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드브루 헤밍웨이 (원액) - 500ml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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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는 드립 커피나 캡슐 커피는 잘 안 드신다. 쓰기만 하고 도저히 맛을 모르겠다고. 믹스 커피만 드시다가 한 때 아름다운 커피의 공정무역 콜드브루를 사 드렸더니 이건 맛있다고 물을 잔뜩 타서 멀겋게 드셨다. (비싼 건 잘 아심...)  그러다가 커피를 종류별로 쟁이다보니 허리가 휘길래 마트에서 파는 저렴한 원액을 공급했는데 그것도 잘 드셨다.
 콜드브루가 떨어져 엄마 드실 게 없는데 알라딘에도 콜드브루 원액을 파는 걸 알았다. 마침 ‘트릭 미러’도 사고 싶은데 말이야...이달 커피쿠폰은 다 써 버려서 고민하다가 딸래미 이름으로 어린이 회원에 가입하고 플래티넘 선물하기 기능으로 커피쿠폰과 책 할인쿠폰을 획득했다! 다만 본인인증을 해야 하는데 아이 명의의 휴대전화가 없으니 마일리지는 공중분해 되는 단점... 그래도 커피쿠폰이 어디야...콜드브루 중에 시다모를 사고 싶었지만 디카페인이라 헤밍웨이를 질렀다. 양탄자 배송이라고, 전날 오후에 시켰는데 출근하려고 현관문 열었더니 딱 놓여 있었다. 
 나도 맛을 보자, 하고 퇴근해서 아주 조금 물에 타 마시니 이거 왠지 아는 맛이야...이*트에서 사 먹던 그 맛...병에 인쇄된 표기사항을 보니까 제조원 핸디엄! 여러분 알라딘커피팩토리는 원두 로스팅만 하십니다...더치 커피는 외주였던 것입니다... 게다가 이*트에서 사먹은 그 회사였어...거기 맛있긴 한데 쿠폰 안 써도 마트에서 그 가격이라는 사실...또르르...
 이거 사자마자 에티오피아 새 원두 나와서 심란한데 더 심란하다. 콜드브루는 여기서 안 살 거야. 흥칫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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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 2021-02-18 22: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괄호 안에 우왝으로 봤어요ㅋ 커피 후기글 오늘도 잼있어요!

반유행열반인 2021-02-18 22:24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원액 우왝 ㅋㅋㅋ알라딘 원두는 좋아요. 원액은 재구매 안 할 거 같아요 ㅋㅋㅋㅋ쿠폰 아까워요...이*트 가서 사야지...

2021-02-18 22: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2-18 22: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나 2021-02-18 23: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뭔가 열반인님 입이 풀리셨어 ㅋㅋㅋㅋ 커피 리뷰로 단련되셔서 그런가. 요즘 리뷰에도 더 술술~ 생활밀착형 글쓰기 나날이 렙업되는 거 지켜보는 거 왕뿌듯 😆

반유행열반인 2021-02-18 23:11   좋아요 1 | URL
그냥 원래 노출증 환자가 환자환자 하는 거죠 뭘 ㅋㅋㅋ헤밍웨이 근데 읽지도 않은 헤밍웨이의 이름을 미리 오염시키는 안 좋은 인상의 커피다...마치 사고 보니 이 헤밍웨 가 지은 책 잘 못 산 기분인 거시다...

하나 2021-02-18 23:19   좋아요 1 | URL
거 알라딘이 잘못했네... 가만히 계신 헤밍웨이님을 왜 ㅋㅋㅋ 알라딘은 원두.. 메모.. 사실 저도 콜드브루 되게 궁금했는데 이 리뷰가 매우 도움이 되었습니다 👍

반유행열반인 2021-02-18 23:19   좋아요 1 | URL
이*트 가세요. 비싼 거 먹으려면 아예 아름다운 커피 이퀄 콜드브루(속닥속닥 하면서 다 들리게 크게 말함 ㅋㅋㅋㅋㅋ)
 
다음 생에 할 일들 창비시선 390
안주철 지음 / 창비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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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17 안주철.

오늘 밖은 영하 십 도라는데, 체감 기온은 십팔 도라는데, 직장 대가리는 뭐에 꽂혔는지 커다란 창고 같은 곳에 직원들 사십명 남짓을 몰아 넣고 아주 훌륭한 강의하신다는 강사를 모시고 집합 교육을 시켰다. 거리두기 한답시고 그 넓은 공간에 1미터 간격으로 접이식 의자를 펼쳐 두고 거기 앉아서 히터 몇 개로는 택도 없는 밖이나 다름 없는 안에서 덜덜 떨면서 두 시간을 앉아 있었다. 정작 대가리는 자기는 들은 교육이라고, 중간에 몇 분 잘들 듣고 있나 감시하러 와서 휘휘 돌아보고는 자기 집무실로 금세 가버렸다. 체감 기온 십팔...도. 아무리 좋은 가르침이라도 옆 동료 말대로 욕구 위계(매슬로우ㅋㅋㅋ)에서 밀려버리면 무용하다. 나는 롱패딩의 후드를 푹 뒤집어쓰고, 주머니에 손을 찔렀다 뺐다 해도 소용이 없어서, 강의 자료 나눠준 묶음에 품 안에 숨겨온 시집을 겹쳐 두 시간 동안 읽었다. 몸이 추우니 마음이라도 곁불을 쬐야했단 말이다. 이렇게 휘떡휘떡 시를 읽는 건 아닌 일인데 얼어뒤지지 않으려면 이렇게라도 해야했다. 춥다 못해 머리가 아파오고 결국 저녁까지 머리가 아파서 타이레놀 한 알을 좀 전에 먹고 남은 시집을 다 읽었다.

-거지는 모닥불 앞에서 한장씩 녹아내리고 있었다.

저녁이 되면서 그의 몸은 다 녹아내려 질척거리고
모닥불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살점부터 깨진 유리처럼 얼어붙기 시작했다.
(‘깨진 유리’ 중)

나라는 거지에게 오늘의 모닥불이 되어준 안주철 시인의 첫 시집에는 살점, 혀, 이웃, 마을, 개, 피, 이런 게 많이 나왔다. 그래서 좋았다. 친구가 시인님과 친하다고, 원주 가서 시인님 사는 컨테이너 박스 가서 밤새 술마시고 고양이랑 놀다 자고 온 걸 자랑하길래 한참 전에 시집을 사 놓고는 이제야 읽었다. 시집 읽기 전에 미리 검색해 읽었던 시들 보면, 참, 좋은 남편은 아니다 시인이란...글쓰는 남자란 좋은 애인도 배우자도 되기 어렵겠다...싶었지만 뭐 그러고 싶어 그러겠니 그러고 싶지 않아도 어쩔 수 없는 사람들은 어쩌겠어, 글쓰는 여자도 마찬가지일지도 모르겠네, 하고 생각했다.

