁. 다시 약을 먹지 않으려는 투쟁. 역시 또 지고 마는 투쟁.
(사는 것도 투쟁이라고 하셨잖아요. 안 죽기 투쟁.)

-의사는 김월희의 말을 끊지 않고 들어주었다. 김월희는 자신의 인생을 축약해서 전달했다. 남편은 평생 외도하며 집에 거의 들어오지 않아서 자신은 아이들과 거지처럼 살았다. 집에 쌀이 떨어져서 아이들에게 라면만 먹인 적도 부지기수였다. 와중에 자신은 우울증을 앓았고, 온종일 죽고 싶다는 생각으로 시체처럼 살았다.
아이들이 너무 불쌍해요. 이런 부모 밑에서 자라서.

-서한지는 참았던 눈물이 쏟아지려고 해서 얼른 집에 가고 싶었다. 그러자 김월희가 벌컥 화를 냈다. 왜 기도도 해주지 않냐고. 아래층 아주머니가 김월희를 말리며 말했다. 기도가 무슨 소용이야. 신은 없어. 있으면 죄 없는 고양이들이 저렇게 비참하게 죽겠어? 아주머니는 그렇게 말하며 흘러내리는 눈물을 손등으로 닦아냈다.

-일을 하려면 김월희는 자신이 왜 아픈지를 깨달아야 할 것이다. 결국 자신에게 벌주려는 마음을 버려야 한다는 걸 말이다. 서한지는 마음속으로 말했다. 엄마, 대단한 인생을 살 필요는 없어. 엄마가 좋아하는 알밤, 그걸 떠올려봐. 벌레 먹은 밤을 집어 들면 에잇 속았다, 그런 표정으로 웃잖아. 인생도 그런 마음으로 살면 돼. 자꾸 벌레 먹은 밤만 집어 들어서 속상해도 웃어넘기고 마는 것처럼, 그냥 그런 마음으로 살면 돼. 대단해지려고 하지 마. 남들하고 비교하느라 엄마가 그렇게 속이 아픈 거야. 엄마는 엄마의 길을 묵묵히 가면 돼. 그것이 지극히 초라한 길이어도.

-한지야, 사람이 벌레처럼 산다고 욕먹을 일은 아니야. 다 이유가 있는 거지. 이유가 있는 거야.
(‘있잖아요 비밀이에요’ 중)

-어쨌든 나는 엄마의 삶을 모티프로 삼아 세 명의 육십대 여성을 만들었다. 그녀들의 공통점은 세 가지이다. 가난과 노동 그리고 딸.
나는 실버 노동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데, 어느 정도는 나의 일이기도 하다는 생각에서다. 먼 훗날 나 역시 일자리를 찾아 배회하는 육십대 여성이 될 것이다. 그때까지 소설을 쓰며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을 거라고 낙관하는 소설가는 아마도 많지 않을 것이다. 지금도 소설을 써서 먹고 사는 일이 참 위태롭다는 생각을 하는데, 육십대가 되어서도 소설 쓰기로 밥벌이를 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거의 하지 않는다.

-엄마는 나를 보며 활짝 웃더니 새로 사귄 길고양이를 소개해주었다. 나는 고양이를 한참 동안 구경하다가 모기한테 물리고 나서야 정신이 들었다.
(에세이 ‘무지개떡처럼’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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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05 18: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10-05 23: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Yeagene 2023-10-06 22: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작품 표지 보자마자 별로라고 생각했어요.열반인님 글 읽으니 더 그렇게 생각되네요 ㅎㅎ

반유행열반인 2023-10-06 22:37   좋아요 1 | URL
표지 그림은 별로인데 소설은 제가 애정하게 되었습니다 이서수 요즘 빠짐... 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