+밑줄 긋기
-1
밤늦도록 돌아오지 않는 아내를 기다리며
아이에게 책을 읽어준다.
회사를 그만둘 때마다 나는 집에서
한없이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에게 책을 읽어준다.

말을 한발자국씩 배우기 시작한 아이에게
나는 책을 읽어준다. 그러나 아이에게
아이가 진심으로 기다리는 것이
엄마라는 사실을 끝내 말해주지 않는다.

백수가 될 때마다 나는
아내의 등골을 매일 한숟갈씩 떠먹으며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고
아이가 책을 읽어주는 나를 좋아하게 만든다.

2
꿈을 하나 지운다. 흔적도 남기지 않고
쉽게 지워지는 꿈이 신기해서
아내의 꿈도 슬쩍 하나 지운다. 아내의 꿈도
잘 지워진다. 아내는 자잘한 꿈이 많아
손이 많이 간다.

꿈을 지울 때마다 내 몸에 구멍이 하나씩
늘어난다. 구멍을 세는 것이 재미있어서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면서 꿈을 지운다.

꿈이 지워질 때마다 내 몸에 구멍이 뚫린다.
아내의 몸에도 구멍이 숭숭 뚫린다. 구멍에서
피가 배어나온다.
혈관이 들어 있는 꿈을 지우고 말았다.

투명한 몸을 한방울씩 적시며 피가 흘러내린다.
(‘꿈을 지우다’ 전문. 잘 지워지는 꿈이라니 눈물 또르르…1)

-설교는 한시간이어도 일분이어도 길다.
거짓말을 수집하는 이유는 따로 없다. 좀더 시적으로
대답해야 한다면 많은 거짓말이 무늬를 이룰 것이다.
사랑한다, 오해였다, 머뭇거렸다, 너무 늦었다.
해석을 사랑하는 거 이외에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해석을 사랑함’ 중. 하...강의 억지로 들을 때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서 와닿아버린ㅋㅋㅋㅋ길다…)

-아내가 운다.
나는 아내보다 더 처량해져서 우는 아내를 본다.
다음 생엔 돈 많이 벌어올게.
아내가 빠르게 눈물을 닦는다.
나는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다음 생에는 집을 한채 살 수 있을 거야.
아내는 내 얼굴을 빤히 들여다본다.
다음 생에는 힘이 부칠 때
아프리카에 들러 모래를 한줌 만져보자.
아내는 피식 웃는다.
이번 생에 니가 죽을 수 있을 것 같아.

나는 재빨리 아이가 되어 말한다. 배고파.
아내는 밥을 차리고
아이는 내가 되어 대신 반찬 투정을 한다.
순간 나는 아내가 되어
아이를 혼내려 하는데 변신이 잘 안된다.
아이가 벌써 아내가 되어 나를 혼낸다.
억울할 건 하나도 없다.
조금 늦었을 뿐이다.

그래도 나는 아내에게 말한다.
다음 생엔 이번 생을 까맣게 잊게 해줄게.
아내는 눈물을 문지를 손등같이 웃으며 말한다.
오늘 급식은 여기까지
(‘다음 생애 할 일들’전문. 덜덜 떨고 나서 또 덜덜 떨면서 급식 먹었지...ㅋㅋㅋㅋ 다음 생엔 이번 생을 까맣게 잊게 해줄게. 눈물 또르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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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2021-02-17 21:4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순간 나는 아내가 되어 아이를 혼내려 하는데 변신이 잘 안된다. ㅋㅋㅋ 이렇게 심드렁한 변신 실패라니.. 아이가 벌써 아내가 되어 나를 혼낸다,는 도경완네 딸 생각나네여 ㅋㅋ 오늘 진짜 엄청 무척 되게 춥던데 대가리 혼나야겠네... 😡(체감온도 영하) 십팔...도에 춥게 무슨 교육을 한다고. 날 풀리면 할 것이지.. 두통은 좀 차도가 있으신가요? 실내에 있어도 으슬으슬 춥던데 따듯하게 무장하시고 일찍 주무셔여! 🤒

반유행열반인 2021-02-17 21:57   좋아요 4 | URL
안 그래도 변신 나와서 변신 연구 전문가 하나님 생각났어요 ㅋㅋ실패는 안 쳐주나...저 복직 후 일 년 내내 대가리 욕하고 이젠 좀 적응되서 덜 할 때겠지...했는데 여전한 새해네요ㅋㅋㅋ 얼른 탈00(직장 이름)하고 싶다...가 요즘 제가 만든 유행어..어머 저 분 드디어 탈00성공! 경축! 진심 부러움!!! 이러고 ㅋㅋㅋ
약간 예방(?)개념으루다가 조금 조금 아픈 걸 약 미리 먹었더니 양호한 저녁입니다. 하나님도 따뜻한 밤 되시길!!!

막시무스 2021-02-17 22:31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오늘 같은날 좋은 시로 견디기에도 좀 너무한 집합교육이었네요!ㅠ.ㅠ 어른들 모아 놓구선 뭔 갑질인지. 열반님의 보스께서 요즘 존재감을 못느끼시나 보네요! 암튼 고생많으셨던 하루셨네요! 잠은 편하게 주무시길 기원합니다.

반유행열반인 2021-02-18 06:42   좋아요 0 | URL
막시무스님 표현이 너무 적확하네요 ㅋㅋ존재감 어필을 위한 갑질 때문에 몇 명을 춥게 하시는 건지 ㅋㅋㅋ감사합니다. 덕분에 잘 잤습니다. 막시무스님 좋은 하루 보내시길 기원합니다!!!

붕붕툐툐 2021-02-17 22:3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헐!! 넘넘 고생하셨어요~~ 따시게 푸욱 주무시면 낼 거뜬히 일어나실 거예요!!🙆

반유행열반인 2021-02-18 06:43   좋아요 1 | URL
감사해요!! 약빨인지 고단했는지 잘 자고 잘 일어났어요 ㅎㅎㅎ

라로 2021-02-18 02: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여기 오니까 그 집단 교육 뭐 이런 거 안 들어도 되서 좋습니다요. 에헴. 암튼 고생하셨어요. 저는 추운 거 절대 못참는데 어떻게 그렇게 추운데 시를!! 시를!! 읽으셨어요?? 저 시는 꿈을 지우다 그거랑, 아이가 아내가 되어 혼낸다 그 부분 좋아요. 아이라도 혼내주니까. 😅 저런 남편이랑 사는 분들은 살신성인?? 하긴 저같은 여자랑 사는 남자도 살신성인 같긴 해요. 🤣🤣🤣

반유행열반인 2021-02-18 06:45   좋아요 1 | URL
한동안 줌으로 잘 하더니 방역 어쩔 건지 간 크게 저런 걸 여러 개 잡아놔서 오늘도 같은 데서 떨 것 같아요 ㅠㅠ 추운 데서 불쌍한(?)시 읽으니 의외로 운치있더라구요. 추운 데서 강제로 강의 듣는 거보다는 저거라도 내 선택이다 할 수 있어서 ㅋㅋㅋ덜 불행했어요. 저같은 여자랑 사는 남자도 살신성인 같긴 해요.22222 ㅎㅎㅎ

Yeagene 2021-02-18 11:2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영하 십팔도에서 두 시간을...;;;;
진짜 고생하셨네요.전 추울땐 머릿속에 암것도 안들어오던데 시를 읽으시다니 열반인님 대단하신데요..ㅎㅎㅎ 시인들은 보통 사람들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은 가끔 들더라구요..:)

반유행열반인 2021-02-18 12:30   좋아요 3 | URL
오늘은 소설을 읽으며 즐거운(?)시간을 보냈습니다. 어제보다 실내온도도 1도 높아지고 ㅋㅋㅋ
 
[전자책]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 최순우의 한국미 산책, 개정판
최순우 지음 / 학고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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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16 최순우.

수능과 대입 전형이 모두 끝나고, 합격자 발표에 기뻐하고, 고등학교 졸업식이 끝난 이맘쯤이었다. 막 스무살이 된, 고딩도 대딩도 아닌 공백기의 나새끼는 잠시 여행 다녀오겠다고, 아빠는 술 좀 그만 먹으라고 짧은 손편지를 남기고 첫 가출을 했다.
목적지는 영주 부석사. 국사책과 비문학 영역 지문(아마도 최순우의 글)에서만 접하던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을 꼭 직접 보고 싶었다. 다른 목적도 있었는데, 거의 이년을 짝사랑하던 락동호회의 동갑내기 남자애 하나가 영주 바로 옆 봉화군에 살고 있었다. 사는 곳도 멀고 그간 락동호회 정기공연 때 단 한 번 본 게 다인 그 아이에게 난 푹 빠져 있었고, 나의 구애와 그 아이의 거절과 눈물바람을 이미 여러번 반복한 뒤였다. 그래도 수능 끝나면 놀러오라던 그 아이와의 약속을 지킨답시고 칙칙폭폭 느려터진 무궁화호 기차를 타고 봉화에 갔다. 저녁 늦게 도착해서 그 애 엄마가 차려주시는 밥을 먹고, 여전히 내게 아무 것도 열지 않는 아이 앞에서 눈물로 밤을 새웠다.
다음 날 아이와 함께 영주로 건너가 부석사를 둘러보았다. 무량수전도 보고, 선돌도 보고, 옆에 공사중인 탑도 돌아보고, 안양문을 지나도 극락은 없고, 부석사 앞 된장찌개 파는 집은 맛도 없고 바가지 씌우고, 우리는 시내로 와서 피씨방에 갔다 노래방에 갔다 저녁을 먹고 헤어졌다. 나는 홀로 숙소를 잡아 잠을 자고 다음 날 집으로 돌아갔다.
혼자 그만큼 멀리 가본 건 처음이었고 짝사랑은 내내 짝사랑이라 슬펐지만, 그래도 부석사는 여전히 내가 좋아하는 절이었다. 그래서 그로부터 일년 후 쯤 남자친구가 생기고 나서 다시 부석사에 놀러갔다. ㅋㅋㅋㅋ겨우 두번 갔는데 멀리 보이는 소백산줄기랑 뒤곁 단청 그림 같은 게 어른거린다. 영주는 시내에 김밥천국이 제일 맛있습니다...왜 그 동네는 밥이 맛이 없는 걸까…그래도 다시 가고 싶다 부석사...

네이버블로그에 책 열심히 읽는 이웃분이 이 책 좋다고 추천하셔서, 제목도 마침 내가 좋아하는 사찰 가람이 붙었으니 읽고 싶어져서 빌렸다. 앞의 제법 긴 글은 잘쓰기도 했고 익숙하기도 했다. 우리 문화재를 이렇게 세련되게 물고 빨면 수차례 개정교육과정 거치면서 국어 교과서 저자들이랑 수능 출제위원들이 눈독을 안 들였을리가 없다. 궁금해서 검색해보니 2020년 수능에 딱 백자 달항아리가 지문으로 실렸다. ㅋㅋㅋ
저자는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지냈고, 다양한 미술품과 문화유적에 조예가 깊고 우리가 가진 아름다움을 충분히 표현할 만한 아름다운 문재까지 갖춘 사람이었다. 처음에 저자 연보 보는데 딱 돌아가신 날이 내가 태어난 그 해 그 날이라 오, 난 이 책을 읽을 운명이었어!하고 괜히 좋아했다. 옛 사람이라 예쁜 그릇이나 그림에 잘 생긴 며느리 같은 비유 붙이는 건 조금 낡은 느낌이긴 하지만, 그림과 건축물과 공예품을 묘사하는 글솜씨가 대체로 좋았다. 음 멋을 아는 사람이군, 싶은 글이 잔뜩이었다. 글과 함께 책에 실린 사진들을 보니 어디가 예쁘고 멋지고 근사한지 조금 더 와닿는 느낌이었다. 외가가 광주 분원 백자 빗던 도요지 근처였어서 도자기 사진과 글을 보고 조금 반갑긴 했는데, 뒷부분에 청자-분청사기-백자를 잔뜩 나열한 건 읽기에 조금 지루했다.
사는 동안 생각보다 많은 구석구석의 박물관 다니고 유물이랑 미술품도 많이 봤구나 싶었다. 책 보면서 어 저거 나 실물 봤는데 헤헤 하고 기억나는 게 많아서 좋았다. 책을 봤으니 박물관에 다시 가면 더 반갑게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코로나야 언제 나들이 시켜줄 거니. 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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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2021-02-16 23:4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와 스무살 때는 더 박력 넘치셨네... 좋아하는 사람 보러 영주를 가버려 ㅋㅋㅋ 부석사에서 친구들이랑 하루 자고 온 적 있는데 새벽에 엄청 멋있더라고요. 그때 넘 더워서 다신 여름에 여행 가지 말아야지... 밑에 지방은 더더욱 가지 말아야지... 다짐했는데 그래도 덕분에 무량수전도 보고 그랬네요 ㅋㅋㅋ 그 동네 밥은 맛이 없는 건 킹정... 그래도 다시 가고 싶다 부석사...22

반유행열반인 2021-02-17 06:50   좋아요 2 | URL
저는 두 번 다 이맘쯤의
추운 계절에 갔어요. 그덕에 하늘은 겁나 맑던데 넘나 추웠다ㅋㅋㅋ여름의 부석사를 보셨군요! 이젠 여름이고 겨울이고 상관 없으니 여행 좀 보내죠 코로롱아... ㅋㅋㅋ

2021-02-17 00: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2-17 06: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Yeagene 2021-02-17 03:4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열반인님 글 읽으니 저도 부석사 한번 가보고 싶네요..아마 부석사는 어렸을 때 가봤을런지도...;;;근데 그닥 기억에는 없어요.ㅎㅎ 좋아하는 아이를 보기 위해 가출까지 감행하시다니...전 저 때 그런 것도 안하고 뭐하고 살았는지 몰겠어요 ㅎㅎㅎ

반유행열반인 2021-02-17 06:54   좋아요 3 | URL
이 나이에도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ㅋㅋㅋ코로롱 좀 잠잠할 때 가족 몰래 휘리릭 다녀오세요 ㅋㅋㅋ 부석사 멋있고 조용할 때 가면 좋아요. 화엄사랑 통도사도 멋있고. 예진님이 다녀오시면 또 멋진 스케치로 변모할 풍경들이 떠올라요 ㅎㅎㅎ

페넬로페 2021-02-17 19: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아마 반열님보다 더 전) 겨울에 봉정사를 거쳐 부석사를 다녀왔어요.
조그마한 절이 운치가 있어 좋았어요.
부석사에서 대학때 친구를 우연히 만났어요.
그때 잠깐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는데 지금 밥이라도 먹고 헤어질걸하고 후회가 돼요.
그 뒤로 한번도 본적이 없고 연락도 안했거든요^^

반유행열반인 2021-02-17 19:57   좋아요 2 | URL
봉정사는 못 가봤는데 거기도 수능 국사 단골이었던 듯요ㅋㅋㅋ부석사에서 우연한 만남도 정말 신기하네요. 인연이란 늘 모를 일...

- 2021-02-18 14: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뭐야.... 스무살... 사랑의 열병... 모야모야 사랑둥이☺️

반유행열반인 2021-02-18 14:12   좋아요 0 | URL
여전합니다 😚
 
[전자책] 안녕, 드뷔시 미사키 요스케 시리즈 1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이정민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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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15 나카야마 시치리.

이 소설을 읽다가 주인공 하루카와 잠시 경쟁 구도를 이룬 피아노 연주자가 등장하는데, 그 이름이 미스즈, 뜻은 아름다운 방울이었다. 어려서 내가 살던 도시의 피아노 대회가 열리면 늘 대상을 휩쓸던 아이와 이름이 같아서 재미있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 나간 피아노 시 대회에서 연주를 마친 나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무대를 내려왔다. 너무 긴장했고, 몇 달 간 치열했던 연습도, 성심성의껏 레슨해 준 선생님의 노고도 순식간에 무의미한 일이 되어 버린 것 같아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다 망했어. 나는 역시 재능이 없어. 시상 발표 때 대상-금상-은상-동상-장려상이 거꾸로 불렸는데 4위인 동상에 내 이름이 들리자 어리둥절했다. 상품은 멜로디혼이었다ㅋㅋㅋ. 대상은 같은 반이지만 다른 학원을 다니던 아름다운 방울이가 탔다. 이후 5, 6학년 때도 계속 시 대회에 나갔지만 다음엔 장려, 그 다음엔 아무 상도 타지 못했고 방울이는 매 대회마다 대상을 휩쓸었다. 마지막 대회 이후 피아노 선생님이 결혼하면서 학원을 닫고 지방으로 이사가게 되어서 나도 피아노를 그만두게 되었다. 선생님은 혹시 학원을 옮길 생각이면 어디어디 학원으로 가라고, 거기 선생님이 이 도시에서 제일 잘 가르친다고 했고- 그 학원은 방울이가 다니던 곳이었다.
한 2년 쯤 놀다보니 다시 피아노가 배우고 싶어서 중학생인 나는 선생님이 소개한 그 학원에 갔다. 조금 늦게 받은 제자라 그런지, 지인 소개라 그런지, 이 동네에서 공부 제일 잘 하는 애라는 소문을 미리 들어서 그런지 새 선생님은 나한테 친절하게 대해주셨다. 그런데 그 학원에 다니면서 나는 선생님이 가르친 아이들이 시 대회에서 상을 휩쓰는 비결을 알게 되었다.
학원에는 칸칸 마다 피아노가 한 대 있었는데 입구 쪽에 터돋은 곳에 계단 한 두 칸 올라가면 문이 있고 그 안에 피아노가 있는 넓은 방이 외따로 놓여 있어 조금 특이했다. 내 동생과 같은 반인 첫째 남자아이와 그 아이 여동생 둘 까지 그 학원을 다니는 삼남매가 있었는데, 모두 제법 피아노를 잘 쳐서 상도 곧잘 탔다. 남매 중 둘째인 여자아이가 어느 날인지 연습을 안 해 온 모양이었다. 레슨 중인 방안에서 갑자기 비명소리와 울음소리가 들렸다. 학원 아이들은 다들 갑자기 어두워진 얼굴로 못듣는 척, 모르는 척 했다. 방울이도 그랬다. 그날은 아주 애를 잡는지 자 같은 걸로 때리는 소리, 울음소리, 피아노소리가 섞여 난리도 아니었다. 나는 나중에라도 내가 저 꼴을 겪는 게 아닌가 겁이 났는데, 애초에 선생님은 내가 피아노를 취미로 배울 뿐이라고 생각해서인지 그리 엄하게 다루지 않았다. 선생님은 연주 한 부분 한 부분 꼼꼼하게 잘 보시는 분이긴 했지만 실력 향상의 비결은 매서운 지적과 매가 병행된 결과였다. 나는 그렇게해서까지 잘치고 싶지는 않았고...고등학교 들어가면서 학원을 그만두었다.
그 학원에 다니는 동안 방울이랑 친해져서 걔네 집 놀러가서 그 동안 방울이가 대상 탈 때마다 받은 전리품-바이올린은 줄이 끊어졌고, 팬플루트를 시범삼아 불어줬고, 플루트였나 크로마 하프였나는 배우는 중인데 어렵다고 했고, 오르간은 쓰잘데 없어서 팔았다고ㅋㅋㅋ- 구경도 했고, 같이 문방구에서 와플 파이도 사 먹었다. 친하지 않을 때는 피아노를 나보다 잘 치는 것이 샘도 나고 애가 피아노만 잘 치지 너무 쌀쌀 맞고 콧대 높다 생각했는데 친해지고 나니 말도 잘하고 재미있었다. 그애 집에 있는 팝송책을 마음에 들어하자 문방구 가서 악보를 복사하는 것도 허락해 주었다. 아름다운 방울이는 나중에 피아노를 그만두었다가 결국 다시 피아노로 돌아간 것 같은데 지금은 뭐하고 지내는지 잘 모르겠다 .
뭐 그래서 나는 피아노를 얼마나 치냐... 하면 체르니 40번 치다 관뒀고 슈베르트 좀 치다 말았습죠...지금은 하나도 못 침 ㅋㅋㅋㅋ그래서 소설 읽는 동안 피아노에 관한 부분이 나와도 음 잘 모르겠다 하고 봄 ㅋㅋㅋ

제목부터 드뷔시가 등장해서 음악 소설이구나, 지난 번에 읽어보니 시치리 아저씨는 추리물 작가던데 어떤 이야기를 풀어나갈까 궁금했다. 다행히 소설의 메인 테마 격인 드뷔시의 ‘달빛’은 고등학교 음악 시간에 감상 시험 때문에 지겹게 들어서 아는 곡이었다. 그때 시디 하나에 구워 반복해서 들은 노래들이 아직도 귓속에 남아 있다. 주입식 공교육이 장점도 있군요…
사고로 할아버지와 사촌을 잃고 본인은 심한 화상으로 몸이 망가지고도 삶을 포기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피아노 연주에 매진하는 하루카와 그녀를 가르치며 재활을 돕는 미사키가 주 인물이다. 보면 볼수록 미사키는 심각한 사기 캐릭터(이자 훈남)였다. 이후로도 미사키가 활약하는 음악 추리물 시리즈가 나온 모양인데 별로 궁금하진 않다ㅋㅋㅋ. 하루카가 사람들의 뒤틀린 시선과 신체적 어려움이라는 겹겹의 고통을 딛고 피아노 실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 뻔함과 감동을 오락가락 하다가, 진짜 범인은 또 누구냐 하고 이놈저놈 다 의심해보다가, 마지막 얼마 안 남은 분량 동안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나가려고 하나, 하는 순간 터지는 반전에서 약간의 희열을 느꼈다. ㅋㅋㅋㅋ 너무 문학상 신인상 노리는 소설이라 처음에는 별로인 느낌도 있었지만 끝까지 읽고 나니 이 정도로 재주 부렸으면 상줬어야 겠네, 그런데 다른 경쟁작도 시치리가 쓴 개구리 살인마 소설이었다고 하니 님이 짱 먹으세요...ㅋㅋㅋㅋ
지난 소설 작가 형사 부스지마 읽을 때는 대사만 잘쓴다고 뭐라했는데, 이 소설 보니 같은 작가 소설이 맞냐 싶게 지문에도 힘을 빡 줬다. 식상함과 참신함 사이에서 줄타기 하는 게 보였다. 그리고 소설로 피아노 연주를 과연 어떻게 표현했을까 궁금했는데, 십여페이지 가까이 미사키의 협연 풀어 놓은 건 조금 지루했지만 뒤에 하루카의 콩쿨 장면은 최선을 다하셨구나 싶었다. 피아노는 잘 모르고 딱히 재미는 없지만 나름대로 리듬과 강약과 감정과 느낌을 글로 담으려고 애쓴 건 신기하기도 했다. 그치만 그닥 연주를 글로 읽는 효용은 모르겠음 ㅋㅋㅋ
읽다 말고 소설에 등장한 피아노곡을 유튜브로 찾아 들으니 좋았다. 소설에 등장하는 곡들의 링크를 정리해 놓았다.

Seong-Jin Cho – Polonaise in A flat major Op. 53 
https://youtu.be/d3IKMiv8AHw

Seong-Jin Cho – Etude in C major Op. 10 No. 1 
https://youtu.be/9E82wwNc7r8

부르크뮐러 2번 - 아라베스크 Burgmüller - Arabesque
https://youtu.be/PAuj1-DncI0

베레초프스키 | 리스트 초절기교 연습곡 4번 마제파(Mazeppa)
https://youtu.be/a-iaC044s_8

Seong-Jin Cho plays Chopin Etude op.10 no.2 in A minor
https://youtu.be/ayX919A1b1o

Dmitry Shishkin – F. Chopin ˝Etude in C sharp minor, Op. 10 No. 4˝ (Chopin and his Europe) (encore)
https://youtu.be/ZZ1KQAlj7LM

Dmitry Shishkin plays Liszt ˝La Campanella˝
https://youtu.be/kkq_3CrvFUM

조성진 Seong-Jin Cho] Debussy Claire de lune 드뷔시 달빛
https://youtu.be/97_VJve7UVc

Stanislav Bunin: Debussy - Arabesque No. 1 in E major
https://youtu.be/GStfo_f4L0g

+밑줄 긋기
-이야기와 음악에는 힘이 있다.
이는 재앙을 막는 초능력이 아닐뿐더러 죽은 자를 되살리는 마력도 아니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가능성을 믿게 하고 다시 일어설 용기를 주는 힘이다.

-한데 말이다, 이 할아비 생각으로는 갖고 싶고 되고 싶다는 소망이나 희망은 과일 같은 거란다. 젊어서 먹으면 자양도 되고 미용에도 좋지. 그렇지만 과일이라는 게 때가 지나면 상하고 썩는 법이거든. 썩은 과일은 독소를 지녔지. 당연히 그걸 계속 먹는 사람은 배 속부터 좀먹히는 거다. 그리고 현실과 싸우는 힘을 잃어 간단다. 게다가 말이다, 아무리 맛있어도 배가 부른데도 계속 먹으면 배탈이 나게 되어 있어. 사람은 누구나 과일을 먹어도 되는 한도가 미리 정해져 있는데 그걸 분수라고 한다. 분수를 모르는 자의 말로는 대체로 자멸이지.

-목구멍까지 차올랐다가 간신히 삼킨 말이 두 가지 있었다.
주위 기대를 배신하는 게 그렇게 죄스러운 일일까.
본인의 의사를 무시하면서까지 가능성을 끌어올리는 게 그렇게 대단한 일일까.

-세상은 오래 전부터 비열하고 저열하며 뻔뻔스러웠던 것이다. 그저 내가 몰랐을 뿐이다.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져 밑바닥에서 올려다본 세상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알고 보면 그 모습이야말로 진짜였던 것이다.

-세상은 악의로 가득 차 있다. 공격에 노출되고 나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하지만 자신이 비난하는 쪽에 있을 때는 전혀 알지 못한다. 아니, 알아도 모르는 척하는 것이다. 잔학함을 정의감으로 둔갑시켜 자기 내면에 있는 악의를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그러나 자신을 올바른 인간이라고 믿는 것, 자신과 입장이 다른 사람을 악으로 단정하는 것이야말로 악의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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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1-02-15 23:0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링크 추가 센스 돋네요! 이 책 쇼팽,베토벤에 라흐마니노프도 있어서 궁금했는데 잘 읽었습니당ㅋ저두 꼭 볼래요!
오래 치셨네용 콩쿠르 나간거 부럽고요.^^저는 100에서 30인지 넘어가구 초반까지만 배웠어요.하..

반유행열반인 2021-02-16 07:14   좋아요 2 | URL
저도 지금 실력은 백에서 삼십 사이인 거 같아요 ㅋㅋㅋ쇼팽 베토벤 라흐마니노프 시리즈는 읽게 되시면 리뷰 남겨주세요 ㅋㅋ저는 그만 읽으려구요... ㅋㅋㅋㅋ

붕붕툐툐 2021-02-15 23: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셋 중에 두개만 좋으면?ㅎㅎㅎ
링크 진짜 짱짱!

반유행열반인 2021-02-16 07:14   좋아요 1 | URL
이제부터 피아노를 좋아하시면 즐기실 수 있겠습니다! ㅋㅋㅋ

하나 2021-02-16 00:1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열반인님 댁에 피아노 있다는 얘기 들은 거 같은데 열반인님도 피아노 오래치셨구나. 저도 오래 쳤고 방울이 같은 친구 옆에서 열심히 사네 쟤는.. 했던 사람 ㅋㅋㅋㅋ “이 정도로 재주 부렸으면 상줘야겠네” 그런 말 들으려면 미스터리 스릴러 반전 빵빵 때려넣어야 되나요? 🤣 링크까지 정성 가득 리뷰 🎶 요즘 알라딘 클래식 마을 🎵

반유행열반인 2021-02-16 07:17   좋아요 2 | URL
맞아요 아빠가 저 피아노 그만두고 나서 고등학생 때 디지털 피아노 사줌 ㅋㅋㅋ두 집 갈라설 때 제 침대 책상 기타 고등학교 졸업할 때 상패(금 붙어 있었음...)까지 다 가져가면서 희한하게 피아노는 두고 갔어요. 다 때려넣은 정성은 인정이고 취향은 탈 거 같은 소설 ㅋㅋㅋ소재 조합이 특이해서 그렇지 반전 스릴러는 약해서 원조 추리물 보던 사람은 부족하다고 욕하지 않을까요 ...

psyche 2021-02-16 06: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셋 중 두 개를 좋아합니다. ㅎㅎ 한번 읽어볼래요. 링크까지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반유행열반인 2021-02-16 07:19   좋아요 1 | URL
엇 어떤 두 개를 좋아하시는지 갑자기 짐작이 안 가고 있어요 ㅋㅋㅋ링크 피아노곡들은 멋있길래 나아아중에 북플 꾹 누르고 들으려고 모았어요 ㅋㅋ피씨에서 html로 동영상들도 직접 잘 붙여넣으시던데 그 재주는 없어서 아쉽네요 ㅠㅠ

psyche 2021-02-16 07:45   좋아요 1 | URL
피아노와 추리 좋아하고 반전은 딱히 좋아하지 않아요 ㅎㅎ 다음에 책 읽을때 열반님 링크 따라 들으면 좋을 거 같아요.

Yeagene 2021-02-16 10: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런 피아노 연주를 글로 쓴 노력이 대단한대요 ㅎㅎ 열반인님 덕분에 음악감상했네요..역시 조성진!:)

반유행열반인 2021-02-16 13:28   좋아요 0 | URL
그쵸 글로 쓰는 장인들 ㅋㅋㅋ조성진 저는 잘 몰랐는데 이번에 들으니 좋네요 ㅋㅋㅋ

- 2021-02-16 19: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조성진 ㅠㅠㅠ 핡 ㅠㅠㅠ (모닝콜 조성진 쇼팽인 사람이 웁니다) 그래도 제 인생의 드비쉬는 릴리슈슈 쿠노의 드비쉬 ㅋㅋㅋ (하지만 전 클래식은 아무리 들어도 모루겠어요)

- 2021-02-16 19: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결론 : 읽지도 않는 클래식 입문 책만 세권 집에 있음

반유행열반인 2021-02-16 20:56   좋아요 0 | URL
저보다는 훨씬 잘 아시는 거 같은데요 ㅋㅋㅋ조성진 이름만 들어보고 이번에 첨 찾아듣는 일인 ㅋㅋㅋㅋㅋㅋ
 
주거해부도감 - 집짓기의 철학을 담고 생각의 각도를 바꾸어주는 따뜻한 건축책 해부도감 시리즈
마스다 스스무 지음, 김준균 옮김 / 더숲 / 2012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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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12 마스다 스스무.

할아버지는 노가다 십장이었다. 내가 태어났을 때 중동 어딘가에 계셨고, 편지로 내 이름을 지어주셨다. 엄마는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첫 아이고 어른 말씀 따르는 일 외에는 다른 선택을 하지 못했다. 내가 조금 자랐을 때에도 할아버지는 수단, 이란, 이런 사막 나라의 건설 현장에 가 있었다. 건축을 배운 건 아니고 그냥 여기저기 집 짓고 건물 짓는 곳 일하러 다니면서 설계도 보는 법 익히고 눈대중으로 맞추고 좋은 기억력으로 외워서 뚝딱뚝딱 하게 되었다고 했다. 증조할아버지는 대목수였다. 오래 전에 큰 절을 짓고 돈도 많이 벌었는데 노름으로 다 날려서 할아버지가 아버지는 죽어야 돼, 하고 술주정을 해서 증조할아버지가 엉엉 울었다고 한다. 손재주 좋은 조상의 영향인지 아빠는 귀금속 세공일을 했고 삼촌들도 뭘 만들거나 고치는 일을 잘했다. 사촌들도 그림 그리고 만드는 걸 좋아해서 미술 쪽 전공을 한 아이들이 (나 빼고 ㅋㅋㅋ) 많았다.
할머니댁(할아버지가 같이 사는데도 우리는 늘 할먼네-하고 불렀다)은 할아버지와 할머니와 삼촌들이 지었다고 했다. 명절 전날쯤 그 집에서 자고 다음날 차례를 지냈다. 머물 때마다 그곳은 편안한 공간이 아니었다.
일단 진입로부터 길이 없는 곳, 도랑과 남의 밭을 지나 외따로 떨어진 산밑의 맹지에 집이 있었다. 삼촌들은 차를 집 앞 논 건너편 저 먼 마을회관 앞이나 남의 집 담벼락 옆에 대고 논두렁길을 질러 할머니댁에 왔다. 차가 없는 우리 가족은 버스정류장에서 삼십여분 쯤 시골길을 걸어 들어갔다. 저녁길을 밟을 때면 길 옆 도랑이며 논물에서 개구리들이 와글와글 우는 소리가 났다.
아래로 도랑이 흐르는 편편한 시멘트 판 같은 너른 공간이 담벼락 밖에 있었다. 담 안은 마당이라 하기엔 좁은 마당, 실내 출입문 마주보고 왼편으로 돌면 나무 쌓는 공간이랑 우물가, 우물 앞 별채 방 하나와 창고들, 그리고 옥상으로 올라가는 작은 계단을 밟으면 뒷산의 나무가 바람에 떨리는 소리와 모양이 으스스했고, 창고 위편 옥상의 장독대를 지나 우물 방 옥상으로 건너가면 집 옆 개울물과 남의 밤나무밭과 할아버지네 논밭으로 가는 산길이 멀리 보였다. 그나마 실외 공간은 볕이 들고 트인 맛이 있어서 거부감 없이 먼저 떠오른다.
다시 대문 앞 미닫이 유리 출입문을 열고 들어가면 실내에 마루라 부르던 거실이 있었다. 원래 거실 위편으로 골방 같은 작은 방이 있었(고 그 작은 방에는 빨간 이불을 뒤집어쓴 다섯째 삼촌이 음침하게 누워있었)는데 어느 해 홍수 피해로 침수가 된 후 새로 공사를 하면서 방을 다 없애고 거실을 넓게 만들었다. 거실 오른편에는 장가 못 간 막내 삼촌이 쓰는 작은 방, 거실 왼편은 위쪽은 부엌으로 가는 문, 출입문 쪽에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쓰는 방으로 가는 문이 있었다. 할아버지는 한 때는 우물 건너편 방에 처박혀 살았는데, 어느때부터 다시 안방을 차지했다. 이 집 구조 중 제일 이상한 게, 화장실은 안방 안에 출입문이 있었다. 또 그 화장실은 우물가로 나가는 허술한 문이 하나 더 있었다. 시아버지 앞을 지나 화장실에 가는 게 싫었던 며느리들은 부엌에서 우물 가로 난 문을 나가서 집을 한 바퀴 빙 돌아 대문 앞을 지나 그 오른쪽 구석에, 농기구와 공구들이 쌓인 창고 사이로 아주 오래전 만들어 놓고 없애지 않은 푸세식 화장실을 사용하고는 우물가로 되돌아와 손을 씻었다.
그러니까 그 집은 오직 할아버지 중심의 아주 좆같은 구조였던 거지.
명절마다 할아버지와 큰아빠, 아빠, 작은아빠, 삼촌들이 싸우거나 할아버지에게 맞아서 울었다. 엄마와 작은엄마가 싸우고 엄마가 갑자기 마을 밖으로 나가버렸다. 할머니가 할아버지에게 맞은 상처를 감추며 끙끙 앓았다. 갈랍 부치고 만두 빚고 식혜 만들던 엄마들은 부엌 바닥이나 거실 바닥에 눕고 삼촌들은 작은 방에서 늦도록 고스톱 치고 티비 보다 아무 데나 눕고 아이들은 거실 바닥에 누운 엄마들 사이나 할머니 할아버지 방의 여기저기 틈새에 누워 얇고 배기는 요떼기 위에 지나치게 높은 베개를 베고 불편한 잠을 잤다. 아빠나 삼촌이 자기 본가에 들르면 떠오르는 기억은, 아주 추운 날 형제 한 명이 잘못하면 여섯 형제 모두 발가벗겨진 채 담벼락 아래 쫓겨나 울던 일이었다.
으악. 노가다 십장이 집이라고 좆같은 걸 지어놓고 자식과 부인을 학대하고 그 자식들은 또 자기 부인과 자식을 학대하고 아주 좆같은 걸 대물림했다.

명절이면 그런 기억들이 가끔 떠오른다. 이제 다시는 거기 안 가도 되고 엄마가 거기에서 수십명 밥 해 먹이겠다고 고생하지 않아도 되고 그렇게 밥 해 먹이고 집에 돌아와서 아빠한테 술주정 당하지 않아도 되서 지금은 행복한 명절이다. 남편은 홀로 어머니 뵈러(이미 그 집 식구가 5명이라 혼자만 슬쩍) 가고, 새해 아침 나랑 꼬맹이들은 시리얼 우유 말아먹고 스팸에 밥 비벼먹고 크로아상 구워 복분자무화과잼 찍어먹고 저녁에 엄마가 잠시 와서 같이 사골떡국 끓여 먹었다. 해피 뉴이얼스 데이.

이사를 준비하면서, 어차피 공동주택에서 다시 공동주택으로 가는 거라 평면 배치나 구조 같은 건 이미 다 정해진 것이지만 그래도 집에 대해 궁금함이 생겼다. 이 집에 올 때도 빚은 가능한한 다 끌어모아 겨우 구한 터라 도배랑 장판이랑 썩어가는 화장실과 주방만 홈쇼핑에 무이자12개월 긁어서 최소한의 비용으로 수리를 하고 왔었다. 요즘엔 그걸 (인테리어 업자 끼지 않고 자기가 하나하나 항목별로 알아보고 집 고치는 걸) 셀프 인테리어라고 부른다더라. 아마 새로 가는 집도 그 셀.인.이라는 걸 할 것 같다. 평당 100만원? 그 정도가 가장 저렴한 편이라는 인테리어를 그렇게 알아서 하나하나 하면 거의 절반 가까운 금액으로 끝낼 수 있다. 조명 가게에 엘이디조명 교체와 낡은 콘센트, 스위치 교체를 알아보니 거의 200만원을 부르는데, 인터넷에다 재료를 싹 주문하고 설치기사님을 연결해주는 앱을 이용하면 80-90만원이면 뒤집어쓰는 식이다.

이 책은 인테리어에 대한 책은 아니다. 오히려 자기 집을 짓거나 남의 집을 짓거나 집을 설계하는 공부를 하는 사람에게 알려주는 기본 지침 같은 것이다. 제목에 도감이 붙은 것처럼 저자가 어려운 건축용어 거의 안 쓰고 직관적이고 이해가 쉬운 귀여운 그림으로 챡챡, 다 설명해준다. 정말 신기했다. 우리가 집 그림 그릴 때 경사 진 지붕으로 그리고 창문 그리는 집이 그런 모양으로 생긴게 다 이유가 있었다. 지나가다 본 건물 외벽에 왠 파이프 같은게 길다랗게 세로로 주렁주렁 달려 있어 아이참 저건 왜 저렇게 못나게 달아놨담 싶지만 비가 많이 오는 우리나라 기후에선 역시나 다 부분마다 존재 이유가 있다. 창 모양도 주방의 구조도 문이 열리는 방향도 그러니까 다 이유가 있었다. 그런 이유를 아니까 재미가 있었다. 사는 공간을 보는 눈이 조금 달라졌달까. 뭐 그러나 저러나 이미 만들어진 집에 들어가는 입장에서는 영향을 끼칠 여지가 많이 없지만 ㅋㅋㅋ

내가 집을 지어본 건 예전에 취업 준비하던 해에 김성모 만화책 보다 지치면 심즈4를 신나게 할 때였다. 방 배치부터 외벽 마감, 벽지 마감, 바닥재 깔기, 지붕 얹기까지 온통 귀찮은 것 투성이였다. 그래서 그냥 멋대가리 없이 체육관처럼 넓다란 네모 대충 만들고 그 안에 또 대충 네모난 방 만들곤 했는데.
어려서 할아버지 집에서 느낀 불편함과 음울한 집안 분위기 생각하면 화장실을 어디에 놓는지, 몇 개 놓는지 조차 너무나도 중요한 일이다. 그 집에 가지 않은지 15년쯤 흘렀다. 할머니를 때려 돌아가시게 한 할아버지는 아직 거기 살고 있다. 엄마를 때려 결국 혼자 남은 아빠가 가끔 할아버지를 챙기러 드나든다는 소문을 듣는다. 아빠와 살던 집은 서비스 면적을 많이 받아 넓직한 새 집이었지만 아빠가 틀어놓은 텔레비전 소리가 공부하는 내 방을 그대로 뚫고 들어왔고 컴퓨터를 놓은 방은 유리문 미닫이로 되어 있어 바깥에서 감시가 가능한 형태였다. (그래서 나중에 문 위에 벽지를 붙이긴 했지만…) 나는 그 집에서 행복하지 않았다. 집의 구조도 중요하지만, 구조가 관계에도 영향을 미치지만, 관계야 말로 같이 사는 사이에서 계속 같이 살기 위해 제대로 풀어내야 할 일이다. 당연한 소리나 하고 있네. 나는 같이 사는 사람들에게 불편한 존재가 아니었으면 좋겠어. 할아버지나 아빠 같은 사람이 내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어. 잠시라도 내가 불편한 존재가 된다면 곁의 사람들이 피할 수 있는 공간들이 충분하면 좋겠어. 역시 내가 더 나은 존재가 되는 게 우선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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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12 23: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2-12 23: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람돌이 2021-02-13 01:3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가족 모두가 행복한 집을 응원합니다. 새로운 집에서 더 많이 서로 사랑하고 행복해지시길요. 근데 셀프 인테리어 너무 힘들지 않나요? 아 그걸 하겠다고 생각하는 것에서부터 무한한 존경의 눈길을 보냅니다.

반유행열반인 2021-02-13 07:30   좋아요 2 | URL
응원의 말씀 감사합니다. 이사가기 전부터(?) 열심히 사랑하고 행복하게 살겠습니다ㅎㅎㅎ직접 철거하고 필름이며 목공이며 타일 바르고 뚝딱뚝딱 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그게 셀인 인 줄 알았고 그거야 말로 대단하다 싶더라구요. 이 업체 저 업체 알아봐서 일정 맞추는 건 직장 다니며 하기 번거롭긴 해도 그에 비하면 일도 아니지 싶어요 ㅎㅎ

Yeagene 2021-02-14 15: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열반인님은 더 나은 사람이 되실 거에요..열반인님 원하는 대로 다 이루어져라!ㅎㅎㅎ

반유행열반인 2021-02-14 15:55   좋아요 1 | URL
더 나은 사람 될 수 있도록 내내 정진하겠습니다 ㅎㅎ감사합니다 예진님!!! 남은 휴일도 편안히 보내시길!!!!!

2021-02-16 19: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2-16 20: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2-16 20: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2-16 20: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2-20 21: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2-20 21:37   URL
비밀 댓글입니다.